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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11화 (211/850)

211화

정성국은 집무실에 찾아온 푸른 안개의 말을 듣다가 안색을 굳혔다.

“나바호 족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요?”

“그렇습니다. 전하. 산타페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들이 장악한 지역 역시 가뭄에 의해 작물이 말라가고 있다더군요. 이 때문에 나바호 족의 추장들이 모인다는 소문도 있고요.”

최근 산타페 지역에 가뭄이 발생해 이곳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산타페 인근 부족의 상황을 파악해 만약 가뭄 때문에 기근이 발생할 것 같으면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은 부족이라도 식량 일부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무청에서는 자연스럽게 주변 부족을 드나들며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나바호 족의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에 급히 이를 새한성에 알린 것이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일단 입을 열었다.

“흐음...허면 일단 군사청장에게 이를 알려 만약을 대비해야겠군요.”

이에 푸른 안개는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이미 새한성에 보고를 올리면서 산타페에 주둔하고 있는 경비대에도 이를 알렸다고 했으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는 있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이미 이를 알려두었다는 푸른 안개의 보고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바호 족은 산타페 지역을 장악한 푸에블로 족 서쪽에 자리한 커다란 부족으로 이들은 전생의 애리조나 주의 북동쪽, 뉴멕시코 주의 북서쪽, 유타 주의 남동쪽에 넓게 펴져 사는 원주민들이었다.

이들 나바호 족은 아파치 족과 마찬가지로 알래스카에서 서기 1300년경 남하한 부족으로 유목 생활을 하던 부족이었지만 푸에블로 족과 접촉하면서 농업 기술을 배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파치 족과는 다르게 나바호 족은 어느 정도는 안정적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수렵 생활을 하는 다른 원주민 부족에 비한다면 확실히 나바호 족의 규모는 컸다.

헌데 이 나바호 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살짝 긴장했다.

나바호 족 역시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이 부족할 때는 간혹 푸에블로 족의 영역을 약탈해 식량을 얻곤 했다고 들었기에.

푸에블로 족도 농경 생활을 하는지라 부족의 규모 자체는 큰 편인데 원주민들의 성정이 비교적 온순한 탓인지 걸핏하면 주변 부족에게 식량을 약탈당했었다.

그리고 이를 견디다 못해 에스파냐가 등장하자 푸에블로 족은 곧바로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여 보호를 받은 것이고 말이다.

“장인어른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과연 저들이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해 약탈하려 할까요?”

나바호 족의 정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무래도 외무청인 만큼 현재 외무청을 관리하는 푸른 안개에게 묻자 푸른 안개는 이미 생각해둔 것인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비록 나바호 족의 영역에 가뭄이 들어 식량 생산이 확 줄어들긴 했지만, 현재 북미왕국에서 기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식량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는 만큼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을 테니 북미왕국을 약탈하려 들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습니까?”

푸른 안개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런가 싶은 표정을 짓자 푸른 안개는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무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은 이미 저들도 잘 알고 있을 테고요.”

“하하하.”

에스파냐를 대신해 산타페 지역을 장악한 북미왕국을 아파치 족이나 나바호 족은 꽤 미심쩍게 바라보긴 했었다.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산타페 지역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에스파냐와 비슷한 병력을 배치했기에 분명 만만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멋모르고 북미왕국을 공격한 일부 아파치 족 덕분에 북미왕국의 무력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더불어 에스파냐와는 달리 확실하게 무력을 동원해 보복한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바호 족이나 아파치 족은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고 나름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이를 상기시키는 푸른 안개의 말에 정성국은 일리가 있어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어른께서 그렇게 판단하신다면야...일단은 그냥 두고 보지요. 다만 군사청에 따로 언질을 주어 최소한의 경계는 하도록 하고요.”

“알겠습니다. 전하.”

푸른 안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을 나가려 몸을 돌렸을 때 문득 아파치 족이 생각난 정성국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 장인어른. 아파치 족의 동태는 어떻답니까? 보고를 따로 받지는 못한 것 같은데.”

“아. 그들이 장악한 지역 역시 가뭄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긴 했지만...산타페 지역이나 나바호 족이 장악한 지역에 비하면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답니다.”

푸른 안개의 대답에 정성국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푸른 안개는 그런 정성국을 보고 슬쩍 웃은 후 덧붙였다.

“다만 산타페 인근의 아파치 족은 작물이 다 말라 비틀어져 수확할 것이 없자 아예 근거지를 비우고 북동쪽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허니 이번 가뭄으로 인해 아파치 족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산타페 인근의 아파치 족이 떠난 만큼 그들과의 교류가 끊어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었기에 정성국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 *

“호오. 이게 이번에 개발된 압착기로 뽑은 콩기름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콩기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치킨을 해 먹을 수 있겠군.’

북미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재배했다.

수렵 생활을 했던 원주민들이야 농사를 아예 짓지 않았기에 예외였지만 농사를 주로 짓던 푸에블로 족의 경우는 옥수수, 호박, 콩을 세 자매라 부르며 함께 재배했었고 이것이 주변으로 퍼졌었기 때문이다.

비록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에서 구아노를 수입해 이를 비료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 구아노는 대부분 개척단이 개간한 논밭에 우선하여 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땅에 질소를 공급하기 위해 북미왕국은 행정청을 통해 원주민들에게 콩의 재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북미왕국의 콩 생산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콩 대부분은 주로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성국은 돼지고기 문제로 인해 축산 연구소의 보고를 받고 이러한 사항을 확인한 후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청에 이야기해 증기기관의 동력을 이용해 손쉽게 기름을 추출할 수 있는 압착기를 만들어 보라고 명령했다.

전생에서처럼 콩을 갈아서 헥세인이란 유기 용매에 녹여 지용성분을 모두 추출하는 방식보다는 생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당장은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최소한 기존의 인력이나 축력을 사용해 식물성 기름을 추출하는 방식보다야 나았으니.

그리고 압착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 압착기로 뽑아낸 콩기름을 가지고 연구청장이 나타나자 정성국은 치킨이 생각나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연구청장에게 말했다.

“압착기를 더 만들도록 하게. 그래서 콩에서 기름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는 사료로 사용하고.”

“아. 그거 나쁘지 않군요. 귀한 기름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이 시기의 식용 기름은 무척이나 귀했다.

애초에 동물성 기름이야 동물을 잡아야 했으니 논외였고 식물성 기름 역시 주재료가 되는 작물을 재배하고 사람이 직접 짜내야 했으니 힘들고 생산량도 많지 않아 귀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이 압착기를 개발한 덕분에 북미왕국에서는 그나마 싸게 식용 기름을 보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연구청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집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정성국은 호위대원을 불러 연구청장이 가져온 콩기름들을 주방으로 옮겼다.

“전하. 오셨습니까.”

주방에 들어오는 정성국을 이미 익숙하게 바라보는 숙수들이었고 나이가 지긋한 한 숙수가 정성국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정성국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병에 들어있는 것들은 콩기름인데 저걸로 닭을 튀겨보게.”

정성국의 말에 숙수는 의아한 기색이었다.

정성국이 직접 방문할 정도면 뭔가 특이한 요리를 요구하는 편이었기에.

“음...포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조선 시대에는 기름이 무척 귀하긴 했지만, 왕실이나 권세 있는 양반가의 경우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요리들이 있긴 했다.

포계 역시 그중 하나인데 닭을 토막 내 기름을 듬뿍 넣고 튀기듯 볶다가 간장과 참기름, 식초를 사용해 양념해서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성국이 원하는 치킨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정성국은 숙수에게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튀기는 프라이드 치킨의 대략적인 요리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주변의 숙수들이 모두 정성국의 말을 유심히 듣고 어떻게 조리하면 좋을지 논의하는 중에 나이가 지긋한 숙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힐끔 바라보았다.

“왜 그러나?”

정성국이 묻자 숙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요리는 무척이나 호화로운지라 조금 의외여서 그렇습니다.”

정성국이 개발하는 음식 대부분은 시간이 흐른 후 국영 상단에 의해 백성들도 맛볼 수 있었다.

더불어 조리법도 알려주어 백성들이 직접 요리를 해 볼 수도 있었고.

덕분에 북미왕국 백성들의 식습관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이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말이다.

하지만 이번 요리는 귀한 기름이 많이 필요한 만큼 그것이 어려워 보여 이를 조심스럽게 지적하자 정성국은 오히려 그런 지적을 하는 숙수를 만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최소한 아부보다야 나았으니까.

더불어 숙수가 이런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은 정성국이 이를 두고 화를 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이번에 새롭게 압착기를 개발한 덕분에 콩기름을 얻기 쉬워졌네.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 일반 백성들도 지금보다는 손쉽게 콩기름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최소한 전을 부쳐 먹기는 어렵지 않을걸세.”

정성국의 설명에 숙수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뭐 이번 요리는 기름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만큼 위험하기도 한지라 백성들이 요리하기는 쉽지야 않겠지만 뭐...”

그러면서 정성국은 일본에서 유채꽃을 대량으로 재배해 이를 통해 유채 기름을 그나마 값싸게 얻게 되자 튀김 요리가 발달했고 서민들이 집에서 튀김을 하려다 집을 홀라당 태워 먹는 일이 발생해 가정집에서는 튀김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일화가 떠올랐다.

‘새한성의 집은 그나마 괜찮지만, 원주민들의 집은 아직도 나무로 만든 집이 태반이니...그냥 국영 상단을 통해 곳곳에 치킨집을 차리는 것이 나으려나. 하. 공기업에 치킨 프랜차이즈를 차리는 격이니 이것 참...’

시대가 시대이니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정성국의 관점으로는 무척 우스꽝스러웠기에 속으로 투덜거리던 중에 나이든 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군요. 전하의 뜻을 오해했습니다.”

이미 정성국의 성향을 잘 아는 나이든 숙수였기에 괜히 죽여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에 정성국인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정말 맛있게 만들어 보게. 그럼 용서해주지.”

이에 나이든 숙수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하하. 그럼 고생하시게.”

* * *

‘바사삭!’

갓 튀긴 치킨을 한입 베어 문 하얀 들꽃은 바삭거리는 튀김옷의 소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하얀 들꽃의 반응을 보고 정성국인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때? 맛있지?”

하지만 하얀 들꽃은 정성국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들고 있던 치킨을 다 먹은 후에야 멍한 표정으로 치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이건 정말...천상의 맛이네요.”

그런 하얀 들꽃의 반응에 정성국은 무척 재밌어했다.

하얀 들꽃은 정성국에 의해 여러 요리를 맛보았을 텐데도 그중에 튀김은 없어서인지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하하하. 그래?”

이에 하얀 들꽃은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닭요리는 해신탕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이것도 전하께서 직접 개발하신 음식인가요?”

“뭐 다른 거랑 비슷하지.”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하자 하얀 들꽃은 눈을 반짝거리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대단하세요! 전하! 이런 맛있는 요리를! 그렇죠? 형님?”

전아라도 하얀 들꽃처럼 반응만 심하지 않았을 뿐이지, 열심히 젓가락을 놀려 치킨을 먹어치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보기에도 무척이나 먹음직스럽고 겉의 바삭한 식감과 안쪽의 담백한 닭고기가 정말 잘 맞는 느낌이야. 이건 백성들도 정말 좋아하겠는데요?”

“전하?”

하얀 들꽃이 빤히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평국이에게도 말은 해 뒀으니까 백성들도 맛볼 수 있을 거야.”

정성국의 말에 전아라가 끼어들었다.

“이건 좀...곳곳에 식당을 세워 북미왕국 백성들은 모두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국영 상단의 경우 주로 새한성이나 새김포 정도에서나 식당을 만들었기에 이를 지적하자 정성국은 웃으며 답했다.

“그럴 거야. 이미 평국이에게 말해뒀어. 시간이 흐르면 북미왕국 어디에서나 이 닭튀김을 먹을 수 있을걸?”

“아! 역시! 전하는 대정령의 화신이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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