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잉글랜드의 찰스 2세는 보좌관이 건네준 서인도 제도 서쪽의 한 지점에 x자가 표시되어있는 지도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북미왕국의 항구가 이곳에 있다고?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지? 에스파냐인가?”
“그동안 북미왕국과 거래했던 제임스 선장의 보고입니다. 브레다 조약에 의해 데지마에서 철수하기 전 마지막으로 북미왕국의 식민지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본국의 사정을 이야기했고요.”
이들은 아이누 부족 연합을 일종의 북미왕국 식민지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고선 북미왕국이 일본의 내전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때는 이미 아이누 부족 연합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시점이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외부에 떠들 이유는 없었기에 제임스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북미왕국에서는 본국의 사정을 알고 그러면 식민지가 아닌 본국의 항구로 직접 와서 교역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면서 항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설명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찰스 2세였다.
네덜란드를 만만하게 보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네덜란드의 저항이 무척이나 거셌고 거기에 내부적으로 여러 안 좋은 일들이 겹쳐 결국 굴욕적인 브레다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잉글랜드였다.
그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무역과 북미왕국과의 도자기 무역이 끊길 처지에 놓였는데 최소한 도자기 무역은 계속 진행될 수 있어 보였으니까.
거기에 무척이나 먼 아시아 지역에 배를 보내는 것보다 서인도 제도에 배를 보내는 것이 훨씬 가까웠고 말이다.
“흐음...그럼 이제부터 그 북미왕국의 도자기를 얻기 위해선 이곳으로 배를 보내야 하는 건가?”
“제임스 선장은 그러한 결정을 내릴 위치가 아니다 보니 결정을 유보했다고 합니다. 해서 몇 년간은 마카오에서 거래하기로 했다더군요.”
어차피 서양 국가들은 아시아 무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자기야 최근 북미왕국의 도자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비단과 차는 여전히 청나라의 것이 최고였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마카오로 계속 무역선들을 보내야 했는데 이곳에서 북미왕국의 도자기까지 거래할 수 있다는 말에 찰스 2세는 일단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다행이군. 헌데 이곳은...멕시코만이지? 이곳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이 말을 하며 찰스 2세는 살짝 안색을 찌푸렸다.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여러 정보를 수집해왔고 그 결과 잉글랜드는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존재한다는 뜻은 그들의 추측이 잘못되었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이에 보좌관이 그것이 아니라는 듯 재빨리 설명했다.
“제임스 선장의 보고서에 의하면 에스파냐가 북아메리카 지역의 권리를 넘겨준 이후로 확장해 이곳에 새로 항구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안색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군. 흐음...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저들의 영역은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인접했다고 추측했었는데 이곳까지 확장했다라...생각보다 북미왕국의 영역이 더 넓은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국왕 폐하.”
“그리고 예상대로 북미왕국의 국력이 만만치 않아 보이고...”
잉글랜드는 에스파냐를 통해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북미왕국이 원주민 국가라는 점과 제임스 선장에 의해 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해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점, 그리고 에스파냐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조합해 북미왕국의 국력을 무척 높게 평가했었다.
다만 아직은 추측에 불과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 추측이 맞는 것처럼 보여 표정이 복잡해진 찰스 2세였다.
그리고 보좌관 역시 약간은 침중한 표정을 하며 이를 수긍했고.
“그렇습니다. 서해안에서 이곳까지 거리를 생각해보면...아카풀코 조약이 체결된 지 3년 만에 이곳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항구를 건설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찰스 2세는 더 이야기해봐야 분위기만 가라앉을 것 같아 이내 지도로 시선을 돌려 잠시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자메이카나 바하마 제도와 가까운 것을 보면 이곳에서 거래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첨언했다.
“허나 지금처럼 저들의 식민지나 다른 항구에서 거래하는 것이 아닌 저들의 항구에 직접 배를 보내는 것은...”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가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으로 북미왕국과 교류하기엔 북아메리카의 식민지가 걸린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제임스 선장의 보고에도 북아메리카 지역 전체를 자신의 땅이라고 여긴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잠시 지도를 바라보던 찰스 2세가 입을 열었다.
“흐음...만약 북미왕국이 식민지를 공격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이에 보좌관은 난색을 보였다.
“식민지의 인구를 모두 합쳐봐야 15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저들을 모두 무장시킨다고 한들 어렵지 않겠습니까? 물론 북미왕국이 정말 청나라 급의 강국이라는 가정하에 말입니다만...상황을 보아하니 꽤 강국인 것처럼 보이고요.”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북아메리카 동해안의 식민지가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쯧...그렇다고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그냥 포기하긴 아까운데...”
“그렇지요.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서 산출되는 담배만 해도 연간 1만 톤에 달하니...그냥 포기하기엔 좀 아쉽긴 합니다. 다만 이 때문에 주변 원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진 만큼 잘못하면 이들이 북미왕국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밀릴 수도 있지요.”
현재 잉글랜드가 건설한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장 돈이 되는 작물은 바로 담배였다.
다른 생산품이야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담배는 달랐다.
그동안 이주민들이 각종 농사를 짓긴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원주민들이 담배를 재배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배워 담배 농사를 시작했고.
원주민들의 도움 덕분에 담배 농사를 성공한 이주민들은 이 담뱃잎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었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저조하던 이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이젠 연간 1만 톤에 가까운 담뱃잎을 본국으로 수출하고 있었고.
물론 그만큼 재배면적과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원주민과의 마찰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담배 농사를 짓기 좋은 땅이 원주민들의 영역이다 보니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영역을 차지해 담배 농사를 지으려는 이주민들 때문에 원주민들도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충돌도 있었고 군대를 출동시키기도 했었다.
그렇게 키운 식민지를 북미왕국 때문에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아쉽다고 생각한 찰스 2세였다.
더불어 그곳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귀족들이나 투자한 상인들의 반발도 문제였고.
하지만 보좌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서 괜히 아쉬워하다 더 큰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찰스 2세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북미왕국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보좌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일단 북미왕국에 외교 사절을 보내보는 것이 어떤가? 정말 저들이 북아메리카 전체를 장악할 뜻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공격할 역량이 되는지 알아보려면 직접 저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정말 저들이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지, 머스켓으로 무장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도 있어 보이고.”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 * *
“병사들은 다 이동했나?”
정성국이 집무실로 찾아온 군사청장을 보고 질문하자 군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새나주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에 타는 병사들이 마지막입니다.”
“그래? 물자들은 미리 다 옮겨두었지?”
“그렇습니다. 전하. 인급 전선 4척에 탑재될 화포 32문이 이미 새나주에서 대기 중이고 새진주로 이동하는 병사들과 함께 움직일 겁니다.”
“어휴. 2함대를 키우려면 계속 이렇게 이곳에서 화포를 생산해 운송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으니...”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진주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2함대를 빠르게 키우고 싶어도 사람이나 물품을 운송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길을 정비해 둔 상태인데도 말이다.
이에 동감한다는 듯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새진주에 무기 제조 공방을 세운다 하더라도 강철의 수급이 문제가 되는지라...차라리 하루빨리 철로를 까는 것만이 해답일 것 같습니다.”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자네도 연구청의 주장처럼 단선으로라도 철로를 깔았으면 하는 건가?”
최근 철도와 연결된 새나주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행정청에서는 하루빨리 새진주까지 철도를 부설하길 원했다.
그리고 군사들이 소모하는 물품을 운송해야 하는 군사청 역시 비슷했고.
그러다 보니 연구청에서 현재 북미왕국의 강철 생산량이라면 철로를 단선으로 깔기 시작하면 10년 안에 새진주까지 철도 부설이 가능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행정청과 군사청이 열렬하게 지지하는 모양새였다.
다만 정성국은 굳이 단선으로 깔아봐야 철도 운용이 쉽지 않아 썩 내키지 않았기에 보류하고 있었고.
“복선으로 깔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차라리 단선으로나마 일단 철로를 까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말씀처럼 북미 지역 동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서양 세력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새진주와 2함대를 키워야 하니 말입니다.”
군사청장은 어떻게든 정성국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말을 꺼냈으나 정성국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흐음...일단 좀 두고 보세. 원상에 이야기해 둔 것이 있으니.”
갑자기 원상의 이야기가 나오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군사청장이었다.
“예? 그게 무슨...설마 원상을 통해 철을 들여오실 생각이십니까?”
말을 하면서도 군사청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많은 양의 철을 수입해야 하는지라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씩 웃었다.
“그렇네. 어업 연구소에서 해삼 양식을 성공시킨 이후 실제 아이누 섬과 홋카이도에 해삼 양식이 진행 중인데...슬슬 결과가 나올 때가 되었네.”
이곳에서 나오는 해삼을 가공해 건해삼으로 만들어 청나라에 무척 비싸게 팔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남획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을 우려한 정성국이 엄격하게 수를 제한했고 이 때문에 청나라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삼 양식이 성공해서 해삼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를 생각한 군사청장이 잔뜩 기대감이 섞인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 만약 해삼 양식이 성공한다면...”
군사청장의 시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청에 팔아 막대한 이문을 남길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돈으로 청나라에서 철과 석탄을 수입할 생각이고.”
막말로 아이누 섬에도, 북미왕국에도 자원 자체가 부족하진 않았다.
문제라면 광산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아예 인력이라면 넘쳐나는 청나라에서 광물을 수입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정성국이 원상에 그러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뭐 청과의 무역은 거의 밀무역 수준이라 과연 가능할까 싶기는 한데...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중국 상인들이니만큼 건해삼을 얻기 위해서 알아서 철광석과 석탄을 넘겨주겠지. 정 어려우면 슬슬 청나라에 사절을 보내 정식으로 교역을 하면 될 테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정성국의 귓가에 군사청장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누 섬에서 강철로 만든 후 가져오면 되겠군요!”
이에 정신을 차린 정성국이 군사청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게 되면 바로 철로를 쭉 깔면 되네. 거기에 이미 정비된 길을 따라 교량 건설이 진행 중이니 말일세.”
당장 철로를 만들 강철이 부족해 철도 부설 공사는 보류했지만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이동하는 길목에 여러 강이 있었기에 교량 공사는 진행 시켰다.
가뜩이나 물자를 옮기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강들 때문이었으니 강 곳곳에 교량만 건설되어도 한층 손쉽게 물자를 옮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빠르게 철로를 부설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이미 기반 공사를 다 해두었고 교량까지 건설중이니...철로만 쭉쭉 깔면 그만인데 뭐 어렵겠나.”
“오오!”
정성국은 잔뜩 기대하고 있는 군사청장을 보고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이번에 산타페와 새진주에 육군 훈련소가 건설되면 다시 3천 명을 모병하도록 하게. 훈련소마다 1천 명씩 말일세. 내년까지니 가능하겠지?”
정성국의 말에 정신을 차린 군사청장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물론입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