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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08화 (208/850)

208화

7월 초의 여름.

정성국은 회의실에서 몇몇 청장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흐음...산타페 지역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전하. 생각보다 가뭄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나마 강 주변은 괜찮은데 그 외의 지역은...”

푸른 안개가 굳은 얼굴로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러면서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푸에블로 족이 이 시기쯤 가뭄으로 대기근이 발생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기근으로 인해 아사자가 발생하고 또 식량 부족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서 전염병까지 돌아 인구가 확 줄어든 것이다.

당시 이곳을 장악하고 있던 에스파냐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푸에블로 족은 에스파냐에 악감정을 품고 훗날 여러 이유가 겹쳐 반란을 일으켜 결국 에스파냐를 몰아내니까.

물론 잠깐의 독립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정성국은 이미 이 지역에 기근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두었기에 관리청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관리청장. 현재 식량의 여유분은 얼마나 되지?”

관리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북미왕국은 계속해서 경작지를 늘려나가고 있었기에 식량은 넘쳐났으니까.

“쌀과 밀만 합쳐 400만 석 정도입니다. 그 외의 잡곡과 다른 식량들도 충분하고요.”

“그럼 산타페 지역을 지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겠군?”

정성국의 질문에 관리청장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산타페 지역에 사는 푸에블로 족의 인구가 많은 편이기는 하나 식량 여유분을 생각하면 뭐...”

푸에블로 족은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 부족 중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했다.

덕분에 북미왕국의 인구 비율에서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가 발생했을 테지만 북미왕국의 경우는 식량은 넘쳐났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관리청장의 답변에 조선뿐만 아니라 북미왕국에도 가뭄이 들었다는 보고와 가장 많은 인구가 존재하는 산타페 지역이라는 것에 살짝 긴장한 표정이던 다른 청장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런 청장들의 반응을 살피며 슬쩍 웃은 정성국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역시 그렇지? 그럼 운송은?”

하지만 관리청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게 조금 걸리긴 합니다. 다만 최근 전하의 명령에 따라 리오그란데강 근처에 식량창고를 짓고 식량 일부를 옮겨둔 덕에 이곳의 식량을 산타페로 옮기면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러는 게 맞겠지. 리오그란데강에 교량을 건설하면 새진주로 보낼 생각이긴 했지만 그게 급한 일은 아니니까.”

정성국은 산타페 지역에 가뭄이 들 것을 대비해 근처에 식량창고를 건설했지만 이를 언급할 수야 없었기에 대외적으로는 일단 이곳에 식량을 비축해두고 아직 건설 중인 리오그란데강의 교량이 완성되면 이곳의 식량을 새진주로 보낼 것이라고 둘러댔었다.

계속해서 새진주를 비롯한 북미왕국 동부 지역의 보급을 타국에 맡길 수는 없다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다들 동의했었고.

정성국의 말에 관리청장이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에스파냐놈들이 취하던 폭리도 사라졌으니 그냥 계속 이용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요.”

그 말에 다른 청장들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동안 폭리를 취하며 새진주에 물자를 전달해 주었던 에스파냐는 아카풀코 조약이 작정하고 북미왕국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따지는 북미왕국을 달래기 위해 여러 이득을 포기했었다.

덕분에 당분간은 계속 에스파냐를 통해 물자를 전달해도 큰 상관은 없었기에 정성국 역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리오그란데강 근처에 건설한 식량창고에서 강을 통해 산타페까지 식량을 운송하도록 하고...다른 지역은 어떤가?”

“다른 지역이라면...”

정성국은 한쪽에 멀뚱히 앉아있는 군사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타페만 가뭄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아 묻는걸세. 근처의 다른 부족들의 지역에도 가뭄이 들었다면...”

“아! 잘못하면 식량을 얻기 위해 북미왕국의 마을을 약탈할 수도 있겠군요!”

관리청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소리치자 군사청장이 눈가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음...딱히 들어온 보고는 없습니다만...혹시 모르니 전 경비대에 만약을 대비하라는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푸른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외무청에서는 혹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은 부족이라도 기상이변으로 인해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라면 약간의 식량 지원은 해 주도록 하세요.”

이는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이기도 했지만, 약탈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다.

더불어 아직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은 원주민 부족에게 호의를 베풀어두면서 훗날 이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정성국의 명령에 푸른 안개는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산타페 지역의 문제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최근 포로나이에서 보내오는 강철도 있는 만큼 다시 철도를 건설했으면 하네.”

정성국의 선언에 청장들은 술렁거렸다.

철도가 얼마나 유용한지 실제 이를 이용하면서 뼈저리게 알게 되었으니 다들 기대하는 것이다.

더불어 새한성–새나주 사이에 철도가 부설된 이후 이 지역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었으니 새진주까지 철도가 부설되면 철도를 따라 북미왕국 남부가 급격하게 발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아! 하긴. 그렇군요. 새한성-새나주 간의 철도 부설이 완성된 이후 계속해서 철로를 만들어 비축해두고 있었으니...”

행정청장의 중얼거림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국은 새한성-새나주 사이의 철도 부설 공사가 늘어진 것은 전적으로 물자와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 공사도 기간을 따지자면야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지만 철도 공사의 난이도를 생각해보면 썩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훗날을 대비해 북미왕국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많은 강철을 생산하고 이를 철로로 만들어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해두고 있었다.

이미 철도가 얼마나 유용한지 확실히 파악한 청장들도 기꺼이 이를 도왔고.

“관리청장? 어떤가? 괜찮겠지?”

이에 관리청장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축해 둔 철로로 당장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복선으로 철로를 깔 수는 없습니다만...아무리 북미왕국이 전력을 다해 철도를 부설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시간이 꽤 걸릴 테고 이주 선단 편에 수입되는 아시아 지역의 강철과 북미왕국에서 캐내어 생산하는 강철, 그리고 에스파냐에서 수입하는 철광석의 양을 고려해보면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관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미소지었고 다른 청장들은 잔뜩 들뜬 분위기였다.

이에 정성국은 개발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군. 다만 워낙 긴 거리이니만큼 길게 끌어봐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최대한 많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서 빠르게 철로를 깔았으면 하는데...”

정성국의 말에 진지한 표정을 한 개발청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새한성-새나주 구간 철도를 부설할 때야 처음이라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만...어느 정도 경험도 쌓인 상태이니 물자와 인력만 충분히 제공된다면 10년 안에 철로를 깔겠습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발청장은 새나주-새진주 구간은 새한성-새나주 구간 길이의 5배에 가까웠으니 단순하게 새한성-새나주 구간의 철도 부설 기간의 5배인 10년을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철도 부설 기간이 무척이나 늘어졌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으로서는 이 기간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철도 부설에 필요한 자제들을 열심히 비축해두었던 것이고.

하여 정성국은 단호하게 말했다.

“10년? 4년으로 줄이게.”

“헉?! 전하! 그건 무리입니다.”

예상 기간을 절반 이상으로 줄여버린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이 기겁하며 손을 내젓자 정성국은 손을 들어 개발청장을 진정시키며 설명했다.

“무리가 아닐세. 새한성-새나주 구간의 철도를 부설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 그동안 멕시코 원주민들을 동원해 이미 길을 정비하고 기초적인 기반공사는 다 끝내두었지. 더불어 연구청에서 이를 위해 트랙터를 개조한 건설용 기계를 만들어두었고. 그뿐인가? 새남포에서 침목까지 규격에 맞게 잘라 운송해 새나주에 비축해두었네. 개발청에서는 이를 이용해 철로만 쭉쭉 깔면 되는 거야. 그러니 새한성-새나주 구간 철도 부설 기간보다는 훨씬 단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그렇긴 합니다만...”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할 말이 없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개발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그를 달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렇다고 인력을 가혹하기 쥐어짜라는 소리가 아닐세. 최대한 많은 인력을 지원해 주겠네. 다행히 에스파냐와 협상한 덕분에 더 많은 멕시코 원주민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이들을 3교대로 나눠 공사현장만 쉬지 않고 돌아가게 하면 되네.”

전생의 대륙 횡단 철도는 단 6년 만에 약 2800km 길이의 철로를 깔았다.

물론 두 회사가 양방향에서 건설하긴 했지만, 서부 지역은 여러 험준한 산맥을 뚫어야 했고 동부 지역의 경우 철도 부설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던 인디언들의 저항을 진압해야 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6년 만에 2800km를 깔았는데 이미 기반공사도 대충 끝내놓았고 난공사를 피하려고 공사 길이가 길어지는 것도 감수한 새나주-새진주 간의 약 2400km의 철도 부설 공사는 4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정성국의 생각이었다.

‘비슷한 조건에서 동부 유니언이 하루에 4km 넘게 철도를 깔아댔던 것을 생각하면 공사 기간의 단축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뭐 이 정도만 해도 나쁘진 않으니. 더불어 너무 속도만 강조하다가 건설 노동자들이 다칠 우려도 있고.’

정성국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개발청장은 마음을 정했는지 굳은 어조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기간 내에 철도 부설이 완료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씩 웃자 옆에서 관리청장이 끼어들었다.

“전하. 상황이 그렇다면 산타페 지역의 백성들을 이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 아. 그들을 고용하자는 뜻인가?”

정성국의 질문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산타페 지역에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친 이상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려는 백성들이 많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북미왕국의 지원을 받아 굶주릴 일이야 없겠지만 평소처럼 생활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거군?”

“그렇습니다. 물론 비용적으로야 멕시코 원주민들을 고용하는 편이 더 싸게 먹힐 테지만...”

관리청장이 슬쩍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문득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범람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호하기 위해 건설했던 피라미드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나는 철도를 남기는 셈인가?’

“아니야. 관리청장. 좋은 지적을 해 주었어. 그럼 그러도록 하지. 일단 이 산타페 지역에서 건설 노동자를 구하고 부족하면 멕시코 원주민을 추가로 고용하는 방향으로.”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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