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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65화 (165/850)

165화

정성국은 어미의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정안문과 정나리를 보고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정나리는 푸른 안개가 고심 끝에 지은 하얀 들꽃의 아기 이름이었다.

슬쩍 듣자니 손녀딸의 이름을 하얀 들꽃과 마찬가지로 꽃 이름을 따 지으려고 알아본 끝에 백합의 순우리말인 나리로 정했다고 한다.

하얀 들꽃과 전아라 모두 좋다며 호평했고 정성국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아기의 이름은 정나리가 되었다.

정성국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기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자 전아라가 슬쩍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슬슬 일하러 가셔야죠.”

“으...알긴 아는데...”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계속 품 안의 아기들을 보고 슬쩍 통통한 볼이나 팔을 톡톡 찌르는데 정신이 없었다.

이를 보고 하얀 들꽃은 미소지으며 전아라를 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아기들을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에 정성국은 정안문의 포동포동한 팔을 쿡쿡 찔러대며 말했다.

“아기들은 이쁘고 귀엽잖아. 거기에 얘들은 내 자식들이고. 그래서 그런지 더 예쁘고 귀엽게 보인단 말이지? 그러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볼 수밖에.”

그런 정성국의 말에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다시 한번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계속 미적거리며 아기랑 노닥거리는 정성국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결국 정성국은 두 부인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집무실에 도착해 쌓였던 보고서를 처리하며 중얼거렸다.

“애들은 금방 큰다던데...더 크기 전에 사진기부터 개발해봐야겠다. 근데 사진기의 원리는 대충 알지만, 이걸 지금 만들 수는 있으려나? 흐음...”

그렇게 정성국은 보고서를 처리하다 말고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전하.”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개발청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꽤 오랜만이군. 그래. 잘 다녀왔나? 날도 더운데 더위가 좀 꺾이면 움직일 것이지.”

최근 개발청장은 철도 공사현장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한창 더울 시기에 새나주까지 다녀왔다.

다행히 개발청장의 안색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슬쩍 그을린 피부 덕분에 건강해 보이긴 했지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살짝 타박하는 정성국이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개발청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뭐 조선에 비하면 덥긴 한데 이미 익숙해서요. 그나마 전하의 걱정 덕분에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새한성에서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골골대던 느낌이었는데 현장에 다녀오니 오히려 생기가 가득한 모습이라 정성국은 가끔은 개발청장을 현장에 내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현장은 어떻던가?”

정성국이 묻자 개발청장이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공사는 보고서에 적혀있는 대로 무척 순조로웠습니다.”

“오! 그래?”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에 반색하자 개발청장인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미 철도 부설의 9할 이상이 끝났습니다.”

“허어...벌써?”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에 살짝 놀랐다.

처음 공사 예상 기간도 그렇고 보고서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는 철도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미 9할 이상의 철도 부설이 끝났다면 곧 철도 공사가 완공된다는 뜻 아닌가.

생각해보면 이미 철도 부설이 시작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보통 철도 공사의 경우 직접적인 공사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러 문제 때문에 시간이 소비하는 편이었지.

하지만 북미왕국은 어차피 땅은 모두 국가 소유였을뿐더러 실제 철도가 깔리는 대부분 지역은 황무지나 다름없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거기에 공사 자체도 개발청에서 직접 진행했고.

그러니 철도 노선을 정하자 곧바로 공사에 돌입했고 공사 환경 자체도 전생의 대륙 횡단 철도처럼 일직선으로 산맥을 넘어야 하는 난공사가 아닌 철도 노선을 깔기 쉽게 경사까지 고려해 정한 노선이었기에 무척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무척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된 것이다.

아마 북미왕국에 인력과 물자가 충분했다면 더 빠르게 철도 부설을 끝낼 수도 있었다.

전생에 북미 지역에 깔렸던 대륙 횡단 철도는 6년간 약 2800km가 깔렸고 이 대륙 횡단 철도는 여러 난공사 구간이 많았다는 것까지 고려해보면 평지에 설치된 새한성과 새나주 사이의 430km의 철도 건설은 무척 느린 편이었다.

특히 비슷한 환경에서 철도를 깔았던 동부 유니언 퍼시픽은 일꾼들이 어느 정도 숙련되자 하루에 4.8km씩 철도를 쭉쭉 깔았다고 하니 이와 비교하면 무척 느린 편이었다.

이를 생각하자 정성국은 북미왕국의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 공사 자체가 늘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추후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의 철도 부설은 충분히 준비한 후에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개발청장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미 철도 부설의 9할 이상이 끝났습니다.”

개발청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정성국은 이미 9할 이상 끝난 공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기에 고민하던 기색을 지우고 밝은 표정으로 개발청장을 바라보며 기대하듯 이야기했다.

“그럼 이제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 바로 기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겠네?”

이에 개발청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난색을 보였다.

“그건 어렵습니다. 아직 모두 완공된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9할이면 새나주 근처까지는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전혀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예정된 경로를 따라 평지에는 철도를 모두 부설했습니다만...문제는 아직 교량의 건설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성국은 기다란 교량을 건설할 엄두가 나지 않아 새김포가 아닌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 철도를 부설하기로 했지만, 실제 노선을 정하면서 확인해보니 새한성과 새나주 사이에도 의외로 자잘한 하천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북미왕국 백성들이 흔히 흰머리산맥이라고 부르는 전생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수원지로 하는 하천들이었다.

이 하천 덕분에 캘리포니아의 중앙 평원은 무척 비옥했지만, 그리고 이 하천들과 이 하천이 연결되는 강 덕분에 내륙까지도 물자 운송이 편했지만, 반대급부로 철도를 깔기 위해 수많은 교량을 건설해야 했다.

그나마 한가지 북미왕국에 다행인 점이라면 하천의 상류인지라 폭이 큰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철도 노선을 정할 때 하천의 폭도 고려해 노선을 정하기도 했고.

이를 알고 있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슨 소린지 알겠네. 설치하기 쉬운 평지 부분은 모두 철도를 깔았는데 아직 교량 건설이 마무리되지 않아 철도 노선 곳곳이 끊겨 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전하.

개발청장이 끄덕이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개발청은 이 수많은 하천에 단단한 석조 교량을 건설하려 했다.

문제는 이 석조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닐뿐더러 생각외로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특히 교량 위에 철도가 깔리고 그 무거운 쇳덩이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개발청에서는 엄청나게 튼튼하고 거대한 석조 교량을 건설하려 들었기에.

물론 교량을 튼튼하게 짓는 것 자체야 반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석조 교량을 짓겠다고 수년을 허비할 수는 없었던 정성국은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개발청의 장인들에게 트러스교(truss bridge)의 구조를 알려주며 이를 만들어 시험해보라고 지시했다.

트러스교는 간단하게 말해서 수많은 삼각형으로 하중을 분산시키는 교량 구조를 의미했는데 흔히 서부 영화에서 나오는 험한 지형에 나무로 만든 긴 교량이 바로 이 구조였다.

처음 정성국이 설명할 때만 하더라도 거대한 쇳덩이인 기차와 그 화물의 무게를 어찌 나무로 만든 교량 따위가 버틸 수 있겠느냐며 펄쩍 뛰던 장인들이었다.

하지만 정성국의 제안대로 일단 실험 삼아 축소한 모형을 직접 만들어 하중을 가해 보았고 장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 안정적으로 하중을 견뎌낸 모형이었다.

이에 머쓱해진 장인들이 결국 이 새로운 구조로 교량을 만들기로 하고 연구하며 여러 모형을 만들어 시험한 후 철도가 연결된 가장 가까운 하천에 실제로 이 새로운 구조의 교량을 건설했다.

그리고 연구청에 이야기해서 실제 기차를 이 교량 위에 올려두는 실험까지 진행했고.

이는 정성국이 직접 결재했던 사안이었기에 정성국 역시 실험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관사가 무척 불안해했었다지?’

그나마 개발청의 장인들은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나무로 만든 교량이 충분히 기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실제 기차를 교량 앞까지 끌고 왔던 기관사는 나무로 만든 교량을 실제로 보고 무척 불안해하며 기차를 움직이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쇳덩이가 저 나무다리 위에 올라가는 순간 다리가 무너질 거라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기관사를 설득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겨우 설득한 기관사가 조심스럽게 기차를 움직여 교량 위에 기차를 올려두었지만, 교량은 기차의 무게를 가뿐히 버텨냈다.

이 광경을 보고 개발청의 장인들과 일꾼들은 환호를 멈추지 못했다고.

기관사는 나무로 만든 교량 위에 기차를 세워두고 그래도 불안했는지 곧바로 기차에서 내려 한참을 불안한 시선으로 교량을 바라보았지만, 교량은 흔들림 없이 기차의 무게를 버텨냈기에 머쓱해 하며 장인들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 후 빈 기차가 아닌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 다시 실험했지만, 나무 교량은 충분히 기차와 화물의 무게를 견뎌냈고 그렇게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후 대대적으로 하천 곳곳에 동시에 교량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이 새로운 방식의 교량 건설이 빠른 편이라고는 하나 그렇게 연구와 실험을 거쳐 노선 전체의 하천에 건설되었기에 아무래도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아직 이 교량 건설이 끝나지 않았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아무래도 공사가 시작되고 곧바로 교량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실험까지 끝난 후에 모든 하천에 일제히 교량의 건설을 시작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그럼 교량을 모두 건설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려나? 그럼 예정된 기한은...”

정성국의 물음에 개발청장은 그나마 밝은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가 직접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확인한 결과 생각외로 교량 건설의 진행이 빠른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이 새로운 구조의 교량은 빠르게 건설할 수 있어서 좁은 하천은 거의 완성단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

“예. 그러니 아마 올해 안에 교량 건설이 완료되어 철도 부설 전체가 완료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 기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죠.”

개발청장의 확답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드디어! 그러면 이곳에서 새나주까지는 한나절이면 오갈 수 있겠군?”

“그럴 겁니다. 전하.”

“오오...”

정성국은 예전 새나주를 방문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또한, 드디어 북미왕국 내륙에 철도가 깔리고 기차가 철도 위를 달리며 북미왕국 내륙 지역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중앙 평원 전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고.

하지만 감격에 빠져 정신줄을 놓지 않은 정성국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아. 하지만 알지? 당장은 급해서 나무로 교량을 만들게 했지만 내구도를 생각하면 길게 사용하진 못할 거야. 그리고 이 구조는 보수하기도 힘들고. 그러니 개발청에서는 계속 교량 축조 기술을 연구해 발전시켜야 할 걸세. 그리고 나중에 더 튼튼한 교량을 옆에 건설해야 할 테고.”

당장은 급했기에 나무를 사용해 트러스교를 건설했지만 그만큼 단점도 존재했기에 이를 언급하며 개발청장에게 훗날을 대비하도록 했다.

특히 계속 교량 건축 기술이 발전해야 나중에 새한성과 새김포를 잇는 철도 노선을 부설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에 개발청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이미 장인과 연구원 몇을 빼서 교량만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설계하는 조직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언젠가 새한성과 새김포도 철도로 연결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오! 그래! 바로 그거지! 그럼 개발청만 믿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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