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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07화 (207/850)

207화

박기동은 증기기관의 개선점을 연구하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자신의 연구실에서 나왔다.

그를 보고 인사하는 연구원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준 박기동은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나 마실 겸 근처의 찻집으로 향했다.

박기동이 막 연구소를 나가려는 순간 연구소 입구가 열리며 정성국이 호위대장과 함께 들어오자 박기동은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헉! 스승님?”

정성국은 막 연구소에 들어오다가 그런 박기동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어디 가냐?”

“아...잠이 와서 커피나 한잔하려고 했었죠. 헌데 이곳까진 어인일로...”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나가다 잠시 들렀어. 헌데 저건 뭐야?”

정성국은 연구소 입구 근처에 설치된 마치 기계 장치처럼 보이는 물체를 가리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국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박기동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게 경유기관입니다.”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다가갔다.

“뭐? 이게? 경유기관이라고?”

그동안 별다른 보고가 없었기에 아직 연구 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물이 이렇게 존재할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은 자세히 관찰했다.

정성국이 기계 장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유기관뿐만 아니라 이와 연결되어 경유기관의 동력을 전달하는 부분까지 함께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동력부를 자세히 관찰했다.

꽤 커다란 실린더를 지닌 단기통 경유기관으로 보였다.

‘내 생각보다 크긴 하네. 헌데 왜 아무런 보고가 없었던 거지?’

박기동은 정성국을 따라 연구소 입구 근처에 설치된 경유기관에 다가가 정신없이 경유기관을 관찰하는 정성국에게 설명했다.

“그건 처음 제작했던 경유기관이긴 한데...실패작입니다. 제대로 출력이 나오지 않더군요.”

“아...그래?”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처음으로 만들어진 실물 경유기관에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실패했었지만, 처음으로 만든 경유기관이었기에 연구소 입구 근처에 장식해둔 것인데 정성국이 저렇게 관심을 두니 내심 뿌듯한 박기동은 정성국에게 말했다.

“스승님. 실패한 녀석은 그만 보시고 이왕 오신 김에 새롭게 연구 중인 경유기관을 보러 가시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휙 돌려 박기동을 쏘아보았다.

“음? 또 있다고?”

마치 아이 같은 스승님의 반응에 박기동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대로 성공한 이후에나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뭐해? 빨리 앞장서!”

정성국의 재촉에 박기동은 정성국과 호위대장을 연구소 안쪽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 연구소 입구에 설치한 경유기관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크기는 좀 더 작고 투박해 보이는 경유기관이 정성국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에 있던 연구원과 장인들은 갑자기 등장한 정성국을 보고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에게 인사했지만, 정성국은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곧바로 경유기관 곁으로 다가가 관찰했다.

박기동은 정성국의 뒤에서 말했다.

“일단 물러나 계시지요. 작동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바로 뒤로 물러났고 박기동이 손짓하자 한 연구원이 한쪽에서 쇠로 된 막대를 가져와 경유기관 한쪽의 구멍에 꽂고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잠시.

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경유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연구원이 동력을 연결하자 실린더의 직선 왕복운동이 회전으로 바뀌어 이와 연결되어있던 커다란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성국이 감탄했다.

“오오. 움직이네?”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다만 저것도 예상보다 출력이 나오진 않아서 이를 보완한 다음 기관을 제작한 이후에나 스승님께 알릴 생각이었지요.”

“그래? 저건 출력이 얼마나 나오는데?”

정성국의 질문에 박기동은 입술을 삐죽이며 답했다.

“7마력 전후입니다.”

“호오...”

정성국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경유기관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7마력이라...보통 시골에서 사용하는 조그마한 경운기가 8마력에서 10마력일 건데...이 정도만 해도 써먹기는 충분한 것 아닌가?’

그러면서 정성국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손짓했고 연구원이 경유기관을 멈췄다.

정성국은 생각지도 못한 경유기관의 발명에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방 안에서 잔뜩 긴장한 눈치의 연구원과 장인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노고를 격려한 뒤 방에서 나와 박기동의 연구실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이야. 오늘 이렇게 직접 방문하기를 잘했네. 저걸 숨겨두고 있었다니.”

정성국의 타박 아닌 타박에 박기동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직 시제품 수준이라서요. 조금 더 괜찮은 녀석이 만들어지면 보고하려고 했죠.”

정성국은 박기동의 연구실 문을 열며 말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는데?”

이에 박기동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고작 7마력짜리인데요?”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을 타박했다.

“야. 트랙터에 들어가는 증기기관의 크기를 생각해봐라. 저 크기에 7마력이면 대단한 거지.”

“그래도 그건 20마력은 되잖습니까!”

“거기서 거기지 뭔.”

그러면서 정성국은 박기동의 연구실 한쪽의 의자에 앉았다.

박기동은 근처의 의자에 앉으며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헌데 스승님께서 왜 이 경유기관에 관심을 두었는지 잘 알겠더라고요. 잘만 발전시키면 증기기관보다 더 나아 보입니다. 보일러가 필요 없으니 기관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고 시동을 거는 게 어려울 뿐이지 증기기관처럼 보일러를 예열하기 위해 한참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정성국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증기기관보다는 경유기관의 효율이 더 높아. 장기적으로는 증기기관보다는 경유기관으로 대체해야지.”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하지만 증기기관은 연료의 범용성이 좋은 이점이 있지 않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야 한데...어차피 증기기관도 제대로 굴리려면 최소한 석탄은 필요하잖아. 비상시가 아니라면야 결국 정해진 연료만 사용하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효율 좋은 이 경유기관이 나아. 그리고 이 기관도 여러 연료를 사용할 수 있긴 해. 비상시엔 등유나 혹은 콩기름을 이용해서도 굴러가긴 할걸?”

경유기관은 실린더 안의 공기를 압축해 온도를 높인 후 연료를 실린더 안에 분출해 스스로 점화되는 엔진이었다.

그 때문에 등유나 콩기름을 넣어도 점화되어 실린더가 팽창하긴 했다.

더불어 원시적인 경유기관이었기에 큰 문제가 일어날 리도 없었고.

“어...그렇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러니까 나중에 한 번 시험해 보라고. 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고. 그리고 네가 증기기관에 미련을 갖는 것 같아 이야기하는 건데...지금의 증기기관은 동작 방식 자체가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 전에 이야기한 증기의 직접적인 힘을 이용하는 방식을 연구해보라고.”

정성국이 말하는 것은 바로 증기터빈으로 정성국은 개척촌 시절에도 이에 관한 개념 정도는 슬쩍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 회전기관 말입니까? 물론 그것도 연구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래? 그건 또 어디다 숨겨놨냐?”

당장 박기동의 연구실을 나갈 기세인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시제품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아. 그래?”

정성국은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박기동은 벽 한쪽에 자리한 금고를 열고 설계도 몇 장을 꺼내 정성국에게 보여주었다.

정성국은 증기터빈의 설계도가 그가 기억하는 증기터빈의 구조와 무척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호오...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정성국의 칭찬에 박기동은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렇습니까? 최대한 증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 축에 수많은 날개를 붙이긴 했는데 문제는 결국 이 기관의 효율은 이 축과 연결된 날개에서 나올 것 같거든요? 헌데 이 날개의 개수와 각도는...”

정성국은 바로 손을 들어 박기동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가 유체역학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책을 읽어봤다면야 기억나는 데로 알려줬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으니 결국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기터빈을 만들어야 했고 이는 박기동과 연구원들의 일이었다.

“나한테 묻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미친 듯이 만들어서 실제 나오는 자료를 분석해야 하지 않겠어?”

정성국의 대답에 박기동이 실망했다.

“끙...역시 그런가요.”

“다만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그나마 정성국이 기억하고 있는 몇몇 내용을 이야기해주자 박기동은 유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남은 증기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

정성국은 생각에 잠긴 박기동을 믿음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박기동뿐만 아니라 연구청에 있는 모든 연구원과 장인들은 이미 스스로 알아서 연구하고 북미왕국의 기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었으니 이 정도만 던져주더라도 알아서 잘 발전해나갈 것이라 믿었다.

‘휘발유 엔진은 어차피 점화 플러그 문제로 당장 만들긴 어렵고 남은 건 가스터빈 정도인가? 근데 이것도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둘 다 나중에 슬쩍 개념만 언급만 해두면 알아서 연구하겠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생각을 마치고 설계도를 다시 금고에 집어넣는 박기동의 뒤통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또 뭐 없어? 숨겨둔 거?”

금고를 닫으면서 황당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던 박기동은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아! 참. 트랙터를 개조해 건설용 기계를 만들긴 했습니다만.”

정성국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딨어?”

* * *

연구청의 연구소 뒤쪽에 자리한 시험장에 트랙터를 개조한 건설용 기계 2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헌데 외관이 무척이나 익숙해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저건 밀차입니다. 흙과 모래 등을 저 넓은 삽으로 밀어 평탄하게 하는 용도입니다.”

박기동이 가리킨 밀차는 트랙터 앞부분에 커다란 삽을 장착한 기계로 정성국이 보기엔 무척이나 빈약해 보이는 불도저였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앞에 달린 삽으로 땅을 고르게 미는 모습을 본 정성국은 입을 열었다.

“저건 그냥 트랙터 앞에 큰 삽을 단 것뿐이야? 그럼 경운차와 차이점이 뭐야?”

하지만 박기동의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동력 일부를 연결해 조금이지만 상하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땅을 평탄하게 만들려면 그냥 앞에 큰 삽을 다는 것으로는 어렵더라고요.”

“호오...”

의외라 정성국이 감탄하는 사이 박기동은 그 뒤를 이어 천천히 움직이는 기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지반을 다지는 용도로 개발한 녀석입니다. 저희는 굴림차라고 부르지요.”

트랙터의 앞바퀴 대신 꽤 두꺼워 보이는 커다란 원통을 단 굴림차라는 기계는 정성국이 보기엔 조금 빈약해 보이는 롤러와 같았다.

“묵직하게도 생겼네. 마음에 든다. 저 통짜 원통으로 지반을 다지는 거지?”

“그렇습니다.”

연구청에서 트랙터를 개조해 건설용 기계를 만든다는 소식에 정성국이 꽤 많은 건설용 기계에 대해 알려주긴 했지만, 아직은 기술의 한계 때문에 간단하게 개조해 만들 수 있는 것만 만든 눈치였다.

‘뭐 저것만 하더라도 쓸모가 없지는 않아 보이니 나쁠 것은 없나?’

그러면서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밀차와 굴림차는 제대로 동작하는 거 맞지?”

이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효용은 조금 애매해서 아예 증기기관을 키우면서 크기를 키우는 방안을 고려 중이었습니다만...”

박기동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저 건설용 기계들은 트랙터를 개조한 녀석들이다 보니 한계가 명확하긴 했다.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럼 트랙터를 개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전용 기계를 만드는 셈이라 한참 걸릴 텐데?”

“그렇긴 하지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은 없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저거 써 보자. 그리고 계속 운용해보고 필요한 기능들을 나중에 추가해서 제대로 만들어.”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궁금한 듯 물었다.

“알겠습니다만...저거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슬슬 철도를 다시 깔아볼까 해서.”

정성국이 왜 이렇게 관심을 두는지 이해한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뭐 도로 공사하는 데 사용하려고 만든 녀석들이긴 합니다만 철도를 깔기 전 기반공사에 사용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네요.”

박기동이 수긍하자 정성국은 박기동을 보고 씩 웃으며 명령했다.

“그렇지? 그러니 저거 딱 10개씩만 더 만들어라. 일단 굴려보자고.”

“후우.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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