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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53화 (153/850)

153화

하얀 들꽃이 회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장들은 드디어 왕실이 번창한다면서 무척이나 기뻐했다.

최근 전아라의 회임으로 인해 후계자의 걱정은 조금이나마 덜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 시대는 아이가 태어나서 건강하게 자라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정성국이 그동안 그렇게 위생을 강조하고 식량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어 영양 상태가 좋은 편이라 그나마 북미왕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조선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잘 자라는 편이긴 했지만 아직은 의원의 숫자 부족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 만큼 만약을 대비하고 또 북미왕국의 안정을 위해서 왕실이 더욱 번창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얀 들꽃의 회임 소식에 청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를 반겼다.

특히 정성국과 하얀 들꽃의 아이는 조선인과 원주민 간 화합의 상징이자 결실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원주민 출신 관리들이 이 소식을 무척 반겼고.

그들은 정성국과 하얀 들꽃 사이에 생긴 아이로 인해 조선인과 원주민의 갈등이 아예 사라지기를 바랐다.

정성국과 하얀 들꽃이 정식으로 혼인한 이후로 이러한 문제가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인과 원주민 간의 갈등은 종종 보고되고 있었고 이러한 갈등은 주로 조선인이 원주민을 야인 취급하며 무시해서 생기는지라 정성국이나 관리들은 이를 무척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갈등이 보고되는 지역이 주로 새마포 인근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새마포 인근에 정착했다는 의미는 이미 개척단에 소속되어 3년간 일하면서 어느 정도 북미왕국의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였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오히려 그런 교육을 받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새김포나 새한성에서는 그러한 갈등이 거의 없었기에 개척단의 교육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고.

다만 실제로 조사한 결과 이렇게 원주민들을 무시하던 조선인들은 주로 개척단에 소속되었을 때도 원주민보다는 조선인들로만 이루어진 조에서 일하던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현재 개척단에서는 조선인들로만 이루어진 조에 원주민을 일정 비율 섞어서 조를 짜고 있었다.

그리고 개척단의 교육에 더욱 신경 썼고.

더불어 인종 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처벌을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조치가 취해진 이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확실히 줄어들긴 했지만, 원주민 출신 관리들이 보기엔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북미왕국의 강경한 대응에 그러한 성향을 숨길뿐이지 의식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훗날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걱정했고.

특히 계속해서 조선인들이 꾸준히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성국과 하얀 들꽃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 왕실의 일원으로 자라난다면 조선인들이 원주민을 야인이라고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원주민 출신 관리들이었다.

* * *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활짝 웃으며 일어나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장인어른.”

푸른 안개는 얼굴에 머물러있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하. 왕실의 번창을 감축드리옵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푸른 안개를 보고 정성국은 흐뭇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이게 다 하얀 들꽃 덕분이지요. 그보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협상이 빨리 끝났나 봅니다.”

하얀 들꽃이 회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어야 했던 푸른 안개가 하얀 들꽃의 회임 소식이 알려진 지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그동안 에스파냐와의 협상을 위해 새진도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 안개는 에스파냐에 고위 귀족이자 왕실의 일원으로 알려졌기에 에스파냐와의 협상에서 푸른 안개가 직접 나서면 협상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정성국은 다른 에스파냐인들이 혹시 문제라도 일으킬까 봐 푸른 안개가 직접 에스파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했지만 이번 경우는 새진도에서 협상을 진행했기에 안심하고 에스파냐의 협상을 푸른 안개에게 맡긴 것이다.

“예. 다행히도 빠르게 협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전하.”

새진도에서 뒤늦게 하얀 들꽃의 회임 소식을 듣게 된 푸른 안개는 최대한 빨리 협상을 끝내고 새한성으로 돌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에스파냐 관리들과 협상했고 그 결과 큰 손해를 보지 않고 빠르게 협상을 끝낼 수 있었다.

협상이 끝난 후엔 곧바로 새김포로 떠나는 정기선에 올라타 바로 복귀했고.

새한성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정성국을 찾아온 푸른 안개였다.

그리고 그런 푸른 안개의 대답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에스파냐와 협상이 결렬되었다면 꽤 많은 지출이 예상되었었으니.

이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따로 상단을 조직해 물자를 아카풀코에 파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었고.

허나 푸른 안개가 성공적으로 에스파냐와 협상을 마친 덕분에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요.”

“예. 그렇지요. 덕분에 새진주 건설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전하.”

그러면서 품속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작성했던 보고서와 새진도에서 에스파냐와 교환한 협정문을 정성국에게 바쳤다.

정성국은 이를 받아들며 장인의 노고를 위로했다.

“어려운 협상을 장인어른께 맡긴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성공적으로 에스파냐와 협상을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푸른 안개는 오히려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들도 이번 거래로 인해 꽤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 협상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더불어 저들도 텍사스 지역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들어서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더군요.”

“기대한다고요?”

정성국의 푸른 안개의 말에 의아해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멕시코만은 저들의 내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곳에 한때 전쟁을 치르기도 했던 북미왕국이 진출한다는데 이를 경계하면 모를까 기대한다니.

푸른 안개는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외무청이나 푸른 안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푸른 안개가 직접 새진도까지 가서 협상에 나선 것인데 에스파냐의 반응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푸른 안개는 그곳에서 에스파냐의 외교관으로 나선 로하스의 반응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텍사스 지역에 북미왕국의 항구가 들어서야 북미왕국이 플로리다반도에 진출할 테니까요. 에스파냐는 하루라도 빨리 우리 북미왕국이 플로리다반도에 진출하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정성국은 그런 푸른 안개의 말에 잠시 표정을 굳히고 턱을 매만지면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흐음...그 이야기는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플로리다반도에 진출해 잉글랜드와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한다고 해석해도 되는 겁니까?”

정성국의 반응에 푸른 안개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로하스의 반응으로 푸른 안개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협상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따로 사석에서 로하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파악한 저들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처음 저들이 플로리다반도를 어떻게든 우리에게 넘겨주려 할 때는 분명 그 부분을 노렸던 것 같습니다만...이번에 협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북미왕국의 막강한 해군력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성국이 푸른 안개를 바라보자 푸른 안개는 로하스에게 들었던 에스파냐의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성국은 이 설명을 다 듣고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가는지 피식 웃었다.

“아하. 그러니까 새진주가 들어서고 새진주에서 산 아구스틴까지 우리의 전선이 오가면 해적선이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는 거군요? 우리가 해적선을 공격할 테니?”

서인도 제도에는 에스파냐의 교역선을 노리는 수많은 해적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교역선을 호위하기 위해 군함이 따라붙고는 하지만 이 교역선에 실린 보물을 노리는 해적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재 에스파냐의 재정 상황에서 군함을 더욱 늘리고 서인도 제도에 숨어있는 수많은 해적을 모조리 소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오히려 그보다는 서인도 제도의 여러 섬을 탐낸 잉글랜드나 프랑스를 막기에도 버거운 실정이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이 멕시코만에 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플로리다반도에 산 아구스틴을 장악한다면 에스파냐로서는 강력한 지원군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종전을 했고 현재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는 만큼 최소한 해적을 상대하는 데는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포로들과 지난 전쟁을 통해 파악한 북미왕국의 해군력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멕시코만 북쪽에서 플로리다반도 동쪽 해안까지는 해적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면 에스파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최소한 플로리다 동쪽 해안까지는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었고.

“그렇습니다. 전하. 저들은 우리 북미왕국의 해군력을 직접 경험해보았으니 말입니다. 거기에 석방되었던 로하스나 니콜라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 북미왕국의 해군력이 멕시코만으로 오는 것을 꽤 환영하는 눈치였습니다.”

“허어. 그래요?”

놀랍다는 정성국의 반응에 푸른 안개는 로하스가 은근슬쩍 제의했던 내용까지 정성국에게 보고했다.

“예. 오히려 필요하다면 북미왕국 함대의 보급을 에스파냐에서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보급? 설마...”

“예. 만약 우리 북미왕국에서 함대 일부를 새진주까지 이동할 생각이 있다면 돕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애당초 이곳의 함대를 이동시킬 생각은 전혀 없는 정성국이었지만 푸른 안개에게 에스파냐의 반응을 듣고 나선 오히려 살짝 당황했다.

그가 알기로 서인도 제도의 해적들이 무척 극성인 시기는 앞으로 30년 정도 후로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성국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도 서인도 제도에는 해적이 무척 많은 것 같았기에.

“거참...그 정도로 해적이 극성이랍니까? 새진주에서 저들의 산 아구스틴까지의 항로를 생각해보면...현재 에스파냐의 세력권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서인도 제도에 워낙 해적들이 극성이라 골치라고 하소연을 하던 것을 보면...간간히 해적들의 습격을 받는 눈치입니다. 교역선도 그렇지만 산 아구스틴도 말입니다.”

“흐음...그렇단 말이지요?”

정성국은 푸른 안개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쉬운 건 에스파냐이니 이를 빌미로 서인도 제도의 섬을 받아오면 좋겠는데...문제는 이를 유지할 여력이...없지. 젠장.’

정성국이 판단하기에 어차피 에스파냐는 신대륙에 가장 비옥하고 거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었기에 서인도 제도의 자잘한 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적대적인 세력이 섬을 장악하고 항로를 공격하는 것을 걱정했을 뿐.

그런 만큼 잘만 협상하면 서인도 제도의 몇몇 섬을 받아오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았다.

해적 소탕을 빌미로 해군 기지를 건설할 섬이 필요하다고 하면 오히려 환영하며 기꺼이 섬들을 내어주리라.

문제는 당장 북미왕국이 이를 개발하고 유지할 여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당장 플로리다 지역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친 상황이었으니.

거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문제였다.

에스파냐와는 달리 이들은 값비싼 상품 작물인 설탕을 비롯한 여러 신대륙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서인도 제도의 섬을 무척 탐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이 서인도 제도의 섬을 얻게 되면 강력한 경쟁자로 생각하고 무척 경계할 것이 뻔했다.

‘에휴. 아쉽긴 하지만...어쩔 수 없지. 당장은 북미 지역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전하.”

푸른 안개가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있는 정성국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정성국은 그제야 푸른 안개와 대화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에스파냐의 상황이 아쉬운 만큼 이를 이용해 몇몇 섬을 얻어볼까 했지만...아쉽게도 그럴 여력이 없군요.”

“하하하. 저 어마어마한 땅으로도 부족하신 겝니까. 역시 전하의 배포는 감히 따라가기 어렵군요.”

푸른 안개가 정성국의 뒤편에 걸려있는 거대한 북미 지역의 지도를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듯 웃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걸려있는 지도를 바라보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뭐 딱히 부족하다기보다는...북미왕국의 배는 기본적으로 연료가 필요한 만큼 곳곳에 연료창고가 지어진 항구가 필요하니까요.”

정성국의 말에 푸른 안개는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긴 하군요. 저들이야 식량과 식수만 보급받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북미왕국의 배는 연료까지 보급받아야 하니...”

“예. 그렇지요. 그러니 훗날을 생각해서 이를 이용해 몇몇 섬을 얻어볼까 했습니다만...당장 그럴 여력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지만, 오히려 푸른 안개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흐음...듣고 보니 북미왕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몇몇 섬들을 얻어두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이는데...한번 에스파냐와 협상을 해볼까요?”

곧바로 다시 새진도로 돌아갈 기색의 푸른 안개를 보고 정성국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얻어봐야 유지할 능력도 없고 서인도 제도에 진출하면 다른 유럽 나라들의 경계를 받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시고...장인어른은 곧바로 하얀 들꽃을 보러 가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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