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게으른 곰은 병영 안에서 뭉그적거리다가 탐사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몸을 일으켜 친구들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건물 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자 쌀쌀한 공기에 게으른 곰은 슬쩍 몸을 웅크리며 한창 시끄러운 공터로 시선을 돌렸다.
새진주에 막 도착한 듯 말에서 내려 짐을 풀고 병영 근처의 공터에 미리 설치되어 있던 천막에 들어가는 탐사대원들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던 게으른 곰은 곧 자신이 찾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씩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 왔냐?”
게으른 곰의 목소리에 굳건한 바위와 음흉한 여우는 고개를 돌려 오랜만에 보는 게으른 곰의 얼굴을 확인하며 반가움을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멋도 모르고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한 아파치 족을 탐사대가 나서서 정벌한 이후 산타페 주변의 원주민이 북미왕국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자 탐사대 일부는 계속 산타페에 주둔했지만, 일부는 산타페와 새진주 사이에 건설되는 병영들로 주둔지를 옮겼다.
병영 곳곳에 배치된 경비대로는 주변 순찰이 어려웠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그리고 게으른 곰은 아파치 족이 산타페를 공격했을 때 산타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을 추적해 침입자를 모두 사살한 공으로 진급해 선임 조장이 되었다.
동시에 이곳 새진주에 주둔하는 탐사대원들을 통솔하는 지휘관급의 인사가 되어 새진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게으른 곰은 오히려 진급해 지위가 오른 만큼 일도 많아지고 책임질 것도 많아지는 터라 무척 질색했지만 그렇다고 진급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들이고 새진주로 이동했었고.
“그래. 왔다. 오랜만이다. 얼굴을 보아하니 잘 지내나 보군.”
굳건한 바위는 게으른 곰의 안색을 살펴보며 슬쩍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삐딱하게 서 있던 음흉한 여우는 게으른 곰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크. 선임 조장이 직접 이렇게 마중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에 게으른 곰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을 참으며 가슴을 쭉 펴고 거드름을 피웠다.
“큭큭. 그래. 선임 조장이 조장을 직접 마중하러 나왔으니 영광으로 알아라.”
“뭐래.”
음흉한 여우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달린 독수리 날개 모양의 선임 조장을 의미하는 은빛 계급장을 가리켰다.
이를 확인한 게으른 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급히 굳건한 바위의 가슴팍을 바라보았고 굳건한 바위 역시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군사청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처음 대장, 조장, 그리고 대원으로 구분되었던 계급은 조금씩 분화되어갔다.
다만 아직은 일반병사에 해당하는 대원은 그대로였고 지휘관급인 조장만 총 조장, 선임 조장, 조장으로 분화되었으며 이는 지휘하는 병사 수에 따라 분화된 것이라 대략적으로는 천인장, 백인장, 십인장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휘관의 계급이 나뉘다 보니 한눈에 지휘관의 계급을 알아볼 수 있게 계급장이 필요해졌고 자연스럽게 왕실의 문장인 독수리에서 날개만 따온 계급장이 만들어졌다.
이를 뒤늦게 군사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정성국은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어 보여 묘한 표정을 하며 결재해주었고.
“어? 뭐야. 너희들도 진급했네? 언제 진급한 거야?”
게으른 곰의 말에 굳건한 바위가 대답했다.
“네가 산타페에서 떠나고 추가로 탐사대 인원이 증원되면서 진급했지.”
이에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음흉한 여우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 봐야 진급에 관심 없었던 너보다 늦게 진급한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지.”
음흉한 여우의 말에 게으른 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두 친구를 보고 혀를 찼다.
“어휴. 진급하면 일만 많아지는데 대체 진급이 뭐가 좋다고.”
그 말에 굳건한 바위는 고개를 저었고 음흉한 여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게으른 곰을 바라보다 투덜댔다.
“허. 그런 말 하는 지휘관은 너밖에 없을 거다. 헌데 이런 놈이 진급은 엄청 빠르니...거 참. 이번 일도 그렇고. 차라리 너를 따라다니는 게 공을 세우기엔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음흉한 여우의 투덜거림에 굳건한 바위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게으른 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번 일?”
그런 게으른 곰의 반응에 음흉한 여우가 당황해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뭐야. 탐사대 전원이 이곳에 집결한 것을 보면 무슨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주변 원주민 부족과 마찰이 생겼다든지 아니면 해적이 쳐들어왔다든지?”
이에 게으른 곰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글세...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닐걸?”
게으른 곰의 대답에 음흉한 여우가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며 캐물었다.
“역시 넌 무슨 일 때문에 탐사대가 이곳에 집결했는지 아는 눈치구나? 대체 무슨 일인 거야?”
“뭐 대장님이 곧 설명해주지 않을까? 그때 듣지? 설명하기 영 귀찮은데...”
“야!”
발끈하는 음흉한 여우의 반응에 움찔한 게으른 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손짓했다.
“알았어. 일단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 자리를 옮기자고.”
* * *
“뭐? 식인? 그러니까...같은 인간을 먹었다는 뜻이야?”
게으른 곰의 숙소에 들어온 굳건한 바위와 음흉한 여우는 게으른 곰을 재촉했고 결국 게으른 곰은 귀찮은 표정을 하면서도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를 듣고 굳건한 바위와 음흉한 여우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인간을 먹는 부족이 있다니.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이주한 이후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북미대륙이 엄청나게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들 말고도 수많은 원주민 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이렇게 북미왕국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실제로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문화와 말은 전혀 다른 원주민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고.
하지만 같은 인간을 먹는 풍습이 존재한다니.
굳건한 바위는 얼굴을 굳히며 게으른 곰을 바라보았다.
“그건 좀...믿기 어려운데? 아무리 원주민 간에 풍습이 다르다고는 해도 같은 인간을 먹는다니.”
이에 음흉한 여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게으른 곰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직 정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외무청 관리가 바로 저들 부족에게 찾아가 확인해보겠다고 날뛰었는데...내가 극구 말렸어. 위험할 수 있으니 지원이 있기 전에는 불가하다고 버텼거든.”
“그렇게 큰 부족인가?”
음흉한 여우가 슬쩍 흥미를 나타내자 게으른 곰이 고개를 저었다.
아코키사 족 자체는 그렇게 큰 부족은 아니었다.
다만 아코키사 족과 가까운 텍사스 지역의 해안가 인근 영역을 차지한 아타카파 족은 규모나 영역이 적은 편은 아니었고 이들 역시 아코키사 족과 무척 비슷하고 가까운 부족이었기에 정말 아코키사 족에 식인 풍습이 존재한다면 아타카파 족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외무청 관리에게 이미 새한성으로 보고서를 보낸 것과 함께 군사청에도 지원을 요청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타이른 것이고.
외무청 관리는 게으른 곰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말로 설득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그게 불가능하고 이 문제 때문에 충돌이 벌어진다면 초반에 제압해야 피해가 줄어든다는 게으른 곰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아코키사 족과 아타카파 족은 무척 가까워서 아코키사 족이 반발하게 되면 현재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던 아타카파 족까지 봉기할 가능성이 있으니.
당장 새진주에 주둔해있는 탐사대 300명과 경비대 200명으론 저들 부족을 모두 감당하긴 힘들었다.
분명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정예병이고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강 근처의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싸우기엔 수가 적어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건 아니야. 우리가 전에 정벌했던 아파치 족처럼 조그마한 부족들의 연합이긴 해. 다만 평지도 아니고 강 근처 숲이 우거진 곳이라...고작 새진주에 주둔한 병력으론 문제가 생기면 감당하기 어렵거든.”
“흐음...그거야 그렇지.”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게으른 곰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자 게으른 곰은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거기에 주변의 조금 큰 규모의 부족이 이 아코키사 부족과 꽤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잘못하단 일이 커질 수도 있고.”
“흐음...그렇다면야 섣불리 확인하려고 저들 부족을 건드리는 건 멍청한 짓이었겠네.”
음흉한 여우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게으른 곰은 히죽 웃었다.
“그리고 이곳 원주민들은 의외로 우리 북미왕국의 눈치를 보는 편이라 설득을 하더라도 일단 우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
“눈치를 본다고?”
의아한 표정의 굳건한 바위를 보고 게으른 곰은 그가 이곳에서 만났던 원주민들의 성향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응. 아무래도 바로 밑에 누에바 에스파냐가 있어서 그런 것 같더라고. 최소한 이들은 에스파냐의 힘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잖아? 실제로 에스파냐가 예전 멕시코 지역에 존재하던 원주민 국가를 멸망시키기도 했고. 이들은 그거 다 알고 있거든. 근데 우리 북미왕국이 누에바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게으른 곰의 말을 굳건한 바위가 받았다.
“우리 북미왕국이 더 강력한 국가라고 생각해서 눈치를 본다는 거군?”
“그렇지. 그런 만큼 이렇게 지원병력이 도착했으니 저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걸?”
이에 음흉한 여우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무리 재규어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도 재규어가 근처에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 부담스러우니까.”
게으른 곰은 음흉한 여우의 말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그러니 저들은 외무청 관리를 섣불리 공격하지도 못할 테고 외무청 관리의 말을 무척 진지하게 듣겠지.”
“으음...”
“뭐 생각 같아선 이 기회에 화력 시범이라도 해서 제대로 북미왕국의 힘을 원주민에게 보여줬으면 하는데...그래야 감히 덤빌 생각을 못 하지.”
게으른 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음흉한 여우는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던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식인이라니...그거 괴담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 말에 굳건한 바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게으른 곰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글쎄? 난 여기서 놀면서 멕시코 원주민들과도 많이 대화를 나눴는데 예전 에스파냐 놈들이 멕시코 지역을 점령하기 전에 존재했던 원주민 국가에는 식인 풍습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에스파냐가 그 원주민 국가를 멸망시켰다고 하던데?”
그러면서 예전 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던 국가에 대해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들었던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굳건한 바위와 음흉한 여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듣기에 바빴다.
“허어. 그래?”
“정말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고?”
게으른 곰의 말에 탄식하듯 반응하는 두 친구를 보고 게으른 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다더라. 그 치들의 이야기론 그 아즈텍 제국이라는 도시 국가는 자신들을 걸핏하면 잡아먹었다던데?”
“어우...”
“맙소사...”
그렇게 굳건한 바위와 음흉한 여우가 게으른 곰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한 탐사대원이 게으른 곰의 숙소로 들어와 소리쳤다.
“선임 조장님! 대장님께서 지휘관 회의를 여셨습니다! 선임 조장급 이상의 지휘관은 모두 참석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에 한참을 떠들던 게으른 곰은 이야기를 멈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다. 야. 가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