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눈치를 보고 있던 군사청장이 정성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하. 이번에 넘겨받은 북미 동해안 지역에 살던 잉글랜드인이 떠난다면 이곳에 병력을 많이 배치할 필요도 없다고 보십니까?”
“아...흠...그건 좀 다른 문제 같은데...?”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서양 선박을 북미 동해안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해군의 문제니 논외라 해도 남아있는 잉글랜드인이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주변 원주민들에게 북미왕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상당수의 병력을 북미 동해안 지역에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이었다.
‘거기에 그 이로쿼이 연맹도 존재하는 만큼...당분간은 북미왕국의 무력을 과시해야지.’
이로쿼이 연맹은 이로쿼이 언어를 사용하는 5개의 원주민 부족인 모호크, 세네카, 오네이다, 카유가, 오논다가 족이 서로 연합해 만든 연맹체를 의미하는데 이들 이로쿼이 연맹이 장악한 지역이 바로 이번에 잉글랜드에 의해 넘겨받는 지역 근처였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의 해안가까지는 잉글랜드가, 서쪽의 오대호 인근까지는 이로쿼이 연맹이 장악한 형국이랄까.
이들은 원주민 부족치고는 꽤 거대한 세력이었고 잉글랜드와도 우호적으로 지냈다고 알고 있었기에 잉글랜드를 대신해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게 되는 북미왕국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이로쿼이 족은 생각보다 호전적인 편으로 알고 있던 정성국으로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최대한 많은 병력을 배치할 생각이었고.
이에 군사청장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전하께서는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병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세...못해도 2만 정도는 우선 배치해야 하지 않을까?”
북미왕국의 병력은 3만 수준이었지만 해군과 아이누 섬 인근에 배치된 병력을 제외하면 2만 3천 정도였다.
헌데 2만의 병력을 우선 배치하겠다는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몹시 당혹스러워하며 정성국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설마 본토의 병력을 모두 이동시킬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는 문제는 무척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본토를 싹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 설마 내가 우리 북미왕국의 병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나. 최대한 빠르게 병력을 늘려서 3년 안에 그 정도 배치하겠다는 걸세.”
“아...”
그 말에 안도하는 군사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물었다.
“지금 배치되지 않은 병력은 각 훈련소에서 훈련 중인 3천뿐이지?”
정성국의 질문에 군사청장이 바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곧 훈련이 마무리됩니다.”
“좋아. 그럼 그들의 훈련이 끝나는 대로 바로 추가 인원을 모집해 훈련시키도록 하게. 다만 기존과는 달리 훈련 기간을 조금 단축해서 내년 가을까지 6천의 병사를 추가로 더 모집하고. 가능하겠지?”
이에 군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병사가 되려는 원주민이 워낙 많은지라 모집에도 문제없고 훈련소를 상시 운영하고 훈련 기간을 단축하고 최대한의 인원을 받는다면 그보다도 많은 병사를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을 무장시킬 소총이지요.”
무기 제조 공방이든 화약 제조 공방이든 무작정 그 규모를 늘릴 수도 없었고 또 보안 문제 때문에 아무나 채용할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더 많은 병사를 모집할 수 있음에도 천천히 병력의 규모를 증가시키고 있었고.
하지만 당장 상황이 급한 이상 정성국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지. 뭐 당장 급한 건 북미 동해안 지역에 배치되는 병사들인 만큼...아이누 섬에 보내기로 한 갑오 소총을 이들에게 쥐여주도록 하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속으로 혀를 차며 생각했다.
‘쯧. 내년에는 신식 소총을 버리고 갑오 소총으로 무장한다고 좋아했을 텐데...박경수를 잘 달래야겠군. 더불어 아이누인들이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 잘 이해시켜야겠고. 이거 잉글랜드에 신식 소총을 팔겠다는 계약까지 했으면 곤란했겠는데?’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말에 안색이 밝아졌다.
“아. 그게 있었군요. 그러면 병사를 더 모집할까요?”
“아냐. 무장도 무장인데 단기간에 많은 인원을 새진주에서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그들이 사용할 물자까지 운송하려면 해군의 부담이 커질 테니 천천히 하지.”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현재 새진주의 조선소에서는 군함과 수송선을 건조하느라 민간용 상선은 건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괜히 많은 병사를 모집해봐야 보급 소요만 늘어날 뿐이었다.
“아...알겠습니다. 전하. 그러면 내년까지 총 9천의 병사를 북미 동해안 지역에 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에 더해 탐사대 5천까지 배치할 생각이네.”
경비대 9천은 북미 동해안 지역 전체에 적당히 나누어 배치해두고 탐사대가 이 지역을 순찰한다면 최소한의 치안 유지는 가능하다고 판단한 정성국이었다.
정성국의 계획에 군사청장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탐사대를 계속 텍사스 지역에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 때문에 올해 추가로 병사를 배치해둔 상황이었으니.
“아...흠...뭐 괜찮겠지요.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들도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고 자신들을 북미왕국의 백성이라 여기고 있고 새진주에 3천의 경비대원들이 있으니...”
“그렇지. 탐사대는 내년에 일단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동시킨 후 정식으로 조약을 체결하면 플로리다에서 북진하면 될 테고 경비대 9천은 결국 배를 타고 이동해야겠지.”
“9천이라...잉글랜드가 분류한 식민지도 총 9곳이니 각 식민지당 1천씩 배치하면 되겠군요.”
현재 잉글랜드가 건설한 9개 식민지의 영역은 훗날 미국이 독립하기 전 건설한 13개 식민지와 큰 차이는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된 이주민의 증가로 인구가 늘어나 각 지역을 세세히 분리해 13개 식민지로 늘어났을 뿐이랄까.
다만 플로리다 바로 위쪽의 캐롤라이나 식민지의 경우 1663년 찰스 2세가 이 땅을 잉글랜드의 영역이라고 선언했지만, 그 이후 갑작스럽게 북미왕국이 등장하고 아카풀코 조약으로 인해 북미왕국과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찰스 2세가 북아메리카 지역으로 이주하는 농민들을 막았기에 식민지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8개 식민지나 다름없었고.
이번에 웅크린 늑대가 보내온 보고서로 이를 확인한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뉴펀들랜드 섬에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할 생각이네. 그 외엔 상황을 봐서 나누어 배치할 생각이고.”
그 말에 군사청장은 뉴펀들랜드 섬의 상황을 떠올리고 동의했다.
“아...그렇군요. 이곳엔 프랑스 세력도 존재하니 이곳에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해야겠군요.”
“그렇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군사청장은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육군의 배치 계획을 짜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허면 육군은 그렇다 치고 해군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내년에 바로 4함대를 창설하실 겁니까?”
군사청장은 예전 정성국이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4함대를 언급했지만,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 빠르게 잉글랜드가 북미 지역의 권리를 포기하고 북미왕국에 넘기기로 하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2함대를 쪼개야 할 판이었으니.
하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간 이상 당장 내년에 4함대를 창설해야 했기에 정성국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끙...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지금 2함대의 전선이 몇 척이지?”
그 말에 군사청장은 해군의 전력이 담겨있는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넘겨주며 대답했다.
“지급 전선 2척에 인급 전선 8척, 총 10척입니다. 그리고 내년 조약 전까지 지급 전선 2척과 인급 전선 6척을 추가로 건조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2함대 사령관인 김봉길은 정성국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4함대의 창설을 기정사실로 판단하고 조약 체결 전까지 예상되는 2함대의 전력을 보고한 것이다.
정성국은 군사청장이 넘겨준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후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흐음...그나마 플로리다 주변 해역까지는 해적이 자취를 감췄다라...”
이에 군사청장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2함대에서 열심히 해적들을 박멸하고 다녔으니까요.”
정성국은 해적선을 보고 웃으며 달려드는 김봉길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그럼...내년에 4함대를 창설하고 지급 전선 4척에 인급 전선 12척을 배정하게.”
“헉! 그렇게 많은 전선을 말입니까? 그럼 2함대가 너무 축소됩니다만...”
보고서에 따르면 당장 내년 조약 체결일까지 2함대의 전선 수는 총 18척이었다.
헌데 그 중 인급 전선 2척을 제외하고 모두 4함대로 배속하라는 이야기에 군사청장은 당연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국이 판단하기에 이미 멕시코만 인근과 플로리다 반도 주변 해역은 안정된 상태고 새진주와 산 아구스틴에는 바다에서의 공격을 대비해 요새를 건설하고 요새형 60mm 화포까지 배치해둔 만큼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보았다.
“당장이야 축소되겠지만 새진주에서 꾸준히 전선을 건조해 2함대에 합류할 테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보네. 4함대야 당장 북미 동해안 주변 해역을 장악하고 물자 운송과 수송선의 호위까지 감당해야 하니 당장은 4함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아.”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말도 맞았기에 결국 동의했다.
“흐음...알겠습니다. 허면 4함대의 모항은 어디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역시 뉴펀들랜드 섬입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글세...그러고 싶긴 하지만 배후의 제대로 된 마을도 없는 상황이라 그건 어려울 듯싶고...봐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적당한 곳에 4함대의 모항을 두고 저곳엔 분함대를 배치할 생각이네.”
전생의 미국 서쪽의 가장 중요한 군항이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디에이고였다면 동쪽의 가장 중요한 군항은 바로 버지니아에 있는 노퍽이었다.
다만 미국과 북미왕국의 상황은 조금 달랐기에 4함대의 모항을 버지니아에 두는 것보다는 조금 북쪽에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고민 중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아. 헌데 4함대의 사령관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끙...”
이에 정성국은 인상을 찡그렸다.
당장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조만간 김봉길을 불러들이고 이정운을 2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할 계획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정운을 4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김봉길은 조금 더 2함대 사령관 자리를 맡아야 할 것 같았다.
“쳇. 일단 이정운을 4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고...당분간 김봉길을 2함대 사령관으로 계속 둬야겠어.”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김봉길 그 친구는 좋아하겠군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글세...오히려 자기가 4함대 사령관으로 가겠다고 날뛸 것 같은데...”
“하하하. 그도 그렇군요.”
그렇게 병력 배치 문제도 마무리하고 정성국은 교육청장을 보고 말했다.
“이보게. 교육청장.”
“말씀하시지요. 전하.”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잉글랜드인이 남을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저들이 모두 떠나지는 않을 것 같으니...나중에 이 지역에 배치할 선생들을 육성해야 하네.”
보통 북미왕국이 영역을 확장하면 그 지역 원주민 중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에게 북미왕국의 말과 글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정도 말과 글을 깨우치면 그들에게 아이들의 언어 교육을 맡긴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교과서를 제공해 독학하게 한 후 이를 가르치고.
하지만 정성국은 그럴 뜻이 없어 보였기에 교육청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흐음...북미왕국의 실체를 알리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그 질문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언제까지 숨길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최대한 미루는 것이 유리하겠지.”
정성국 역시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실체를 숨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북미 지역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상 조약 후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이미 신대륙에서 강력한 세력인 에스파냐와 잉글랜드가 북미 지역을 포기한 이상 프랑스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거기에 뉴펀들랜드 섬을 장악하고 이곳에 분함대를 배치하면 북대서양을 건너 북미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유럽 세력을 차단할 수 있었으니.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북미왕국의 발전은 가속화될 테니 최대한 숨기는 것이 유리해 최대한 숨기려는 것이고.
더불어 정성국은 이를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지금처럼 주먹구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전문적으로 교육학을 전공한 선생들이 가르쳐야 하는 법이었으니 오히려 이들은 혜택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달까.
이에 교육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전하. 영어가 가능한 선생들을 조금 키워야겠군요.”
“아아. 부탁하네. 그리고...”
그렇게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