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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89화 (189/850)

189화

베라크루즈에서 새진주를 오가며 물품을 운송하는 배의 선장은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있는 범선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음? 저들은...뭐지? 저쪽 선착장에 정박해있다는 뜻은 북미왕국의 선박이 아니라는 뜻이잖아? 이봐. 부선장. 혹시 다른 배가 베라크루즈를 먼저 출발했었나?”

이에 옆에서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부선장은 고개를 돌려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범선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깃발을 보니 저거 섬나라 놈들의 배입니다.”

그 말에 선장은 부선장의 망원경을 빼앗듯이 낚아채 정박해있는 범선을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끙...새진주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저들이 방문한 거지?”

이에 부선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북미왕국이 텍사스 지역에 진출해 새진주를 개발하면서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거기에 이젠 플로리다 지역까지 진출했으니 저들이 타국과 교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그렇긴 하지만...이거 바로 멕시코 시티로 보고해야 할 사안 같네. 그러니 이번엔 새진주에서 쉴 생각은 접고 빠르게 짐을 내려놓고 바로 돌아가도록 하세.”

선장의 말에 부선장은 새진주에서의 휴식 시간이 날아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 역시 왜 선장이 저렇게 반응하는지는 알았기에 이내 수긍했다.

“끙...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선원들에게도 미리 말해두겠습니다.”

“부탁하네.”

* * *

클레멘트는 방안에서 외무청 관리와 협상을 하고 있을 때 바깥이 무척 소란스러워진 것을 깨닫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이게...”

이에 외무청 관리는 기다리던 탐사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 순찰을 나갔던 병사들이 돌아온 모양이군요. 슬슬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클레멘트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 그런데 이렇게 소란스럽다는 겁니까?”

이에 외무청 관리는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주변을 순찰하던 모든 병사가 일제히 귀환하다 보니 조금 소란스럽기는 하지요. 어차피 시간이 꽤 흘렀고 흐름도 끊겼으니 이렇게 된 것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요?”

얼마나 많은 병사가 복귀하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몹시 궁금했던 클레멘트는 외무청 관리의 권유에 얼씨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 * *

잉글랜드의 선박 위에서 망원경을 들고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함장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오셨습니까. 코트렐 경.”

하지만 클레멘트는 함장의 인사를 받아주기보다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있는 또 다른 범선을 가리켰다.

“아. 저건...”

이에 함장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클레멘트에게 망원경을 건네주고 손으로 그가 지금까지 관찰하던 곳을 가리켰다.

“에스파냐의 선박입니다. 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저쪽을 보십시오.”

클레멘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망원경을 받아든 후 함장의 재촉 때문에 애써 에스파냐의 선박에서 눈을 떼고 함장이 가리키는 곳에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에 절로 탄식했다.

“허어...”

그런 클레멘트의 귓가에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규모의 용기병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대략 5천으로 추정되고요. 아마 저들이 이렇게 말을 달려 이곳에 온 것을 보면 북미왕국이 군사력을 우리에게 과시하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함장의 추측에 클레멘트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순찰을 나갔던 병사들이라고 하더군요.”

클레멘트의 말에 항상 담담해 보이던 함장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급히 되물었다.

“예? 순찰을 나갔던 병사들이라니...저들이 이곳에 주둔 중이라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저들의 말에 따르면요.”

“허어...”

이에 함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의 육군 병력은 2만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잉글랜드 해군 병력의 반도 되지 않는 숫자였는데 이렇게 빈약한 육군 규모는 잉글랜드가 섬나라라서 유럽 국가들과 육지에서 붙을 일은 많지 않았기에 이러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군을 대규모로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뜻이었기에.

헌데 북미왕국의 경우 이 지역의 용기병이 5천에 가깝고 항구에 주둔한 병사도 1천에 가까우니 직접 확인한 것만 6천의 병력이었다.

더불어 이 텍사스 지역에 존재하는 거점이 이 새진주 하나일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고 그 이야기는 더 많은 병사가 이 텍사스 지역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북미왕국의 육군 규모는 소문처럼 꽤 커 보였고 잉글랜드로선 부담스러웠기에 함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저곳이 마을이 아니라 저들의 주둔지였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클레멘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함장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북미왕국의 국력이...소문대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북미왕국의 정보를 파악할수록 부담스러웠던 클레멘트는 한숨을 쉬면서 망원경을 함장에게 되돌려주며 물었다.

“후우...그것보다 저들과는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저들이 우리를 보고도 별 반응 없이 떨어진 곳에 배를 정박했고 배를 정박하자마자 짐을 내리느라 바쁜지라 일단 관찰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기병대가 나타나서...”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군요. 저들은 아마 베라크루즈에서 왔겠지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돈이 되는 교역품이라기보다는 식량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가득 싣고 온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그보다 협상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이곳은 선착장과 안쪽 상업 지구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기에 매번 방문할 때마다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것이 귀찮았던 클레멘트는 요 며칠간 안쪽에서 머물렀기에 협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지 못했던 함장이 질문을 던졌다.

“잘 진행되어 갑니다. 교역 물품과 물량을 정하느라 열심히 시간을 끌고 있지요.”

“그거 다행이군요. 경께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저들의 육군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해주세요.”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는 마치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의 해군 역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으니까요.”

* * *

탐사대원 대부분을 이끌고 텍사스 지역을 순찰하며 원주민들에게 북미왕국의 힘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이정호는 새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 남아있던 게으른 곰에게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외무청 관리가 이정호를 찾아와 그를 통해 다시 현 상황을 파악했고.

“음...잉글랜드 놈들이 이곳에 와있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탐사대장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외무청 관리에게 이정호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외무청의 방침은 북미왕국의 힘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에스파냐에 의해 유럽에선 북미왕국을 강국이라고 짐작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탐사대 덕분에 수월하게 저들에게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과시한 것 같고요.”

그러면서 슬쩍 미소짓는 외무청 관리를 보고 오히려 이정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고작 이 정도로 되겠습니까? 아예 저들이 있을 때 화력 시범을 보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들의 개인 무기는 화승총이니 원주민과 비슷할 정도로 충격을 받을 듯한데...”

이정호가 생각하기에 외무청의 방침은 결국 북미왕국은 현재로선 저들과의 전쟁을 꺼린다는 뜻이었다.

정말 저들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자신들이 힘이 강하다고 보여주는 것보다는 저들이 북미왕국을 오판하도록 전력을 최대한 숨겼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에스파냐를 상대했던 것처럼 단숨에 공격해 저들을 협상장으로 불러냈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고 이렇게 북미왕국의 힘을 과시해 저들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위협하려 한다면.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화력 시범을 보여서 저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정호의 판단이었다.

이에 외무청 관리는 이정호의 의견이 괜찮은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혹시나 해 결정을 미뤘다.

“으음...훈련이야 탐사대장님의 권한이니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다만 곧 김봉길 2함대 사령관님께서 오실 테니 논의 후에 진행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이정호는 외무청 관리의 말에 수긍했다.

아무래도 김봉길이라면 정성국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준비는 해두고 2함대 사령관님과 의논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요.”

* * *

탐사대가 새진주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잉글랜드의 선실 안에서 자고 있던 클레멘트는 북미왕국의 배가 나타났다는 선원의 보고에 급히 갑판 위로 나왔다.

이미 갑판 위에서 망원경을 통해 북미왕국의 배를 관찰하고 있던 함장은 말없이 클레멘트에게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클레멘트는 이 망원경을 받아 그동안 유럽에 소문이 무성하던 북미왕국의 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으음...저게 그 유명한 북미왕국의 배로군요. 정말 돛도 노도 없군요. 저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클레멘트의 혼잣말에 함장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북미왕국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이해가 가는군요. 정말...기괴하다고 해야 할까요?”

“으음...”

함장의 말처럼 아무런 동력원이 보이지 않음에도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오는 북미왕국의 배는 무척 기괴했다.

클레멘트는 망원경을 내리며 함장에게 물었다.

“저 배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에 함장이 손으로 5척의 배 중에서 양 끝에서 항해하는 배를 가리켰다.

“저 커다란 배 두 척은 군함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저 작은 배들은 군함처럼 보이지는 않고. 북미왕국이 산 아구스틴에 진출했다고 했지요?”

“그렇다더군요.”

“그렇다면 저 배들은 아마 수송함인 것 같군요. 다만 소문과는 달리 해군의 규모가 좀 적은 것 같은데...”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에 널리 퍼진 소문 중에는 분명 북미왕국의 해군은 무척이나 강력하며 유럽에서 군함으로 사용하는 갤리온이 수십 척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하긴...해군이 수십 척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이건 과장된 소문일까요?”

클레멘트의 말에 함장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저 함대가 북미왕국 해군의 전부라고 볼 수야 없겠지요. 다른 함대가 산 아구스틴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거고.”

“아...그렇긴 하군요.”

함장의 말에 일리가 있어 클레멘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함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최근에 이곳에 영역을 넓혔으니 저들의 주력 함대는 아직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깨끗해 보이는 배의 외관을 고려하면 저 배들은 이곳 조선소에서 건조한 배일 수도 있겠고.”

“아...그렇겠군요. 그럼 저 배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에 함장은 인상을 굳히며 살짝 목소리를 낮춰 평가를 시작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 배를 격침 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마치...바다를 떠다니는 요새 같군요.”

“요새라...”

함장의 말이 썩 와닿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클레멘트였다.

이에 함장은 손을 들어 군함으로 짐작되는 선박을 가리켰다.

“경도 아시겠지만, 대포를 사용해 저 정도의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배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침몰하지는 않아요. 그 때문에 보통은 갑판 위의 병사들을 죽여 전투력을 없애는데...”

그제야 함장이 왜 그런 소리를 한 것인지 이해한 클레멘트가 손뼉을 쳤다.

“저 배는 갑판 위의 선원이 거의 없군요.”

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렇습니다. 선원들이 저 상부의 구조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아마 방어용 구조물인 것 같은데...생각보다 괜찮은 발상이에요. 두꺼운 목판이면 어느 정도는 방어가 될 테니. 물론 저건 북미왕국의 배를 움직이는 동력이 바람이 아니라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으음...”

정확히 북미왕국의 해군을 평가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북미왕국의 군함은 튼튼해 쉽게 상대하긴 어렵다는 평가에 클레멘트는 신음을 흘렸다.

이들의 정보를 확인하면 할수록 단순히 소문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이 의외로 진실에 가까워서 답답했으니까.

그렇게 클레멘트와 함장이 가까이 접근한 북미왕국의 선박을 정신없이 살피는 가운데 어느덧 북미왕국의 선박들은 반대편 선착장에 정박하기 위해 이동했고 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끙...더 확인해보고 싶은데 역시나 저 선착장은 이곳에서 보이지는 않는군요. 코트렐 경. 저들에게 저 배들을 구경할 수 없겠냐고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클레멘트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끙...일단 말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지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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