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행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상의 대방인 이천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예전 한양에서 행수가 급히 개척촌으로 달려와 보고한 후 이천호는 원상의 모든 행수에게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이상이 있으면 개척촌으로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생각보다 여러 기상 이변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주 햇무리와 달무리가 져 어두컴컴해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곳곳에서 불길한 유성이 관측되었을뿐더러 평안도에는 이 유성이 직접 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더불어 전에 행수가 이야기했던 전라도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경상도 곳곳에서 땅이 흔들렸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거기에 이미 충청도와 전라도에는 전염병이 돌아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후 조금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다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행수의 말에 절로 한숨이 나온 이천호였다.
“허어...또 전염병이 돌다니...그래서 피해는?”
“일단 평안도의 경우 천 명이 넘는 사람이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충청도의 경우는 죽은 사람만 80명 가까이 된다더군요.”
“흐음...”
충청도야 한번 전염병이 돌았으니 제대로 진정되지 않았다 치더라도 평안도에 전염병이 돌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저은 이천호였다.
이천호는 다른 것보다 이 전염병이 우려스러웠다.
개척촌은 조선 팔도의 유민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헌데 곳곳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개척촌도 전염병에 안전할 수가 없었다.
정성국이 왜 그렇게 철저하게 위생과 청결을 강조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이천호였기에 일단 평안도와 충청도의 유민들은 당분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행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염병이 도는 것도 우려스러운데 한양과 경상도에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우박이?”
“그렇습니다.”
우박이라는 말에 놀란 이천호는 급히 물었다.
“허면 서리는...”
우박이 떨어져 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서리였다.
보통은 우박과 서리가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급히 이를 묻자 행수가 바로 답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만...워낙 날씨가 해괴하니 안심할 수야 없지요. 이 때문에 각지의 민심이 꽤 흉흉합니다.”
행수의 대답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천호가 조정의 반응은 어떤가 싶어 질문을 던졌다.
“흐음...한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하지만 이천호의 예상과는 달리 행수는 고개를 저었다.
“뭐 썩 좋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정에서는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예. 대방 어르신.”
이천호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이 정성국의 명령 때문에 상황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올해 들어 계속된 기상이변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런 상황에서 조정이 마땅히 대처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기에 이천호는 일단 고민을 그만두고 행수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알겠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주게. 다만 민심이 흉흉하니 조심하도록 하고. 그리고 유민들을 모집하는 행수들에게는 전염병이 돌았다는 평안도와 충청도에서 활동을 멈추라고 이르게.”
“알겠습니다. 대방 어르신.”
이천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행수가 방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꽤 젊은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자네 왔는가.”
“그렇습니다. 대방 어르신.”
젊은 사내는 김명규라는 인물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사람이 진중한지라 이천호가 관심을 두고 은근슬쩍 키우고 있는 인재였다.
이천호는 이 김명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쾌속선이 떠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지?”
김명규는 잠시 머릿속에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아마 1주 정도 후에 포로나이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천호는 알겠다는 듯 손을 들고 급히 책상에 앉아 빈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자네가 잠시 포로나이에 다녀와야겠네.”
이천호의 말에 김명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은 포로나이로 향하는 배편의 선장을 통해 포로나이로 보고서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면 아이누 섬 3함대 사령부에서 이를 받아 쾌속선에 전달했고.
헌데 자신보고 직접 포로나이까지 가서 보고서를 전달하라는 말은 그만큼 이천호가 현 조선의 상황을 무척 안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조선의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알려야 한다는 판단이기도 하고.
이에 김명규는 이천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김명규는 개척촌에서 꽤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기에 다른 곳의 행수들은 불길한 징조라며 이야기하는 기상 현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역시 전염병이 조금씩 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긴 했지만 아직은 몇몇 고을에서 도는 수준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이천호는 빠르게 팔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난 그렇다고 보네. 천문도 심상치 않고 계속해서 전염병이 돌고 있으니...”
김명규는 이천호의 대답에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방 어르신. 대방 어르신께서 북미왕국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면 제가 직접 포로나이로 가져가 쾌속선 함장에게 직접 건네겠습니다.”
이천호는 김명규의 진중한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빙긋 웃었다.
“그래. 부탁하네.”
* * *
“호오. 신병들의 훈련이 끝났다고?”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군사청장의 보고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새김포에서의 훈련이 끝났으니 산타페와 새진주에 건설된 육군 훈련소에서의 훈련도 끝났을 겁니다. 아직 보고가 올라오지는 않았습니다만...”
거리를 생각하면 산타페와 새진주에서 보고가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이해했다는 듯 손을 들어 군사청장의 입을 막았다.
“좋아. 그럼 아이누 경비대를 제외하고도 북미왕국에만 2만에 가까운 병사가 배치된 셈인가?”
이번에 새로 훈련한 신병 3천이 경비대에 합류함에 따라 북미왕국 육군은 탐사대 5천, 경비대 1만 3천, 그리고 호위대 1500까지 거의 2만에 가까워졌다.
물론 해군 병사와 아이누 경비대는 제외한 숫자인 만큼 이들을 다 합하면 북미왕국의 군사 수는 3만에 가까웠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긴 하네.’
아카풀코 조약 이후 급격하게 경비대를 늘리고 있긴 하지만 현 북미왕국이 장악한 영역을 고려해보면 턱없이 부족하긴 했다.
북미왕국의 인구 자체가 영토에 비한다면 무척 적어 어쩔 수야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드디어 잉글랜드의 육군과 비슷한 규모까지는 올라왔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아야겠지. 프랑스야 뭐...’
이 시기 유럽의 패권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경우 평시에 상비군만 약 15만에 달했다.
이는 30년 전쟁 이후 유럽의 군사체계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현상이었고 절대왕정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상황이긴 했다.
세입 대부분을 군에 때려 붓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군사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척 불만인 정성국이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도 수에는 장사가 없으니...훗날 북미왕국의 정보가 알려질 때를 대비해서라도 계속해서 군 규모를 키우긴 해야겠지. 어휴.’
하지만 군사청장은 이 정도면 타국에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 군사청장의 생각을 짐작한 정성국은 쓴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허면 이들의 배치 문제로 찾아온 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하옵고 추가로 모집하는 병사의 규모를 정할 필요도 있고요.”
군사청장의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걸려있는 커다란 북미 지역의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흐음...그 전에 산타페 인근은 어떤가? 나바호 족이나 아파치 족 말일세.”
군사청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잠잠합니다.”
“그래?”
정성국이 살짝 의외라는 반응이자 군사청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탐사대 전원이 새진주로 이동하긴 했습니다만...이곳에도 아직 2천의 경비대가 상주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성국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흐음...그래도 탐사대가 상주하며 주변을 탐사한답시고 돌아다닐 때보다야 압박감이 덜 할 텐데?”
정성국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북미왕국에서야 어차피 탐사대나 경비대나 똑같이 갑오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기에 탐사대를 그저 기동력이 좋은 보병처럼 간주하고 있었지만, 원주민들이 얼핏 보기에는 탐사대가 경비대에 비해 훨씬 정예병처럼 보였고 압박감도 대단했으니 말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군사청장은 웃으며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탐사대가 상주하며 주변을 탐사할 때보다야 압박감은 줄어들었을 겁니다만...아직 저들은 이전의 소규모의 아파치 족이 산타페 인근을 건드렸다 토벌된 것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다시 시선을 돌려 지도를 바라보다가 국경선 인근을 가리키며 물었다.
“흐음...그렇단 말이지? 그럼 이 남쪽 지역은 어떤가? 별다른 보고는 없긴 한데...병력이 부족하진 않나?”
새나주부터 새진주까지 국경선 인근에 정비된 길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대략 2200km에 달했지만, 이 넓은 지역에 배치된 병사는 고작해야 2천에 불과했다.
정비된 길을 따라 적당한 거리마다 쉴 수 있게 병영과 마을을 건설하고 100명씩 배치한 것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군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부족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병력이 더 배치된다면 나쁠 것은 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그래? 배치된 병력이 적은데도?”
정성국의 질문에 군사청장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차피 에스파냐가 국경선을 넘을 일은 없고 이곳에 배치된 경비병들의 주 업무는 마을 주변 순찰과 개발청을 도와 멕시코 일꾼들을 관리하는 것뿐이니까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주변 원주민 부족들은?”
국경선이 그어진 이후 외무청이 열심히 주변 부족들을 회유해 북미왕국에 합류시키고 있고 이곳 원주민 부족들의 경우 대부분 북미왕국이 건설 중인 마을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치안 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 않나 싶었지만 군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에 승리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우리에게 고용된 멕시코 원주민들에 의해 산타페에서의 일을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현재 배치된 병력으로도 별문제 없다는 보고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가 가정 걱정하던 두 지역이 아직은 안정적이라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지도를 바라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시선을 옮겨 미시시피강 하류 지역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도 병력을 배치하긴 해야 하는데...당장은 어렵겠지. 그리고 아직 프랑스의 탐험가가 이곳을 방문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남았고...이미 역사가 바뀌었고 북미왕국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으니 그 프랑스인 탐험가가 과연 10년 후에 이곳에 올지도 의문이니.’
더불어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들이 모두 북미왕국에 합류했으니 이들의 협조를 얻어 천천히 동쪽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기존에 정성국이 생각했던 해로를 통해 미시시피강 하류에 항구와 병영을 짓는 방식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새진주에 배치된 경비대는 1천이 다지?”
“그렇습니다. 그곳엔 탐사대가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상황이 상황이라 탐사대를 새진주에 주둔시키고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이들을 산 아구스틴으로 이동시켜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당장은 그렇지만 탐사대야 기동성이 좋은 만큼 필요에 따라 자리를 비울 수도 있으니 새진주에 주둔하는 경비대를 늘려야겠어.”
정성국의 의견에 딱히 반대는 하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인 군사청장이 물었다.
“허면 이번에 모집한 경비대 3천을 모두 새진주에 배치할까요?”
이에 잠시 고민하던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산타페에서 훈련한 병사는 그곳에 두도록 하지. 그리고 새김포에서 훈련한 병사들을 새진주로 배치하도록 하고.”
즉 산타페에 3천, 새진주에 3천, 산 아구스틴에 3천의 병력이 배치하겠다는 정성국의 명령에 군사청장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그런 군사청장을 보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올해도 작년처럼 훈련소마다 1천 명씩 모집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