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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30화 (230/850)

230화

찰스 2세는 집무실에서 클레멘트가 올린 보고서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클레멘트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찰스 2세의 반응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멘트였다.

이에 찰스 2세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보좌관에게 보고서를 넘기며 웃었다.

"하하하. 자네가 협상에도 재능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군."

보좌관은 보고서에 나와 있는 교역품의 물량을 확인하고 바로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기대 이상인데요?"

찰스 2세와 보좌관의 칭찬에 클레멘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부여잡으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클레멘트의 말에 찰스 2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너무 겸손해할 것 없네. 어차피 지키기 어려운 식민지였어. 헌데 자네가 저들과 협상해 우리 잉글랜드 왕국 1년 치 세입을 얻어온 셈 아닌가. 정말 훌륭하군."

계속되는 찰스 2세의 칭찬에 클레멘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북미왕국과 협상을 진행했으니 북미왕국으로부터 이러한 대가를 얻어낸 것 역시 국왕 폐하의 칭찬처럼 내 협상 능력 덕분인 거야.'

런던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협상 당시 북미왕국 전권 대사인 웅크린 늑대에 조금 밀리지 않았나 생각했던 클레멘트는 찰스 2세의 계속되는 칭찬과 의외의 결과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보좌관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제가 북미왕국 전권 대사에게 우리 잉글랜드는 적법하게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얻었다는 것과 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그동안 잉글랜드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린 것이 꽤 주요하긴 했습니다."

"하하하. 그래?"

"하지만 저들이 책정한 전비가 상상 이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음?"

클레멘트의 말에 찰스 2세와 보좌관이 협상 당시의 상황을 궁금해하자 클레멘트는 적당히 자신의 협상 능력을 포장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클레멘트는 아직 하급 귀족에 불과했고 특별 대사로 임명되어 북미왕국과 협상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찰스 2세가 클레멘트를 꽤 쓸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클레멘트도 잘 알고 있었기에 향후 자신의 입지를 생각해서라도 자신의 협상 능력과 이번 협상에서 잉글랜드가 북미왕국에 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했다.

"허어...그러니까 자네가 북미왕국 전권 대사를 최대한 설득한 끝에 저들이 전비로 생각한 비용을 그대로 받아냈다는 거군?"

클레멘트의 모든 설명을 듣고 찰스 2세가 그렇게 묻자 클레멘트는 약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저는 이렇게 북미왕국 전권 대사에게 선언했습니다. 북아메리카에 건설된 식민지 역시 우리 잉글랜드의 영토이고 이 영토를 침범한다면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항쟁할 거라고요. 이에 북미왕국 전권 대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을 때 슬쩍 전권 대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뭐라고?"

찰스 2세와 옆에 있던 보좌관이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클레멘트를 바라보자 클레멘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이 강압적으로 우리 잉글랜드가 보유한 식민지의 권리를 강탈하려면 당연히 맞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에스파냐처럼 적당한 대가를 받고 식민지의 권리를 팔 수도 있다고요. 이에 북미왕국 전권 대사는 한참을 고민하다 적당한 대가가 얼마인지를 물어봤고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클레멘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귀국도 이제 주변 사정을 아는 만큼 북아메리카 동해안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군사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도 이미 계산했을 거로 예상한다고. 그러니 전비로 책정한 예산 정도면 우리는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넘길 수도 있다고 말이죠."

"호오?“

클레멘트의 말에 협상에서 먼저 잉글랜드의 패를 보인 것이 아닌가 싶어 찰스 2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협상 결과는 만족스러웠기에 굳이 이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날의 협상은 끝냈고...며칠 후 북미왕국 전권 대사가 항복하듯 건네준 문서에 적힌 교역품의 양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북미왕국이 영역 확장을 위해 책정한 전비의 최대치를 우리가 원하는 교역품으로 환산한 물량이라면서."

클레멘트의 설명이 끝나자 찰스 2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1년 치 세입을 전비로 쓰다니...대체 북미왕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병사를 움직일 생각이었던 거지?"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이 과연 그렇다는 듯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비를 고려해보면 우리의 예상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해 단숨에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장악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들은 에스파냐를 상대할 때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으니까요. 덕분에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은 차마 버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로 항복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찰스 2세는 보좌관의 말에 북미왕국의 국력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총력전이라는 건가? 아니면 저들은 병력 일부를 움직이는데 병력 규모가 거대해서 병력 일부조차 우리의 예상보다 많은 건가...어느 쪽이든 무척 당황스럽군."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잘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전비를 책정했을 정도라면 그들의 전략대로 순식간에 밀렸을 겁니다. 헌데 여기 코트렐 경 덕분에 1년 치 세입을 얻은 셈이니...한 50만 파운드 정도만 나눠줘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이권을 가지고 있던 고위 귀족과 상인들은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면서 북미왕국에 맞서기보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포기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클레멘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이 판단한 것보다 북미왕국의 국력이 더 대단한 것처럼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북미왕국이 넘겨주는 교역품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북미왕국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해서 헐값에 식민지를 넘겼단 소리를 들을 것 같지도 않았으니 찰스 2세는 클레멘트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클레멘트는 지금껏 새진주를 두 번이나 오가며 잉글랜드인들 중에서는 가장 북미왕국의 사정에 밝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미왕국의 전권 대사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고 협상한 듯 보이니 그를 계속해서 중용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고.

그때 보좌관이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지 클레멘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북미왕국에서 후장식 소총의 판매는 역시나 불가하다고 하던가요?"

클레멘트는 후장식 소총 수입 문제는 찰스 2세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기에 사실관계를 적당히 왜곡했다.

"아닙니다. 협상이 다 끝난 이후에 물어보니 우리가 원한다면 팔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에 보좌관뿐만 아니라 찰스 2세도 반색한 표정으로 클레멘트를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클레멘트의 이야기에 기대에 찼던 찰스 2세와 보좌관의 표정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레멘트의 이야기가 끝나자 보좌관이 투덜거렸다.

"허어...그렇게 비싸단 말입니까? 거기에 화약까지 달라 운용하려면 지속해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요? 이것 참..."

찰스 2세 역시 클레멘트가 전해준 북미왕국 전권 대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복제하려 들 거 뻔히 아니까 소량으론 팔지 않겠다? 거참..."

이에 클레멘트는 찰스 2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그리고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지라 제 판단으로 정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해서 이 이상 구매 협상을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에 찰스 2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클레멘트를 바라보고 말했다.

"잘했네. 너무 비싸. 거기에 저들이 후장식 소총을 스스럼없이 판매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아마 당장 우리가 복제하진 못할 거라고 예상하는 모양이지?"

이는 결국 잉글랜드의 금속 가공 기술이 북미왕국보다 뒤떨어진다는 의미였기에 클레멘트는 민망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저들은 에스파냐를 통해 유럽의 기술력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텐데도 우리가 소총과 화약을 복제하진 못할 거라는 태도였습니다."

클레멘트의 대답에 찰스 2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매 협상을 진행해 후장식 소총을 들여와 철저히 분석해서 복제해 저들의 콧대를 꺾어주고 싶긴 하지만..."

이에 보좌관이 기겁하며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 역시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의 산업 기술 수준을 무시했다는 것이 영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유지비가 엄청난 후장식 소총을 당장 들여오는 것은 손해가 크다고 판단했다.

거기에 후장식 소총은 잉글랜드의 기술자들을 이용해 어떻게 복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클레멘트가 말한 새로운 화약과 화약 일체형 탄환은 복제가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았고.

북미왕국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엔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당장 우리에게 후장식 소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보좌관이 기겁하며 말리자 찰스 2세는 조금 진정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후장식 대포나 그 신기한 군함이면 또 모르겠는데..."

이에 클레멘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것들은 절대 불가라고 하더군요."

클레멘트의 대답에 찰스 2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레멘트나 서인도 제도에 배치되어 클레멘트와 함께 새진주를 방문했던 잉글랜드 군함의 함장이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왕국의 군함이 무척 위력적이라고 쓰여 있었기에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의 군함을 내심 사 오고 싶었다.

찰스 2세는 네덜란드를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네덜란드 해군에 의해 대판 깨진 경험이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군함을 사 오면 네덜란드에 복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때문에 만약 저들이 군함을 팔겠다고 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사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절대 불가라니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만약의 경우 저들에게 후장식 소총을 사 올 수 있으니 그건 나쁘지 않군."

"그건 그렇습니다."

물론 유지비를 고려하면 후장식 소총을 들여오기보다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사를 대거 모집하는 것이 나아 보이긴 했지만,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 셈이라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 찰스 2세였다.

"그 때문에라도 저들과는 계속 우호적으로 지내야겠지만...뭐 이미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모두 넘기기로 했으니 굳이 충돌할 것 같지도 않으니..."

찰스 2세가 중얼거리자 보좌관이나 클레멘트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이교도들에게 몹시 호전적인 에스파냐가 왜 저렇게 북미왕국에 설설 기나 했는데 저들과 접촉해 북미왕국의 실체를 파악할수록 에스파냐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고 잉글랜드 역시 에스파냐처럼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교류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 이야긴 여기까지 하고...정식 조약은 올해 가을이라고?"

"그렇습니다. 해서 말인데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클레멘트의 말에 찰스 2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북미왕국과 가조약까지 맺은 이상 빠르게 식민지에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흐음...그래야지. 그리고 식민지인들은 웬만하면 서인도 제도로 보내자고. 최근 서인도 제도에서 재배되는 설탕으로 인해 수입이 꽤 짭짤하니까."

북미왕국의 등장 이후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보내려던 이주민들을 잉글랜드가 확보한 서인도 제도의 섬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덕분에 최근 서인도 제도의 섬들에서 설탕을 비롯한 신대륙 작물들의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이를 언급하는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그럼 왕실의 명의로 배를 몇 척 빌려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보좌관의 말을 단숨에 이해한 찰스 2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하. 그거 괜찮군. 식민지인들에 한해 뱃삯을 받지 않고 서인도 제도로 보내준다면 대부분 식민지인은 서인도 제도로 이주할 테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이 시기 뱃삯은 무척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뱃삯이 무료라면 당연히 식민지에 사는 잉글랜드인들은 대부분 서인도 제도로 떠날 거로 생각한 찰스 2세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그리고 식민지에 이 사실들을 모두 알리도록 하게. 그래야 최대한 많은 식민지인이 서인도 제도로 이주할 테고 그래야 더 빠르게 서인도 제도의 각 섬을 개발할 수 있을 테니.“

이에 보좌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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