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정성국은 오랜만에 집무실로 찾아온 제자들을 보고 웃으며 반겼다.
“이야. 셋 다 꽤 오랜만인데? 요샌 통 얼굴을 안 비추더니.”
정성국의 말에 강평화와 최주명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박기동은 툴툴거렸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워낙 일이 많아서요.”
그런 제자들을 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티테이블에 앉히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제자들의 근황을 물었다.
“호오. 그래? 신철이 녀석이 곧 혼인할 것 같다고?”
정성국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자 강평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조선인 출신 이주민과 눈이 맞아 없어서 못살 정도인 것을 보면...”
“그럼 너희는?”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강평화와 박기동은 떫은 얼굴로 가운데 앉아있던 최주명을 바라보았고 최주명은 슬쩍 얼굴을 붉혔다.
“어라? 어째 분위기가...”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짓자 박기동이 투덜대듯 입을 열었다.
“상돈이 녀석도 만나는 원주민 출신 여성이 있는 것은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왜 아직도 혼인을 안 한다더냐?”
정성국이 되묻자 박기동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녀석도 곧 한답니다. 신철이 녀석보다 먼저 장가갈 거라면서.”
“쯧쯧.”
정성국이 혀를 차는 동안 박기동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녀석과 사귀는 여성의 소개로 저기 주명이는 요새 만나는 처자가 있습니다.”
이에 정성국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최주명을 바라보자 최주명은 고개를 숙여 커피잔에 얼굴을 박고 커피를 연신 마셔댔다.
정성국은 그런 최주명을 보고 피식 웃은 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기동과 그런 최주명을 보고 빙그레 웃고 있는 강평화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너희들은?”
이에 박기동이 먼저 툴툴댔다.
“좋은 처자를 소개해 준다 해도 만나러 갈 시간이 있긴 합니까.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겠습니다.”
현재 박기동이 맡은 업무는 워낙 많았다.
각종 기관의 연구와 여러 기계 장치들의 연구 및 개량, 거기에 대학교에서 사용할 서적의 집필 등등.
정성국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증기기관의 개량이 미뤄져도 별말 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에 정성국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박기동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고생해라. 조만간 문을 여는 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배출되면 숨통이 좀 트이겠지.”
그런 정성국의 대답에 박기동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스승님...그거 4년제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정성국은 헛기침하며 재빨리 강평화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그럼 평화. 너는?”
이에 강평화는 난처한 듯 웃다가 입을 열었다.
“어...저는 다른 사람과 함부로 만나면 안 되잖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정성국이 어리둥절한 얼굴이자 강평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를 듣고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끙...분명 기밀 유지는 중요하다만 그렇다고 독수공방하라는 이야기는 아닌데...”
“어?”
강평화가 당황하자 정성국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만나는 사람에게 화약 제조 공식이나 비율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지만 않는다면 되잖느냐. 거기에 연구소에서는 자료를 외부로 반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이에 강평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전에 스승님께서 보안을 강조하시면서 여자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셔서...”
정성국이 개척촌 시절 보안 의식에 대해 강조하면서 혹시 모를 미인계도 조심하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여자를 사귀는 것마저 포기할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강평화를 바라보았다.
“...그것 때문에 여자를 멀리한 게냐?”
이에 강평화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에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하. 다른 것과는 달리 제가 맡은 분야는 좀 민감하잖습니까. 위험하기도 하고.”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기야 하다만...그것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여성과 혼인하는 것을 막을 정도는 아니다. 허니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에 드는 처자가 있다면 빨리 혼인하도록 해라.”
정성국의 말에 강평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성국은 그런 강평화를 보면서 슬슬 방첩기관을 설립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평화의 말대로 첩자에 의해 기술이 빠져나가면 곤란하긴 하지. 다만 지금처럼 행정청과 군사청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 슬슬 방첩기관을 설립하긴 해야겠네. 흐음...’
정성국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제자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제자들과 만나 수다를 떤 정성국은 커피를 다 마신 후 박기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헌데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기동이 네가 잡담을 하려고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테고...이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는 뜻은 드디어 만들었단 소리겠지?”
500마력의 증기기관을 만들려고 했지만, 설계 결함인지 제대로 출력이 나오지 않아 조금 더 개량해 제대로 된 증기기관을 만들 테니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던 박기동이었다.
어차피 급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를 허락했던 정성국이었고.
하지만 생각외로 지체되었고 이 때문인지 가끔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하던 박기동이 연구청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 박기동이 이렇게 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그가 목표로 했던 새로운 증기기관이 완성되었다는 뜻이기에 이를 묻자 박기동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예. 드디어 600마력의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박기동의 선언에 정성국은 웃으며 물었다.
“오? 그래? 이번엔 설계한 대로 마력이 나왔나 보네?”
박기동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꽤 오랫동안 시험 삼아 돌려봤는데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요. 더불어 이 녀석을 대량 생산할 체계도 다 준비해두었습니다.”
예전 일 때문인지 완벽하게 성공한 뒤에야 이렇게 보고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웃으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오. 꽤 자신 있나 보네. 그럼 이제부터 새로 건조되는 지급 선박들은 모두 기선으로 교체해도 된단 소리지?”
그런 정성국의 질문에 박기동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이미 주명이한테도 이야기해뒀고요.”
그러면서 최주명의 옆구리를 살짝 치는 박기동이었다.
이에 최주명은 교대하듯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이제부터 건조되는 지급 선박들은 모두 기선으로 교체하겠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선박의 건조는 시범적으로 한 척 제작해 적당히 운용해보다가 양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호오? 시범적으로 한 척 만들어보고 제작하는 게 아니라?”
“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급 전선의 설계야 예전에 끝냈고 아무래도 이런저런 경험이 있다 보니.”
꽤 자신감을 보이는 최주명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선박 전문가는 최주명이었고 그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렇다면야 뭐...나쁠 것 없지. 그럼 그렇게 하자고.”
정성국이 승낙하자 옆에 있던 강평화가 슬쩍 최주명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에 최주명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스승님. 이번에 새로 건조되는 지급 전선은 무장을 조금 교체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한쪽에 앉아있는 강평화를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왜 평화까지 함께 왔나 했더니...해군용 80mm 화포 때문이구나?”
“그렇습니다.”
“흐음...”
80mm 화포의 개발은 예전에 완료되었다.
다만 정성국의 판단으로는 당장 80mm 화포가 필요한가 싶어 일단 양산을 미뤘었고.
60mm 화포만 하더라도 충분히 쓸만했기에.
이에 오히려 최주명이 나서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의 60mm 화포도 화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성국은 손을 들어 최주명의 입을 막고 강평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 나쁠 것은 없지. 배도 대포도 크면 클수록 좋은 법이니까. 문제는 보급이지. 보급 문제야 군사청에서 감당한다고 치고 지금처럼 60mm 포탄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80mm 포탄도 병행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현재 북미왕국의 군 규모는 급격하게 커지는 중이었다.
당연히 이들을 무장시키고 이들이 사용할 실탄을 만드느라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일이 추가되는 상황이라 정성국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평화를 보고 물었다.
하지만 강평화는 자신을 믿어달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 모두 강평화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 강평화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니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굳이 80mm 화포가 꼭 필요해 보이진 않는데...어차피 새로 건조되는 지급 전선은 주로 새진주에서 건조될 테니 허락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만약을 대비해 2함대의 화력을 늘리는 것도 나쁘진 않았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다면야 뭐...알겠다. 헌데 모든 화포를 80mm로 교체한다는 뜻은 아니지?”
이에 최주명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요. 새로 설계한 지급 전선도 인급 전선처럼 기존의 갑판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선수포와 선미포를 달 생각인데...여기에 80mm 화포를 장착할 생각입니다.”
기존의 지급 전선은 양 현에 6문씩 총 12문의 60mm 화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헌데 여기서 80mm 화포 2문을 추가하겠다는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잠깐. 그럼 새로 건조되는 지급 전선은 14문의 화포로 무장하는 거네?”
“그렇죠.”
“흐음...”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이 잠시 걱정하는 듯 보이자 최주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 고작 2문의 화포를 추가한다고 문제가 발생하진 않습니다. 포를 쏠 때의 반동 같은 것도 다 고려했고요. 괜찮습니다.”
꽤 자신 있어 하는 최주명을 잠시 바라본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자신한다면야 내가 막을 이유가 없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새로운 지급 전선의 건조가 확정되자 제자들은 다들 좋아했다.
그런 제자들을 잠시 바라보던 정성국은 최주명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인급 전선은 어쩔 생각이냐?”
정성국의 말에 잠시 의아한 표정이던 최주명은 정성국이 새로운 600마력의 증기기관 탑재를 묻는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대답했다.
“아.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아무리 우리 북미왕국의 전선들이 튼튼하다고 해도 비상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만큼 지금처럼 250마력 증기기관 2개를 사용하는 방식이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아. 증기기관이 고장 날 경우를 생각하자는 거군.”
“그렇습니다. 물론 연구청에서 만드는 증기기관이 무척 튼튼하긴 하지만...”
최주명이 말을 흐리며 슬쩍 박기동을 바라보았지만, 박기동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전선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북미왕국의 전선들의 전투력이 뛰어나다 해도 전투를 벌이다 보면 포탄을 몇 발 얻어맞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다 증기기관에 문제라도 생기면 골치도 아프고.”
“어라? 비상상황에서 기관사가 수리하긴 어렵나?”
북미왕국의 전선은 증기기관이 탑재되어 있었기에 해군 훈련소에서 기관사를 육성해 전선에 태우고 있었다.
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박기동이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죠. 일단 어느 정도 가르치긴 합니다만...기관사 혼자 고치는 건 어렵습니다. 더불어 시간도 무척 많이 걸릴 테고.”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다면야 인급 전선은 지금처럼 250마력의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습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