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정성국은 봄에 출발했던 탐사선이 마침내 다시 도착했다는 소식에 급히 탐사선의 함장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탐사선의 함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이야. 부선장. 아니지. 이젠 어엿한 함장이지! 아무튼, 오랜만이군. 한 반년만이지?”
정성국의 환대에 탐사선의 함장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 탐사선 함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그를 집무실 한쪽의 티테이블에 앉히고 커피를 대접하며 물었다.
“그래. 탐사는 어땠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고?”
탐사선이 가끔 새남포에 들려 보급을 받았기에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보고는 듣지 못했기에 정성국은 무척 궁금하다는 얼굴로 탐사선의 함장을 바라보았다.
이에 함장은 정성국이 직접 내려준 검은색의 차를 무척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마시다 급히 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심해서 탐사선을 운용했기에 별다른 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혹 원주민을 만나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요.”
“오. 그래?”
“그렇습니다. 전하. 그동안 새남포를 통해 북미왕국의 존재가 원주민들 사이에 알려졌기 때문인지 해안가를 탐사하는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습니다. 오히려 탐사선을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먼저 다가와 거래를 요청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호오.”
함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감탄했다.
새남포의 건설로 인해 북미왕국의 존재가 저 북쪽의 원주민들에게까지 알려졌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함장은 살짝 우쭐대듯 덧붙였다.
“덕분에 원주민들과 교역할 물품들이 금방 동나 도중에 몇 번이고 새남포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주는 함장이었다.
보통 탐사선의 경우는 아무래도 부족과 거래하며 이문을 남기기보다는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꽤 후하게 값을 쳐주며 거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아예 퍼주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새남포에서 거래하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거래 조건은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힘들게 조그마한 배를 타고 남쪽에 있는 새남포로 이동해 물품을 거래하던 부족들은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꽤 많은 모피를 얻기는 했지만, 그보다 많은 물품을 털렸다는 보고에는 실소할 수밖에 없던 정성국이었다.
“그것참...뭐 나쁠 것은 없는데...”
“그리고 몇몇 부족들은 가끔 이렇게 직접 들러달라고 요청할 정도였고요.”
그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정기적으로 상선을 보낸다면 저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이문을 남겨야 하는 만큼 거래 조건이 박해질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오히려 함장은 이미 원주민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함장을 바라보았다.
“어? 그래? 말이 통하던가?”
“최소한 정기적으로 들러달라고 요청한 부족들의 경우는 말이 통했습니다. 일단 새남포 주변 원주민들 몇을 고용해 함께 탐사선에 태웠으니까요.”
“아하.”
그렇다면 이야기는 살짝 달랐다.
가장 좋은 것은 새남포 북쪽에 몇몇 거점을 세우는 것이지만 당장 그럴 여력은 없는 만큼 나중에 보고서를 확인한 후 새남포 북쪽의 원주민들을 위한 상선을 배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성국은 함장이 이번 탐사에서 경험했던 여러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허. 그래?”
함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자 함장은 신이 나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풍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확실히 조선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왜 그렇게 자연을 경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달까요?”
함장이 신이 나 열심히 설명하는 풍경은 바로 피오르였다.
이 피오르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길고 좁은 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형성 과정 때문에 피오르 지형에서는 조선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거대하고 웅장한 절벽과 협곡을 볼 수 있기에 함장의 이러한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되어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끙...그건 좀 부럽군. 나도 한번 구경해보고 싶긴 한데...새남포를 방문했을 때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 볼 것을 그랬어.”
“아. 전하께선 새남포에 이미 다녀오셨지요. 분명 새남포 근처의 풍경도 아름답긴 했지만, 그 북쪽의 해안가는 또 다른 느낌인지라...나중에 시간이 나신다면 한번 방문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함장의 말에 정성국은 툴툴댔다.
“끙...시간을 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함장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슬쩍 미소지으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다만...그만큼 복잡한 지형이라...제대로 된 해도를 그리려면 꽤 오랜 기간 탐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캐나다의 서해안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군도가 존재하는 무척 복잡한 지형이다.
그러한 지형을 탐사하는데 고작 탐사선 한 척으로는 어림도 없었기에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한 척으로 그 복잡한 해안선을 모두 탐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거야. 다만 계속 탐사선을 늘리고 해군 탐사대의 규모를 키울 생각이니 차분히 탐사하다 보면 가능하겠지.”
정성국은 함장에게 지원을 약속하자 그나마 함장의 안색이 펴졌다.
“그렇다면야 가능하겠지요.”
그런 함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해의 탐사는 이렇게 종료인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기에 바람이 차가워졌다고 느낀 순간 회항했습니다. 마침 원주민들과 교역할 물품이 거의 떨어지기도 했었고.”
함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씩 웃으며 그의 선택을 칭찬했다.
“좋은 선택일세. 괜히 무리하게 탐사를 진행하다 추위에 탐사대원들이 상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칭찬에 함장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럼 해도는?”
“여기 있습니다. 전하.”
함장이 미리 준비했던 해도를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꺼내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이를 펼쳐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자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남포 인근만 탐사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북쪽까지 탐사하긴 했네?”
워낙 복잡한 지형이었고 함장 역시 탐사에는 무척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이야기한 터라 새남포 인근만 그려진 해도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해도는 북미 서해안 전체가 그려져 있었다.
정성국의 이러한 반응에 함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형이 워낙 복잡한지라...제대로 탐사하면서 전하께서 일러주신 곳까지 가려면 무척 많은 시간이 소비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서 원주민들과 교역할 만한 물품이 떨어져 새남포로 회항했을 때 생각을 바꿔 일단 전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향해 그곳에서 탐사하며 내려온 겁니다. 그래서 이곳과 이곳의 지도만 정확한 거죠.”
그러면서 함장은 조심스럽게 티테이블 위에 올려진 해도의 남쪽과 북쪽을 가리켰다.
해도의 남쪽은 새남포 인근이었고 북쪽은 정성국이 언젠가 이곳까지 탐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던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위치였다.
이 두 부분 주변만 무척 상세한 지도였고 그 외에는 대충 선으로 그어진 것을 확인한 정성국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앵커리지를 직접 방문한 함장을 바라보았다.
“아하. 어쩐지. 그래. 이곳은 어땠나?”
정성국의 물음에 함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국이 이곳을 목표로 삼았기에 이곳까지 항해하긴 했지만, 솔직히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정성국이 대체 이곳을 왜 목표로 삼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
“음...그냥 황량한 황무지에 가까웠습니다.”
정성국은 함장의 표정에서 대충 상황이 짐작되었기에 피식 웃었다.
알래스카의 주도는 주노였지만 이 주노의 경우 피오르 지형의 안쪽에 위치한 터라 접근성이 최악이나 다름이 없었다.
분명 전생에서 이곳을 주도로 선정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주노의 위치는 거점 도시를 건설할 입지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차선으로 알래스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사는 앵커리지에 거점 도시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싶어 앵커리지의 위치를 찍어주었던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이 앵커리지는 미국이 러시아에게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후 철도 부설을 시작하면서 성장한 도시였기에 당장은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 그럼 이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도 없고?”
“음...아주 조그마한 원주민 부족 마을 몇 개 정도는 존재했습니다만...수가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흐음...그렇단 말이지? 그들과 접촉은 해보았나?”
함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흥미를 나타냈다.
“그렇습니다. 전하. 저들은 처음 보는 우리 탐사대원들을 무척 경계했습니다. 거기에 새남포에서 데려간 원주민들과도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그래서 예전 처음으로 이곳 북미 대륙에 도착했을 때처럼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요. 더불어 음식과 술도 대접했고요.”
함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크게 웃었다.
“푸하하. 예전 생각나는군.”
정성국의 대답에 함장 역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개척촌을 떠났을 때만 하더라도 섬에 들를 때마다 발견한 원주민들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내심 긴장하면서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었으니.
“예. 그랬지요. 아무튼, 그런 노력 탓에 첫 접촉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저희가 쌀과 밀을 비롯한 각종 식량을 제공했고 그 답례로 모피들을 꽤 받았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들과 거래한 모피의 질이 꽤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중요한 것은 모피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탐사대가 알래스카의 원주민들과 우호적으로 접촉한 만큼 이제 꾸준히 앵커리지에 배를 보내 꾸준히 이들과 교류하면서 황량한 앵커리지에 알래스카 원주민들을 불러모아야 했다.
‘꾸준히 상선을 보낸다면 결국 소문이 퍼지고 원주민들이 모이겠지.’
분명 알래스카에는 수많은 자원이 묻혀있는 자원의 보고이긴 했지만, 현재 북미왕국이 장악한 지역과 비교하면 환경은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북미왕국 다른 지역에 인구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었고 환경 자체가 다른지라 남쪽의 원주민들을 알래스카 지역에 이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만큼 알래스카의 개발은 결국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러시아가 알래스카에 방문하기 전이라 전염병과 각종 폭력으로 인해 원주민의 수가 줄기 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량이 풍족한 지역은 아니라 원주민의 수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오호. 그거 잘했군. 적당히 퍼주었겠지?”
“그럼요. 거래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잘했네.”
함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만족하자 함장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슬쩍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전하. 그곳을 왜 신경 쓰는 것인지...”
“아.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그곳에 제대로 된 거점 도시를 세울 생각이라 그러네.”
이에 함장은 살짝 자신이 직접 방문했던 지역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위치가 좀 애매하지 않습니까? 근처에 봉길 섬도 있고.”
“근처라...”
정성국은 함장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봉길 섬이 근처에 있긴 하지만 실제 거리는 1천 km가 넘는데 근처라고 표현하는 함장의 표현에 그만큼 북미왕국 사람들의 배포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함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실제 거리를 헤아려보고 자신도 모르게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하. 생각해보니 근처라고 하기엔 좀 멀기는 하네요. 다만 이곳에도 항구를 건설해 이주 선단이 정박하기엔 위치가 좀 애매하지 않은가 싶어서 말입니다.”
함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봉길 섬의 위치는 나쁘지 않은데...섬이 작은 편이라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그나마 식수는 아직까진 여유 있는 편이지만 언제 부족해질지 알 수 없으니...”
정성국의 말에 함장이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넘어오기 전에 알래스카를 확실히 장악할 목적이 더 컸지만 이를 지금 언급하긴 애매해서 대충 둘러댄 것이다.
“아. 그리고 다음에 이곳에 들를 때는 봉길 섬 주변의 원주민 중에 우리와 의사소통이 되는 원주민을 태워 방문해보게.”
사실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북방의 원주민은 크게 이누이트 족과 알류트 족, 그리고 유픽 족 세 부류로 나뉘는데 이들의 언어가 유사하기에 서로의 말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생각난 정성국은 이렇게 충고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봉길 섬의 원주민들이 바로 이 알류트 족이었으니.
“아.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이곳은 새남포 보다는 봉길 섬이 더 가깝네요. 알겠습니다. 전하. 내년에는 봉길섬에 먼저 들렀다가 방문하도록 하지요.”
“아.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교류할 필요는 없네. 당장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역량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