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1671년 새해를 왕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정성국은 연휴가 끝나자 바로 청장들을 회의실로 불러 신년 회의를 열고 여러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보고하는 행정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나직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어. 드디어 북미왕국의 인구가 200만이 넘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고작 몇 년 전에 북미왕국의 인구가 드디어 100만에 도달했다고 기뻐했는데 벌써 북미왕국의 인구가 200만에 도달했다는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당연히 기뻐했다.
"하하. 역시 나바호 족이 합류한 탓이 큰가?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인구 200만이 넘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렇지요. 꽤 커다란 부족이었던지라."
물론 꾸준히 북미왕국의 영역은 확장되고 있었고 원주민 부족들이 하나둘 합류하고 있어 가파르게 북미왕국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플로리다 지역의 원주민들이 빈번하게 산 아구스틴을 드나들면서 북미왕국의 힘을 파악하고 하나둘 합류하고 있었기에 이 플로리다 지역의 원주민들이 모두 북미왕국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200만이 되리라 짐작했었고.
헌데 산타페 인근에 가뭄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그동안 북미왕국과 거리를 두던 나바호 족이 모두 북미왕국에 합류하자 인구가 단숨에 200만을 넘어 220만 가까이 도달했다.
이는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달리 나바호 족이 푸에블로 족처럼 오랫동안 농경생활을 해왔기에 부족이 무척 컸기에 가능했다.
정성국은 드디어 북미왕국의 인구가 200만에 도달했다는 것에 뿌듯하긴 했지만, 현재 북미왕국의 영역을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행정청장의 보고에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청장들을 보고 입을 열었다.
"뭐 공식적으로 북미왕국의 인구가 200만이 넘었다는 것은 참 축하할 일이지만...우리가 장악한 영역을 고려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야. 그러니 다들 더 노력해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청장들 역시 현재 조선의 몇 배나 되는 북미왕국의 영역을 고려하면 200만이라는 인구는 무척 적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만족한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날이 풀리고 북방 항로가 열리면 북미왕국 서해안의 배를 최대한 차출해서 포로나이로 보냈으면 하네."
정성국의 말에 관리청장이 물었다.
"아...식량 운송 때문입니까?"
"그렇지."
이에 관리청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정성국에게 진언했다.
"분명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한 포로나이의 식량이 조선으로 향했을 테니 이곳에 다시 식량을 비축하는 일은 중요하긴 하지만...이주 선단을 통해 천천히 채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관리청장의 말에 다른 청장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정성국은 쓴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운송하는 식량들도 상황을 봐서 모두 조선으로 보낼 생각이네."
"아..."
청장들은 어차피 북방 항로가 다시 열리고 이곳에서 식량을 운송한 배가 도착할 때쯤이면 조선의 사정이 나아지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분명 원상에서, 그리고 아이누 섬에서 계속 조선의 사정이 좋지 않다고 보고가 올라오긴 했지만, 이들은 단순히 작년에는 이상 기후로 인해 작황이 무척 좋지 않았을 뿐, 올해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청장들의 생각을 알아챈 정성국은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북방 항로가 열릴 때쯤이면 작년 가을에 심었던 보리나 밀이 겨우내 자라 수확할 시기이긴 해. 하지만 쾌속선을 통해 들어온 원상의 보고를 잘 생각해보면 이 보리나 밀의 작황이 썩 좋지 못할 것 같거든."
그 말에 청장들은 다들 탄식하거나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허어...설마 또 기근이?"
정성국은 자신을 바라보는 청장들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확신할 순 없네. 하지만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지도자는 최악의 사태까지 대비해야 하는 만큼...일단 최대한 선박을 차출해 포로나이로 식량을 보내고...정말 조선의 작황이 좋지 않아 기근이 발생하면 포로나이로 운송한 식량을 조선으로 보내고 아니면 그냥 비축해두면 될 것 아닌가."
그 말에 몇몇 청장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행정청장이나 관리청장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리고 관리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하지만 그렇게 되면 북미 서해안의 물류 운송이 거의 마비될 겁니다. 지금이야 좀 여유가 있긴 한데...전하의 말씀을 들어보면 대여섯 척 정도로 보내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관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소한 북미 서해안에서 물류를 운송하는 선박 중 절반 정도는 보냈으면 하는데..."
그동안 새김포 뿐만 아니라 새남포에도 조선소가 건설되며 열심히 선박을 건조했다.
하지만 이 선박들이 모두 거대한 적재량을 자랑하는 선박들은 아니었다.
배를 운용하는 인력 문제로 효율을 고려해야 했고 일부는 폭이 좁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만큼 무작정 커다란 선박을 찍어낼 수도 없었던 탓이다.
그런 만큼 안전하게 북방 항로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선박은 전체 선박에 절반 정도였고.
하지만 관리청장은 정성국의 대답에 기겁했다.
"허어...50척 가까이 말입니까?"
현 상황에서 그 정도의 선박을 빼버리면 북미왕국의 물류 운송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정성국이 말했다.
"딱 3개월일세. 그것도 힘들까?"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아...딱 한 번 포로나이를 방문하는 거군요?"
이에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래. 이주 선단처럼 2번씩 오가는 건 아닐세. 그랬다간 정말 북미왕국이 마비될 테니."
행정청장은 관리청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그렇다면야..."
"3개월이라...그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방 항로가 열리기 전까지 최대한 물자를 수송해둔다면..."
관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반색했다.
"그렇지?"
어차피 청장들도 대부분은 전아라처럼 조선에 큰 미련은 없었다.
그렇기에 굳이 북미왕국의 물류를 마비시키면서까지 조선을 도울 필요까지는 있는가 싶었고.
하지만 자신들의 왕인 정성국이 원하기도 하고 3개월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어 보였기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관리청장의 대답에 안도한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아. 그리고...새김포에 있는 이주민들이 임시 거주하는 지역 말일세. 거기도 좀 확장했으면 하네."
행정청장은 갑작스러운 정성국의 명령에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푸른 안개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아...전하께서는 조용한 곰이 조선과 이주 문제를 잘 처리할 거라 믿으시는군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물론 조정 대신들이 만만치는 않겠지만...조용한 곰도 만만한 친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행정청장은 웃으며 수긍했다.
"그렇지요. 그 친구라면 조정 대신들에게도 밀리지 않고 전하께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겁니다. 그럼 이주 제한도 풀리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럼 규모를 두 배 정도 늘려야 할까요?"
현재 새김포의 이주민 거주 지역은 조금씩 확장해 현재는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원상에서 조선 조정의 눈치를 보고 유민들을 1년에 1만 명 정도로 제한했기에 굳이 규모를 키울 필요가 없던 탓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이를 미리 늘리자는 정성국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기에 묻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주 선단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싶은데? 그리고 쾌속선을 통해 조선의 사정이 전해지면 그때 상황을 봐서 더 늘리던가 하자고."
"알겠습니다. 전하.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성국은 만족하며 회의를 끝내려다 문득 놓친 것을 떠올려 급히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면 됐...아. 그리고 이걸 놓친 것 같은데...행정청장."
"말씀하시지요."
"올해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공식적으로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이곳의 인구 구성을 파악하고 남아있는 백성 중 일부를 이주시키도록 미리 준비해두게."
갑작스러운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남아있는 잉글랜드인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적당히 분산하라는 뜻입니까?"
정성국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내가 얼핏 듣기로는 저들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사용한다고 알고 있네."
물론 잉글랜드 식민지에 흑인 노예는 아직까지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잉글랜드는 백인 계약농을 이용해 식민지를 개척하려 했었고.
다만 시간이 지나며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수입해 노예제 플랜테이션이 시작되었는데 그게 이 시기였다.
그 때문에 최소한 플랜테이션을 하는 버지니아에는 흑인 노예들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 정성국이었다.
청장들은 이미 정성국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중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기에 정성국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정성국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네. 결국, 남아있는 아프리카 원주민들 역시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는 건데...그냥 내버려 둬봐야 결코 주인들이 노예들을 풀어주지 않을걸세. 노예는 그들의 재산이니까."
조선 출신인 행정청장은 양반들이 노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잉글랜드인들이 노예를 어떻게 생각할지 짐작하고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그럼 군사청의 도움을 받아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모두 해방하겠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우리 북미왕국의 백성이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잉글랜드인들도 우리 북미왕국의 백성일세. 그러니 우리가 강제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데려오면 불만이 클 테니...적당한 대가를 주고 북미왕국에서 사들여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하는 방향으로 가게. 어차피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 큰 부담은 없을 거야."
분명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사용하는 잉글랜드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정성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북미왕국의 백성이었기에 그들의 재산을 함부로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렇게 말하자 행정청장은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이들을 어디로 이주시킬 생각이십니까? 전하의 말씀처럼 그런 상황이라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잉글랜드인과 조금 떨어뜨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만..."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개발청장?"
"말씀하십시오. 전하."
정성국은 회의실 뒤편에 걸린 커다란 북미 대륙 지도에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항구를 건설했으면 하네."
정성국이 가리킨 곳은 플로리다 지역 바로 위쪽에 위치한 전생의 조지아 지역이자 현시점에서는 캐롤라이나 식민지 남부였다.
북미왕국은 플로리다를 장악하며 주변 정보를 파악했고 이 지역에는 잉글랜드인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 생각이었다.
"아...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모두 이 지역으로 이주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렇네. 플로리다 지역 바로 위이니 기후는 나쁘지 않을 테고.“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미리 인력을 준비해두고 올해 9월이 지나면 바로 항구를 건설하겠습니다.”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에 만족하며 시선을 돌려 다른 청장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네들도 잘 알고 있지만 9월이 되어 잉글랜드와 정식으로 조약을 체결하면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정말 정신없을 걸세. 그러니 제 시각에 퇴근하고 싶으면 미리미리 준비해두게. 괜찮은 젊은이들 있으면 팍팍 관리로 만들어 두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