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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62화 (162/850)

162화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한창 여러 보고서를 확인하며 결재하고 있을 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호위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했다.

“전하. 선착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호위대장을 보고 반색했다.

“그래? 드디어 도착했다던가?”

“그렇습니다. 전하. 선착장으로 행차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바로 마차를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호위대장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정성국을 들고 있던 보고서를 재빠르게 훑어본 후 큰 문제가 없다 싶었는지 결재를 하고 곧장 의자에서 일어났다.

“후후후. 드디어 건조되었단 말이지?”

정성국이 이토록 기다리던 선박은 바로 쾌속선이었다.

처음 이 쾌속선을 최주명에게 건조해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꽤 쉽게 생각했었다.

더불어 박기동이 450마력에 가까운 새로운 증기기관을 개발하기도 했기에 뚝딱 건조할 수 있을 줄 알았고.

하지만 쾌속선의 건조는 의외로 난관이 많았다.

속도를 위해 장폭비를 기존의 선박에 비해 키우다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건조한 쾌속선도 시험 항해로 먼바다로 나가 한번 항해한 후 선체에 손상이 가서 수리해야 했고 이 때문에 부랴부랴 뒤늦게 선체를 보강하려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결국 눈물을 머금고 건조되었던 쾌속선을 해체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최주명을 비롯한 여러 조선 장인들이 충격을 받고 쾌속선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꼼꼼하게 제작하느라 생각보다 건조가 늦어졌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쾌속선이 건조되었고 이 쾌속선은 이미 시험 항해까지 마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기에 새한성으로 보내진 터라 정성국은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 * *

“와우...생각보다 멋진데?”

정성국이 마차에서 내려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생소한 배를 보고 감탄하고 있을 무렵 선착장 안쪽에서 최주명이 정성국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정성국은 쾌속선을 바라보다 최주명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린 후 순간 움찔거렸다.

전에 보았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퀭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모습을 한 최주명이었기에.

“아. 네가 직접 왔구나. 근데 어째...얼굴이 반쪽이구나? 괜찮은 게냐?”

정성국이 그를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바라보자 최주명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예. 괜찮습니다. 최근 조금 무리한 터라...”

정성국이 보기엔 잠깐 무리한 정도가 아닌 것으로 보였기에 혀를 찼다.

“쯧쯧...일에 열심인 것도 좋다만 건강은 챙겨야지. 나중에 원상을 통해 홍삼이라도 구해야겠구나.”

“하하하...”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은 힘없이 웃었고 그런 제자를 보고 정성국은 원상을 통해 홍삼을 비롯한 각종 보양식을 사서 제자들과 장인들에게 우선하여 공급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시선을 쾌속선으로 돌렸다.

자꾸 눈길이 갈 정도로 멋지게 빠진 녀석이었기에.

“그래. 이 녀석이 바로 그 쾌속선이로구나? 헌데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이거 정말 천 톤이 안 되냐?”

정성국이 이렇게 묻는 것은 이 쾌속선의 길이가 지급 함선보다도 살짝 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성국의 질문에 최주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700톤급의 함선이죠.”

“그런데 돛을 5개나 달았다는 거지?”

정성국이 눈앞의 쾌속선이 지급 함선보다 크다고 느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장폭비를 조절해 지급 함선보다 조금 길었고 돛도 5개가 달려있었으니 옆에서 얼핏 보기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천급 기범선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달까.

정성국이 자신이 설계한 배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최주명은 슬쩍 미소지으며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예. 거기에 450마력의 증기기관 2개를 장착시켰습니다.”

기다란 선체에 5개의 돛과 450마력 증기기관 2개가 장착되었다는 소리에 정성국은 다시 한번 탄성을 질렀다.

“크으...이렇게 듣기만 해도 대단하긴 한데...실제 속력은 얼마나 나오더냐?”

정성국이 묻자 최주명은 슬쩍 가슴을 펴면서 말했다.

“최고 27노트까지 나오더군요.”

“27노트!?”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은 기겁했다.

빨라도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보통 북미왕국의 함선들이 평균 10노트로 운항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성국의 눈앞에 있는 선박은 정말 쾌속선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예. 물론 바람이 도와주고 증기기관도 최대한 돌렸을 때의 일이라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그래도 평균적으로 22노트는 충분히 나옵니다.”

“22노트라고?! 잠깐만! 그러면...”

평균 20노트로 가정했을 때 새남포에서 포로나이까지 10일 안에 주파할 수 있었다.

헌데 그보다 평균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더 빠르게 새남포와 포로나이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정성국이 놀라 최주명을 바라보자 최주명은 그런 정성국의 눈길을 즐기면서 씩 웃었다.

“예. 계산상으로는 새남포에서 포로나이까지 8일이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허어...”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은 멍하니 눈앞의 길쭉한 쾌속선을 바라보았다.

새남포와 포로나이 사이를 8일 만에 주파하다니.

처음엔 무척 놀라 멍하니 쾌속선을 바라본 정성국이었지만 차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쾌속선이 그런 속도를 내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19세기에 등장한 범선의 마지막을 장식한 속도를 위해 적재량을 포기했던 클리퍼의 경우 평균 16노트에 최고 22노트까지 나오긴 했었으니 비슷한 설계 사상에 증기기관까지 장착한 쾌속선이 저런 속도를 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증기기관까지 장착했는데 속도가 저것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아직 북미왕국 건조기술이 19세기 수준까지 도달하진 못했다는 뜻이라는 생각에 표정이 살짝 미묘해지려는 찰나 정성국의 귓가에 최주명의 뿌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습니까? 스승님? 이 정도면 쾌속선이라 부를만하지요?”

이에 정성국은 생각을 멈추고 퀭한 표정의 최주명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한 최주명을 칭찬해주었다.

“그럼! 이야...그 정도 속도면 이거 타고 새김포까지도 금방 아닌가? 그치? 나도 오랜만에 새김포나 다녀올까?”

쾌속선을 타보고 싶은 마음에 잠깐 시간을 내서 새김포에 다녀올까 생각하는 정성국을 보고 최주명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강에선 제대로 속도를 내기 어려우니 그건 좀...”

“아...그래? 그건 좀 아쉽군.”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은 살짝 아쉬웠지만, 강에선 제대로 속도를 내기 힘들다는데 어쩌겠는가.

이에 정성국은 붙잡고 있던 최주명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며 물었다.

“무장은 없지?”

“예. 솔직히 워낙 속도가 빨라서...속도로 도망치면 그만이라 굳이 화포를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뺐습니다.”

최주명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른 선박보다 우월한 속도로 내빼면 그만인데 굳이 무거운 화포를 장착할 필요가 없긴 했다.

더불어 당장 쾌속선이 항해하는 항로는 북방항로였으니 공격받을 일 자체가 없을 것이고.

거기에 당장은 1함대의 경우 에스파냐를 견제하기 위해, 3함대의 경우 막부를 견제하기 위해 새진도와 마쓰마에 항에 함대 대부분을 묶어놓고 있었지만, 점차 함대가 증강되면 북방항로 곳곳에 분함대를 창설해 바다를 순찰할 계획이었으니 쾌속선에 무장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하긴...그렇긴 하지. 그럼 바로 양산하는 건가?”

정성국의 질문에 최주명은 살짝 머리를 긁적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일단 저 한 척을 더 운용해보고 별문제가 없으면 양산했으면 합니다만...”

정성국은 최주명의 약한 모습에 크게 웃어댔다.

“푸하하하. 이전의 쾌속선을 한번 운용해보고 결국 해체한 게 충격이 크긴 컸나 보네?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정성국의 지적에 울적한 표정을 한 최주명이 고개를 숙였다.

“으...좀 그랬죠.”

“그래도 저건 시험 항해를 마쳤잖아? 그리고 별문제 없었고? 아니야?”

정성국의 말에도 최주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요.”

정성국은 최주명과 장인들을 믿었지만, 안전을 위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쾌속선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뭐 그렇다면야. 어차피 당분간은 이주 선단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아도 크게 상관은 없으니...”

정성국의 허락에 최주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런 최주명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일단 실제로 포로나이까지 왕복해서 배를 띄워보고 실제로도 계산처럼 8일 안에 오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그리고 그 이후에 쾌속선의 상태를 확인하고 별문제 없으면 양산에 들어가도록.”

“알겠습니다. 스승님.”

* * *

정성국이 최주명을 배웅하고 마차를 타고 궁궐로 돌아와 마차에서 내렸을 때 궁궐의 분위기는 꽤 어수선했다.

이에 의문을 느낀 정성국이 시녀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 위해 급히 움직이는 시녀를 붙잡자 시녀는 정성국을 보고 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외쳤다.

“전하! 하얀 들꽃님의 산통이 방금 시작되었습니다!”

시녀의 말에 정성국은 기겁했다.

“뭐라고? 알았다!”

동시에 정성국은 호위대장을 뒤로하고 곧장 궁궐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정성국은 안쪽으로 빠르게 달리면서 내심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아직 산달까진 조금 남았었기에 혹시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정성국이 급하게 응접실로 들어오자 응접실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김 의원이 정성국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전하. 출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차분한 표정의 김 의원을 보고 정성국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궁궐로 돌아와 소식을 듣고 이렇게 뛰어왔네. 헌데 하얀 들꽃의 산통이 시작되었다니 정말인가? 하얀 들꽃의 산달은 아직 조금 남지 않았나?”

정성국의 걱정에도 김 의원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예정일에서 고작 1주 정도 빠르게 아기씨가 나오는 것뿐입니다. 전하. 이 정도 오차는 큰 문제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의원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나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휴우. 그렇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전하는 매번 이렇게 긴장하시는군요.”

그러면서 슬쩍 미소짓는 김 의원을 보고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끙...익숙해지긴 어려울 것 같네. 그리고 하얀 들꽃도 초산 아닌가.”

아무래도 초산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리 덧붙이자 김 의원은 슬쩍 웃었다.

“이번에도 별문제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야지. 헌데 아라는 어디 있는가?”

아라와 하얀 들꽃의 사이는 아라가 임신한 이후 무척 좋아졌고 하얀 들꽃까지 임신한 이후에는 친자매보다도 가깝다고 시녀들이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응접실에 당연히 아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라가 보이지 않아 의문을 나타내자 김 의원이 대답했다.

“하얀 들꽃님의 산통이 시작되었을 때 아라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해서 하얀 들꽃님이 분만실로 들어가시고 아라님 역시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정성국도 분만실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전아라와 마찬가지로 하얀 들꽃도 정성국이 분만실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아라의 출산 때와는 달리 하얀 들꽃의 경우 아라가 함께 분만실로 들어갔으니 하얀 들꽃이 그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아...그래?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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