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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32화 (232/850)

232화

정성국은 연구청에서 돌아온 이후 곧바로 행정청장과 개발청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이미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방적기와 직조기가 개발된 이상, 그리고 현 연구청의 수준을 보면 조면기의 개발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은 만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행정청장과 개발청장이 집무실에 방문하자 정성국은 박기동이 개발한 방적기와 직조기를 이야기하며 이를 이용해 방적 공방과 방직 공방을 세울 생각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원료가 되는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흐음...목화라...하긴. 최근에 면포 수요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리는 듣긴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언제까지 조선의 면포를 수입해 사용할 수야 없으니 나쁠 것 없군요."

"그렇지. 다행히 이곳 북미 대륙에도 목화는 존재하고 이를 재배하는 원주민들도 있는 만큼 그들을 이용해보도록 하자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아시아에서 재배하는 목화의 품종과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목화의 품종은 조금 달랐고 방직용으로는 이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목화가 더 알맞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할 뜻을 내비치면서 정성국은 일단 애리조나 지역을 중점으로 목화 농사를 짓겠다고 이야기했다.

현 북미왕국이 장악한 영역에서 목화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주로 국경선 인근의 남부 여러 지역이었지만 정성국이 굳이 애리조나 남부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이 지역이 그나마 새나주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최초의 방적 공방과 방직 공방은 새한성에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면 목화솜의 운송이 관건이었다.

텍사스 지역 역시 목화를 재배하기엔 적합한 지역이었지만 새나주-새진주 철도 부설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목화를 재배하더라도 목화솜을 새한성까지 가져오는 것이 힘들 것이 뻔했기에 그나마 새나주에 가까운 애리조나 남부 지역을 택한 것이다.

또한, 순조롭게 새나주-새진주 철도 부설이 진행되며 쭉쭉 철로를 깔고 있었기에 목화를 수확할 때쯤이면 철도를 이용해 목화솜을 새한성으로 가져올 수도 있어 보였고.

그런 정성국의 설명에 행정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하지만 목화의 파종기를 고려해보면 당장 올해부터 대량으로 목화 재배를 하기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지역은 대부분 제대로 개간되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은 물자 운송이 원활한 새한강 유역과 새한성-새나주 철도 노선 주변을 중점적으로 개발하다 보니 이 지역의 개간은 무척 더딘 편이었다.

개척단 역시 도로를 정비하고 곳곳에 병영과 마을을 건설하는데 투입한 상황이라 개척단이 개간한 밭도 없는 형편이었고.

목화의 파종기는 4~5월 경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했다.

"쯧...그건 또 그렇군. 하는 수 없지. 일단 개척단 일부를 동원해 파종 시기가 다가오기 전까지 최대한 밭을 개간해보게."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옆에 앉아있는 개발청장을 바라보았고 개발청장은 큰 문제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 지역에 대규모로 목화밭을 조성할 생각이시라면 아예 멕시코 원주민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멕시코 원주민들을?"

철도 부설에 투입된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이 지역에 투입된 인원이 적지 않았기에 정성국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표정을 짓자 개발청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자기 생각을 밝혔다.

"그렇습니다. 전하. 일단 개척단을 움직여 파종 전까지 최대한 밭은 개간하겠습니다만...멕시코 원주민을 추가 모집해 파종 시기가 지난 후에는 내년을 바라보고 최대한 밭을 개간하고 내년에는 이들을 고용해 목화 농사에 투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왜 추가로 멕시코 원주민들을 고용하자고 한 것인지 이해했다.

"아...이들을 목화 농사에 투입하지?"

"그렇습니다. 목화 농사는 워낙 많은 일손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헌데 이 지역의 원주민들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목화 농사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전생에서도 미국 남부 지역의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를 포기하지 못해 결국 남북 전쟁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조면기가 발명된 이후인데도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목화를 수확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목화 수확 기계가 발명되며 이 기계 하나가 50명의 일꾼이 수확하는 양을 수확하게 되자 농장주들은 즉시 농장에서 일하는 모든 흑인을 해고하고 목화 수확 기계를 들이기 시작했고.

이때 목화 농장에서 해고당한 흑인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러면서 흑인 인권 운동이 시작되게 되고.

그런 전생의 흐름을 기억한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기동이 녀석에게 이야기는 해 두었지만...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조면기는 몰라도 목화 수확 기계를 단번에 만들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분간은 일손이 꽤 많이 필요할 테고...확실히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의 수는 적은 편이니 그러는 편이 낫겠군. 그리고 목화 수확 기계를 만들어 일손이 줄어들면 멕시코 원주민들은 다른 곳에 투입하면 그만이니...'

그나마 사람이 많았던 전생의 미국과 북미왕국의 사정은 또 달랐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뭐 상관없겠지. 그러도록 하게."

정성국이 승낙하자 개발청장은 멕시코 원주민을 얼마나 고용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그런 개발청장을 내버려 두고 행정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축산 연구소에 연락해 양모를 얻기 위해 대량으로 양을 방목할 지역을 찾아보라고 하게."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양모라...모직물까지 대량 생산할 생각이십니까?"

"물론일세. 새남포도 그렇고 이번에 얻게 될 북미 동해안의 북부 지역도 꽤 추운 편이라 이 기회에 모직물도 생산해두는 것이 나을 거야."

면직물도 그렇지만 모직물도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 단가를 확 낮춘다면 가죽과 더불어 유럽에 팔아먹기 딱 좋은 수출품이었다.

'물론 모직 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잉글랜드를 생각하면 함부로 모직물을 유럽에 수출하긴 어렵긴 하지만...'

모직물은 잉글랜드 경제를 지탱해온 무척이나 중요한 물자였고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다.

그런 만큼 북미왕국이 모직물을 대량 생산에 유럽에 풀기 시작하면 당연히 잉글랜드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기에 정성국도 당장 모직물을 유럽에 수출할 생각은 없었다.

잉글랜드는 이미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낼 뜻을 내비쳤고 북미 지역에서도 손을 떼기로 했으니 정성국 역시 당장은 잉글랜드와 우호적으로 지낼 생각이었기에.

하지만 이 모직물은 잉글랜드의 아킬레스건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모직 산업을 육성해두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보았다.

'나중에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고...잉글랜드가 이 북미 대륙의 식민지를 포기했고 우리가 면직물을 대량 생산해 유럽에 팔기 시작하면 과연 잉글랜드가 전생의 대영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한데...만약을 대비해 저들의 약점을 찌를 비수 하나쯤 마련해 두는 것은 나쁘지 않지. 그리고 당장은 북미 지역 북부 지방의 원주민들에게 식량과 함께 어필할 수 있는 괜찮은 수단일 테고.'

그런 정성국의 생각을 모두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곧 잉글랜드 식민지를 얻게 되고 이 식민지들은 북쪽까지 뻗어있었기에 행정청장은 미리 준비해두어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긴 하군요. 알겠습니다. 축산 연구소에 알리도록 하지요."

* * *

정성국은 오랜만에 집무실을 방문한 이상돈을 반기며 그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동이에게 들었습니다. 연구소를 방문하셔서 방적기와 직조기를 확인하셨다면서요?"

이상돈의 물음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했다면서?"

"예. 뭐 언제까지 조선 면포를 수입할 수는 없고...원주민이 만드는 면포는 생산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색감이 너무 화려하잖아요? 거기에 새김포나 새한성의 원주민 여성들이 집안에서 살림을 하기보다는 직업을 가지려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결국은 면포의 수요량이 폭증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했던 거죠."

"호오..."

그러한 이상돈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나직이 감탄했다.

실제로 새김포나 새한성의 여성들은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긴 했다.

특히 최근에는 곳곳에 국영 상단이 차리는 음식점을 비롯한 상점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덕분에 많은 여성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상돈은 이러한 경향이 곧 북미왕국 전역으로 확대되리라 보았고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직접 면포를 만들기보다는 돈으로 면포를 사서 옷을 만들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보다 기동이에게 들었습니다. 청나라에서 생사를 수입해서 비단을 짜서 서양에 판매하실 계획이라고요?"

이상돈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직은 계획일뿐이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 그리고 생사를 들여온다 한들 이를 제대로 가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 널 부른 거고."

정성국의 말에 이상돈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긴...비단은 사치품이니만큼 최고급 품질이어야만 하겠죠."

"그렇지."

유럽에서 비단은 무척이나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그렇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도 비단을 직접 사 오기보다는 생산하려 노력했고 유럽에서도 비단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품질이 썩 좋지 않아 유럽의 귀족들은 오로지 중국산 비단만을 원했다.

물론 오로지 품질에서 차이가 나서 유럽에서 생산하는 비단이 저평가받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비단이 고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의 메이드 인 차이나는 명품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명나라에 방문한 상인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 대륙의 거대한 규모가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은 중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생산한 여러 사치품이 유럽의 왕가와 귀족들에게 대유행하면서 그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솔직히 북미왕국의 도자기가 중국산 도자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는 했다.

분명 북미왕국의 도자기는 품질도 좋고 기존의 도자기에 비해 충격에도 강했으며 디자인 또한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추긴 했지만, 유럽에 유행하고 고평가받게 된 것은 네덜란드 상인들의 역할이 무척 컸다.

당시에는 북미왕국을 아시아의 국가로 생각한 네덜란드 상인들이 아시아의 도자기로 홍보한 것도 주요했고.

'그나마 유럽에서 북미왕국의 이미지는 나쁘지 않아. 에스파냐의 대응과 정확한 정보의 부재로 인해 북미왕국의 국력을 무척 고평가하고 있고. 거기에 고품질의 도자기를 생산하는 만큼 기술력과 문화도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있고. 그러니 중국산 비단과 비슷한 수준의 비단을 생산하게 되면 충분히 먹힐 거야. 먼 아시아까지 가기보단 대서양을 건너는 편이 그나마 쉬울 테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은 이상돈에게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비단 연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서도 비단을 생산하는 만큼 원상을 통해 기술자들도 확보하도록 하고요."

아쉽게도 조선산 비단은 중국산 비단보다는 품질이 좋지 못했지만, 많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이를 통해 연구하면 그만이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기술이 확보되면 바로 알려. 원상을 통해 생사를 구해볼 테니."

정성국의 말에 이상돈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는지 질문을 던졌다.

"헌데 생사도 밀무역으로 확보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조선과 공식적으로 접촉했으니 북미왕국의 존재를 청나라도 알게 될 텐데요?"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적으로 사절단을 보내 조선과 접촉한 이상 청나라에도 북미왕국의 존재는 알려질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니 슬슬 청나라와 접촉할 준비를 해야 했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도 생각해둬야 했다.

"음...조만간 청나라와도 공식적으로 사절단을 보내긴 해야지. 조선 상황이 조금 안정되면 그때 보낼 생각이야."

정성국의 대답에 이상돈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투로시노가 가야 할 테니 조선 상황이 조금 나아져야 가능하겠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그렇지. 빨리 나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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