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167화 (167/850)

167화

“허어. 그래? 새진주에 조선소가 거의 완공되었다고?”

정성국은 슬슬 더위가 가실 무렵 집무실로 찾아온 개발청장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진주에 진출해 공사가 진행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조선소가 거의 완공된단 말인가.

가끔 보고서를 통해 공사의 진척 정도를 확인하고는 했지만 아직은 개발 초기나 다름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 개발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하다 알아차린 듯 물었다.

“새진주 건설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지?”

이에 개발청장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막 기초 공사가 끝난 상황이니까요. 다만 플로리다 지역까지 장악하려면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박을 건조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새진주의 기초 공사와 함께 조선소를 건설했습니다.”

새김포의 조선소에서 숙련된 장인과 노련한 일꾼이 합을 맞춰도 단기간에 선박을 건조하긴 어렵다.

헌데 새진주의 경우 주변 원주민들을 고용해서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 만큼 조선소에서 제대로 배를 건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최근에야 새김포의 조선소처럼 각종 선박을 건조하는 새남포의 조선소처럼 말이다.

그러니 개발청장은 새진주의 건설보다 조선소부터 우선하여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개발청장의 판단에 정성국은 손뼉을 쳤다.

처음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지 않고 청장들에게 일을 맡겨 여러 시행착오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청장들이 알아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니 정성국으로서는 편할 수밖에 없었다.

“오. 잘했네. 덕분에 시간을 좀 번 셈이군. 그럼 바로 선박 장인들을 보내면 되려나?”

정성국의 칭찬 때문인지 입이 귓가에 걸린 개발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소에 이미 선박 장인들이 지낼 공간까지 다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바로 장인들을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흐음...그래. 그럼 그건 내가 따로 연구청장에게 이야기해 두겠네. 헌데 그곳의 원주민들은 어떻다던가? 전에 듣기로는 꽤 우호적이라고는 들었는데...”

멕시코 원주민들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하는 만큼 새진주 주변 원주민들을 조선소의 일꾼으로 고용해야 했다.

그리고 전에 새진주가 건설될 지역에 탐사대와 경비대가 진출했을 때 주변 부족이 북미왕국이 정착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과 그 이후로 북미왕국에 관심을 보이며 새진주가 건설되는 지역에 자주 나타나 모피로 거래를 한다는 보고가 생각나 이들을 북미왕국에 끌어들일 생각으로 물었다.

헌데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입이 귓가에 걸려있던 개발청장의 얼굴이 확연하게 굳었다.

“어...원주민...말이지요? 그게...”

정성국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가 그의 표정이 굳은 것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의 표정이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으음...”

하지만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아끼는 개발청장의 모습에 정성국은 왠지 싸한 기분이 들어 다시 한번 재촉했다.

“개발청장.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정성국이 무게를 잡고 말하자 개발청장은 고개를 숙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정확하게 확인된 보고는 아닙니다만...새진주 근처의 원주민들에게...식인 풍습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뭐?! 식인 풍습?”

정성국은 식인이라는 말에 기겁해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 어찌 이를 숨길 생각을 했느냐는 표정으로 개발청장을 노려보다 문득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설마 우리 북미왕국 사람들이 저들에게 당한 건...”

“물론 아닙니다. 고정하시지요. 전하.”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손을 내저으며 그런 일은 아니라면서 개척단에서 올라온 보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헌데 최근 개척단 소속의 일꾼이 해가 질 무렵 원주민 마을 근처에서 이동하는 중에 원주민들이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신기함을 느낀 일꾼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먼발치서 계속 그 의식을 지켜보았는데 이 의식 도중에 원주민 부족들이 무언가를 조금씩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헌데 원주민 부족들이 먹던 무언가가 사람의 신체 같아 혼비백산한 일꾼이 급히 도망쳐 개척단으로 돌아와 보고했고.

이에 개척단에서는 일단 개발청장에게 보고를 올렸고 동시에 군사청과 외무청의 협조를 받아 주변 부족이 정말 식인을 한 것인지 확인하겠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에 개발청장은 확실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 확인이 된 후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며 정성국에게 사죄를 청했다.

정성국은 심각한 얼굴로 이를 듣다가 개발청장의 말이 끝나자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끄응...어떤 의식에서 식인 행위를 한 것 같다라...헌데 정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다 이거지? 그리고 우리 북미왕국의 백성이나 멕시코 원주민 중에 희생자도 없고?”

“그렇습니다. 전하. 만약 실종자가 존재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겁니다.”

개발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식인은 사회적인 행위로의 식인과 단순히 먹기 위한 의미로의 식인이 존재한다.

처음 정성국이 주변 원주민들에게 식인 풍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겁한 이유는 이들의 풍습이 후자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분명 에스파냐에 의해 멸망하기는 했지만, 근처에 아즈텍 제국이 존재했고 아즈텍 제국은 대규모의 인신 공양과 식인 행위가 존재했었으니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멕시코 지역의 원주민 문화와 북미 지역의 원주민 문화는 확연히 다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근처에 있는 만큼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발청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새진주 근처의 원주민 부족이 정말 식인을 했다면 이는 사회적인 행위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정 문화의 경우 죽은 자를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에게 머물거나 혹은 죽은 자의 지혜와 능력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러한 행위를 하곤 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인신 공양이라기보단 장례 풍습에 가까웠다.

물론 비슷한 생각에서 강한 자를 먹어 그 힘을 취하려는 경우도 존재하긴 했고 그 때문에 유럽의 탐험가들이 간혹 원주민에게 잡아먹히는 경우도 존재했다.

다만 이 경우는 새진주에 실종자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아닌 것 같았고.

북미왕국 주변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북미왕국의 병사들을 강한 전사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만약 이러한 경우라면 북미왕국 병사들과 충돌이 있었을 것인데 아무런 일도 없는 만큼 정성국은 정말 새진주 주변의 원주민 부족이 식인을 자행했다면 장례 풍습에 가까운 경우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무리 장례 풍습이라고 한들 이 행위를 용납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정성국은 기본적으로 원주민들의 풍습을 강제로 바꿀 생각은 없었지만, 북미왕국에 해가 되는 풍습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했다.

그렇기에 기존 원주민들의 장례 문화였던 풍장이나 조장 등을 위생 문제로 인해 금지한 것이었고.

특히나 이 경우는 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일단 식인은 금기였고 서양 기독교 윤리관에 벗어난 행위였다.

헌데 이러한 풍습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잘못하면 북미왕국에 식인 문화가 있다고 서양에 소문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최근 유럽에 문명국이라고 알려진 북미왕국의 명성에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운이 좋긴 했어.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 부족 중에 식인 풍습이 존재하는 부족은 없었으니. 문제는 과연 저들의 풍습을 바꿀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정성국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흐음...새진주 주변의 원주민들이 아코키사 족이라고 했던가?”

개발청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문제는 해안가 근처의 다른 부족들도 말과 문화가 비슷한지라...”

그러면서 개발청장은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고 정성국은 그런 개발청장을 보며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럼 해안가 근처의 다른 부족들도 이러한 식인 풍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더욱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다가 문득 설마 하는 표정으로 개발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텍사스 지역의 다른 부족들도 비슷한 문화는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전하. 텍사스 지역에서 가장 큰 부족인 카도 족들과 해안가의 부족들은 문화와 언어가 확연히 다릅니다. 또한, 코만치 족도 그렇고요.”

꽤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개발청장의 말에 그나마 안도한 표정을 짓는 정성국이었다.

그런 정성국에게 개발 청장은 현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 아코키사 족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가진 부족이 바로 새진주 동쪽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아타파카 족이라고 덧붙이며 다만 이들 역시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끙...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도 새진주에 가장 인접한 부족에 그런 풍습이 있을 줄은...거기에 새진주에 진출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이를 몰랐다니...”

정성국이 한탄하듯 중얼거리자 개발청장은 할 말이 없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이에 정성국은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엄밀히 말해 이 문제는 개발청장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

그저 아쉬워서 한 소리였을 뿐.

“아닐세. 어찌 보면 다행이긴 하군. 그렇게 시간이 흐를 동안 몰랐다는 소리는 일상적으로 식인을 즐기는 부족은 아니었다는 소리니...”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내심 동의하면서도 정성국이 어찌 대처할지 궁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저들을 어쩌시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일단 말을 아꼈다.

“글세...일단 정말 저들에게 식인 풍습이 존재하는지 확인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저들에게 정말로 식인 풍습이 존재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일단 대화를 통해 막아야겠지.”

그런 정성국의 대답에 개발청장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아코키사 족은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이 아니었기에 과연 대화로 저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저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글세. 모르겠군. 외무청 관리가 잘 설득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일단 외무청 관리를 통해 설득을 시도할 생각이었지만 정성국 역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싶기는 했다.

다만 저들을 설득할 하나의 카드가 있긴 했는데 바로 식인이 인체에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저들에게 강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전생에서도 이러한 장례 풍습으로 식인을 했던 뉴기니 섬에서 쿠루병이라고 불리는 인간 광우병이 발병해 속절없이 죽었으니 말이다.

몸의 근육에 통증이 생기고 안면 근육이 마비되어 결국 안면 근육이 일그러져 마치 웃는 듯한 얼굴을 보이며 1년 내로 사망하는 이 쿠루병의 원인은 식인 때문이었으니 이를 알리고 부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면 중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성국의 생각을 짐작하지 못하는 개발청장은 정성국의 대답에 다시 물었다.

“만약 외무청 관리가 설득하지 못한다면요? 설마 저들을 그냥 두고 보실 생각이십니까?”

개발청장 역시 식인 풍습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식인은 보편적으로 금기에 해당했고 이들 때문에 괜히 북미왕국이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

특히 새진주의 경우는 당분간 북미왕국의 동쪽 관문으로 서양의 상인들이 드나들 것을 고려해 구역을 나누어 건설 중인데 주변 원주민 부족에 식인 풍습이 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특히 북미왕국은 원주민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었기에 더욱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정성국 역시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한 개발청장은 정성국이 과연 어떻게 저들을 처리할지 궁금했기에 묻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난 이러한 행위를 결코 용납할 생각은 없네. 그러니 아마...저들은 결국 우리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할 걸세.”

원주민을 선제공격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 정성국이었으나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었기에 정성국은 생각했다.

‘뭐...정 설득이 어렵다면 탐사대 전체를 동원해 물리적으로 설득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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