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이거 어쩐다...저 자의 대응으로 볼 때는 뉴펀들랜드 섬 역시 넘겨야 할 것 같은데...그냥 모른 척 넘겼다가는 나중에 뒷감당이 어려울 테고...’
클레멘트가 꺼내 보인 지도에는 분명 뉴펀들랜드 섬이 잉글랜드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잉글랜드의 소유라고 하기엔 좀 애매했다.
물론 잉글랜드야 16세기 초부터 이 뉴펀들랜드 섬을 잉글랜드의 식민지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실제적인 정착지는 설립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식민지를 설립하려 정착민을 보냈지만, 정착에 실패했고.
그러는 사이 뉴펀들랜드 섬 주변의 풍부한 어장이 유럽에 소문나면서 잉글랜드인뿐만 아니라 프랑스인이나 에스파냐인, 포르투갈인 어부들이 어선으로 함대를 구성해 뉴펀들랜드 섬으로 몰려들었고.
덕분에 현재는 뉴펀들랜드 동쪽 해안가는 잉글랜드가, 북쪽과 남쪽의 해안가는 프랑스가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 때문에 찰스 2세 역시 북미왕국에 매각하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중에 뉴펀들랜드 섬은 제외했고.
이는 찰스 2세가 뉴펀들랜드 섬을 중요시해서가 아니라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매각할 때 뉴펀들랜드 섬을 함께 북미왕국에 매각했다가 훗날 문제가 생기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나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의 무력을 확인하고 이들과 우호적으로 지낼 생각이었고 북미왕국은 이미 아카풀코 조약으로 인해 에스파냐에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달까.
그렇기에 클레멘트는 뉴펀들랜드 섬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인데 웅크린 늑대가 지도에 그려져 있는 뉴펀들랜드 섬을 지적하며 이곳까지 넘기지 않으면 거래는 없다고 단언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한참 고심했다.
그리고 웅크린 늑대가 새로 커피를 내려 클레멘트의 커피잔에도 커피를 다시 채워줄 때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서 웅크린 늑대는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며 필요하다면 시간을 더 줄 수 있다는 듯 행동했다.
이에 클레멘트는 입을 열었다.
“일단 뉴펀들랜드 섬을 거래 대상에 추가하기 전에 귀국에 알려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 지도에는 뉴펀들랜드 섬이 우리 잉글랜드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긴 한데...실제로는 조금 애매합니다. 물론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우리 잉글랜드이긴 한데...”
그러면서 클레멘트는 뉴펀들랜드 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웅크린 늑대는 이미 정성국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경청했다.
정성국 역시 뉴펀들랜드 섬이 오롯이 잉글랜드의 소유도 아니고 오히려 훗날엔 프랑스의 세력 확장으로 인해 프랑스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 다시 잉글랜드의 소유가 되고.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잉글랜드와 협상해 뉴펀들랜드 섬을 얻어내야 한다고 웅크린 늑대에게 신신당부한 것은 꽤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로는 북미 대륙 가장 북동쪽에 위치한 뉴펀들랜드 섬의 지정학적인 가치 때문이다.
북미 대륙에 진출했던 서양 세력 중 에스파냐는 이미 철수하고 북미왕국과 비밀동맹까지 맺었고 잉글랜드의 경우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외무청의 보고로만 보면 잉글랜드인들이 새진주에서 목격한 북미왕국의 무력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는 보고로 볼 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은 세력은 오로지 프랑스뿐이었고.
현재 프랑스의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의 영역은 퀘벡 인근이었지만 실제 프랑스인들의 도시는 주로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존재했고 프랑스의 선박 역시 세인트로렌스 만 일대를 오고 가는 만큼 세인트로렌스 만 동쪽의 뉴펀들랜드 섬을 북미왕국이 차지한다면 만약의 상황에서 본국과 식민지의 연결을 확실히 차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루이 14세는 식민지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굳이 본국과 식민지의 연결을 차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프랑스 본국에서 과연 식민지를 지원할까 싶긴 했지만.
두 번째로는 해류 때문인데 이 시기의 서양의 선박들은 범선들이었기에 바람과 해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유럽의 범선이 바람과 해류를 타고 북미 대륙으로 오려면 아프리카까지 내려가 북적도 해류를 타고 서인도제도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북쪽의 그린란드를 지나 그린란드 해류를 타고 남하해 북미 대륙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가장 빨랐다.
남쪽의 경우는 이미 플로리다반도를 확보한 상태였고 산 아구스틴에도 2함대의 분함대를 배치할 생각이었으니 남쪽에서 북미 대륙 동해안으로 이동하는 유럽의 선박들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뉴펀들랜드 섬은 바로 이 산 아구스틴과 같은 역할을 해줄 중요한 위치였고.
이 뉴펀들랜드 섬을 장악해 훗날 이곳에 분함대를 배치한다면 북쪽에서 북미 대륙으로 이동하는 유럽의 선박들을 제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외에도 뉴펀들랜드 섬을 가져오지 못하면 북대서양의 풍부한 어장을 유럽에 넘겨주는 꼴이 될뿐더러 이 시기의 어부들은 꽤 거친지라 이들이 뉴펀들란드 섬과 인근의 래브라도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 이들은 자제를 몰랐고 그 때문에 어장은 황폐화되고 뉴펀들랜드에 서식하던 유럽에는 펭귄이라고 불리는 큰바다쇠오리는 멸종했다.
이 큰바다쇠오리는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보고 도망치기는커녕 다가와 친근하게 대했지만, 선원들은 사냥하기 편하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이 큰바다쇠오리를 산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알을 부수었고, 큰바다쇠오리는 기름이 많아 불을 붙이기 좋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잡아 땔감으로 사용했다.
당연히 큰바다쇠오리의 수는 급감하고 멸종 위기에 처하자 오히려 수집가들이 나서서 희귀한 표본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큰바다쇠오리를 박제하고 남은 알들은 모조리 깨버려 결국 멸종했고.
그러한 서양인들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 정성국은 웅크린 늑대에게 만약 잉글랜드가 협상을 원한다면 그 범위에 절대로 이 뉴펀들랜드를 빼놓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리고 웅크린 늑대 역시 프랑스를 견제할 수 있고 이 북미 대륙에 유럽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뉴펀들랜드 섬은 어떻게든 가져올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클레멘트의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말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이 뉴펀들랜드 섬이 온전히 잉글랜드의 소유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 북미왕국 역시 이 뉴펀들랜드 섬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시지요.”
“경청하겠습니다.”
“이 뉴펀들랜드 섬의 귀국이 장악한 영역과 항구만이라도 이번 거래에 포함하는 것으로. 대신 이곳에 드나들며 어업을 하던 기존의 어부들이 이 거래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어느 정도 배려하겠습니다.”
웅크린 늑대의 말에 클레멘트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말입니까?”
“조업할 수 있는 권리가 담긴 면허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하지요. 물론 기간제이고 수량도 제한할 생각입니다만...최소한 기존의 어부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는 손해 볼 일은 없게 배려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결정을 내리라는 듯 클레멘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웅크린 늑대였다.
이에 클레멘트는 신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으음...”
찰스 2세가 이 뉴펀들랜드 섬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긴 했지만, 클레멘트에게 전권을 위임했기에 그의 판단으로 이 뉴펀들랜드 섬을 협상에 포함 시킬 수는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웅크린 늑대의 제안으로 기존의 뉴펀들랜드 섬을 드나들며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도 손해를 입지는 않을 테니 그들의 반발은 크지 않을 것이고.
더불어 뉴펀들랜드 섬의 상황을 미리 이야기한 만큼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잉글랜드의 탓은 아닌 만큼 클레멘트는 저들의 요구대로 이번에 북미왕국에 넘기는 영역에 뉴펀들랜드 섬을 포함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잉글랜드는 북미왕국을 상대로 이 지역 영토를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협상을 시작한 만큼 이 뉴펀들랜드 섬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웅크린 늑대의 선언에는 버틸 방도가 없었으니까.
“좋습니다. 이 섬까지 포함하도록 하지요.”
클레멘트의 말이 떨어지자 웅크린 늑대는 씩 웃었다.
“그럼 귀국이 우리 북미왕국에 넘길 영역은 정해졌고...이제 그 대가에 대해 논의해볼까요?”
* * *
빠르게 협상을 끝내야 투로시노가 돌아가 식량 창고를 열고 식량을 가져올 테니 정태화는 실무 관료들을 채근했고 덕분에 3일 만에 모든 협상을 끝내고 조약문을 작성해 도장을 찍었다.
정태화로서는 당장 식량이 급한 상황에서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투로시노는 정성국이 원하던 조선의 개항과 이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미리 준비한 친서와 예물을 배에서 내려 관사에 옮겨놓고 정태화를 불렀다.
정태화는 관사로 들어오다 관사 앞마당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설마 이것들이 다 예물입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 귀국의 국왕 전하께 친선의 의미로 보내는 예물입니다.”
“허.”
생각보다 양이 많아 보였기에 정태화는 나중에 답례품을 마련하기도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투로시노에게 다가갔다.
이에 투로시노는 상자 주변의 북미왕국 병사들에게 손짓했고 병사들은 맨 위의 상자 뚜껑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있게 배치했다.
“원래라면 제가 직접 귀국의 국왕 전하께 예물에 관한 설명을 해야겠습니다만...상황이 이러니 귀하께 생소한 몇 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아마 여기 있는 도자기나 모피, 백단목, 설탕 등은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어차피 북미왕국의 도자기는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모양이었기에 조선이 화려한 북미왕국의 도자기를 좋아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이러한 모양의 도자기를 사용한다고 소개하는 정도였다.
더불어 조선에 모피를 비싸게 팔긴 어려웠기에 북미왕국엔 이런 고급 모피도 존재한다고 알리기 위한 해달 모피 몇 장만 가져왔고.
북미왕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건해삼은 어차피 청나라에 팔 물량을 대기도 벅차니 가져오지도 않았고.
다만 조선에서 나지 않고 조선 양반들이 좋아하는 백단목과 설탕은 꽤 많은 양을 가져왔다.
둘 다 원상을 통해 소량 유통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귀한 물품인 만큼 정태화는 백단목과 설탕을 들고 있는 병사 뒤에 쌓인 상자들을 보고 설마 하며 물었다.
“허어...이게 다 백단목과 설탕입니까?”
“그렇습니다.”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이곳에서 협상해 이들이 떠날 때 예물을 받아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니었다면 답례품 문제로 인해 꽤 난처했을 테니.
그런 정태화의 반응에 재밌다는 듯 미소짓던 투로시노는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건 커피라는 겁니다. 일종의 차인데...이 차에는 각성 효과가 있어 북미왕국의 관료들이 무척 즐겨 마시는 차이지요.”
커피는 아직 북미왕국에서 생산하는 물품은 아니지만, 전생의 한국인들은 커피를 달고 사는 만큼 혹시나 하여 챙겨 보냈다.
정말 수요가 있다면 중개무역을 하면 그만이니.
“그렇습니까?”
각성 효과가 있어 관료들이 주로 마시는 차라는 소리에 정태화가 호기심을 보이자 투로시노는 웃으며 덧붙였다.
“예. 다만 이 커피는 약간 쓴맛이 있기에 그냥 마시는 사람도 있고 저 설탕을 적당히 타서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어...설탕을 타서 마신다라...꽤 호사스러운 차로군요.”
그 말에 빙긋 웃은 투로시노는 그 옆의 상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 커피를 내리는데 필요한 기구들입니다. 일종의 다도 용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호오.”
그 말에 정태화는 생소한 유리로 만들어진 기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에 투로시노는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설명이 끝나면 제가 커피를 대접해 드리죠. 그리고 이건 단총입니다.”
유일하게 단총만 병사가 든 상자가 전부였는데 이는 정성국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정성국은 이 단총을 통해 조선 외부의 군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는 것을 현종과 대신들에게 알리고 싶어했다.
이를 통해 군사 기술에 조금이나마 신경 쓰거나 외부의 상황을 파악하려 든다면 더 좋고.
하지만 여러 자루를 보낸다면 분명 이것이 다른 데로 흘러 들어갈 것이 뻔했기에 무척이나 화려한 금박 장식이 인상적인 예식용 단총 한 자루만 보낸 것이다.
어차피 단총을 분석해 따라 하려 해도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알, 정확히는 뇌홍을 복제하지는 못할 테니 큰 상관은 없었지만, 후장식 소총의 실물이 청나라로 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기에.
검은 칠을 한 단총에 화려한 금박을 입한 단총을 보고 정태화는 신음을 흘렸다.
“흐음...”
“커피 기구와 마찬가지로 사용법을 적어두긴 했습니다만...단총의 경우는 무기인 만큼 제가 먼저 시연해볼 테니 이를 보시고 덧붙여 설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투로시노는 익숙하게 단총을 들어 조작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정태화는 투로시노가 뒤의 부품을 몇 번 조작해 뒤쪽을 열고 그가 상자에 있는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집어넣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
하지만 투로시노는 별다른 설명 없이 역순으로 조작한 뒤 하늘을 가리키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헉!”
정태화는 기겁해 투로시노의 손에 들린 화려한 단총을 바라보았다.
이미 조선에는 수석식 소총이 존재하긴 했고 정태화 역시 화승이 필요 없어 불을 사용하지 않고 발사하는 수석식 소총을 본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단총은 그러한 소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기에 놀란 것이다.
그런 정태화를 보고 투로시노는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직접 사용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