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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01화 (201/850)

201화

슬슬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 말에 호위대장이 호위대원들과 함께 집무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전하. 쾌속선을 통해 전해진 보고서들입니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정성국은 들어오는 호위대장과 호위대원을 보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 책상을 가리켰다.

“그래?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군. 거기에 올려두게.”

“알겠습니다. 전하.”

이에 호위대원들은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집무실을 나갔다.

하지만 호위대장은 잠시 남아 정성국을 바라보고 보고했다.

“전하. 맨 위에 올려져 있는 이 보고서는 이천호 대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면서 꼭 전하께 전달하라고 당부했다는 보고서입니다.”

“그래?”

호위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호위대장은 눈치껏 보고서 위에 올려져 있던 이천호 대방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주었고 정성국은 곧바로 겉봉을 뜯고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호위대장이 조심스럽게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건넸다.

“개척촌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정성국은 보고서를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세...개척촌이라기보단 조선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

정성국의 대답에 호위대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선에 말입니까?”

정성국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아아. 아무래도 청장 회의를 해야겠어.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곧바로 청장들에게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 * *

정성국은 회의실에서 청장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조선에서 온 보고서는 다들 읽어보았나?”

“그렇습니다. 전하.”

“어떻게 생각하나?”

정성국의 질문에 행정청장이 먼저 대답했다.

“전염병이 돈다는 사실이 조금 우려스럽긴 합니다만...이천호 대방이 평안도와 충청도 지역의 유민을 배제한 만큼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행정청장의 말에 다른 청장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정성국은 되물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가?”

정성국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들을 짓는 청장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현재 조선에서 돌고 있는 전염병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딱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성국은 연구청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연구청장?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연구청장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역시 행정청장과 비슷한 생각입니다만...”

“그래?”

연구청장은 자신의 답변에 정성국이 살짝 실망하는 기색이 보이자 머리를 굴리다 혹시나 해 질문을 던졌다.

“혹여 전하께선 북미왕국에서 의원들을 보내 전염병을 치료하시려고 하십니까?”

정성국은 연구청장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정성국이 생각하기에 조선의 의학 수준보다는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북미왕국의 의원들이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더불어 가뜩이나 의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선에 보낼 의원을 차출하는 것도 어려웠고.

“그건 아닐세. 어떤 전염병인지도 모르고 아직 우리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이 전염병을 치료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예방에 힘쓰고 있는 거고.”

“그건 그렇지요.”

정성국은 연구청장이 헛발질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조선에서 올라온 보고에 햇무리와 달무리가 계속해서 관측되고 거기에 유성마저 관측되었다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정성국의 질문에 연구청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우연히 기상이변이 겹친 것 아니겠습니까? 유성이 불길하다는 것도 미신에 가깝고요.”

“흐음...”

정성국이 슬쩍 주변의 청장들을 바라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싶어 생각에 잠겼을 때 관리청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전하께서는 이 기상이변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관리청장의 지적에 정성국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유성이 자주 떨어졌다는 것과 햇무리가 계속 끼어 낮에도 꽤 어둡다는 보고로 볼 때 먼지로 인해 일조량이 감소할 수 있다고 생각된달까? 더불어 보고서 끝에 우박은 내리되 비는 내리지 않아 땅이 가물 다는 보고도 좀 걸리고 말이지.”

엄밀히 말해 이 시기의 소빙하기는 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긴 미립자로 인해 일조량이 감소해 온도가 떨어졌다기보다는 태양 활동이 약해진 영향이 더 크다고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기술을 중시하다 보니 자연 과학은 소홀히 해 연구청장마저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알아듣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기에 슬쩍 둘러대는 정성국이었다.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은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고 생각되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흐음...천문 쪽은 제가 잘 모릅니다만...전하께서 그렇게 판단하신다면 그것이 맞겠지요. 허면 전하께선 기상이변으로 인해 조선에 흉년이 들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네.”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은 다들 당황했다.

미신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 자연현상을 가지고 기후를 예측하다니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정성국의 통찰력이 비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청장들은 연구청장의 말처럼 일단 조선에 흉년이 든다는 것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해서 행정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동안 이주 선단을 통해 지속해서 남는 식량 일부를 개척촌과 포로나이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이에 옆에 있던 관리청장이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특히 작년에도 많은 식량을 보냈으니...아마 개척촌과 포로나이를 합쳐 70만석 정도의 여유 식량이 보관되어 있을 겁니다.”

관리청장의 말에 교육청장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했다.

“그 정도면 조선에도 큰 피해는 없겠지요.”

그리고 다른 청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정성국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물론 청장들의 판단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보통 흉년이라 하더라도 어느 한 지방, 혹은 몇몇 지방의 작황이 흉작이고 다른 지역은 평작이나 풍작이기도 했다.

물론 조선의 경우는 내부 유통망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아 문제긴 했지만, 전체적인 식량 생산량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소빙하기 때문에 평상시의 흉년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고 이 때문에 현재 비축해둔 70만 석으론 턱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쓴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흐음...그렇지만 어느 정도 대비는 할 필요가 있다고 보네.”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이 그도 그렇다는 듯 대답했다.

“아. 전하의 예측대로 흉년이 들면 유민이 발생할 테니 이를 대비해야 하긴 하겠군요. 하지만 조정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유민들을 많이 데려올 수는 없을 텐데요?”

행정청장의 말이 끝나자 정성국은 슬쩍 청장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 때문에 슬슬 조선과 접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에 행정청장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됩니다! 전하.”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정성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행정청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직접 조선으로 가 협상을 진행하려는 것 아닙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전하.”

행정청장의 말에 다른 청장들도 단호한 표정으로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전하께서 직접 움직이시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제후국도 아닌데 일국의 왕이 타국에 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만약 가시려거든 1, 3함대를 모두 움직여야 합니다.”

청장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기에 정성국은 볼을 긁적이다가 중얼거렸다.

“쩝...역시 좀 그런가?”

옆에서 정성국의 말을 들은 행정청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조선에서 보기엔 우리는 유민의 무리에 불과할 겁니다. 헌데 전하께서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라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행정청장은 차마 더는 말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조용한 곰을 제외한 조선인 출신 청장들은 다들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글세...애초에 북미왕국이 조선 유민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을 생각이고 그것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아마 그럴 정신은 없을 것 같긴 한데...”

““전하!””

정성국의 말에 기겁해서 청장들이 다시 잔소리를 시작하자 정성국은 손을 들어 그들의 입을 막으며 선언했다.

“아. 알겠네. 알겠어. 자네들의 뜻이 그렇다면야.”

정성국의 선언에 다른 청장들이 안도하는 사이 정성국은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있는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조용한 곰.”

“하명하시지요. 전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보고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조선과 협상하려면 투로시노에게만 맡기기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네. 그렇다고 웅크린 늑대는 새진주로 보낼 생각이니 결국 자네가 직접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괜찮겠나?”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얼굴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믿고 맡겨 주시지요.”

이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다만 공식적인 대표는 투로시노일세. 아무래도 투로시노가 더 이국적으로 보일 테니까.”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의 외향 차이는 크지 않았다.

물론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북미왕국 사람들은 이주민이든 원주민이든 다들 머리 모양도, 복식도 조선인과는 전혀 다르기에 완벽하게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북미왕국과 원상의 상관관계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외향부터 이질적인 아이누인을 대표로 삼는 편이 나았다.

최소한 서인들은 정성국이 유민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니 말이다.

그러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에게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조용한 곰은 이를 듣다 정성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허면...전하께서는 북미왕국이 조선 유민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숨기실 생각이십니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 북미왕국은 조선 유민들과 이곳 원주민들이 함께 세운 나라일세. 애초에 조선인 출신 이주민은 비율로 따져도 얼마 되지 안잖나. 헌데 이를 굳이 알릴 필요가 있나 싶은데...?”

물론 북미왕국의 형성은 정성국을 비롯한 개척촌 출신의 조선인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조선에 자세히 알려봐야 이로울 것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제후국 취급을 하려 들지도 몰랐고.

그런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정성국의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대등한 국가로서 협상을 진행하라는 뜻이로군요. 알겠습니다. 전하. 바로 준비해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조용한 곰에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조선과 협상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했다.

슬슬 조선 조정 역시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테지만 아직 위기감은 없을 터였다.

“바로 갈 필요는 없네. 아직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니니까. 허니 준비하고 있다가...여름쯤에 쾌속선을 타고 포로나이로 떠나도록 하게. 그곳에서 다시 사정을 살피다가 한양으로 가면 될걸세. 아. 그때는 3함대와 함께 움직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관리청장이 끼어들었다.

“전하. 허면 개척촌과 포로나이에 비축된 식량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북미왕국의 이득만 생각하자면 이 식량들도 비축하고 있다가 협상을 통해 푸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당장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텐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고 이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황을 봐서 기근이 닥치면 적당히 구휼미로 풀어야지. 일단은 조선 내에 있는 식량을 풀고 그때쯤이면 조정에서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할 테니 남은 식량을 무기 삼아 조용한 곰이 투로시노와 함께 조선으로 가 협상을 하면 되겠지.”

이에 조용한 곰이 질문을 던졌다.

“협상 목표는 조선의 문호를 여는 것이겠지요?”

정성국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만...그건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더불어 이주 문제도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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