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좋냐? 아주 입이 귀에 걸렸구나.”
정성국은 활짝 웃고 있는 정평국을 보고 타박했다.
이에 정평국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밝은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드디어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당연히 좋지요.”
“녀석 참...”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의 어느 날, 드디어 정평국이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인 상대는 원주민 출신 여인으로 정성국이 정평국에게 맡긴 커피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라고 지시했었던 찻집에서 근무하는 여성이라고 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정성국은 정평국을 불러들여 혹시 정치적인 이유로 일부러 원주민 여성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그런 정성국의 물음에 정평국은 그런 것은 애초에 고려한 적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정성국은 흥미가 생겨 캐묻자 정평국도 처음엔 그냥 활동적이고 밝은 여인이라고만 느꼈을 뿐이지 별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찻집에 들렀을 때 노을이 질 무렵 찻집에서 커피를 내리는 연습을 하던 그녀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나.
그 이후로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서 자주 찻집에 들러 그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고.
그러다 전아라가 아이를 생산했고 가족이 탄생했다는 것에 기뻐 어쩔 줄 모르던 형 정성국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에 진지하게 이 여성과 교제를 했다고 한다.
이를 다 듣고 너무 급히 혼인하는 것 아닌가 싶긴 했지만 서로 좋다는데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이었다.
실제 정평국과 혼인할 여성을 만나본 결과 생각보다 당찬 면도 있었고 거기에 정평국을 바라보는 눈빛에선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으니.
또한, 정평국과 함께 정성국과 왕실의 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궁궐에 입궁했을 때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전아라와 하얀 들꽃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는지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면서 한목소리로 이야기할 정도였고.
그때 전아라가 정성국에게 다가왔다.
“오라버니.”
“아. 왔어?”
전아라는 정성국의 팔을 붙잡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동서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전아라의 말에 정평국이 실실 웃자 정성국은 그런 동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어쭈. 아주 좋아 죽네.”
“하하하.”
이번 혼례는 정평국이 사는 저택 뒤의 공터를 적당히 꾸며 그곳에서 혼례를 올리기로 했고 이에 정성국과 전아라만 참석했다.
아무래도 하얀 들꽃은 슬슬 거동이 불편한 시기였고 안문이는 아직 아기였기에 함부로 바깥바람을 쐬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 사실을 뒤늦게 접한 호위대장은 기겁했지만, 동생의 혼례에 참석하려는 정성국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불어 정평국 역시 북미왕국 왕가의 일원이었고 이 혼례에 참석하는 여러 고위 관리들도 존재했기에 어차피 주변 경계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큰 상관은 없다고 정성국이 여긴 탓이다.
결국, 호위대장은 호위대를 총동원한 것도 모자라 경비대의 도움을 받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렇게 혼례가 열리는 정성국이 사는 저택 주변을 호위대와 경비대가 철통같이 지키는 가운데 정성국의 혼례가 시작되었다.
이번 혼례는 최근 북미왕국에서 유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최근 북미왕국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간단하게 교배례(交拜禮)만 진행하고 연회를 열곤 했다.
교배례는 신랑과 신부가 마당에 꾸며진 초례청에서 서로를 상견하고 신랑과 신부가 상대방에게 절을 하며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절차였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결혼식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 정성국이 이를 알고 무척 당황했었는데 현대의 결혼식과도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북미왕국에서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척 낮은 편인데 왜 조선인들의 전통 혼례 일부를 원주민들이 받아들여 이러한 혼례를 올리는가 하는 점이었다.
해서 알아보니 조선인끼리 혼례는 전통 방식으로 치르곤 했고 그 혼례에 원주민들이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하면서 자신들과는 다른 혼례 방식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 이들이 보기에 가장 인상적인 교배례만 가져가 혼례를 올린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기존의 조선인끼리 올리는 혼례 역시 이 방식을 선택하는 추세였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정성국은 서로 간의 문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뒤섞이는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에 일단 흥미를 나타내며 두고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게 혼례가 시작되고 정성국은 전아라의 곁에서 정평국을 바라보다가 문득 전아라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중에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혼례를 다시 올릴까?”
정성국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짐작한 전아라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런 방식도 나쁘진 않지만...오라버니와의 혼인을 새김포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던 혼례도 나쁘지 않았는걸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정성국이 안도하자 전아라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려 전통 복장을 한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만...나중에 오라버니가 다른 사람과 혼례를 올리면 이런 방식으로 올리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요. 이렇게 혼례를 치르고 왕도를 살짝 순회하는 그런 방식?”
“...”
생각지도 못한 전아라의 말에 정성국이 얼어붙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전아라는 그런 정성국을 보고 애써 웃음을 삼켰다.
“쿡쿡쿡.”
그렇게 정평국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정성국의 이마엔 땀방울이 흐르는 혼례식이 끝나고 정평국의 혼인을 축하해 주기 위해 혼례에 참석한 인사들을 위한 연회가 펼쳐지자 정성국은 잽싸게 연회에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다.
* * *
정성국은 새한성의 선착장으로 행차했다.
드디어 조선소에서 해군 탐사대에 배정될 탐사선의 건조가 끝났다는 보고와 함께 해군 탐사대가 정식으로 창설되고 새남포로 떠나기에 앞서 시험 항해 차 새한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해군 탐사대 소속 탐사선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겸 행차한 것이다.
정성국은 마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있는 해군 탐사대 소속의 탐사선을 보고 중얼거렸다.
“겉으로 보기엔 인급 전선과 큰 차이는 없네. 흐음...”
이번에 건조된 탐사선의 겉모습은 인급 전선과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만약을 대비한 선미포를 제외한 모든 무장이 제거되었고 방어력 역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선체에 두르는 강철판을 최대한 줄였기에 인급 전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원래는 장기 항해를 위해 기범선 형태로 건조할 예정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배를 운용하기 위해 더 많은 선원이 필요하고 증기기관은 나무를 베어서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이 높았기에 그냥 기선 형태로 만들라고 명령했던 정성국은 탐사선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네. 뭐 다른 나라들은 해군 소속의 인급 전선과 해군 탐사대 소속의 탐사선을 구별할 수 없을 테니 적당히 해군력을 부풀릴 수도 있을 테고. 큭큭.’
정성국이 그런 생각을 하며 마차에서 내리자 선착장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탐사선의 함장이 정성국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은 탐사선의 함장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고 무척 반가워했다.
정성국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 탐사선의 함장은 예전 정성국이 처음으로 신대륙을 탐사하기 위해 탔던 지급 함선의 부선장을 역임했던 인물이었기에 정성국과도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자네가 저 탐사선의 함장인가?”
정성국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듯 하자 탐사선의 함장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다행이군. 이런저런 경험이 꽤 많을 테니.”
아무래도 해군 탐사대는 주로 해도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은 바다를 탐사해야 하는 만큼 노련한 뱃사람이 필요했기에 살짝 걱정했었는데 탐사선의 함장을 확인하고 정성국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당시에도 꽤 유능한 부선장이었고 김봉길도 그를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런 정성국의 말에 탐사선의 함장은 씩 웃었다.
“물론입니다. 전하. 김봉길 함대 사령관님을 따라 많을 것을 배웠으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탐사선의 함장을 보고 노파심에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다시 한번 당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도록 하게. 그리고 원주민과 접촉 전에는 항상 위생에 철저하게 신경 쓰고. 알겠지?”
정성국이 얼마나 위생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탐사선의 함장이었다.
정성국과 함께 신대륙으로 항해할 당시에도 처음 발견한 섬의 원주민과 접촉할 때는 무조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었으니.
이를 기억하고 있던 함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자네들이 탐험하다 발견한 원주민들도 나중에는 결국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
“물론입니다. 전하. 북미 지역은 북미왕국의 영역이니까요.”
이번 탐사선은 새남포를 거점으로 삼아 새남포 북쪽의 복잡한 해안가를 철저하게 탐사하여 제대로 된 해도를 작성하고 도중에 만나는 원주민들과 조심스럽게 접촉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북미 지역 전체를 북미왕국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탐사선의 함장은 이를 언급하며 자신이 발견하는 원주민들을 함부로 대할 뜻은 없다는 것을 밝혔다.
이를 듣고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자네들의 행동이 무척 중요하네. 괜히 무례하게 굴지 말고 최대한 우호적으로 원주민들을 대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최대한 우호적으로 원주민을 대하겠습니다. 하지만 간혹 처음부터 적대적인 원주민 부족이 있을 수도 있는데...그런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그런 함장의 물음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옆에 있는 탐사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글세...저 탐사선을 보고도 덤벼드는 원주민이라면 무척 호전적이라는 뜻이니 그냥 물러나도록 하게. 또한, 상황이 위협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총기의 사용도 허락하겠네. 탐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해군 탐사대 소속 병사들의 안전이니. 그리고 그런 상황까지 벌어진다면 우리가 힘이 없어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원주민들이 확실히 알게 힘을 제대로 보여 주게. 알겠나?”
정성국은 예전 아파치 족이 북미왕국의 영역을 공격한 일과 이에 대응해 탐사대를 움직여 보복한 이후 원주민들의 반응을 통해 무조건 힘을 감추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러한 정성국의 말에 탐사선의 함장은 쓸 수 있는 수가 많아져 내심 안도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 함장을 보고 정성국은 그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며 격려했다.
“그래. 함장은 김봉길 함대 사령관과 함께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았으니 잘 처신하리라 믿네.”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격려에 감격한 탐사선의 함장을 보고 피식 웃으며 돌아가려던 정성국은 마침 생각이 난 듯 발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탐사선의 함장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절대 동물의 간은 먹지 말게. 아니. 그냥 고기만 먹고 다른 부분은 절대 먹지 말게.”
유럽의 탐험가들이 북동항로를 개척하려던 시도를 막은 것은 바로 북극곰이었다.
정확히는 북극곰의 간.
일반적으로 야생 동물의 경우 고기가 질긴 편이었고 그에 반해 동물의 간은 부드럽고 먹기 좋아서 탐험가들은 북극곰을 사냥한 이후 북극곰의 간을 스튜로 만들어 먹었다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것이 알려진 후 서양인들은 북극곰의 저주니 북극곰의 간에 독이 존재한다며 떠들어 댔지만 실제로는 북극곰의 간에 있는 비타민 A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추운 지역에 사는 동물들의 간에는 생존을 위해 다량의 비타민 A가 존재했고 북극곰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었기에 북극곰의 간에는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농축된 비타민 A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이누이트들은 북극곰의 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간도 웬만하면 먹지 않고 혹시라도 개들이 먹을까 봐 땅속에 묻는다는 것이 기억난 정성국은 나중에 알래스카까지 올라가야 하는 해군 탐사대가 이 비타민 A의 과다섭취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할까 걱정되어 언급한 것이다.
이러한 정성국의 말에 탐사대의 함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괜히 정성국이 저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