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헉! 헉! 헉!”
거친 숨을 내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연병장을 갑오 소총을 들고 달리던 훈련병들의 귓가에 악귀 같은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속도 느려진다? 후미에 있는 놈들은 거의 걷는다? 왜? 힘드냐? 힘들어?”
처음에야 멋모르고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이미 이 육군 훈련소에 들어와 훈련받은 지도 2달이 흘렀다.
그런 만큼 훈련병들은 지친 와중에도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치? 그럼 뭐해!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달려!”
““헉! 헉! 알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외친 훈련병들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연병장을 돌다 조교의 명령대로 멈췄다.
하지만 훈련병들은 힘든 와중에도 대열을 이루고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이를 보고 조교가 씩 웃으며 휴식 시간을 주었다.
더불어 한참 더운 여름에 연병장을 달렸기에 땀을 한가득 흘린 훈련병들이었기에 무조건 수분 섭취를 하게 했고.
그렇게 훈련병들을 잠시 휴식하게 한 후 불러모아 놓고 조교가 실실 웃으며 잡담하듯 말했다.
“야. 다들 솔직히 말해봐. 너희들은 북미왕국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화약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서 병사가 된 것 아니야? 난 그랬는데?”
이에 조교의 눈치를 보던 훈련병들은 살짝 긴장이 풀리며 웃었다.
“그렇습니다.”
“에스파냐인들만 사용하는 화약 무기가 신기해서 지원하긴 했죠.”
훈련병 대부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실실 웃던 조교가 갑자기 정색하며 버럭 소리쳤다.
“헌데 왜 방아쇠를 당길 때 무서워하냐고! 그러니까 움츠러들어서 조준이 흐트러지잖아! 이 겁쟁이들아!”
조교가 버럭 소리치자 다시 긴장한 훈련병들이 일제히 외쳤다.
““죄송합니다!””
조교는 갑오 소총을 머리 위로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이 갑오 소총은 운용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별다른 사고도 나지 않은 무척이나 안전한 소총이다! 에스파냐 놈들이 사용하던 머스켓하곤 차원이 다른 소총이란 말이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 없어! 안 터진단 말이다! 이 갑오 소총을 믿어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조금 쉬었기 때문인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훈련병들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조교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좋아! 그럼 다시 실탄 사격장으로 행군한다! 이번에도 10발 중 7발을 과녁에 맞추지 못하면 이번엔 두 배로 연병장을 뛰게 될 거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 * *
정성국은 오랜만에 새김포에 있는 육군 훈련소에 들러 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훈련하는 병사들을 멀리서 잠시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바라보다가 곁에 있던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산 아구스틴에 배치될 병사들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저들 최근에 모병한 병사들 아닌가? 헌데 무척 정예병처럼 보이는군?”
정성국의 질문은 칭찬과도 같았기에 군사청장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새진주와 산 아구스틴의 경우는 해적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기에 더욱 강도 높게 훈련 중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 더운 여름에 연병장을 달리는 병사들을 보며 살짝 걱정했다.
“하긴...2함대가 제대로 자리 잡고 해안가를 장악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다만 이 더운 날에도 저렇게 훈련하다 병사들이 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런 정성국의 걱정에 군사청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새진주도 그렇고...플로리다도 이곳보다는 더 무더운 곳이라고 들었기에 더위에 익숙해지라고 저렇게 잠깐씩 훈련 시키는 겁니다. 다만 이런 훈련 이후에는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수분을 보충해주는 만큼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하. 별다른 문제가 보고된 적도 없고요.”
더불어 북미왕국의 병사가 되기를 원하는 원주민들 대부분은 전사나 사냥꾼들이었기에 체력이 나쁘지 않았고 육군 훈련소에 들어와서 양질의 식사와 훈련을 병행해 체력이 더욱 올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군사청장이었다.
이를 유심히 들은 정성국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가? 그건 다행이군. 그럼 요새 분위기는 어떤가? 모병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고?”
“그렇습니다. 전하. 아무래도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부족의 전사들은 더는 싸울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거기에 병사들의 대우나 인식도 좋은 편이고 말입니다. 덕분에 언제나 모집하는 인원보다 더욱 많은 인원이 몰려들어 적당한 체력 시험을 통해 인원을 쳐내는 중입니다.”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꽤 많은 병사를 모집했는데도 아직 지원하는 숫자가 더 많다는 소리에 전생의 군 생활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군사청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에 탐사대 덕분인지 최근 푸에블로 족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북미왕국의 병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꽤 많답니다.”
“그래?”
탐사대가 산타페를 거점으로 두고 활동하기도 했었고 산타페 인근을 약탈하려 했던 아파치 족의 근거지까지 찾아가 철저하게 토벌한 이후 산타페에서 탐사대를 비롯한 군사청의 병사들의 인기는 무척 높다는 사실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때문에 푸에블로 족 원주민들이 병사가 되려 할 줄은 몰랐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군사청장이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굳이 탐사대가 아니더라도 북미왕국의 병사가 되면 에스파냐인들만 사용하던 화약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인지 병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산타페에도 육군 훈련소를 세우는 것이 어떠냐는 보고가 최근 올라왔습니다.”
“허어...”
얼마나 병사가 되려는 푸에블로 족 원주민이 많았으면 그러한 보고가 올라왔을까 싶어 당황한 정성국을 보며 군사청장이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저기 저 병사들 중에도 일부는 푸에블로 족의 원주민들입니다. 산타페에서 근무하는 경비대에게 물어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모두 이곳의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 병사가 된다는 말에 산타페에서 이곳까지 온 친구들이지요.”
그 먼 거리를 병사가 되기 위해 이동했다는 소리를 듣고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맙소사...”
“그런 상황이다 보니 당분간 병사 모집은 수월할 것 같습니다. 전하.”
당분간 병사를 모병하는 일은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시선을 돌려 훈련하는 병사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그런 상황이라면 육군 훈련소를 더 짓도록 하게.”
이에 군사청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청의 규모를 얼마나 늘리시려고 그러십니까? 당분간은 이곳 훈련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정성국 역시 군사청의 규모를 함부로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군은 대표적인 소비 집단인 만큼 군사청의 규모가 커 봐야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다만 현재 북미왕국의 영토를 생각해보면 군사청의 규모는 무척 작은 편이었다.
워낙 인구수가 적은 북미왕국이었기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에 탐사대를 증원하고 플로리다에 배치될 경비대를 모집해서 육군 병력이 겨우 2만을 넘겼지만...아이누 경비대가 포함된 숫자니 실제론 아직 부족해. 새진주에도 병사를 증원해야 하고...혹시 모르니 프랑스 놈들이 남하하기 전에 미시시피강 하류에 정착지를 건설하고 그곳에 병사들을 꽤 주둔시키려면 당분간은 규모를 확 키워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이 군사청장을 보며 말했다.
“규모야 계속 늘려가야지. 그리고 다양한 부족의 원주민들을 병사로 받아들이려면 아무래도 훈련소의 위치가 문제가 될 것 같고.”
정성국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훈련소들이 새김포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선인이나 원래 이곳 출신 원주민들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지요. 허면 산타페에?”
“흐음...산타페와 새진주에 이것보다는 작은 규모로 훈련소를 건설하도록 하게. 그리고 병사를 모집할 때 적당히 인원을 할당하도록 하고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 * *
“함대 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
마차에서 자고 있던 김봉길은 이정운이 깨우자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어이쿠야. 드디어 도착한 건가? 정말 북미왕국의 영토가 엄청 넓긴 넓어. 안 그래?”
김봉길의 말에 이정운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래도 조선의 풍광과는 사뭇 달라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 않았습니까?”
이정운의 말마따나 이곳 새진주까지 오면서 구경했던 북미왕국의 경치는 조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도 꽤 있었고.
“그렇긴 해. 그게 아니었으면 이동하는 게 정말 지루했을 거야. 왜 원주민들이 자연을 경외하는지도 알겠고 말이야.”
“그렇지요.”
김봉길은 마차에서 내려 잠시 몸을 움직인 후 투덜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마차로는 너무 느려. 빨리 새나주에서 이곳 새진주까지 철도가 깔렸으면 좋겠어. 안 그런가?”
김봉길의 투덜거림에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까지 이동하면서 기차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왜 그렇게 철도를 까는 일을 중요시했는지도 확실히 깨달았고.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 이동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지만 새나주에서 이곳 새진주까지 이동하는 데는 무려 40일이 넘게 걸린 탓이었다.
만약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철로가 깔려있었다면 단순히 거리로만 계산했을 때 5일이면 이동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자 기차의 유용성을 확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기차가 엄청 빠르고 편하긴 했지요. 헌데 워낙 먼 거리라 단기간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정운의 말에 김봉길이 머리를 긁적였다.
“점점 북미왕국이 발전하면서 합류하는 원주민들이 늘어나니 인력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네. 다만 철로를 만들 강철이 부족해 문제라던데?”
“하긴...그 먼 거리에 철로를 다 설치하려면...”
“그 때문에 개발청에서는 일단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는 단선으로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던데...”
김봉길은 고위급의 인사였고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많았기에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정운이 지루한 마차 여행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북미 지역의 자연 풍광과 이렇게 가끔 김봉길이 툭툭 던져주는 정도 때문이었고.
이에 이정운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관심을 나타냈다.
“단선이요? 철로를 하나만 깐단 소립니까? 그럼 기차를 어떻게 운용한답니까?”
김봉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오전엔 상행, 오후엔 하행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던데? 당장 많은 기차가 운용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이런 말이 좀 나오는 모양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군. 오? 저건...”
김봉길은 새진주의 조그마한 선착장에 정박 되어 있는 선박들을 바라보았다.
김봉길의 반응에 이정운이 고개를 들어 김봉길이 바라보는 곳을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수송선이로군요.”
“아하. 인급 전선 전에 일반 선박 몇 척을 건조했다더니 저건가 보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길은 300톤급으로 보이는 수송선 3척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에 병사들을 태워 산 아구스틴까지 가야 하는 거지?”
“그렇지요. 인급 전선에도 태우기야 하겠지만...”
“흐음...물자까지 생각하면 산 아구스틴에 경비대를 모두 이동시키는 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겠는데? 직선거리와는 달리 바다를 통해 가려면 꽤 멀잖아?”
아무래도 뱃길을 이용하면 플로리다반도를 우회해야 하는 만큼 이동 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산 아구스틴을 포기하고 플로리다반도 서쪽 멕시코만 쪽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도 논의했었지만, 정성국은 북미 동해안과 대서양에 위치한 산 아구스틴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산 아구스틴까지 인급 전선으로 약 5일 정도의 거리니까요.”
“흐음...그러면 한번 이동할 때마다 왕복 2주는 잡아야겠는데...당분간은 지루할 틈이 없겠구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