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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88화 (188/850)

188화

배에서 클레멘트를 기다리고 있던 함장은 그가 배 위에 올라오자마자 다가갔다.

“코트렐 경. 오셨군요.”

“예. 다녀왔습니다.”

선착장 안쪽의 항구로 들어가기 위해 말끔하게 씻고 옷까지 갈아입었기에 꽤 말끔해진 클레멘트를 보고 함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안쪽은 어떻던가요?”

함장의 질문에 클레멘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잠시 둘러보긴 했지만, 딱히 볼 것은 없더군요. 숙소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긴 했지만, 텅 비어 있어서 말입니다.”

“뭐...그거야 선착장에 배가 전혀 없었으니 예상했던 것 아닙니까?”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가 고개를 저으며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음...그것도 그런데 이 안쪽도 우리같이 외부인들만 사용하는 공간인지 원주민들이 거의 없습니다. 종업원 정도 외에는 숙소나 주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보를 캐내기가 불가능한 구조더군요.”

애초에 클레멘트가 특별 대사가 되어 이곳까지 방문한 목적은 북미왕국의 정보 수집이었는데 이 부분이 쉽지 않아 보였기에 조금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함장 역시 클레멘트가 이곳까지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에 턱을 매만지며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가요. 그럼 종업원들은...”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 같던데 어떤 교육을 받은 건지 철저하게 거리를 두더군요. 덕분에 종업원들에게 북미왕국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끙...”

클레멘트의 대답에 골치 아픈 표정으로 혀를 차는 함장이었다.

북미왕국의 내부 정보를 수집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였기에.

그런 함장을 보고 클레멘트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면 목책 주변으로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간혹 보이던데...함장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클레멘트가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함장 역시 그냥 배 위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함장 역시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선착장 주변의 목책을 순찰하는 북미왕국의 병사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고 때로는 망루 위에 직접 올라가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었다.

“북미왕국의 병사들은...꽤 정예병처럼 보이더군요. 아. 그리고 모든 병사가 머스킷과 비슷한 외형의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예상처럼 북미왕국은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끙...역시 그런가요?”

함장의 대답에 얼굴이 어두워진 클레멘트였다.

하지만 함장은 개의치 않고 그가 파악한 정보를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쪽에선 각도 상 제대로 보이지 않아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군데군데 포구가 뚫려있는 것도 확인했고요. 그것을 보면 대포도 사용하는 것이 확실한 것 같더군요.”

함장의 대답에 클레멘트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부분은 소문이길 바랐는데 말이죠.”

유럽에 떠도는 북미왕국의 소문은 무척 많았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북미왕국이 정말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가였다.

물론 에스파냐의 반응을 볼 때 어느 정도는 사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꽤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클레멘트였다.

북미왕국이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 만큼 만약 저들과 분쟁이 일어난다면 예전 원주민이 식민지 마을을 공격했을 때처럼 적당한 수의 군대를 보내는 수준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은 원주민들로 이루어진 국가인 만큼 군대 규모도 생각보다 거대할 것으로 추측되었기에.

문제는 이 시기에 대서양을 건너 대규모의 병사를 파병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상기하며 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는 클레멘트의 귓가에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배치된 병사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더군요. 그렇게 크지 않은 항구인데도 말입니다.”

이에 생각을 멈춘 클레멘트는 급히 함장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로 파악됩니까?”

“흐음...대략 천명은 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천명이라...”

생각보다 많은 병사에 클레멘트가 표정을 찌푸리고 있을 때 함장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용기병도 있더군요.”

“용기병이요?”

“함선의 망루에서 몰래 정찰하던 선원이 보고하길 머스킷으로 무장한 말을 탄 병사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한 100명 정도?”

“흐음...용기병이라니...”

용기병이라는 말에 클레멘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용기병은 머스킷을 장비하고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 말에서 내려 전투를 하는 승마 보병을 의미했다.

용기병이라는 이름은 17세기 초에 이러한 정예병이 사용했던 머스킷에 용 모양이 새겨져 있었기에 붙은 이름인데 일단 보병으로 출발한 병과였지만 후에 기병으로 발전하면서 보병과 기병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부대였다.

유럽에서는 예전에 벌어졌던 30년 전쟁에서 이 용기병이 꽤 활약했었기에 이를 확인한 유럽 각국은 용기병을 양성하고 있었다.

헌데 이런 용기병을 북미왕국도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클레멘트의 얼굴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함장은 그런 클레멘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위로라도 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예상하기론 북미왕국의 영토가 꽤 넓은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들이 용기병을 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들은 말도 있고 머스킷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요. 다만 용기병까지 보유하고 있을 줄은...이거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대단하군요.”

클레멘트의 말에 함장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그게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저들의 해군과 선박을 직접 보고 싶군요. 정말 소문처럼 마법을 사용해 움직이는지 알고 싶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면서 웃는 함장을 보고 클레멘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살짝 퉁명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헌데 함장님께서는 크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군요.”

이에 함장은 웃음을 멈추고 클레멘트를 바라보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경처럼 근심해봐야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경이 이곳에 온 목적은 저들의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겁니다. 판단은...런던에서 내리는 거죠.”

“아...그렇지요. 특별 대사라는 직책은 위장에 불과했는데...제가 착각했군요.”

함장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클레멘트였다.

그리고 함장은 그런 클레멘트의 얼굴을 못 본 척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얼마나 시간을 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저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던가요?”

이에 클레멘트는 고개를 저었다.

“오랜 항해에 지쳤다는 변명이 다행히도 먹혀들어 간 것 같더군요. 덕분에 당분간은 푹 쉬고 괜찮아지면 협상을 시작하자고 배려해주더군요.”

“다행이군요. 허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들어갈 때마다 목욕해야 하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니 한 3, 4일 정도는 시간을 끌 겸 배에서 지내다가 협상을 시작할 때 들어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안쪽에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없어 보이니 귀찮게 안에 들어갈 이유가 없지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클레멘트를 보고 함장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저들은 꽤 문명국처럼 보였는데 좀 의외입니다. 그런 미신을 신봉할 줄은.”

이에 클레멘트는 함장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엔 저들의 풍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북미왕국 관리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리 봐도 미신 같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가 병을 옮긴다니.”

처음 전염병을 예방하는 조치라길래 클레멘트는 흥미를 보이며 관리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관리가 열성적으로 자세하게 설명을 시작했지만. 클레멘트가 듣기엔 미신처럼 들렸기에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가 병을 옮긴다는 것은 사신이 전염병을 옮긴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는데 이를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북미왕국 사람들의 생각이 우스웠다.

그때 함장이 입을 열었다.

“뭐 이곳 원주민들은 전염병에 의해 꽤 큰 피해를 보았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만...”

함장의 말에 클레멘트 역시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최근 런던에서도 흑사병이 돌자 사람들이 미신을 믿으며 여러 행동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말이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서양인이 전염병을 옮긴다고 생각해 죽이려 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 그러니 북미왕국이 문명국이겠지요.”

* * *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외무청 관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클레멘트를 반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부를 물었다.

이에 클레멘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오랜 항해 끝에 몸이 많이 피곤했었는데 푹 쉬고 나니 꽤 좋아졌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몸이 좋지 않은데 협상을 하자고 몰아붙일 정도로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몸이 나아지셨다니 협상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외무청 관리의 말에 클레멘트는 자세를 바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지요.”

클레멘트의 동의에 외무청 관리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클레멘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귀국이 우리 북미왕국의 항구에 온 용건은 무엇입니까?”

“제가 특별 대사로 임명되어 이곳을 방문한 것은 바로 교역 때문입니다. 지금껏 우리 잉글랜드와 북미왕국은 저 먼 아시아에서 교역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귀국이 이렇게 새진주를 건설하고 대서양과 연결되었으니 우리의 본국에서도 멀고 귀국 입장에서도 본토와 거리가 먼 아시아에서 거래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허니 우리도 이곳 새진주에 주기적으로 상선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클레멘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북미왕국에 대한 정보 수집의 목적이 컸지만 이를 언급할 수는 없었기에 둘러댔다.

그리고 외무청 관리는 클레멘트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나쁠 것 없겠지요. 당신들과는 그동안 아시아에서 거래해온 만큼 거래 장소를 이곳 새진주로 옮긴다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의외로 흔쾌히 허락하는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를 보고 클레멘트가 기뻐할 때 외무청 관리는 잠시 클레멘트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짓다가 덧붙였다.

“다만 당신들에게 개방한 항구는 이곳 새진주 뿐이니 북미왕국의 다른 항구나 영토에는 표류 같은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접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외무청 관리의 말에 클레멘트의 얼굴은 살짝 굳었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일단 정보를 캐기 위해 슬쩍 물었다.

“...으음. 이곳 말고도 다른 항구가 있습니까?”

“아카풀코 조약으로 에스파냐가 가지고 있던 멕시코 이북의 모든 권리를 넘겨받았고 최근 에스파냐가 방어하고 있던 산 아구스틴을 넘겨받았거든요.”

“아. 산 아구스틴이라...”

북미왕국이 이미 플로리다 지역까지 진출했다는 정보에 클레멘트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그런 클레멘트를 보고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스파냐에 듣자니 그곳을 비롯해 근처에는 해적들이 즐비하다더군요. 거기에 에스파냐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해안가 곳곳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해적도 존재할 수 있다고 해서 당분간은 군사 기지로 사용할 목적이라 그쪽을 방문하는 것은 말리고 싶습니다.”

이에 클레멘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미친 광신도 놈들. 이런 식으로 미리 말해두다니. 이거 저들에게 북아메리카 식민지 이야기를 꺼낸다면 예상대로 반발이 거세겠는데? 일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니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미뤄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클레멘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해적이라...에스파냐가 그리 말하던가요?”

“그렇습니다. 덕분에 해군이 나서서 산 아구스틴을 방비할 병사들을 실어나르는 중이라 무척 바쁘죠. 그것만 아니라면 유럽과 가까운 산 아구스틴을 개방했을 텐데 말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말에 클레멘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렇군요.”

그런 클레멘트의 반응에 일단 외무청 관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건지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잡담이 너무 길었군요. 이제 천천히 교역 물품과 물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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