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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52화 (152/850)

152화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군사청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모두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3함대의 사령관은 결국 정일신 함장으로 결정이 된 건가?“

해군을 개편해 1함대와 3함대로 분리한 후 1함대의 사령관은 당연히 김봉길로 임명했다.

김봉길만큼 믿을 수 있고 또 노련한 함장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3함대의 사령관을 두고 몇몇 후보를 고민했지만 결국 아이누인들을 돕기 위해 지급 전선 한 척으로 막부의 함대에 돌격해 막대한 전과를 올린 정일신 함장이 3함대의 사령관으로 낙점되었다.

3함대 창설의 주요 목적이 홋카이도 섬을 기준으로 그 북쪽의 북미왕국 영역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를 공격할 만한 세력은 막부 뿐이었기에 이들과 해전을 치른 경험이 있고 홋카이도 남부의 마쓰마에 항에 머물며 주변을 순찰하고 만약을 대비해왔던 정일신 함장만큼 적임자도 없긴 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일단 3함대에 소속된 함장 중에선 가장 선임이기도 하고 실전을 경험하기도 했으니까요.“

”하긴...그렇긴 하지. 그럼 3함대의 모항은 포로나이로 할 생각이고?“

일단은 포로나이 항을 3함대의 모항으로 결정한 정성국이었으나 막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마쓰마에 항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여 3함대의 모항은 군사청에서 고민해보고 결정하라고 이야기했었다.

이에 군사청의 선택은 포로나이 항이었기에 이를 묻자 군사청장은 군사청이 포로나이 항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북방항로의 방어를 위해서도 그렇고 3함대의 가족들이 지낼 환경을 생각하면 아직은 홋카이도보다는 포로나이가 낫다는 판단에 결국 포로나이로 정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혹시나 해서 덧붙였다.

”그런가? 알겠네. 다만 3함대의 모항을 포로나이로 정한다 쳐도 일부 전선은 홋카이도 최남단에 있는 마쓰마에 항에 정박해 둬야 한다는 건 알지?“

”물론입니다. 전하. 정일신 함장에게 보낼 명령서에 이미 함대의 절반은 마쓰마에 항에 정박하고 주변을 순찰하라고 적어두었습니다.“

지급 전선 2척, 인급 전선 2척이 항상 마쓰마에 항에서 대기하며 만약을 대비하겠다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일단 막부는 지급 전선 한 척에 의해 꽤 큰 피해를 본 만큼 그 정도만 되어도 쉽게 공격하기는 어려울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 왜놈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게.“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씩 웃으면서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그래서 정일신 함장에게 3함대의 편성이 끝나면 3함대 전체를 이끌고 막부가 알아챌 정도로 홋카이도를 크게 돌아 순찰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렸습니다.“

그런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거 괜찮네. 그 정도면 함부로 홋카이도를 공격하진 못하겠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군사청장이 건네준 두 번째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흐음...기존의 아이누 섬의 부대를 경비대로 정식 편입시키고 이들을 축으로 단기간에 병사들을 훈련하겠다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는 2천씩, 그리고 내후년에는 1천의 병사를 모병한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아이누 섬의 부대의 병영을 육군 훈련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고.

너무 기간이 긴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이누 섬에 존재하는 병영 자체가 크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만약 병사들을 제대로 훈련하기 전에 혹시라도 막부와 문제가 생기면 기존의 방식대로 홋카이도의 아이누인 전사들을 징집하겠다는 내용도 있었기에 정성국은 군사청의 계획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이곳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해서 급격하게 숫자를 늘렸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동의하면서도 한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문제는 이들을 무장시킬 수 있느냐 같은데?“

정성국의 지적에 군사청장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해서 말인데...당분간은 이들의 무장을 계속해서 신식 소총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그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 정성국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인상을 풀었다.

”음? 아...신식 소총은 비축해 둔 물량이 있나?“

썩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기에 군사청장이 기회다 싶어 빠르게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개척촌에서 꾸준히 제작해왔던 신식 소총 2천 정이 포로나이 항에 비축되어 있습니다. 허니 차라리 이 지역은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턱을 매만지면서 물었다.

”흐음...왠지 차별하는 것 같아 썩 내키지는 않는데...무기 제조 공방엔 여유가 없나?“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하소연하듯 공방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새진주에 주둔할 병사나 플로리다 지역에 주둔할 병사들의 소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무기 제조 공방을 쉬지 않고 돌리는 상황이다 보니...“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쳇...상황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일단 신식 소총을 보급하고 나중에 교체하는 방식으로 가야겠군. 헌데 이제 개척촌에서는 소총이고 화포고 만들지 않잖아?“

그동안은 개척촌 근처의 산속에 연구소를 두고 조심스럽게 제작하기는 했지만 이미 지속해서 연구원들과 장인들은 북미왕국으로 떠났고 마지막으로 강평화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남아있던 장인들을 모두 북미왕국으로 데려왔기에 개척촌의 무기 제조 공방은 폐쇄한 상태였다.

이를 지적하자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해서 이곳의 장인 몇을 빼서 포로나이로 보내 조그맣게 공방을 만들어 그곳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남은 물량을 제작해볼 계획입니다.“

”연구청에선 가능하다고 하던가?“

”그렇습니다. 전하.“

이미 대안을 완벽하게 준비해 둔 군사청장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정성국은 노파심에 한마디 했다.

”흐음...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게. 다만 총기 관리에 더욱 신경 쓰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고개를 끄덕이는 군사청장을 보고 정성국은 슬쩍 덧붙였다.

”그리고 이거 하나만 수정하도록 하게. 경비대에 그대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누 경비대라는 이름으로 따로 편재하도록 하게.“

”예? 아...해군처럼 말입니까?“

”그렇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이들을 북미왕국으로 부를 일은 없지 않나 싶어서. 반대도 마찬가지고.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그럴 바엔 아예 독립적으로 두는 것이 나아 보이네.“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그것도 나쁠 것 없다는 표정으로 수긍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흐음...알겠습니다. 그럼 아이누 경비대장은 누구를?“

이에 정성국은 뭘 묻느냐는 기색이었다.

”박경수 외엔 마땅한 사람이 없지 않나. 어차피 그동안 실질적으로 부대 운영을 해 왔었으니...그 친구에게 맡기세.“

군사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의 결재를 마친 서류들을 받아들고 정성국을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그렇게 알고 이 임명장과 명령서들을 3함대에 편성될 전선 편에 보내겠습니다.“

"그래. 3함대에 편성될 전선들을 이주 선단과 함께 보내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어. 바로 보내도록 하게."

* * *

정성국은 오랜만에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모두 끝내고 전아라와 하얀 들꽃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왔다.

“어휴. 죽겠네.”

정성국은 목덜미를 주무르면서 노을빛을 받아 무척이나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안쪽의 궁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단정한 복장을 한 시녀가 정성국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전하.”

“어. 그래. 별일은 없었지?”

“그렇습니다. 전하.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새김포에서는 딱히 시녀나 시종을 쓰지는 않았다.

애초에 새김포에서 정성국이 업무를 보던 건물이나 실제 잠을 자던 숙소 건물은 무척 아담한 편이라 굳이 다른 누군가를 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청소나 빨래를 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긴 했지만 그들의 경우 일을 하러 나간 후 빈 숙소에 들어와 청소했기에 정성국이 직접 그들을 본 적도 없었고.

하지만 이곳 새한성에 새로 건설된 궁궐은 워낙 넓었기에 꽤 많은 사람을 상시 고용해야 했다.

정원을 가꿀 정원사부터 건물을 청소하고 심부름을 해줄 시종과 시녀가 필수였달까.

특히 전아라가 임신한 후로 안전을 위해 김 의원이 붙여준 여의와 산파가 있긴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은 정성국은 만약을 위해 몇몇 시녀들을 더 고용해 전아라의 수발을 들게 했다.

그리고 하얀 들꽃은 전아라가 걱정된다면서 아예 일을 줄이고 전아라의 말벗이 되어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요새 정성국은 이렇게 혼자 왕실 가족이 생활하는 안쪽의 궁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정성국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앉아서 무척이나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정성국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을 반겼다.

“어머.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정성국은 자신을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두 여인을 보면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다가갔다.

“응. 다녀왔어. 그냥 앉아있어. 뭐하러 일어나.”

“그럴 수야 있나요.”

전아라는 꽤 부풀어 오른 배를 잡고 배시시 웃었다.

정성국은 그런 전아라의 배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포옹해준 후 그녀의 두 팔을 잡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혀주었다.

전아라는 정성국의 힘에 못 이긴 척 자리에 앉았고 정성국은 옆에 있는 하얀 들꽃에게 다가가 마찬가지로 살짝 포옹해준 후 그녀도 자리에 앉힌 후에 남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정성국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있을 무렵 시녀들이 안쪽의 조리실에서 음식을 들고 나타나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어머. 백숙이네요?”

하얀 들꽃이 커다란 대접 위에 보이는 푹 익은 닭을 보고 반색했다.

정성국은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커다란 대접 위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닭을 옮기고 밑에 깔린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을 보고 말했다.

“전복에 문어까지 있는 것을 보면 해신탕이네.”

정성국의 말에 전아라가 정성국을 바라보며 웃었다.

정성국은 간혹 조리실에 들러 이런저런 새로운 음식들을 곧잘 만들곤 했었으니까.

처음에야 조리실에 출입하는 정성국을 보고 숙수들이 기겁했지만, 이젠 익숙하게 정성국이 대충 던져주는 요리법을 기반으로 정성국이 원하는 요리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냈다.

이 해신탕이라는 것도 그러한 결과물 중의 하나였고.

“해신탕이요? 아. 전에 전하께서 만드셨던 그?”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내가 만들었다기보단 백숙을 만들 때 각종 해산물을 더 집어넣어 보라고 했던 것뿐이지. 이것도 몸보신에 좋으니 먹자고.”

““예.””

그렇게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난 후 정성국과 전아라, 하얀 들꽃이 자리를 옮겨 거실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헌데 그러는 동안 하얀 들꽃은 후식으로 나온 과일들을 꾸준히 먹고 또 먹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도 후식으로 나온 과일들을 모두 먹어 치울 기세의 하얀 들꽃을 보고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 먹네? 원래 하얀 들꽃이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아.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가네요.”

“그래? 헌데 배부르지 않아?”

정성국의 물음에 하얀 들꽃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요새 이상하게 빨리 배가 꺼져서요.”

“그래?”

“예.”

하얀 들꽃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옆에 있던 전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너 먹는 양이 많이 늘긴 했어.”

“그랬나요?”

전아라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하얀 들꽃은 접시로 뻗던 손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하얀 들꽃을 보고 정성국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왜 그러세요?”

의아한 표정의 둘을 내버려 두고 거실로 나온 정성국은 거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시녀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여의를 부르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굳은 표정에 시녀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정성국은 다시 거실 안으로 들어와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얀 들꽃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다가가서 달래주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만약을 대비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거실에 나타난 여의를 보고 정성국은 하얀 들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들꽃을 진찰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잠시 여의는 하얀 들꽃의 맥을 짚은 후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몇 번이나 다시 맥을 짚었다.

그리고 정성국을 보고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립니다. 전하. 회임하셨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당황했고.

“어?”

하얀 들꽃은 멍하니 여의를 바라보았으며.

“어??”

전아라만 활짝 웃으며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하얀 들꽃을 껴안았다.

“어머나! 잘 됐다! 축하해! 하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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