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흐음...혹시 저들이 후장식 소총을 넘기고 싶지 않아 한 말이 아닐까요?”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우리가 후장식 소총을 원한다면 팔 거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정말 원한다면 팔겠답니다. 다만 나중에 이를 두고 문제 삼지만 말라더군요. 그걸 보면...”
“흐음...”
그 말에 함장은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이 팔겠다고 했으니 소량만 사들여 이를 분해해 구조를 파악하고 연구해 복제하는 방법.
함장이 이를 말하려는 순간 클레멘트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후장식 소총은 최하 5천 정 이상을 묶어서 팔겠다더군요. 어차피 소총을 분해해 복제를 시도할 것 정도는 감수하고 파는 만큼 이해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고요.”
그 말에 함장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고개를 젓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거참...그 5천 정 분량과 탄환 50만 발의 가격이면 화승총으로 무장한 병력 4만 이상을 육성하는 것이 가능하고요?”
“그렇습니다.”
클레멘트의 대답에 함장은 곰곰이 작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북미왕국의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후장식 소총 연사속도에 놀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기억을 되살려보면 저들은 후장식 소총 후미에 계속해서 탄환을 넣고 장전해 발사했습니다. 당연히 탄환도 특별한 방식을 사용해 만들었겠지요.”
“예. 저도 그 부분을 이야기하자 아차 했습니다.”
당시에는 저들의 후장식 소총의 연사속도에 너무 놀라 멀리서나마 뻔히 봐놓고도 탄환도 특별하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직접 목격하고도 놓치다니...쯧. 헌데 우리의 금속 가공 기술이 부족해 소총을 복제하진 못하더라도 탄환 정도는 우리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후장식 소총을 목격했기에 잉글랜드에서는 북미왕국의 금속 가공 기술이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저들의 후장식 소총을 곧바로 복제하긴 어렵겠지만 탄환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이를 이야기하자 클레멘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 부분을 슬쩍 물어보긴 했는데 전권 대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만 하더군요. 하지만 결국 장식품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자신들에게 탄환을 사야 할 거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것도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클레멘트의 대답에 함장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그럼 천상 탄환도 계속해서 이들에게 비싸게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건데...”
“함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클레멘트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함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흐음...솔직히 우리 잉글랜드는 육군의 무장에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나 싶긴 합니다. 우리의 주력은 역시나 해군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클레멘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함장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소량으로 사서 그 구조를 연구해 후장식 화포를 만들 수 있다면야 사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이지만...단지 가능성일 뿐이고 당장 저들이 부르는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이번 협상에선 제외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함장은 클레멘트를 생각해 이러한 조언을 했다.
이번 협상의 총 책임자는 클레멘트였지만 아직 런던에서 그의 입지가 대단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협상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물론 후장식 소총이 대단하긴 한데 이를 얻고자 막대한 재물을 포기한 것이 알려진다면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 식민지의 이권을 가지고 있던 고위 귀족이나 상인들이 그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 뻔했기에.
“역시 그렇지요?”
함장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클레멘트는 함장의 말에 반색했다.
그에게 명령을 내린 찰스 2세 역시 이번 협상에서 후장식 소총을 구할 수 있으면 구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것에 얽매여 협상을 그르치지 말라고 당부했었고 찰스 2세는 이런 대규모 물량을 원하기보다는 적당히 구해 이를 연구해 잉글랜드에서 후장식 소총을 생산하기를 원한만큼 이번엔 포기하고 이를 찰스 2세에게 보고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예.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예 팔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니...”
“그럼 아쉽지만, 내일 전권 대사를 만나 말해야겠군요.”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것도 요청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 * *
그 후로 클레멘트는 웅크린 늑대에게 후장식 화포와 북미왕국의 전함을 팔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웅크린 늑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후장식 화포와 작열탄, 그리고 증기기관은 절대 넘길 수 없는 북미왕국만의 핵심 기술이었으니까.
그런 웅크린 늑대의 반응에 클레멘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후 몇 번의 협상 후 웅크린 늑대가 클레멘트에게 종이를 한 장 건넸다.
클레멘트는 그 종이를 받고 웅크린 늑대를 쳐다보았다.
“이건 뭡니까?”
이에 웅크린 늑대는 담담한 표정으로 클레멘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국이 북미 지역의 모든 권리를 우리에게 넘기는 대가로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군사청의 지휘관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 이상이라면 차라리 군을 움직이는 게 싸게 먹힐 거라더군요. 그러니 귀하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최후통첩과도 같은 웅크린 늑대의 선언에 클레멘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종이 안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처음에 협상할 때는 단순하게 귀금속으로 계산했었지만, 클레멘트가 그 귀금속으로 북미왕국의 도자기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웅크린 늑대는 북미왕국의 물품 생산량을 알아보고 답을 주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이 종이에는 북미왕국의 도자기와 최고급 모피 등 각종 사치품의 물량이 적혀 있었고 이 물품들의 가치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한 클레멘트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질문을 던졌다.
“이...이걸 전부 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가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멘트는 환호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웅크린 늑대가 제시한 물량은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에 수출하고 있는 각종 사치품 물량의 4년 치에 해당하는 양으로 클레멘트가 대략적으로 판단하건대 최소한 200만 파운드의 가치는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클레멘트는 내심 환호한 것이다.
이번에 북미왕국과 협상해 넘기는 북아메리카의 영역 중에서 어차피 허드슨 만 인근과 뉴펀들랜드 섬의 경우는 경제적인 이익은 전무했다.
그나마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건설된 9개의 식민지에서 돈이 되는 담배 등을 재배해 수익이 나는데 이 무역으로 인해 얻는 수익이 1년에 대략 10만 파운드 정도였다.
헌데 200만 파운드라면 최소한 20년 치의 수익에 해당했으니.
더불어 현 잉글랜드의 한 해 세입이 약 200만 파운드인 것을 생각해보면 어차피 지키지도 못하는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넘겨 북미왕국을 우호국으로 만들고 거기에 더해 1년 치 세입을 추가로 얻게 되는 격이니 클레멘트의 관점에서 이 제안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허어. 최후통첩 같길래 조건이 무척 박할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후한데?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던 것이 찰스 2세나 보좌관을 비롯한 런던의 관료들은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넘겨주는 대가로 예상한 금액이 약 50만에서 100만 파운드 정도였다.
이 금액은 런던에서 생각하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가치라기보다는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의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비를 어림잡아 짐작한 금액이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북미왕국은 이미 유럽 국가인 에스파냐와도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한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협상에 응한다면 분명 최대치는 소모되는 전비 정도일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런던에서 생각하는 잉글랜드가 보유한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의 가치는 그보다는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지키기는 어려운 영토였으니 그 정도의 금액만 북미왕국에 받아낸다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헌데 200만 파운드였으니 아마 클레멘트가 런던에 돌아간다면 그의 협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유럽의 사교가에서도 찰스 2세가 북미왕국을 두려워해 식민지를 넘겼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적당한 가격에 팔아넘겼다고 이야기할 테니 찰스 2세는 클레멘트를 더욱 총애할 테고.
그런 생각을 하던 클레멘트는 웅크린 늑대가 종이를 넘기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이상이라면 차라리 군을 움직이는 게 싸게 먹힐 거라는 말을.
결국, 저들은 잉글랜드와 전쟁을 하는데 대략 200만 파운드를 책정했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클레멘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우리의 1년 치 세입을 사용할 정도라니...그만큼 저들의 경제 규모가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더불어 대군을 움직이겠다는 의미이고? 역시 저들에게 식민지를 넘기고 우호적으로 지내는 게 맞아.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며 클레멘트는 자신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웅크린 늑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조금 부족한 감은 없지 않아 보입니다만 아국은 귀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은 만큼 이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클레멘트야 숨긴다고 숨겼지만 이미 자신들이 내건 조건에 만족한 기색을 보여놓고 저런 말을 하는 클레멘트가 가소로웠지만 웅크린 늑대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렇게 기본적인 합의는 끝났지만, 그 후로도 논의할 것은 무척 많았다.
더불어 시간도 필요했고.
일단 북미왕국으로서는 대금을 현물로 지급하기로 했지만 당장 그 정도의 현물이 새진주에 있지는 않았기에 이를 생산해 새진주로 가져올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넘겨주기로 한 만큼 식민지에 사는 잉글랜드인들에게 이를 알리고 설득해 이주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일단 가조약을 맺고 1년 후 정식으로 조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 * *
“허. 자네도 참 독해. 전하께서 허락하신 물량은 이거의 2배 정도 아닌가?”
김봉길의 말처럼 정성국은 만약 잉글랜드가 협상을 통해 북미 지역의 식민지를 넘긴다면 그 대가로 웅크린 늑대가 제시한 물량의 2배 정도까지는 허락했었다.
어차피 잉글랜드 역시 귀금속이 아닌 현물을 원할 것은 뻔해 보였는데 북미왕국의 수출품 중 저들이 원할 것은 도자기, 모피였다.
도자기야 어차피 흙으로 만드는 만큼 원가야 얼마 되지 않았고 계속된 공방의 확장과 장인의 육성으로 인해 점점 생산 물량이 늘어나는 상황이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모피의 경우는 비록 정성국이 해달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함부로 사냥하는 것을 막은 상태이긴 하지만 전쟁을 벌이지 않고 북미 대륙 동해안을 얻을 수 있다면야 생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는 사냥을 허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정성국이 해달을 귀여워해 보호하고 싶어해도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한 법이었다.
다행히 정성국의 보호 덕분에 해달의 수는 넘쳐났고 해달의 서식지를 모두 장악한 상황이었으니 이 넓은 서식지에서 적당히 나누어 사냥하면 그 정도 물량을 대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고.
헌데 웅크린 늑대는 기어이 저들에게 넘기는 물량을 절반으로 줄였으니 상황을 알고 있는 김봉길로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두 달 가까이 이 골방에서만 지냈으니 이 정도는 깎아야 수지가 맞지 않겠습니까?”
“허이구야...”
김봉길은 혀를 차자 웅크린 늑대는 말했다.
“솔직히 특별 대사란 친구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친구라 마음만 먹는다면 더 깎을 수도 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다만 훗날 프랑스와 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에스파냐와 더불어 유럽에 우호적인 국가가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간 거죠. 그것만 아니었다면...아마 전하께서 허락해주신 물량의 10 프로만 해도 충분했을 겁니다.”
웅크린 늑대의 말에 질린 기색을 나타내는 김봉길이었다.
웅크린 늑대는 그런 김봉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1년 후엔 저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진출해야 합니다. 더불어 뉴펀들랜드 섬에도 진출해야 하고. 가능하겠습니까?”
이에 김봉길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세...쉽지는 않겠지만 어쩌겠어. 일단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전선을 건조하도록 독려해야지. 그나마 플로리다 반도는 큰 문제 없고 주변 해역에 해적도 사라졌으니 2함대를 쪼개 북쪽에 배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아. 그러고 보면 지금 잉글랜드의 식민지에 사는 잉글랜드인들은 1년 후에 모두 이주하는 건가?”
김봉길의 질문에 웅크린 늑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원칙은 그렇습니다만...남는 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치안 유지를 위해 경비대나 탐사대도 함께 올려보내야 할 테고요.”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김봉길은 인상을 확 구기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아...그럼 만만치 않겠는데? 일단 새한성에 보고서부터 올리게. 그쪽에서 지시가 내려오긴 하겠지.”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