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전하.”
정성국은 밝은 표정으로 집무실을 들어온 개발청장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새진주에서 보고가 올라오기엔 너무 일렀기에.
“음? 무슨 일인가?”
정성국의 의문에 개발청장은 밝게 웃으며 보고했다.
“마지막 교량 건설이 완료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로서 철도 부설은 최종 완료 되었고 이제부턴 기차를 타고 새나주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오! 드디어!”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정성국의 모습에 뿌듯한 미소를 짓던 개발청장은 계속 입을 열었다.
“철도 부설이 완료되었으니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전하께서 직접 기차를 타고 새나주를 방문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를 통해 북미왕국에 기차가 상용화되었다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겁니다.”
“아? 아...흐음.”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의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음...내키지 않으십니까?”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북미왕국의 증기기관차는 시속 50km 정도로 빠른 편이긴 했다.
전생에서 세계 최초로 승객을 싣고 달렸던 조지 스티븐슨의 로켓 호가 시속 46km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로켓 호보다 훨씬 많은 객차를 달고 움직이는데도 그 정도 속도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고.
다만 증기기관차다 보니 중간중간에 물과 연료를 보급받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새나주에 들렀다 바로 새한성으로 복귀할 수는 없으니 잠시 새나주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러자니 가뜩이나 일이 많은 상황이라 조금 걸렸던 것이다.
하얀 들꽃이 아직 복귀하지 않아 일을 거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더불어 한창 귀엽기 그지없는 아기들과 잠시 떨어져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북미왕국에 철도 부설이 완료되었고 기차가 상용화된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면 내가 움직이는 게 낫긴 할텐데...어?’
정성국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예?”
* * *
숨을 쉴 때마다 12월의 찬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지만 새한성 인근의 커다란 건물 주변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철도 부설이 완료되었고 오늘 처음으로 기차가 승객들을 싣고 저 남쪽의 새나주까지 달린다는 소식이 새한성에 널리 퍼지자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새한성 인근의 역으로 몰린 것이다.
오히려 기차의 존재가 꽤 알려졌기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렸다.
특히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는 거리로만 치면 한양과 동래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 기차를 타면 한나절 만에 도착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조선인들의 관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한양에서 동래까지 이동하려면 보통 보름이 걸리는 길인데 그보다 먼 거리를 한나절 만에 도착한다는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원주민들이야 북미왕국의 기물들, 특히 크고 우람한 기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여기면서 이를 구경하길 좋아했고.
그 때문에 주말만 되면 커다란 선박을 구경하기 위해 선착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원주민들이었는데 또 다른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었으니 죄다 몰려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커다란 건물 안쪽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중년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휴. 사람 참 많네.”
중년 사내의 중얼거림을 듣고 개똥이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여.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구경 나올 줄은 또 몰랐네? 새한성 사람들 태반은 나온 것 같구만.”
이에 일행들은 다들 바깥의 인파를 보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중년 사내가 개똥이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정말 고마워. 개똥이.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도 저 인파 속에서 어떻게든 구경하려고 목을 쭉 빼고 있었을 것 같은디.”
중년 사내의 말에 그보다 나이 든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아마 개똥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어떻게든 기물을 구경하겠다고 이 추운 날씨에 철로 주변에 자리 잡긴 덜덜 떨며 기다렸을 거야.”
이에 젊은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다들 새김포에서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잖아요? 그런 구경거리를 추위 때문에 놓칠 수는 없죠!”
일행이 한목소리로 개똥이에게 감사를 표하자 개똥이는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뭐 운이 좋았죠. 제가 당첨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처음 행정청의 관리 나리가 직접 숙소로 찾아와 이야기했을 때는 꿈인가 싶었다니까요?”
“하하하. 그러니까. 아마 행정청의 관리 나리가 직접 자네 숙소로 찾아온 것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자네 말을 안 믿었을걸?”
교량 건설이 모두 완료되어 철도 부설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자 정성국은 이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
추첨을 통해 승차권을 나눠주어 기차를 타고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 방문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새김포에서 기차를 처음 공개했을 때 아주 짧은 구간이었지만 백성들에게 기차에 타볼 수 있는 행사를 열었고 이 행사 덕분에 기차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번에 철도 부설을 완료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
더불어 새나주까지 철로가 깔리긴 했지만 당분간 이 철로 위를 질주하는 기차들은 주로 화물 열차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여객 열차는 한 대뿐이고 객차 일부는 관리들에게 배정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당분간 기차를 타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 정성국이 지시한 것이다.
덕분에 운이 좋게 승차권을 얻게 된 개똥이였고.
개똥이를 찾아왔던 행정청의 관리는 이를 설명하며 실제로 행사에 참여할 것인지를 물었고 당연히 개똥이는 참여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행정청의 관리는 행사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는데 이 승차권은 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개똥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는 아직 가족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항상 어울리던 일행이 행정청의 관리와 대화하는 개똥이를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가왔고 개똥이는 이들에게 사실을 알리며 함께 행사에 참여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일행의 반응은 무조건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새김포에서 그 육중한 쇳덩이가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상식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고.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했다.
헌데 그 기차에 직접 탑승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를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거기에 철도 부설이 완료된 후 처음으로 새나주까지 운행되는 기차이니 이를 탄다면 평생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셈이었으니.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떠들던 일행들의 귓가에 직원의 외침이 들렸다.
“곧 열차가 도착합니다! 탑승장으로 나오세요! 나와서 승차권에 적혀있는 맨 앞 숫자와 같은 숫자가 적혀있는 자리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에 중년 사내는 개똥이를 바라보았다.
“숫자가 뭐여?”
개똥이는 품속에서 무척 소중히 간직하던 승차권을 조심스럽게 꺼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맨 앞 숫자는 7이요.”
“그래? 그럼 어서 가자고.”
이에 나이 든 사내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개똥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다시 품속에 넣고. 혹시 잃어버리면 큰일 나.”
“그럼.”
개똥이는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승차권을 품 안에 넣었다.
“갑시다.”
일행은 개똥이 주변을 둘러싸고 건물 밖으로 나가 7이 커다랗게 적혀있는 기둥으로 이동해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일행들은 다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 저기 온다!”
“오오오!”
기차가 점점 역 가까이 다가오자 철로 가까이에 서서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점점 커지는 기차의 모습을 보고 두려운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물론 북미왕국 사람들에게 기차는 신기한 기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차를 움직이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질리거나 대경할 정도는 아니었다.
새김포에서 첫 시범운행을 한 후로 북미왕국에 널리 기차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했고 공식적으로는 이 기차가 철도 부설을 완성하고 처음으로 새나주로 출발하는 기차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간간이 화물을 실은 기차가 철로 위를 달리기도 했었기에.
다만 먼 발치서 바라보았을 때야 거대한 쇳덩이가 스스로 움직인다며 신기하다고 감탄했지만 정작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거대한 쇳덩이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라 역 안 탑승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대부분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차가 천천히 다가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멈추고 직원들이 탑승하라며 소리치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섞인 눈초리로 기차를 바라보던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이야...먼 발치서 움직이는 것을 봤을 때하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위용이 다르구만!”
나이든 사내가 잔뜩 흥분해서 입을 열자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어휴. 저 거대한 쇳덩이가 나한테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다 저렸네. 그려.”
“전에 새김포에서 봤을 때는 신기하다고는 생각했어도 딱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이 쇳덩이가 움직인다는 게 정말 대단하네.”
나이든 사내의 감탄에 젊은 사내가 맞장구쳤다.
“그러니까요. 거기에 이 많은 객차와 사람을 싣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니...정말 북미왕국은 끝도 없이 발전하는 것 같네요!”
“키야. 전에 새김포에서 그 기물을 타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타게 될 줄이야.”
그때 탑승장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객차의 문을 열며 소리쳤다.
“자자! 저한테 다시 승차권을 확인받은 후 객차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객차 뒤의 숫자가 적힌 방에 타면 됩니다!”
이에 개똥이가 기차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감탄은 타고 나서 하자고! 출발하기 전에 빨리 올라타야지. 안 그래?”
“아! 그래야지!”
일행들은 정신을 차리고 개똥이 뒤에 섰고 개똥이가 승차권을 직원에게 내밀자 이를 확인한 직원은 구멍을 기계로 구멍을 뚫으면서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5번 방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똥이는 직원이 돌려준 승차권을 다시 소중히 품속에 넣은 후 조심스럽게 객차로 올라갔다.
객차로 올라서자 비좁아 보이는 복도가 존재했고 복도 양옆으로 문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문 앞에는 커다랗게 숫자가 적혀있었고.
개똥이가 5번이 적힌 문을 열자 안쪽에는 푹신해 보이는 기다란 의자가 마주 보며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 보였고.
개똥이를 따라 객실 안으로 들어온 일행은 객실 내부를 둘러보면서 다시 감탄했다.
“어이쿠야.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복도가 비좁아 보여서 조금 걱정했더니만.”
“그러게요. 내부는 생각보다 넓은데요?”
이에 나이든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전에 듣기로는 자리가 무척 좁아서 꽤 불편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그 새김포에서 기차를 탔다고 엄청 떠들어댔던 그 영식이 말이지?”
“아아. 맞아. 영식이.”
나이든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식이가 떠벌이긴 해도 거짓말할 친구는 아닌데?”
이에 젊은 사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그때야 시범적으로 운행했고 아주 잠깐 태웠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의자를 왕창 들여놨었겠지요. 영식이가 탔던 건 시범 운행했던 기차고 이건 정식으로 운행되는 기차 아닙니까. 큭큭.”
“아. 그 말도 일리가 있네.”
젊은 사내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이든 사내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 영식이 놈에게 자랑하려고 조만간 새김포에 한번 다녀와야겠구만.”
그 말에 일행은 다들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의자는 무척이나 푹신했고 공간이 넓어 다리를 쭉 펴지 않으면 맞은 편에 앉은 사람과 부딪칠 일도 없었다.
“하. 좋네. 좋아. 이렇게 푹신한 의자라니.”
“그러게요. 이런 의자가 있을 줄은 또 몰랐네요.”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익!’
‘덜컹!’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객차가 흔들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객실 안의 일행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
“어어!”
“움...움직인다!”
“오오! 저기 창밖을 봐!”
창밖을 통해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일행들은 다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객실도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곳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처음 천천히 움직이던 기차는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덕분에 빠르게 바깥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입 벌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개똥이 일행이었다.
“어이쿠야. 엄청 빠르구만! 저기 봐! 저기! 사람하고 건물이 휙휙 지나가네!?”
“그러게 말이여. 마차하곤 비교가 안되는구만!”
한창 흥분해 창가에 달라붙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일행들 뒤쪽에서 물끄러미 그들과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나이든 사내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이구야. 정말 세상이 무섭게 변하는구만...정신 놓고 있으면 뒤처지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