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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86화 (186/850)

186화

“전하. 부르셨습니까.”

정성국은 겨울이 되기 전 오랜만에 다시 새한성으로 돌아온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 왔는가? 함장. 아니. 이젠 해군 탐사대장으로 불러야겠지?”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해군 탐사대의 경우 해군 내에서도 독립적인 조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첫 번째 탐사선의 함장이었던 그가 해군 탐사대장의 자리에 올랐다.

어찌 되었건 간에 해군 탐사대의 함장 중 가장 선임이었고 경험도 많았기에 정성국은 이를 승낙했고.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을 티테이블에 앉혀 커피를 대접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올해의 탐사는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해군 탐사대장은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품 안에서 올해 탐사한 영역이 그려진 지도를 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이를 받아든 정성국이 지도를 펼쳐 확인하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생각보다 탐사가 많이 진행되었네?”

정성국의 물음에 해군 탐사대장은 웃으며 설명했다.

“전하의 관심 덕분에 탐사선 2척이 늘었고 이에 효과적으로 지역을 나누어 탐사했기에 진척이 빨랐습니다. 전하.”

해군 탐사대장의 아부에 피식 웃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관심 덕분은. 당연히 지원해줘야지. 그보다 이곳 원주민들과는 말이 통하던가?”

그러면서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가져온 지도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지역을 찍으며 묻자 해군 탐사대장이 반색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다. 전하의 말씀대로 봉길섬 주변의 원주민 몇을 고용했더니 어설프게나마 말이 통하더군요.”

“그거 다행이군.”

정성국이 슬쩍 미소지으려 할 때 해군 탐사대장이 덧붙였다.

“다만 그 부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는 따로 있다고 하더군요. 북쪽과 서쪽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라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 그런가?”

이에 정성국은 살짝 머쓱해 하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뭐지? 에스키모가 아닌가? 아. 하긴 에스키모 말고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존재하긴 했지. 보통 내륙에 있다고 들었는데...그럼 이들이 그 아파치와 나바호의 원 부족이던가? 어이구. 정말 멀리도 내려왔구나.’

그렇게 정성국이 지도를 골똘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을 때 해군 탐사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그렇게 말이 통해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저희와 접촉한 부족은 예상대로 무척 작은 부족이더군요.”

“그야 그랬겠지.”

그건 작년에도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성국이었다.

그런 정성국을 보고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다만 이 원주민들이 중개무역을 한 것 같습니다.”

“중개무역? 아. 우리와 거래한 물품을 다른 곳에 더 비싸게 팔았다는 의미인가?”

정성국이 살짝 놀라 해군 탐사대장을 바라보자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니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면서 거래를 하자고 모피를 가져왔는데...그 물량이 아무리 봐도 그런 조그마한 부족에서 모으긴 어려운 물량이더군요. 덕분에 탐사선에 싣고 있던 교역품 절반 이상을 그곳에 내려놔야 했고요.”

탐사선은 인급 전선과 동급이었다.

물론 탐사선의 경우 교역품보다는 다른 여러 물자를 더 많이 적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주민들과의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적지 않은 교역품을 싣고 다녔다.

헌데 그런 교역품의 절반을 사들일 모피라니.

아무리 우호를 위해 후하게 거래를 한다 해도 그 양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정성국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해군 탐사대장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동조하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거래가 끝나자 저들은 내년에도 꼭 다시 와달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더 많은 모피를 구해두겠다면서.”

“이것 참...”

해군 탐사대장의 말이 끝나자 정성국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이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짐작한 듯 곧바로 그의 의중을 물어보았다.

“거래량을 제한할까요?”

아이누 섬의 경우는 해달 모피를 사들이는 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달 남획을 막았다.

이는 해달 모피를 사들이는 곳이 포로나이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앵커리지에 항구를 짓거나 거래소라도 짓는 건데...당장은 여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이 앵커리지의 원주민에게 맡겨야겠네. 다만 언질은 해 둬야겠군.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땅도 확보해 둬야겠고.’

그렇게 결정을 내린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들과 대화가 통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전하. 의사소통은 가능했습니다.”

“그럼 내년에 이곳을 방문하면 저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야기를 해 주게. 저들도 수렵민족이라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를 아예 이해 못 하지는 않을 걸세.”

아무리 수렵으로 먹고산다 한들 새끼나 암컷을 사냥하진 않는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잡다 보면 나중엔 동물의 씨가 말라 사냥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사냥꾼이라면 모르진 않았다.

다만 욕심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

하지만 북미왕국이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꾸준히 모피를 얻길 원하지 단번에 많은 모피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면 저들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무시한다면 매입하는 모피의 양을 조절해 저들을 압박할 수도 있었고.

“알겠습니다. 전하.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저들에게 이야기해서 항구를 세울 땅도 확보해두게.”

이에 해군 탐사대장이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땅을...말입니까? 당장은 여력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일단 어느 정도의 땅은 확보해 둬야 할 것 같네.”

정성국의 굳은 표정에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깨달은 해군 탐사대장이 표정을 굳히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이곳의 원주민과 계속 거래하려면 안정적인 선착장과 시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이를 언급해 땅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직한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아. 그리고 최근 탐사한 이곳에 원주민들이 꽤 많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해군 탐사대장은 앵커리지의 동남쪽의 수많은 군도를 가리켰다.

“아...이곳에?”

전생에서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가 위치한 군도 주변이라 정성국이 흥미를 나타내자 해군 탐사대장이 계속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해안가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인데...같은 문화권인 것을 볼 때 한 부족이 이 영역을 다 차지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말이 통하던가?”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앵커리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이곳 원주민의 고유 언어와 비슷하더군요. 해서 되돌아가 이곳 원주민에게 통역을 부탁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틀링깃 족이라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알래스카의 동남쪽에 쭉 뻗은 영토라 마치 프라이팬의 손잡이 같다는 의미에 팬 핸들로 불리는 지역 대부분이 틀링깃 족의 영역이라는 소리에 중얼거렸다.

“이 영역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면 부족이 꽤 크겠는데?”

“그렇습니다. 전하. 이들과도 말이 통해 어느 정도는 우호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워하며 물었다.

“이곳 역시 거래할만한 물품은 모피뿐이지?”

“그렇습니다. 다만 이곳도 해달이 꽤 많이 서식하는지라...”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해달 모피라면 매년 딱 500장만 사들인다고 하게. 그리고 이곳 역시 해달이 있긴 하지?”

정성국이 앵커리지를 가리키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들에게도 해달 모피를 매입하되 딱 50장만 사들인다고 통보하게. 통역하다 보면 우리가 해달 가죽을 원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테니.”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약소 부족이었지만 중개무역을 할 정도로 이문에 밝았기에 혹시나 해 이야기하는 정성국이었다.

“알겠습니다. 내년에 그렇게 통보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성국은 잠시 알래스카의 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의외로 이들의 언어가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군. 그렇다면 일단 다음에는 외무청 관리를 대동하도록 하게. 저들의 말을 배우는 게 우선이겠어.”

그러면서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바호 족이나 아파치 족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외무청 관리를 배치하면 빠르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봉길 섬의 원주민을 고용해 서쪽을 탐험해보도록 하게.”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이 탁자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살펴보다 알래스카 서쪽 해안가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물었다.

“흐음...서쪽이라...해안선을 따라 이곳 전체를 탐사해야 하는 것 맞습니까?”

“그렇네. 내륙이야 어렵더라도 해안선을 따라 이곳 전체를 탐사할 필요가 있네. 자네도 알겠지만 언젠간 서양인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이 우리의 영역임을 주장해야 할 테니 말일세.”

이 시대의 빈 땅은 결국 먼저 탐사한 쪽이 가져가는 법이었다.

물론 원주민이 사는 만큼 비어있는 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서양인들은 힘이 없는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북미 지역 전체를 북미왕국의 땅이라고 주장할 생각이지만 이를 인정하는 나라는 오직 에스파냐뿐일테니 나중에 다른 나라에 이곳이 북미왕국의 영역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제대로 된 지도가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존의 탐사선들은 봉길섬을 기점으로 활동하고 추가로 증원되는 탐사선들을 기존의 탐사 지역에 배치하면 되겠군요.”

당장은 남태평양보다는 알래스카 지역의 탐사가 더 시급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군. 아. 그리고 이곳을 탐사할 때는 동판을 가져가도록 하게.”

“동판이요?”

해군 탐사대장이 뜬금없는 정성국의 명령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설명했다.

“이 영토가 북미왕국의 영역이라는 알림판...이라고 해야 할까? 당장 해안선을 따라 여러 항구를 건설한다면 상관없겠지만...자네도 알다시피 그건 어렵지 않은가. 워낙 추운 지역이고. 그러니 꽤 오랜 세월 방치해 둘 수밖에 없네.”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이 맞장구쳤다.

“그렇긴 하지요.”

“그런 만큼 탐사 도중 곳곳에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게 돌탑이라도 세우고 동판을 붙여두게.”

정성국의 말뜻을 그제야 이해한 해군 탐사대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한글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도 새겨둬야겠군요. 필요하다면 다른 서양의 언어로도 말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크게 손뼉을 쳤다.

“하하하. 그렇지! 바로 그거야.”

* * *

“창고를 가득 채웠나?”

원상의 대방인 이천호가 이제 막 개척촌에 도착한 원상의 늙은 행수를 바라보며 묻자 늙은 행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방 어르신. 조선 곳곳에 존재하는 원상의 창고를 모두 가득 채웠습니다. 또한, 괜찮은 비율로 교환해서 묵은쌀은 모두 햅쌀로 바꾸었습니다.”

늙은 행수의 대답에 이천호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렇군. 고생했네.”

“아닙니다. 대방 어르신.”

“허면...당분간은 창고의 식량은 손대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게. 알겠는가?”

이에 늙은 행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방 어르신.”

이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려 그의 옆에 앉아있는 젊은 행수를 바라보았다.

“개척촌의 창고는 어떤가.”

젊은 행수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묵은쌀을 풀고 햅쌀로 창고를 가득 채웠고 이미 폐쇄된 예전 연구소가 존재하던 곳을 개조해 창고를 만들고 그곳에도 꽤 많은 식량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젊은 행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천호가 다른 상황을 확인했다.

“잘 했네. 그리고 천막을 비롯한 여러 물자는?”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만만한 젊은 행수의 대답에 이천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갑작스러운 전하의 명령인데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나. 무엇 때문에 전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혹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게.”

정성국이 언급되자 젊은 행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방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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