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220화 (220/850)

220화

투로시노는 정태화와 함께 관사 안의 방으로 들어와 미리 준비되어 있던 도구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속내가 복잡해 표정이 살짝 굳어있던 정태화는 그런 투로시노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투로시노가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붓자 퍼지는 생소한 향에 표정을 풀고 투명한 유리 포트에 검은색의 차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호오. 이 차의 색은 검군요?”

“그렇습니다.”

투로시노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뜨거운 물을 나선형으로 조심스럽게 붓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정태화는 미소를 지었다.

“투명한 유리그릇이라 그런지 보는 재미가 있군요.”

“하하하. 그렇지요?”

“그리고 생각보다 향이 좋군요. 방 안에 이 커피 향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투로시노는 활짝 웃으며 설명했다.

“예. 그래서 전하께서도 직접 이렇게 커피를 즐겨 내리시곤 합니다. 덕분에 우리 북미왕국에선 오히려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곤 합니다. 유럽과는 정반대이지요.”

투로시노의 대답에 정태화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으음? 유럽에서도 이 커피를 마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차를 즐겨 마시지요. 이 커피도 그렇고 중국의 차도 그렇고.”

“허어...”

단순한 오랑캐라고 생각했던 남만인들에게도 고상한 차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짓자 투로시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들은 차를 즐겨 마시고 그 때문에 계속해서 이 아시아에 상선을 보내 차와 도자기 등을 구하는 거라고.

“자. 다 내렸습니다. 일단 연하게 내리긴 했습니다만...커피의 쓴맛이 거슬리신다면 설탕을 넣어 드시면 됩니다.”

투로시노가 조선의 찻잔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잔에 커피를 따라주자 정태화는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굳이 설탕을 넣어 마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정태화의 말에 웃으면서 투로시노 역시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 안에 침묵과 커피 향만이 가득할 때 정태화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혹시 유럽에서도 그 단총과 같은 원리의 무기를 사용합니까?”

아까 투로시노의 도움으로 정태화 역시 단총을 조작해 실제 사격해본 이후로 정태화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총을 사용해 본 이후 관사 주변을 경비하는 북미왕국 병사들의 무장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단순하게 화승총으로 생각했던 저들의 무장이 실제로는 화승총이 아닌 단총과 비슷한 구조의 소총으로 보였다.

이미 투로시노에게 북미왕국은 유럽의 국가들과 전쟁까지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정태화였기에 유럽의 국가들 역시 저런 무기로 무장해나 걱정되어 이를 묻자 투로시노는 슬쩍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물론 비슷한 개념의 소총이 존재하기는 하는데...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아직 군에 보급할 정도는 아닙니다.”

투로시노의 대답에 정태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렇습니까?”

하지만 투로시노는 안도하는 정태화를 묘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들이 사는 유럽 대륙은 전쟁이 무척 잦습니다. 그렇기에 빠르게 군사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그 때문에 아국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기술 개발에 사력을 다하고 있고요. 이번에 귀국의 국왕 전하께 보내는 단총 역시 그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허어...”

조선에서는 북미왕국을 대국으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그런 북미왕국이 유럽 국가를 몹시 경계하는 듯했기에 놀란 정태화였다.

방금 그가 투로시노의 도움을 받아 사용해 본 단총은 무척이나 대단했다.

조작이 조금 복잡한 것 같기는 한데 그거야 숙달되면 큰 문제는 없었고 조선에서 사용하는 화승총에 비교하면 간단한 편이었기에.

비록 정태화가 문신이라 하나 호란 시절엔 군사를 지휘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단총과 같은 원리의 소총으로 무장한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기존의 화승총으로 무장한 병사들보다 더 많은 화력을 투사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헌데 저렇게 대단한 무기로 병사들을 무장시키고도 유럽의 국가들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북미왕국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정태화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들은 승냥이와도 같습니다. 힘이 있는 상대라면 정중하게 대하지만 힘이 없는 상대라면 가차 없이 이를 드러내고 물어뜯어 이득을 챙기지요.”

유럽 국가들에 대한 북미왕국의 평가에 정태화는 안색이 굳어졌다.

“흐음...”

“거기에 유럽의 지형은 평지가 많아 방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더 많은 상비군을 모집하려 하고 그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 왕실에서 상업을 직접 챙길 정도입니다.”

물론 정태화는 관료로 오래 살아왔기에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물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적나라한 투로시노의 말에는 자신도 모르게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어찌...”

그런 반응에 투로시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한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왕가는 멸망하고 나라는 몰락하며 백성들은 전쟁의 참상에 휩싸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우리 북미왕국 역시 상업에 관심을 두고 벌어들이는 돈으로 군을 육성하고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투로시노의 대답에 정태화는 무척이나 복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허어...사람으로 살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라...”

* * *

정태화는 선착장에서 투로시노를 보고 말했다.

“부디 평온한 항해가 되었으면 바랍니다.”

“하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투로시노는 몸을 돌려 인급 전선에 마지막으로 승선했다.

그리고 곧 인급 전선들은 하나둘 선착장을 빠져나가 선단을 구성해 일제히 남쪽으로 향했고 정태화를 비롯한 조선의 관리들은 선착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배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 정태화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투로시노의 말을 떠올리며 굳은 표정으로 관리들에게 말했다.

“궁으로 돌아가세. 알려야 할 것이 무척 많으니.”

“알겠습니다. 영상 대감. 곧바로 채비하겠습니다.”

* * *

웅크린 늑대는 클레멘트의 말에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후장식 소총을 말입니까?”

그런 웅크린 늑대의 반응에 클레멘트는 내심 긴장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시 귀국은 후장식 소총을 판매할 생각이 없습니까?”

“흐음...”

웅크린 늑대는 이미 이 사항에 대해 새한성에서 정성국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성국은 갑오 소총의 다운그레이드인 신식 소총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서는 팔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유럽에도 후장식 소총의 개념이 존재했다.

헌데도 대중화되지 못한 것은 결국 철강의 품질과 금속 가공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으니 북미왕국의 신식 소총이 저들에게 전해진다 해도 과연 단기간에 복제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 롤링 블록 방식은 구조가 단순한 편이었다.

두 캠만 제대로 만든다면 이것이 맞물려 약실을 폐쇄하는 구조였기에 복제는 가능할 테지만 과연 현재 유럽의 기술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고 또 총기를 복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뇌홍이었으니.

후장식 소총이야 어찌 복제한다 쳐도 탄환을 복제하지 못할 것이 뻔해 보였달까.

그렇다면 결국 후장식 소총을 운용하기 위해선 북미왕국에 지속해서 탄환을 구매해야 하니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군사청의 규모를 늘리는 판국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기제조공방 역시 그 규모를 조금 키웠고 덕분에 무기 생산량에 여유가 생겨 조만간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아이누 경비대 역시 갑오 소총으로 무장을 변경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현재 아이누 경비대의 기본 무장인 신식 소총 5천 정은 예비 물자로 잡혀 만약을 대비해 잘 손질해 아이누 섬에 보관할 예정이었지만 원하는 국가가 있다면 이를 팔아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고.

그리고 정성국은 언젠간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총기 무장을 허락할 생각이었다.

물론 훗날까지 고려하면 꽤 위험한 결정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북미왕국의 모든 지역에 충분한 병력을 배치할 수 없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간혹 외곽 지역에서는 재규어나 곰 같은 맹수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으니.

그 때문에 도심 지역은 몰라도 외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는 있었지만 어지간한 담력과 경험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철제 무기로 맹수를 물리치긴 어려웠다.

이 때문에 경비대원들은 종종 맹수를 잡으러 돌아다니기도 했고.

당장이야 무기제조공방에 여유가 없어 두고 보고 있지만, 나중에는 여유가 생길 테니 이때 신식 소총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팔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에스파냐로 흘러 들어가 유럽에도 소량은 퍼질 테니 그럴 바엔 직접 대량으로 팔아 큰돈을 챙기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이야기한 정성국이었다.

군사청장을 비롯한 다른 청장들도 처음에는 이런 정성국의 의견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정성국이 책정한 신식 소총의 가격과 탄환의 가격을 보고 피식 웃거나 고개를 저었다.

신식 소총의 가격은 유럽에서 거래되는 화승총의 대여섯 배는 되는 가격이고 탄환 가격도 무척 비싸게 책정했기에 인구가 풍부한 유럽이라면 차라리 화승총으로 더 많은 병사를 훈련시키는 게 싸게 먹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웅크린 늑대는 클레멘트의 요청에 피식 미소를 지었지만, 클레멘트는 웅크린 늑대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집중했다.

“아국은 귀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때문에 아국이 보유한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넘기려는 것이고요. 허니 귀국이 그 후장식 소총을 아국에게 판매한다 하더라도 귀국에 해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혹여 아국이 후장식 소총을 넘겨받고 총구를 돌릴 것을 걱정하신다면 동맹을 맺을 의향도 있습니다.”

살짝 들뜬 얼굴로 말을 하는 클레멘트를 보고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 참...이건 제가 귀하와 귀국을 걱정해서 충고하는 겁니다만...귀국이 북미 지역의 모든 권리를 넘기는 대가로 우리의 후장식 소총을 원한다면 전 말리고 싶습니다.”

“예?”

웅크린 늑대의 말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는 클레멘트를 향해 웅크린 늑대가 질문을 던졌다.

“귀하께선 이전에 새진주에 머물렀을 때 아국 병사들의 훈련을 참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아. 그랬습니다. 그때 귀국 병사들의 무기에 감명받아 이렇게 식민지를 넘기는 대가로 그 무기를 가져올 수 있을지 물어본 거고요.”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클레멘트를 보고 고개를 저은 웅크린 늑대가 말했다.

“흐음...보셨다면 짐작하실 텐데요? 저희의 후장식 소총은 구조상 화약 일체형 탄환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를 운용하려면 꾸준히 탄환을 사들여야 할 텐데...그거 무척 비쌉니다. 감당이 안되실 텐데요.”

“어라?”

클레멘트는 그제야 웅크린 늑대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잠시 정지했다.

그런 클레멘트를 보고 웅크린 늑대가 중얼거렸다.

“우리의 후장식 소총은 장전 속도가 올라간 만큼 탄환 소모가 심한 편입니다. 화승총과 비교했을 때 한 발당 소모되는 비용도 몇 배는 되는데 거기에 소모량도 훨씬 높아요. 헌데 이를 사서 병사들에게 무장시키고 운용하겠다라...솔직히 아국이야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는데...귀하와 귀국을 위해서 썩 추천해드리고 싶지는 않군요. 이 문제로 나중에 귀국이 아국에 불만을 품을까 걱정도 되고.”

웅크린 늑대의 대답은 클레멘트의 예상을 벗어났고 그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그런 클레멘트를 보며 말했다.

“이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군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