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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64화 (164/850)

164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와 더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마쓰마에 항에서 잉글랜드의 선박을 기다리고 있던 원상소속의 중년 사내는 제임스의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그런 중년 사내의 반응에 제임스는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야 계속 북미왕국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상황?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졌길래 이러는 겁니까?“

의아해하는 중년 사내에게 제임스는 이때다 싶어 잽싸게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굳이 숨길 이유는 아니니 말씀드리죠. 작년까지 본국에서 저지대 놈들. 아. 네덜란드라는 나라를 우리는 저지대 놈들이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그 저지대 놈들과 전쟁을 해왔는데...이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대체 유럽의 전쟁이 지금 이 거래와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중년 사내는 일단 유럽의 최신 정보를 획득할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쳤다.

“저런...애도를 표합니다. 헌데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해서 저들과 협상 끝에 종전 협상을 했습니다만...그 협상이 문제입니다.”

제임스의 말에 중년 사내가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중년 사내가 대충 상황을 짐작한 듯 하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조약 내용 중에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는 막부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한다는 부분이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잉글랜드는 중간 경유지인 나가사키 지역에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허어...”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중년 사내가 당황했을 때 제임스가 덧붙였다.

“차선으로 저 남서쪽에 있는 마카오란 항구에서 보급을 받고 이곳까지 항해하는 것도 고려했습니다만...과연 이를 저지대 놈들이 그냥 두고 볼까 싶기도 했고요.”

제임스의 말에 중년 사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중년 사내는 원상소속으로 마카오도 한번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만큼 이들이 마카오에 출입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보급하고 이곳까지 오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서양 함선은 네덜란드의 배들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발각되면 아무래도 위험하지요.”

이에 중년 사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아마 당신들의 배가 저들에게 발각되면 공격할 거다? 그런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임스의 확답에 중년 사내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정성국에게도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기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어...그럼 당신네와는 이렇게 거래가 끝이군요?”

그리고 제임스는 그런 중년 사내의 말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후우...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에 중년 사내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잉글랜드의 선박이 이곳까지 오지 못할 뿐이지 원상의 배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런 만큼 잉글랜드가 마카오까지는 올 수 있다면 원상에서 도자기를 마카오까지 가져가서 거래를 진행하면 되긴 했다.

거기에 최근 북미왕국에서 쾌속선이 건조되어 시범 항해 차 포로나이까지 왔었고 이때 북미왕국의 여러 소식과 더불어 앞으로 원상의 운영 방침에 대해서 전해진 것을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이에 어떤 방법이 북미왕국에 이득일 것인지 고민하는 중년 사내였고 그런 중년 사내의 모습에 제임스는 희망을 발견한 것인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중년 사내가 생각을 끝내고 고개를 들자 자신을 바라보는 제임스의 눈빛에 움찔했다.

“크흠...꼭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년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임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역시!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그런 제임스의 반응이 부담스러웠던 중년 사내는 곧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마카오에서 거래하는 겁니다.”

“마카오? 아. 당신들도 마카오를 알고 있었군요? 그럼 당신들이 직접 마카오까지 도자기를 배달하겠다는 뜻입니까?”

제임스는 중년 사내의 말에 반색했지만,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북미왕국을 방문하는 믿을만한 상인이 몇 명 있고 그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그런 만큼 중간에 이들에게 쥐여줄 이문까지 고려하면 도자기의 가격은 더욱 오를 겁니다만 이건 감수해야겠죠.”

물론 믿을만한 상인은 당연히 원상이었다.

“으음...그거야 어쩔 수 없겠지요.”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하는 제임스였다.

비록 북미왕국이 직접 도자기를 마카오까지 가져오는 것보다는 중간에 다른 상인이 끼어들면 도자기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는 점은 제임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잉글랜드였으니 어쩌겠는가.

‘빌어먹을 저지대 놈들 때문에.’

제임스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중년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두 번째는...지금처럼 다른 곳에서 우리 북미왕국과 직접 교역하는 겁니다.”

중년 사내의 말에 제임스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제임스 역시 인도에 돌아갔을 때 본국의 여러 소식을 접했고 개중에는 북미왕국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제임스가 처음 북미왕국과 접촉했을 때만 해도 북미왕국은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국가였다.

하지만 이번에 인도에서 본국과 유럽의 소식을 파악하려다 보니 최근 북미왕국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혹시 자신의 발견이 유럽에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어 흥미를 갖고 이에 관한 내용을 수집했던 제임스였다.

그리고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을 확인하면서 제임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각과는 달리 북미왕국이 유럽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자신이 아니라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북아메리카 지역 전체를 획득했기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분명 수준 높은 도자기를 생산하는 만큼 문명국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여 승리할 정도라면 강국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

이에 제임스는 북미왕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 애썼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해군력이 강하다는 정보와 더불어 잉글랜드인들은 이 북미왕국은 아시아의 청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여긴다는 점과 이 때문에 북아메리카 동해안으로 보내던 이주민들을 당분간 서인도제도로 보낸다는 소식 정도였다.

그 소식은 잉글랜드의 고위 귀족들도 북미왕국을 쉽게 보지 못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제임스가 무척 놀라기도 했고.

더불어 계속 교역을 유지한다면 언젠가 북미왕국 본토에 직접 방문할 수 있을 텐데 저지대 놈들 때문에 망했다며 분노하기도 했었다.

헌데 그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에 제임스가 중년 사내를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북미왕국 본토로 말입니까?! 그렇다면 나쁠 것은 없지요! 북미왕국에서 제대로 된 해도만 제공해준다면 마카오에서 북미왕국의 항구로 직접 배를 이끌고 가겠습니다!”

급발진한 제임스의 대답에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음...그 항로는 조금 어렵고요...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그러면서 중년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이에 제임스는 안절부절못하며 중년 사내를 기다렸고.

잠시 후 중년 사내가 돌돌 말린 지도를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펼쳐두었다.

제임스는 드디어 북미왕국의 지도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했지만, 막상 중년 사내가 펼친 지도는 서인도제도 서쪽의 멕시코만 일대가 그려진 지도였다.

이에 제임스는 지도를 보고 살짝 맥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이곳은 멕시코만...입니까?

”그렇습니다.“

중년 사내는 그런 제임스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근 북미왕국은 에스파냐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그 대가로 멕시코 지역에 그은 국경선 이북의 모든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러한 중년 사내의 발언에 제임스는 움찔했다.

아마 유럽 사정에 어두운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북아메리카 지역 전체를 자신의 땅으로 여기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의 조국인 잉글랜드와의 충돌도 불가피하니 말이다.

“...어...그건...”

중년 사내 역시 제임스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만 유럽 사정에 무지한 척할 뿐이지 진실로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중년 사내는 못 들은 척하며 손을 들어 멕시코만 북서쪽에 새진주가 건설되는 위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최근 이곳에 새로운 북미왕국의 항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곳으로 방문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으음.”

중년 사내의 말이 끝나자 제임스는 방금의 중년 사내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잊고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잉글랜드 본토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프리카를 빙 돌아 인도를 거쳐 동남아를 지나 이곳 홋카이도까지 도착하는 것보다 대서양을 지나 서인도제도에서 직접 멕시코만 안쪽으로 들어가는 항로가 더 가까웠다.

또한, 저들이 새롭게 건설하는 항구와 가까운 곳에 잉글랜드의 섬이 존재했고.

플로리다반도 동쪽에 위치한 바하마 제도나 쿠바 남쪽의 자메이카 섬은 잉글랜드의 소유이고 지속해서 상선이 오가는 만큼 차라리 이쪽을 통해 북미왕국의 항구로 이동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긴 했다.

문제라면 역시 아까 중년 사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전부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훗날엔 북미왕국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이 생각난 제임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쩐다...지금 내가 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만약 이들에게 에스파냐가 북미왕국을 속인 것이라고 알리고 북아메리카의 현재 상황을 알린다면 이들이 어찌 반응할지 감이 안 오는 제임스였다.

‘이들이 에스파냐에 분노하면 나쁠 것이 없는데...아니라면 괜히 이들이 왜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느냐며 교역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그럼 이건 일개 선장인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야. 일단 본국에서 결정이 내려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임스는 이들에게 아카풀코 조약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를 애써 누르며 속으로 에스파냐를 욕했다.

‘빌어먹을 광신도 놈들. 나중에 이들의 반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사기를 친 건지. 쯧.’

그때 제임스의 귓가에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글랜드의 본토는 유럽에 있으니 거리를 생각하면 차라리 두 번째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정신을 차린 제임스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이것 역시 자신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긴 합니다만...이건 제 선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중년 사내도 이해는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일단은...당분간 마카오에서 거래하는 방식으로 교역을 해야겠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다면야...알겠습니다. 그럼 당분간은 마카오에서 거래를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러면서 중년 사내는 제임스에게 거래 방식과 물량, 그리고 원상이 이 거래를 대리할 것임을 알렸다.

이에 제임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상...이요?”

“예. 제가 듣기로는 조선의 상단으로 가끔 이곳에도 들르고 마카오에도 들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허니 이 일에 적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년 사내의 말에 제임스는 처음 듣는 상단이라 껄끄럽긴 했지만, 미리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뭐 어차피 거래는 마카오에서 도자기의 실물을 확인한 후 거래하는 방식이니 큰 문제는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계속 당신들과 거래를 하게 되었으니 커피를 구하고 싶습니다만...”

중년 사내의 말에 제임스는 크게 웃었다.

처음에 커피 묘목과 함께 커피 열매를 가져왔을 때는 심드렁한 눈치였기에 미래를 생각하고, 가지고 온 커피를 모두 선물로 넘겼는데 그 결과 저들도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 이렇게 커피를 구하게 되었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얼마나 말입니까? 한 척으로 되겠습니까?”

중년 사내는 여러 척의 배에 커피를 왕창 싣고 올 것 같은 제임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 일단은 한 척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알겠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교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중년 사내와 헤어지면서 제임스가 넌지시 충고했다.

“헌데...그 에스파냐 놈들을 너무 믿지는 마십시오.”

이에 중년 사내는 그저 의아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멀뚱히 바라보았고 제임스는 다시 한번 충고한 후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로선 나중을 생각해 이렇게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이 다였다.

제임스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중년 사내는 표정을 바꾸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사기꾼놈들을 믿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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