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잉글랜드의 찰스 2세는 결국 보고서를 내려놓고 이 보고서를 가져온 보좌관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이거...정말 제대로 된 보고서가 맞나?”
찰스 2세의 물음에 보좌관은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찰스 2세는 보좌관의 대답에 보고서를 탁자 위에 던지며 고개를 저었다.
“...소문 대부분이 사실이었다고? 정말로?”
분명 에스파냐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북미왕국의 국력이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다만 그렇다고 유럽에 널리 퍼진 북미왕국의 소문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 때문에 정말 북미왕국이 화약 무기로 무장했는가 싶어 클레멘트 코트렐을 새진주로 보내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게 한 것이고.
하지만 클레멘트 코트렐이 쓴 보고서에는 오히려 유럽 내에 퍼진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은 과장이 아니라 축소되었다며 북미왕국의 군사력과 기술력을 찬양하고 있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의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공격할 역량은 차고 넘쳐 보이며 전쟁이 벌어진다면 잉글랜드의 식민지는 저항조차 못 할 것이라는 평가에 찰스 2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이는 새진주를 방문한 해군 함장의 보고서도 비슷합니다.”
그러면서 보좌관이 들고 있던 보고서를 찰스 2세에게 넘겼고 심각한 표정으로 새진주를 방문했던 함장이 쓴 보고서를 읽던 찰스 2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것 참...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용기병 5천이라니...이게 고작 텍사스 지역에 배치된 병력이란 소린가?”
“그렇다고 합니다. 국왕 폐하.”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는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후장식 소총이라니...”
이미 16세기부터 후장식 소총에 대한 개념은 알려졌지만 이를 실제 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생산 단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야금기술과 금속 가공 기술의 미비로 인해 총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총이 폭발하지는 않더라도 연소 가스가 새어 나와 사용자에게 부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보강한 결과 약실을 닫는 데 한세월이 걸리는지라 생각외로 장전 속도가 느려 후장식 소총의 장점이 퇴색되어 버렸다.
헌데 북미왕국은 이러한 문제를 다 해결한 듯 보였으니 찰스 2세로선 이들의 기술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모두 이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뜻은 그만큼 북미왕국의 공업력이 대단하다는 의미였기에 이것만 보더라도 북미왕국은 유럽 내에 퍼진 소문보다는 대단해 보였다.
“저도 처음 후장식 소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었습니다만...”
그러면서 말을 흐리는 보좌관을 보고 찰스 2세가 중얼거렸다.
“왜 에스파냐가 찍소리 못하고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북미왕국에 넘겼는지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군. 후장식 소총을 대량 생산할 정도라니...”
이에 보좌관이 찰스 2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거기에 해군 함장의 추측이긴 합니다만...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저들의 대포 역시 후장식 대포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합니다.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저들의 군함에 달린 포구 수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답니다.”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후장식 소총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데 대포도 후장식 대포를 만들어 사용하겠지. 후장식 대포라...그건 기존의 전장식 대포보다는 아무래도 더 빠르게 장전할 수 있겠지?”
후장식 대포의 장점은 이미 14세기에 동양에서는 불량기 포라고 부르는 베르소 후장식 대포를 통해 유럽 내에 널리 알려졌다.
다만 이 베르소 후장식 대포는 연사 속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접합부가 약하다 보니 쉽게 폭발할뿐더러 이것을 우려해 정량보다 화약을 적게 넣다 보니 연소 가스가 새어나가는 문제와 겹쳐 사거리가 동급의 전장식 대포와 비교했을 때 짧았다.
덕분에 제대로 된 전장식 대포가 탄생하면서 서양에선 사라졌고.
하지만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고려해보건대 이러한 단점은 충분히 개선한 후장식 대포를 만들 수 있어 보였기에 찰스 2세가 묻자 보좌관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보좌관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자 찰스 2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끙...만약 저들이 후장식 대포로 무장했다면 북미왕국 해군도 만만치는 않겠군.”
“그렇습니다. 특히 함께 새진주를 방문했던 함장이 북미왕국 군함을 관찰한 후 내린 평가를 보면 군함이 굉장히 튼튼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음...아. 여기 있군. 갑판 위에도 커다란 구조물이 있어 선원들을 공격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라...흠. 정말 기괴하게 생겼는데? 헌데 정말 돛도 노도 없군?”
해군 함장은 북미왕국 군함을 관찰한 후 이를 그림으로 그려 보고서에 첨부했다.
그 그림이 기존의 갤리온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기에 신기하게 바라보는 찰스 2세였고.
보좌관 역시 옆에서 그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더군요. 더불어 정말 마법이냐고 묻는 선원들의 질문에 관리가 크게 웃은 것과 생각외로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한 것을 볼 때 마법이 아닌 어떤 기술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그리고 그 보고서 뒤쪽에 첨부된 문서를 읽어보시지요. 그건 새진주에서 파악한 정보가 아니라 킹스턴에서 파악한 정보인데...”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자메이카의 킹스턴 항에서 해적들의 동향을 살피다 파악한 북미왕국 해군의 정보를 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허. 에스파냐의 교역 선단을 공격하던 사략 해적들을 북미왕국 군함 한 척이 내쫓았다?”
“내쫓았다는 단어보다는 박살 냈다는 단어가 정확할 겁니다. 북미왕국의 군함이 에스파냐 교역 선단을 공격하는 해적선 3척을 순식간에 침몰시켰다고 하니까요. 이미 서인도 제도의 해적들 사이에선 파다한 소문이랍니다.”
보좌관의 말을 들으며 첨부된 문서를 끝까지 읽고 이에 대해 클레멘트와 함장이 덧붙인 설명까지 읽어본 찰스 2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결국,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소문처럼 정말 대단하다는 거군. 무장에서도 차이가 심하고. 허.”
그런 찰스 2세의 반응에 조심스럽게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들은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해 분당 8, 9발을 발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력비를 계산하려면 저들을 3배수로 계산해야 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식민지를 지키려면 더 많은 병사를 파병해야 합니다.”
현재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여 격발하는 방식인 플린트락 머스킷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매치락 머스킷과는 달리 화승을 다룰 필요가 없어 절차가 조금은 간소화된 덕분에 숙련된 병사라면 분당 3발은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에서 사용하는 후장식 소총의 발사 속도는 그들의 예상을 넘었기에 보좌관이 다시 한번 언급하자 찰스 2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것 참...너무 차이가 나니 원...이거 식민지를 지키겠다고 나섰다간 손해가 막심할 것 같은데?”
농담처럼 이야기는 했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찰스 2세를 보고 보좌관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식민지를 지키려면 최소한 2만은 파병해야 할 겁니다. 더불어 식민지에 거주하는 이주민들도 끌어모아 무장을 시켜야 할 테고.”
“쯧.”
“거기에 북미왕국이 용기병을 운용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만약을 대비해서 병력을 계속 주둔시켜야 하고요.”
현재 잉글랜드의 육군 병력은 2만이었다.
이들을 모두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파병할 수는 없으니 천상 파병할 군사를 모집해야 하는데 찰스 2세가 아무리 계산해봐도 이건 손해였다.
거기에 그렇게 병력을 파병한다 쳐도 정말 북미왕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특히 클레멘트의 보고서에는 저들이 플로리다 지역을 장악한 이후 북진하며 자신의 땅을 침범한 서양 해적들을 토벌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기에 결국 잉글랜드가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이미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것을 알렸다고 했다.
그러자 관리는 당혹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했고.
그러한 보고를 생각하면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전체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으니 더욱 부담이었다.
어떻게 한두 번은 막아낸다 하더라도 체급이 다른데 계속된 공격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더불어 잉글랜드는 군사를 파병하려면 대서양을 넘어야 했기에 비전투손실도 꽤 클 테고 말이다.
이에 찰스 2세는 보좌관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꾸준히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는 건데...북아메리카 식민지에 그 정도 가치가 있나?”
찰스 2세의 질문에 보좌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판단을 말하기 시작했다.
“글쎄요...아주 먼 훗날 식민지의 인구가 무척 증가하면 모를까 현재로선 그만한 가치는 없다고 봅니다. 담배야 서인도 제도에서 재배해도 되고요.”
“역시 그렇지?”
보좌관 역시 찰스 2세와 같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지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표정이었기에 잠시 고민하던 보좌관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해왔었습니다. 헌데 여기서 파생된 아카풀코 조약을 인정하며 그냥 식민지를 넘긴다면 우리 잉글랜드와 국왕 폐하의 위신에 해가 됩니다.”
찰스 2세가 걱정하는 부분을 정확히 파악한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냥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포기하면 아마 우리가 북미왕국에 굴복했다는 소문이 유럽에 파다하게 퍼질 거 같은데...”
말을 흐리는 찰스 2세를 보고 보좌관은 클레멘트의 의견을 조금 각색해서 말했다.
“그러니 국왕 폐하께서 소유하신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매각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자신의 위신도 챙길 수 있고 어차피 버텨봐야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결국 북미왕국에 넘어간다면 손해가 막심하니 그 전에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매각해 뭐라도 건지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으니까.
다만 과연 가능할까 싶어 찰스 2세는 질문을 던졌다.
“식민지를 매각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북미왕국은 꽤 부유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클레멘트의 말을 들어보면 식민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꽤 말이 통했답니다.”
“흐음...”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찰스 2세였다.
이에 보좌관은 잠시 찰스 2세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가 자신을 바라보자 곧바로 입을 열어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론 너무 비싸게 팔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매각 대금을 전쟁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적게만 제시한다면 저들도 북아메리카 식민지 매입을 고려할 거라고 봅니다.”
“그럴싸하군.”
보좌관의 말은 합리적이었기에 찰스 2세는 수긍하면서도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넘기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그때 보좌관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매각 대금을 귀금속이 아닌 현물로 가져오면 이곳에서 팔아 몇 배의 이득을 취할 수 있잖습니까.”
“아. 그건 또 그렇군. 북미왕국의 도자기나 모피 등의 사치품은 새진주에서 직접 사 오는 것이 더 쌀 테니.”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헐값에 넘겼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테니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한 찰스 2세였다.
그런 찰스 2세를 보고 보좌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굳이 사치품만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후장식 소총 같은 무기를 들여오는 것도 괜찮겠죠.”
이에 찰스 2세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저들이 판다면야 좋겠지만 과연 팔까 싶었다.
에스파냐 역시 저들의 무기를 모르지 않을 텐데 아직 저들이 후장식 소총이나 대포를 쓴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으니.
“무기를? 과연 저들이 팔까?”
그런 찰스 2세의 반응에 보좌관은 웃으며 대답했다.
“시도라도 해보고 정 안되면 사치품으로 받아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틀리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인 찰스 2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보고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이 보고서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클레멘트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찰스 2세의 선언에 보좌관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곧바로 클레멘트를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