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11월의 어느 날, 해군 탐사대가 복귀했다는 소식에 정성국은 바로 해군 탐사대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오. 해군 탐사대장. 이거 오랜만일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은 오랜만에 새한성으로 귀환한 해군 탐사대장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귀환이 조금 늦은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닙니다. 전하. 이번엔 꽤 먼 곳까지 탐사하느라 복귀가 늦어지기도 했고 귀환하는 도중 외무청 관리들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원주민 마을들에 방문하느라 복귀가 조금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알래스카에는 여러 원주민 부족이 존재했고 그들의 말은 조금씩 달랐다.
물론 이 원주민들은 주변 부족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간단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을 생각해서 외무청 관리 일부를 탐사대에 동행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또 북미왕국의 언어를 가르치게 했다.
다만 해군 탐사대의 경우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 인원을 함부로 뺄 수 없다 보니 외무청 관리들이 홀로 현지에 남게 되었기에 탐사대가 복귀 중에 원주민 마을들에 들러 이들의 안전을 확인했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별일은 없었지?"
"그렇습니다. 애당초 탐사대에 극히 우호적인 부족에만 외무청 관리들을 내려두었기에 별일은 없었습니다. 외무청 관리들도 그곳에서의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단지 씻는 것이 영 불편하다고 투덜거리긴 했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하하.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들은 모두 복귀했나?"
그 알래스카에서 겨울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걱정이 되어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어를 습득하려면 남아있는 것이 좋긴 하지만...워낙 추운 지역이다 보니 안전을 위해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왜 늦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해군 탐사대장은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정성국에게 건넸다.
"여기 올해 탐사한 영역입니다."
"호오..."
정성국은 지도를 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정성국이 작년에 명령한 대로 해군 탐사대는 앵커리지 서쪽의 해안가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탐사했고 결국 전생의 베링 해협 근처까지의 알래스카 서해안을 탐험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기에.
정성국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도를 계속 바라보고 있을 때 해군 탐사대장이 설명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한 곳이 바로 이곳이 우리 북미왕국의 영토라는 것을 각종 언어로 새긴 동판을 붙이기 위해 돌탑을 세운 곳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이 지도를 확인해보니 과연 알래스카 서해안 곳곳에 x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대충 살펴보아도 표시가 10개는 넘었기에 정성국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잘 했네. 잘 했어."
유럽에는 북미왕국이 북미 대륙 전체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나마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에 식민지를 건설한 잉글랜드나 프랑스의 경우와는 달리 알래스카의 경우 북미왕국이 먼저 곳곳에 돌탑을 세우고 이곳은 자신의 영토라는 동판까지 부착해 두었으니 훗날 러시아가 탐험가를 보낸다 해도 알래스카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에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웃는 정성국을 보고 해군 탐사대장이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나름 비바람에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돌탑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만...너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적당한 크기로 세운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숫자도 조금 적은 것 같고요."
하지만 정성국은 어차피 동판을 부착한 목적은 외국 탐험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기에 만족했다.
그럴싸하게 만들어 후대에 관광지로 써먹을 수도 있겠지만 위치가 위치인 만큼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또한, 해군 탐사대장은 돌탑의 숫자가 적은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정성국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새로운 땅을 발견하려는 유럽의 탐험가라면 자신이 발견한 땅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다닐 테니 자연스럽게 돌탑을 발견할 거라 여긴 것이다.
"하하. 뭐 어쩌겠어. 그래도 해안가 근처에 잘 보이는 곳에 세웠겠지?"
"그렇습니다. 만약 이곳에 외국 선박이 지나친다면 분명 돌탑을 발견할 겁니다. 그리고 돌탑에 부착한 동판을 보고 이 지역이 북미왕국의 영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탐사대가 동판을 제작할 때 외무청의 도움을 받았다.
외무청에서는 이 동판을 만드는 목적을 듣고 새진도의 에스파냐인들에게 자문을 구해 한글과 한자 밑에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 네덜란드어, 영어로 이 돌탑이 건설된 지역은 북미왕국의 영토라는 문장을 새겨넣었고.
이 시기 유럽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인 만큼 제대로 된 탐험가라면 돌탑에 부착된 동판에 담긴 내용을 알아차릴 것이기에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만족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돌탑을 세우는 도중 원주민을 만난 적은 없나?"
"아. 물론 있습니다. 돌탑 주변에 원주민들의 마을이 있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다만..."
갑자기 해군 탐사대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원주민들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일단 이곳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돌탑을 세운 것으로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는 해군 탐사대장이었다.
정성국은 왜 해군 탐사대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는지를 이해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찌 보면 원주민을 속이고 땅을 갈취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일단 명목상으로 알래스카를 북미왕국의 영토라고 주장해야 북미왕국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에 사는 원주민들 역시 서양인, 특히 러시아인에 의해 피해를 보지 않을 테니 어쩌겠는가.
어차피 당장은 알래스카 전역을 장악할 마음이 없는 정성국이었으니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을 방패 삼아 자신들이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었다.
"아...흠.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괜찮네. 나중에 외무청 관리들이 원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문제니...그리고 일단은 그곳을 우리의 영토로 선언해야 원주민들도 안전할 테고."
정성국의 말에 안도한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이 원주민들이 서양인에게 해를 당할까 걱정하는 것을 느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섬들에도 돌탑을 세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흐음..."
해군 탐사대장이 가리킨 섬은 어느덧 봉길 해로 불리는 바다에 자리한 몇몇 섬이었다.
정성국은 지도를 통해 섬의 위치를 확인하며 질문을 던졌다.
"섬에 방문한 적은 있나?"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이번 탐사는 주로 이 지역 서부 해안가를 따라 탐사하다 보니 이 섬들에 방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곳 해안가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듣기로 이 섬에도 원주민들이 꽤 산다고 들었습니다."
정성국은 카무이 반도와 알류샨 열도, 그리고 알래스카를 북미왕국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굳이 저 섬들까지 북미왕국의 영토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의 원주민들이 많다면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일단 이 섬들도 북미왕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기로 했다.
이곳까지 진출하는 러시아인들은 무척이나 잔혹하게 원주민을 다뤘으니.
"흐음...그래? 그럼 내년에는 이곳도 방문해 돌탑을 세우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 외에 보고할 것은 없고?"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의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아. 외무청을 통해 따로 보고가 올라갈 것 같긴 합니다만...전하의 말씀대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과 교섭해 항구를 건설할 땅을 확보했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이 지도를 보고 가리킨 곳은 바로 앵커리지였고 앵커리지의 땅을 확보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반색하며 관심을 두었다.
"오. 그래? 원주민들이 반대하거나 대가를 요구하진 않던가?"
해군 탐사대장의 말을 들어본 결과 앵커리지에 사는 원주민들이 보통은 아닌 것 같아 질문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 원주민들은 주변 환경 때문에 주로 육식을 하다 보니 우리 탐사대를 통해 접한 쌀과 밀 같은 작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누인들과 비슷하달까요? 그래서 우리 탐사대가 방문할 때 모피를 팔아 철제 제품이나 식량을 왕창 구입하지만...아무래도 식량의 경우는 금방 소모되지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곳에 북미왕국이 진출하는 것을 반기더군요. 이곳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건설되면 정기적으로 배편이 오가고 그 배편을 통해 각종 물자가 보급될 수 있다고 알리니 말입니다."
"그래?"
정성국은 조금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앵커리지에 훗날 북미왕국의 항구가 들어서면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득을 보는 일도 있겠지만 손해를 보는 일도 있었다.
정성국의 반응에 해군 탐사대장은 씁쓸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이들은 우리의 교역품을 가지고 중개 무역을 통해 이득을 챙길 정도로 계산이 빠른 부족이기에 무언가 대가를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오히려 아무런 조건도 요구하지 않고 어차피 빈 땅이니 마음껏 쓰라고 허락하더군요. 아마 저들도 우리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왜 해군 탐사대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지 이해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 우리가 공격할까 봐 지레 걱정한 건가?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뭐 약소 부족의 생존 방식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야 한데..."
약소 부족이라 눈치가 빨라서인지 지레 겁먹었다는 부분에서 조금 안쓰러워하는 정성국을 보고 해군 탐사대장이 말했다.
"너무 안타깝게 여기지 마시지요. 전하. 우리가 이곳에 방문해 이들과 교역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으니까요."
"하긴...땅은 얻었을지언정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정성국이 그렇게 수긍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전하. 조그맣게라도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해군 탐사대장이 재빨리 덧붙였다.
"이곳에 정박하던 중 주변을 탐사하던 탐사대원 일부가 석탄과 철광석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국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알래스카에 얼마나 막대한 자원이 묻혀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자원이 있다는 소식은 반갑지만...그걸 캐낼 인력이 부족하니 어쩌겠나."
정성국의 심드렁한 반응에 잠시 당황한 해군 탐사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원주민들을 이용하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본국의 식량은 넘쳐나지 않습니까."
"흐음...식량으로 원주민들을 고용해 자원을 캐자?"
"예. 물론 기후를 고려하면 여름 한 철에 불과하겠지만..."
당장 북미왕국의 관심은 곧 북미왕국의 영토가 될 북미 동해안 지역이었지 알래스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로 많은 인력을 보내긴 어려웠고.
하지만 북미왕국에선 최소한의 인력만을 보내는 대신 원주민을 고용하자는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알래스카에 얼마나 원주민이 많을까 싶어 물었다.
"헌데 이곳 원주민들은 얼마 안 되잖나?"
"내륙의 원주민들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들 수렵을 하는지라 꽤 넓게 분포되어있습니다만..."
"우리가 후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고용하면 몰려들 거란 소리지?"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해군 탐사대장의 말처럼 최소한의 인력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중에 알래스카를 개발할 때도 원주민들을 최대한 끌어들일 생각이었으니.
그리고 이를 빌미로 알래스카의 원주민들과 우호적으로 교류할 수도 있었고.
"흐음...그럼 일단 내년에 이 지역 주변을 상세히 탐사해보게. 필요하면 개발청에 장인들을 요청하고. 개발청장에게는 내가 따로 이야기해둠세."
"일단 얼마나 석탄이 묻혀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슬쩍 웃었다.
정성국은 알래스카에 얼마나 막대한 자원이 묻혀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금, 은, 석유, 철광석, 석탄, 구리, 아연 등등.
하지만 정성국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리고 이곳의 원주민들을 통해 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원주민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항구를 세워 진출하면 이 원주민들을 고용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