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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71화 (171/850)

171화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청장들을 보고 살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그들을 반겼다.

하지만 청장들의 얼굴은 살짝 굳어있었기에 정성국은 내심 긴장하며 물었다.

“흐음...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몰려온 건가?”

이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전하. 새진주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새진주? 아 그...?”

정성국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래. 그럼 어디 들어보지. 정말 원주민들에게 식인 풍습이 존재했나?”

“그렇다고 합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원주민들이 순순히 인육을 먹었다는 점을 인정했다던가?”

이 물음에 조용한 곰은 무척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오히려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묻기도 했답니다. 자신들은 북미왕국 사람들을 먹은 적은 없다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귓가에 들려오는 조용한 곰의 보고를 들었다.

아코키사 족은 전에 올라온 보고대로 인간을 하나의 식량으로 보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식인이 아닌 종교적인 의미에서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

다만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리 족 내외 식인을 모두 했다고.

족내 식인은 자신의 동족을 먹는 행위였고 족외 식인은 자신들의 경쟁 상대인 적을 죽여 인육을 먹는 행위였는데 둘 다 기반에는 인육을 섭취해 상대의 영혼과 힘을 계승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식인을 하는 경우였다.

“...후우.”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아직은 과학과 의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시기였기에 잘못된 풍습과 관습, 미신이 만연했고 덕분에 식인은 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긴 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인신 공양을 일삼았던 마야 문명 역시 아직은 유카탄반도에서 명맥을 잇고 있었고 말이다.

마야 문명은 에스파냐에 의해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 멕시코와 남미 대부분은 에스파냐의 영역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에스파냐가 직접 장악한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고원 지대에 위치해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던 아즈텍 제국과는 달리 마야 문명은 정글로 이루어진 유카탄반도에 존재했기에 단숨에 정복하기는 어려웠고.

그렇기에 약 150년 전에 이미 멸망한 아즈텍 제국과는 달리 마야 문명은 아직도 소규모로나마 명맥을 잇고 있었고 에스파냐가 유카탄반도를 완전히 정복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최후의 마야 도시 국가인 노즈페텐을 함락시켜 마야 문명을 멸망시키는 1697년까지는 인신 공양이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동양의 경우는 아예 인육을 약재로 바라보기도 했고.

조선에서 효행이라는 명목하에 아픈 부모님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명, 청의 경우는 몸보신을 위해 궁정에서 자주 인육을 먹었다고 전해지니.

거기에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식량이 풍부하지 못해 대기근이 발생하면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경우는 세계 각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었으니.

다만 아무리 시대의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정성국은 식량이 부족한 긴급 상황에서 발생한 경우는 어떻게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 외의 여러 풍습이나 관습, 미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식인은 결코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아코키사 족의 대답처럼 저들은 그게 하나의 풍습일 뿐이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들을 인육을 먹었다는 이유로 군사청의 병사들을 동원해 공격하는 것은 걸리는 것이 많아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그래서?”

“일단 외무청의 관리가 부족장들을 잘 설득하긴 했다고 합니다.”

이에 정성국은 관자놀이를 누르다 말고 눈을 크게 뜨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설득을...했다고? 어떻게? 저들은 식인이 금기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조용한 곰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의 군사청장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외무청 관리는 식인이 북미왕국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멕시코 지역의 원주민 국가였던 아즈텍 제국이나 마야 문명이 왜 서양의 나라에 공격받아 멸망했는지도 설명했고요.”

이에 정성국은 대충 상황이 짐작되어 허탈하게 웃었다.

“어째 말을 들어보니 인신 공양과 식인 풍습 때문에 에스파냐에 공격받았다고 이야기한 것 같군? 맞나?”

조용한 곰은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시선을 돌려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코키사 족을 설득했을 때 군사청에서 도움을 줬을 테고?”

군사청장 역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도움이라기보단 그저 외무청 관리의 안전을 위해 새진주에 집결한 탐사대 전원이 그를 호위했을 뿐입니다. 인육에 취해 외무청의 관리를 공격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결국, 탐사대를 총동원해 저들을 압박했고 그 결과 아코키사 족이 식인 풍습을 포기했다는 소리였다.

‘굳이 북미왕국을 적대하거나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조그마한 부족을 공격해 멸종시키고 싶지는 않았는데...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

그렇게 생각한 정성국은 미소를 짓고 있는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흐음...뭐 결과가 좋다면야...다만 개발청장?”

정성국의 부름에 조용히 한쪽에 서 있던 개발청장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지요. 전하.”

“저들이 더는 식인 풍습을 벌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찰하고 또 우리의 요청에 따라 자신들의 풍습을 포기한 만큼 확실히 지원해주게. 알겠나?”

분명 식인을 했다는 점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이미 저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식인 풍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면 이를 수용해야만 했다.

더불어 북미 지역은 광활하고 수많은 원주민 부족이 존재하는 만큼 또 이러한 경우가 없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물론 이상할 정도로 중남미의 원주민들에게 식인 풍습이 만연하기는 했고 해안가의 부족들만 이러한 식인 풍습이 있는 것을 볼 때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이 아코키사 족을 확실하게 지원해준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원주민들을 설득하기 쉬우리라는 점도 계산했다.

그러한 정성국의 지시에 개발청장은 순순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또한, 행정청장에게도 이야기를 해 두겠습니다.”

“아아. 그렇게 하게.”

정성국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물었다.

“아코키사 족의 문제는 그나마 잘 해결이 되었는데...문제는 아코키사 족에 정말로 식인 풍습이 존재했으니 주변의 다른 부족에도 식인 풍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 대한 보고는?”

“외무청의 관리가 아코키사 족의 부족장들을 모두 설득한 이후 이들에게 확인한 결과 주변의 부족 중 아타카파 족에 식인 풍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개발청장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부족이라고 해서 혹시나 했었는데 정말로 식인 풍습이 있다는 보고에 안색이 좋을 수는 없었다.

“끙...그들의 규모는?”

이에 조용한 곰이 집무실 뒤편에 있는 북미지역이 그려진 지도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타카파 족은 아코키사 족에 비하면 규모가 큰 부족입니다. 그들의 영역은 새진주 동쪽의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고요.”

아코키사 족이 새진주 인근의 강을 따라 내륙으로 깊숙이 영역을 이루었다면 아타카파 족은 그 동쪽으로 해안가를 따라 넓게 영역을 이루었고 그 영역이 전생의 미시시피주까지 뻗어 있었다.

생각보다 아타카파 족의 영역이 넓었기에 정성국은 더욱 안색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흐음...그래서 이 아타카파 족은 어쩔 생각인가?”

“일단 외무청의 관리가 아코키사 족 부족장들의 도움을 받아 아타카파 족의 부족장들을 설득할 계획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살짝 안색이 밝아졌다.

“그래? 그들이 도와준다던가?”

“북미왕국이 식인 풍습을 무척 혐오한다는 것과 이로 인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코키사 족의 부족장들이 먼저 돕겠다고 나섰답니다. 잘못하다간 아타카파 족이 북미왕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 탓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속으로 잠시 혀를 찼다.

얼마나 탐사대원의 분위기가 험악했으면 저럴까 싶었달까.

다만 덕분에 피를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이를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군. 부디 아타카파 족도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텐데...”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슬쩍 웃으며 끼어들었다.

“분명 아타카파 족도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

무슨 소린가 싶어 정성국이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이 보고를 시작했다.

“외무청 관리를 호위하기 위해 탐사대 전원이 이동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를 부담스러워했던 아코키사 족의 부족장들은 대화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아타카파 족의 부족장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초대했습니다. 덕분에 탐사대는 당분간 할 일이 없었고...그래서 이정호 대장이 새진주에서 훈련을 진행한 모양입니다.”

“뭐? 훈련이라고?”

“그렇습니다. 전하. 새진주에 탐사대 전원이 집결하고 새진주 주변 원주민들의 관심이 새진주로 향하자 이정호 대장이 탐사대 전원을 동원해 과격한 훈련을 한 모양입니다.”

과격한 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군사청장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과격한 훈련이라...결국, 실탄을 사용해 훈련을 진행했다는 소리지?”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정호 대장의 요청에 따라 새진주에 주둔하고 있던 경비대도 화포 훈련을 진행했다는 보고가 함께 올라왔습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슨 훈련이야...화력 시범이지.’

정성국은 아파치 족의 일부가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한 이후로 군사청을 비롯한 관리들의 기조가 조금은 변한 것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잠시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뭐...이미 지나간 일에 왈가왈부하지는 않겠네만...주변 원주민들의 반응은? 어차피 저들은 누에바 에스파냐 근처에서 살아간 시간이 많으니 화약 무기에 매우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정성국의 대답에 군사청장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기껏해야 소규모로 발사되는 총성과 탐사대 전원이 일제히 발사한 총성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하긴...”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군사청장이 덧붙였다.

“그리고...마침 조선 장인들이 새진주에 도착했기에...”

이에 정성국은 기겁하며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잠깐. 설마 전선에 장착될 화포까지 사용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상황을 인지한 조선 장인분들의 동의하에 모든 화포를 총동원해 주변의 동산 하나를 포격으로 박살 냈다고 하더군요.”

“하...”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을 할 말을 잃었다.

새진주의 경우 멕시코만에 인접해 있었기에 서양 세력이나 해적이 공격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더불어 당장은 새진주의 해안을 방어할 전선도 없었기에 해안에서 새진주를 공격하는 적을 막기 위해 지상용 60mm 화포 16문을 배치했었다.

거기에 새진주에 조선소과 거의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새진주에서 건조하는 전선에 장착할 60mm 화포 16문을 장인들과 함께 보냈었고.

결국, 총 32문의 60mm 화포를 동원해 북미왕국의 화력을 원주민들에게 똑똑히 보여준 셈이다.

거기에 북미왕국의 포탄은 단순한 쇠구슬을 날리는 에스파냐의 포탄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포탄을 동산에 쏟아부었다?

아무리 원주민들이 누에바 에스파냐에 의해 화약 무기가 익숙해졌다고 한들 원주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당연히 이를 두 눈으로 목격한 원주민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동안 누에바 에스파냐는 텍사스 지역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이곳에 대규모로 군을 동원한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탐사대를 목격한 것으로 북미왕국의 힘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군사청과 탐사대의 이정호 대장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건지 아예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 북미왕국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제대로 설득(물리)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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