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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73화 (173/850)

173화

정성국이 아리의 볼을 콕콕 찌르고 있을 때 전아라가 슬쩍 손부채를 하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이 방에 너무 난방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정성국은 전아라를 바라보았다.

“왜? 더워?”

“조금 덥지 않아요? 하얀 들꽃은 어때?”

전아라의 말에 하얀 들꽃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따뜻한 것을 넘어 조금 덥긴 하네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시녀들이 곳곳에 화로를 가져다 두어 열심히 방안 기온을 높이고 있었고 덕분에 정성국 역시 방 안이 후끈하다고 느끼긴 했으니까.

다만 괜히 찬 공기를 쐬었다가 아기들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볼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과한 난방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음...그래도 아기들이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 난방은 철저히 해야지. 더우면 차라리 얇은 옷으로 갈아입어.”

정성국의 말에 못 말리겠다는 듯 전아라가 고개를 저었다.

“어휴.”

전아라의 한숨을 애써 못 들은 척 한 정성국은 자신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기들에게 다가갔다.

“그치! 안문아! 아리야!”

“꺄~!”

“아마마~!”

정성국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든 옹알이를 한 아리를 보고 정성국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지금 아바마마라고 한 것 아닌가?! 어? 맞지? 다들 들었지?”

정성국이 아리를 품에 안고 호들갑을 떨자 하얀 들꽃과 시녀들은 애써 웃음을 삼켰고 그런 모습을 보고 전아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 * *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새해를 보내고 청장들을 회의실로 불러 1669년 첫 회의를 열었다.

정성국은 회의실에 앉아있는 청장들의 얼굴을 슬쩍 둘러보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음? 새해라서 그런가? 표정들이 다들 밝은데?”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이 미소를 짓는 가운데 조용한 곰이 먼저 나서서 보고를 시작했다.

“새해에 처음으로 열린 회의에 이렇게 좋은 소식을 처음으로 전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전하. 새진주에서 좋은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반색했다.

외무청장이 보고하는 새진주에서 날아온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면 어떤 소식인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아. 좋은 소식이라고? 그럼 아타카파 족이 식인 풍습을 포기하겠다고 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확답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원주민들은 지식이 적을 뿐이지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탐사대의 화력 시범으로 인해 북미왕국의 힘을 충분히 깨달았을 테니 어지간하면 굴복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다만 이렇게 힘을 내보였는데도 반발한다면 그건 절대 자신들의 풍습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가겠다는 의미였기에 그렇게 되면 정말 많은 피가 흐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내심 긴장하며 새진주에서 빨리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다행이군. 저들이 끝까지 버티고 반발했다면 좀 곤란했을 텐데.”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은 웃으면서 새진주의 외무청 관리가 올렸던 자세한 보고 내용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게...처음엔 아타카파 족은 조금 반발했었답니다. 다만 아코키사 족의 부족장들이 필사적으로 설득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평화적으로 아코키사 족과 아타카파 족은 식인 풍습을 포기했고 북미왕국 밑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응?”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당황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순하게 북미왕국의 강권에 의해 식인 풍습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예 복속시키다니.

지금껏 북미왕국은 원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했고 그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통해 북미왕국과의 교류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한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으로 합류를 결정했다.

물론 외적인 영향도 없진 않았고 외무청 관리의 설득도 유효하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원주민들의 의사였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원주민의 의사에 의한 북미왕국 합류라기보단 강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로 근처에 부족원 전체와 비슷한 숫자의 전사들이 어슬렁거리고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으며 이를 통해 저들의 무기는 자신들의 무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된 원주민들이 과연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의 합류 권유를 순수한 권유로 받아들였을까.

특히 원주민들은 부족 간의 다툼이 없지 않아서 이런 부분에선 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으니.

‘잘못하면 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에 정성국이 슬쩍 안색을 흐려지자 이를 눈치챈 행정청장이 조용한 곰을 거들었다.

“저들을 지속해서 감시하고 또 지원해주려면 북미왕국으로 합류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해서 외무청 권리가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강권한 모양입니다. 전하.”

행정청장의 말이 끝나자 교육청장이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그렇지요. 저들은 그저 무지와 관습에 의해 식인 풍습을 이어나갔을 뿐입니다. 이제 저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했으니 북미왕국의 교육을 받을 테고 그러면 행정청에서 감시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식인 풍습은 사라질 겁니다. 전하.”

행정청장과 교육청장의 말 역시 틀리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저들은 북미왕국의 합류를 순순히 받아들였고?”

그저 북미왕국이 불쾌해하는 식인 풍습을 포기하는 것과 북미왕국 밑으로 합류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기에 이를 물었지만 조용한 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별다른 반발 없이 수긍했다고 합니다.”

“...흐음.”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별말을 하지 않고 손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텍사스 지역에서 가장 커다란 부족이라 할 수 있는 카도 족이 먼저 북미왕국으로 합류 의사를 밝혔고 그 뒤를 이어 코만치 족 역시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로서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 대부분은 북미왕국으로 합류한 셈이고 북미왕국은 텍사스 지역을 온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보고에 다른 청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당황해 멍하니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군사청장이 입을 열어 정성국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하와 북미왕국의 위엄이 원주민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군사청장의 아부에 실소하며 정신을 차린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글세...군사청의 위엄 같은데 말이지...”

이에 행정청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군사청의 위엄이 곧 북미왕국과 전하의 위엄이 아니겠사옵니까.”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텍사스 지역에 진출한 지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헌데 텍사스의 원주민 부족 중 큰 부족들이 하나둘 북미왕국에 합류함에 따라 텍사스 지역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정성국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편이 빠르긴 하네. 결국, 북미왕국의 확장을 막았던 것은 바로 나였던가.’

정성국은 어지간하면 원주민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하려 애를 썼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정성국도 이곳에 북미왕국을 세우고 시간이 흘렀기에 단순히 전생의 기억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원주민과의 무력 충돌을 꺼리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야 그랬을지는 몰라도 예전 아파치 족의 습격으로 인해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새김포 인근 국립묘지에 묻힌 이후로 마음을 달리 먹었고.

물론 이곳 북미 대륙은 엄연히 원주민들의 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북미왕국은 조선인들의 식민지도 아니었고 조선인들만의 국가도 아닌 조선인과 원주민들이 함께 뭉쳐 세운 국가였기에 북미왕국 역시 이 땅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다만 그가 원주민과 무력 충돌을 꺼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구 때문이었다.

북미 대륙은 무척이나 넓었지만, 이곳에 사는 원주민은 무척이나 적었다.

그나마 멕시코 지역이나 남미의 경우는 기후나 작물 때문에 농업이 발달해 대규모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원주민들만의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지만, 북미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마땅히 재배할만한 작물이 없었기에 수렵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양인들이 신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딛고 나서 퍼진 전염병에 의해 그 적은 숫자가 다시 줄어 들어버렸으니.

정성국으로선 가뜩이나 북미 대륙을 채울 인구가 걱정인 판에 이들과 무력 충돌이 일어나 북미왕국의 사람이든 원주민이든 누군가 죽는 것을 당연히 꺼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북미왕국은 정성국으로 인해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덕분에 무기도 무척 발달하게 되었다.

단순히 창칼로 싸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잘못했다간 대량학살이 벌어질까 봐 의도적으로 충돌을 꺼린 것이다.

더불어 이번 경우처럼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강압적으로 원주민을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이면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지금까지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의 경우 북미왕국의 정책에 관심을 두고 행정청의 지시에 잘 따르는 편이었는데 이는 우호적으로 교류하다 자신들이 이득이라고 판단해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했기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이었다.

그렇기에 강압적으로 북미왕국에 합류한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들은 내심 불만을 품고 북미왕국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했고.

이 때문에 함부로 힘을 드러내고 원주민을 병합하는 것을 꺼려왔던 것인데 아무래도 청장들과 관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물론 청장들과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정성국이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그의 성향때문이라고 보았다.

정성국이 인자하고 관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헌데 아파치 족의 공격을 받은 후 탐사대 전원을 집결해 힘을 슬쩍 보이자 주변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관리들은 굳이 힘을 숨길 이유는 없지 않냐는 공감대가 생겨났다.

더불어 원주민 출신 관리들은 하루빨리 북미왕국이 북미 지역을 장악하길 원했고.

차라리 그편이 원주민들에게도 그리고 북미왕국에도 낫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직접 무력을 사용해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것을 정성국이 허락할 리는 없었기에 고민하던 관리들은 단순히 북미왕국의 힘을 원주민에게 과시해 알아서 숙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새진주에 문제가 생겨났고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청장들과 관리들은 훈련을 빙자한 화력 시범을 보였고 결국 그들의 예상대로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의 힘을 목격하고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의 눈치를 살폈고 북미왕국의 도시인 새진주에 인접한 아코키사 족이 북미왕국에 복속되고 아타카파 족이 그 뒤를 이어 북미왕국에 복속되자 이를 지켜보던 카도 족과 코만치 족도 이대로 있다가 북미왕국에 공격받으면 어쩌나 싶어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이다.

정성국은 이러한 흐름을 완전히 꿰뚫어 보지는 못했지만, 아파치 족이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한 이후 청장들과 관리들의 생각이 조금은 변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대충 사정을 짐작하고 고민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어. 결과도 나쁘진 않고. 다만 슬쩍 언질이라도 해서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느냐 아니냐의 문제인데...시대가 시대이고 상황이 상황이니 별수 없나. 거기에 내 생전에 어느 정도 영역을 확장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내 자식들의 손에는 피가 묻을 수도 있을테니...어느 정도는 용인하되 적당히 통제해야겠군.’

정성국은 최소 3년에서 5년은 걸리지 않을까 예상한 텍사스 지역의 장악을 1년도 되지 않아 달성한 셈이었으니 굳이 어느 쪽이 더 효율이 높은가는 증명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지역은 완전히 장악했지만, 아직 애리조나나 뉴멕시코 지역은 절반밖에 장악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새남포가 위치한 워싱턴 지역은 아직 제대로 장악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리고 이 지역을 모두 장악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전생의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하와이를 빼고 아직 44개 주가 남아있고 거기에 캐나다 지역까지 생각하면 정말 갈 길이 멀었으니 괜히 이에 제동을 걸어 확장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정성국은 청장들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주제를 돌렸다.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 대부분이 북미왕국에 합류했다라...낭보이긴 한데 그래 봐야 원주민의 수는 얼마 되지 않지?”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카도 족을 제외하면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는 부족들이었기에 부족의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에 묻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대략 5만 내외로 추산됩니다.”

“끙...역시나 그렇군.”

텍사스의 면적은 한반도의 면적과 비교해도 3배는 넘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인구가 천만이 가볍게 넘는 것과는 달리 이 넓은 텍사스에 원주민은 고작 5만 내외였으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은 정성국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했다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새진주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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