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156화 (156/850)

156화

“이게 수정된 교육 체계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집무실로 찾아온 교육청장이 건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전에 정성국의 명령으로 북미왕국의 교육 체계를 짜서 보고하러 왔었지만, 정성국은 퇴짜를 놓았다.

현재 마을에서 원주민들을 교육하는 것을 기초 교육으로,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을 전문 교육으로 나눈 것이 다였으니까.

해서 교육청장에게 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정성국의 의도가 꽤 많이 들어간 새로운 북미왕국의 체계가 보고서에 쓰여 있었다.

교육청장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는 가운데 정성국은 이를 읽고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초등 교육 기관에서 3년, 중등 교육 기관에서 3년, 고등 교육 기관에서 3년이라...그래도 조금은 짧은 느낌인데...교육 기간을 더 늘릴 수는 없나?”

여기서 중등 교육 기관은 전생의 중학교, 고등학교에 해당했고 고등 교육 기관은 대학교에 해당했다.

그런 만큼 전생의 한국에선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12년을 공부한다면 이 보고서에는 고작 그 절반인 6년을 공부한다는 의미였기에 아무리 급하다고 한들 배우는 기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이를 지적하자 교육청장은 겨울인데도 더운 것인지 슬쩍 소매를 들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물었다.

“어느 정도나 말입니까?”

“전체적으로 대폭 늘릴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초등 교육 기관에서 6년, 중등 교육 기관에서 6년, 고등 교육 기관에서 최소한 4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일세...”

이에 교육청장은 기겁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전하. 분명 교육이 북미왕국의 미래라 이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알겠습니다만...아직 어미의 품이 필요한 시기에 학교를 보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교육청장의 외침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성국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응? 어미의 품이라니?”

“예?”

정성국의 말에 비장한 표정을 멈춘 교육청장은 떠듬거리면서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크게 웃었다.

“아하하. 아무리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고작 3살짜리를 학교에 보내라고 할까.”

“송구합니다. 전하.”

정성국이 예전 중등 교육 기관을 졸업하는 시기를 성인이 되는 시기와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한 말에서 오해가 벌어진 것이다.

정성국이야 전생의 기억이 있는 만큼 18세 정도로 생각했지만, 교육청장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 시대에 성인으로 인정하는 나이는 보통 15세였으니까.

그러니 정성국의 말대로 하면 3살짜리 아이를 12년간 가르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으니 기겁한 것이다.

아무리 정성국이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교육청장이었다.

정성국은 전에 교육 체계에서 이야기할 때 조기 교육을 언급한 것 때문에 교육청장이 저런 오해를 했다는 것에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럼 이렇게 하지. 중등 교육 기관을 둘로 나누도록 하게. 그리고 이 중등 교육 기관 중 한 곳을 졸업했을 시기를 15세로 맞추게. 그리고 초등 교육 기관에서 배우는 기간을 5년 정도로 맞추면 괜찮겠지.”

“그...정도라면 괜찮겠군요.”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이 속으로 계산해보고 괜찮다는 듯 동의하자 정성국은 다시 보고서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초등 교육 기관이야 이미 마을 곳곳에 존재하는 학교를 초등 교육 기관으로 지정했으니 넘어가고 문제는 중등 교육 기관인데...”

정성국이 이 중등 교육 기관까지는 마을마다 모두 세우길 원한다는 것을 이미 예전에 들어 알고 있던 교육청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아직 초등 교육 기관에서 근무할 선생들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인구가 많은 몇몇 도시에 우선하여 설립하고 그 이후에 수를 늘려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쩝...어쩔 수 없지. 다만 새목포와 새나주, 산타페, 그리고 새진주에도 바로 중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도록 하게. 너무 새김포 인근에만 치중되어 있군.”

“알겠습니다. 전하.”

그 정도는 가능했기에 교육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보고서 마지막 장을 살폈다.

“그리고 이 고등 교육 기관은 새한성에 짓는 거지?”

“그렇습니다. 전하.”

고등 교육 기관은 학생을 가르칠 선생들이 현역에서 일하면서 시간을 내어 학생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곳에는 아직 세우기 어려웠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훗날을 생각해 조언했다.

“그래. 그리고 훗날을 생각해서 부지를 크게 잡아. 크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교육청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선생을 육성하는 고등 교육 기관은 기존의 선생들까지 나중에 재교육해야 하니 특히 크게 만들어야 할 걸세.”

현재 마을마다 존재하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라고 해봐야 조선말과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책을 보내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긴 했지만, 과연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싶긴 했고.

하지만 현실이 시궁창인 만큼 일단 이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고 이 기관에서 제대로 배운 선생들을 배출하기 시작하면 적당히 교체해 기존의 선생들도 재교육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서 육성해야 하는 선생의 수는 무척이나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고등 교육 기관을 2개 설립하기로 했다.

하나는 선생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전생의 사범대학이었고 또 하나는 전생의 종합 대학과 같았다.

“물론입니다. 전하.”

정성국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교육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중등 교육 기관을 둘로 나누었으니 아예 따로 명칭을 붙이도록 붙이도록 하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말일세.”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어...그럼 기존의 학교가 초등학교가 되는 것이고. 중등 교육 기관을 나누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라고 칭하신 겁니까? 그럼 대학교가 고등 교육 기관이로군요?”

“그렇네.”

다른 이름을 붙일까 싶었지만, 정성국의 입장에선 전생부터 익숙한 명칭을 붙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기에 이를 이야기하자 교육청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헌데 대학교도 2곳 아닙니까? 이것도 따로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음...둘의 상황은 조금 다르지. 그러니 고등 교육 기관은 모두 대학교라고 칭하되 그 앞에 따로 명칭을 붙이도록 하지. 선생을 육성하는 대학교는 사범 대학교로 부르고 여러 지식인을 육성하는 대학교는 종합 대학교라고 부르겠네.”

“알겠습니다. 전하.”

교육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15세 이하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마칠 수 있게 노력해주게.”

정성국은 모든 북미왕국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최소한 초등 교육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선생도 부족했고 성인의 경우 일을 해야 했으니 이들을 강제로 학교로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해서 나중에 북미왕국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여러 혜택을 주어 이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와서 배우게 하 생각이었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고.

그런 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더욱 집중할 뜻을 내비친 정성국이었고 이에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교육청장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문제는 11살 이상의 아이들이겠군요.”

북미왕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고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은 조선과는 달리 식량이 풍족하고 굶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큰 유인책은 되지 못했지만, 나라에서 금하는 일이라고 계속해서 알렸기에 함부로 아이들에게 밭일을 시키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편이었다.

일을 시켜도 일손이 부족할 때 잠깐 일을 돕게 하는 정도였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은 편이라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으니.

그런 만큼 현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이번에 개편되는 교육 체계에 편입시키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개편된 초등 교육은 5년간 지속해서 가르치는 방식이었기에 어중간한 연령대가 문제였다.

과연 15살이 넘어 성인으로 인정된 후에도 학교에 나올까 싶었던 것이다.

정성국은 교육청장의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거나 병사가 되려면 초등학교는 나오는 것이 유리하다고 살짝 소문을 흘리게. 그럼 될걸세.”

“아...그건 그렇겠군요.”

정성국의 말에 묘안이라는 듯 교육청장이 웃었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호위대장이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와 정성국을 향해 재빨리 다가왔다.

“전하!”

호위대장의 표정에 정성국은 살짝 안색이 굳었다.

“호위대장? 무슨 일인가?”

“아라님의 산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하.”

“뭐? 이런!”

호위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기겁하며 교육청장에게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듯 손을 내젓고 급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안쪽의 궁으로 뛰어갔다.

궁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아무래도 전아라의 산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모양이었다.

더불어 아무래도 이곳에서 처음 아이가 태어나는 상황이다 보니 시녀들도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보며 더욱 조급해진 정성국이 무작정 뛰고 있을 때 그런 정성국을 김 의원이 막았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더는 들어가셔선 아니 되옵니다!”

정성국은 자신의 앞을 막은 김 의원을 보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김 의원! 아라는? 분만실에 있는 거요? 괜찮소?”

이곳 궁은 워낙 컸기에 남는 방이 꽤 많았다.

해서 남는 방 하나를 개조해 분만실로 만들고 철저하게 소독해 두었고.

드디어 이 분만실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다만 전아라를 분만실로 옮기면서 분만실이 마련된 복도 전체를 막아두었기에 현재 정성국이 멈춰선 거실과 분만실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에 아라의 비명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에 정성국은 몹시 불안한 기색으로 김 의원을 바라보았고 김 의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정성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좀 전에 산통이 시작되었고 아라님의 경우 초산인지라 시간이 꽤 걸릴 것이옵니다. 허니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아직 산통 중이라는 소리에 정성국은 힘이 빠져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그런가. 헌데 김 의원은 안 들어가고 왜 여기 있소?”

“어찌 소신이 들어가겠습니까.”

“아...”

애초에 아이를 받는 일은 대부분 산파가 도맡아 했기에 만약을 대비해 여의까지 붙여둔 상황에서 김 의원이 들어가 봐야 할 일도 없었다.

이는 정성국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워낙 경황이 없던 탓인지 멍청하게 이를 물었던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안에 여의와 경험 많은 산파, 그리고 시녀들이 계속 곁에 있으니 말입니다.”

“후우...”

김 의원의 말을 듣고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정성국이 그를 보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의 소독은 철저하게 시켰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직접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일 없을 것입니다. 전하.”

“그래야지. 별일 없어야 하는데...후우.”

그러다 정성국은 주변을 둘러보고 하얀 들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물었다.

“하얀 들꽃은?”

“하얀 들꽃님은 2층 침실에 계십니다. 아라님과 담소중에 아라님의 산통이 시작되었고 하얀 들꽃님도 저 분만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셨지만 제가 막았습니다. 산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말입니다.”

“그런가? 잘 했네.”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들꽃도 이미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시기다 보니 괜히 분만실에 들어갔을까 봐 걱정했다.

김 의원은 그런 정성국을 향해 말했다.

“제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분만 직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하. 굳이 이곳에서 대기하실 필요는...”

“아니오. 그럴 수는 없지. 이곳에서 대기할 생각이니 더는 이야기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그 말을 끝으로 정성국은 거실을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을 때 복도와 연결된 거실의 문이 열리면서 시녀가 나왔고 그사이에 아라의 비명이 들렸다.

이를 듣고 정성국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후우. 긴 하루가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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