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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51화 (151/850)

151화

정성국은 새김포에 이주 선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 아이누인들이 귀환할 때가 된듯싶었기에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음...투로시노가 결국 외무청을 택했다고?“

정성국이 무척 의외라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흐음...좀 예상외군. 투로시노도 샤쿠샤인처럼 행정청의 관리가 될 줄 알았는데.“

샤쿠샤인은 별다른 고민 없이 북미왕국 행정청의 관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어차피 북미왕국 밑으로 들어간 이상 뒷방 늙은이로 남지 않으려면 관리가 되어야 했는데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고향인 홋카이도에서 일하면서 아이누인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행정청의 관리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사청에 소속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었지만, 이 경우는 군사청의 행정적인 업무를 맡는 관리는 가능하지만, 실제 병사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되려면 밑에 붙여주는 보좌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꽤 오랜 기간 배울 것이 많다면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기에.

”투로시노도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했었습니다. 덕분에 몇 번이고 저를 찾아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말입니다.“

그런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를 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외무청을 택했단 소린가? 대체 무슨 소리를 했길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전하. 다만 투로시노는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컸지만 그보다는 더 넓은 세상과 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외무청을 권했지요.“

조용한 곰의 설명처럼 투로시노는 아이누인들을 위해 샤쿠샤인처럼 행정청의 관리가 되는 것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굳이 그가 행정청의 관리로 일하지 않아도 최소한 포로나이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더불어 샤쿠샤인과 오니비시는 행정청의 관리가 될 것이 뻔했고 이들은 같은 아이누인이자 같은 북미왕국 백성이니 이들이 아이누섬의 아이누인들도 잘 신경 써줄 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투로시노는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 군사청, 정확히는 해군에 소속되고 싶어했다.

그래야만 배를 타고 세상을 둘러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군사청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조용한 곰을 통해 곤란하다는 뜻을 알렸다.

현재 투로시노는 비록 명목상이긴 했지만, 아이누 섬의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었다.

즉 아이누 부족 연합이 그대로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상 군사청의 지휘관급의 인사라는 소리다.

그런 투로시노가 해군으로 소속을 변경한다 해도 말단 병사나 선원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 투로시노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최소한 함장 자리 정도는 줘야 하는데 뱃사람도 아닌 투로시노에게 함장 자리를 내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투로시노가 해군으로 소속을 변경하길 원한다면 포로나이에 생길 3함대 사령부에서 행정 일을 맡는 고위 관리직에 임명하겠다는 것이 군사청의 입장이었고.

조용한 곰은 이를 투로시노에게 전달하면서 낙담하는 투로시노에게 차라리 외무청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지금이야 주변 부족과의 교류에 집중하고 있고 타국과의 교류가 많지 않지만, 훗날에는 타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외교사절로 타국을 방문할 수도 있을 거라면서.

사실 옛 에조 지역 전체를 아이누 부족 연합의 영역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긴 했지만 실제로 자신들이 아이누 부족 연합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누인들은 아이누 섬과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인들 정도였다.

그 외에는 아이누 섬에 가까운 몇몇 섬의 아이누인들 정도일까.

그런 만큼 아이누 섬과 카무이 반도 사이에 존재하는 쿠릴 열도의 여러 섬에 사는 아이누인들을 북미왕국의 행정체계에 편입시키려면 아이누 사정에 정통한 외무청 관리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조용한 곰은 은근슬쩍 투로시노에게 외무청 관리를 권한 것이다.

당장은 주변 아이누인들을 규합하는 일을 하고 나중에는 타국을 돌아다니라고.

이런 조용한 곰의 제안에 투로시노는 결국 외무청의 관리로 일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정성국은 여전히 모험심이 넘치는 투로시노를 떠올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이해는 간다만...근데 그럼 투로시노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바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적당히 일을 배운 후 돌아가는 건가?“

아무리 투로시노가 아이누인이라 주변 아이누인들과 말이 통할지언정 이들을 잘 어르고 달래서 북미왕국에 편입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무래도 연륜이 있는 샤쿠샤인이나 오니비시라면 모를까 혈기왕성한 투로시노를 적당히 교육해 보내는 것은 훗날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특히 투로시노가 포로나이로 부임한다면 나중에 잉글랜드의 사절들과도 접촉할 기회가 생길 테니 더욱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묻자 조용한 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투로시노는 이곳에 남아 외무청의 일을 제대로 배우겠다고 합니다.“

그런 투로시노의 선택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슬슬 아시아에도 북미왕국의 이름을 알릴 생각인 만큼 좋은 적임자가 생긴 셈이었으니까.

”그래? 그건 참 다행이로군. 그럼 투로시노를 잘 가르쳐 보게. 훗날 투로시노의 역할이 중요해질 테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대답을 뒤로하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넘겨준 보고서의 끝부분에 쓰여 있는 부분을 보고 중얼거렸다.

”흠...수행 인원들도 모두 남기기로 했군.“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금 당혹스러운 눈치였습니다만...뭐 샤쿠샤인과 투로시노의 엄명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인지 눈물을 머금고 외무청에서 따로 마련해 둔 숙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금쯤 한창 공부 중이겠군요.“

”하하하.“

투로시노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그리고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인지한 부모이자 부족장들의 결단으로 샤쿠샤인과 투로시노의 북미왕국 행에 따라왔던 아이누인 젊은이들의 거취는 샤쿠샤인과 투로시노의 결정에 의해 정해지게 되었다.

한참 북미왕국을 구경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아이누인 젊은이들은 갑자기 전해진 소식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샤쿠샤인이나 투로시노의 결정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고 외무청에서 준비한 숙소로 이동해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있었고.

이 기본 교육이 끝나면 행정청의 하급 관리들의 보좌관으로 배정되어 실제 경험을 쌓은 뒤에나 돌아갈 수 있었으니 이들의 앞날은 무척 험난할 터였다.

정성국은 쓸만한 인력이 50명이나 생겼다는 것에 무척 만족한 표정으로 최대한 빠르게 이들을 교육하라고 명령하면서 북미왕국으로 올 때는 함께 왔다가 다시 돌아갈 때는 홀로 돌아가야 하는 샤쿠샤인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이번 이주 선단으로 귀환하는 아이누인은 샤쿠샤인 혼자네?“

”그렇습니다. 전하.“

”이것 참...돌아가는 길에 샤쿠샤인이 꽤 적적하겠어. 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행정청 관리를 붙여주게. 샤쿠샤인도 북미왕국의 행정체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성국은 새한성의 선착장까지 나와 떠나는 샤쿠샤인을 배웅해주었다.

굳이 정성국이 샤쿠샤인을 마중하기 위해 나올 필요는 없긴 했다.

이미 샤쿠샤인은 행정청의 관리가 된 만큼 정성국의 신하라 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정성국이 굳이 나온 이유는 함께 이곳에 왔던 아이누인들은 모두 남고 홀로 돌아가는 샤쿠샤인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함께 마차를 타고 선착장까지 이동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군요. 아이누인들의 기초 교육이 그렇게 중요하다니...”

정성국의 이야기가 끝나자 몹시 생각할 것이 많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샤쿠샤인을 보고 정성국은 덧붙였다.

“교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거니까요. 거기에 우리 북미왕국의 선생들이 아이누인들을 가르치고 싶어도 말이 통해야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언어 교육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포로나이에는 언어를 가르쳐 줄 선생들이 꽤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포로나이는 원상의 배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투로시노가 강력하게 조선말을 배우도록 아이누 섬의 아이누들에게 권했기에, 그리고 농사나 수렵 생활을 하지 않고 포로나이에서 일하려면 조선말을 할 줄 알아야 했기에 조선말에 능숙한 아이누인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이들을 고용해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쳐 보라는 정성국의 권유에 샤쿠샤인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언어를 가르치면서 영특한 젊은이들을 꾸준히 북미왕국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이곳에서 잘 가르쳐 다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럼 그들이 아이누인들을 가르칠 테고...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이누인들도 북미왕국 본토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포로나이에 도착하는 대로 조선말에 능숙한 아이누인들을 고용해 홋카이도로 데려가야겠군요.”

샤쿠샤인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좋겠지요. 그들이 가르친 아이들이 결국 자라나 아이누와 북미왕국을 더욱 발전시킬 테니 말입니다.”

그런 정성국의 말에 샤쿠샤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생각만 해도 참으로 흐뭇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의 미래가 막막했었는데...돌아갈때는 비록 홀로 돌아가는지라 몸은 쓸쓸할지라도 마음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따뜻하니 말입니다.”

그런 샤쿠샤인의 반응에 정성국은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오니비시가 그렇게 북미왕국을 방문하고자 했다면서요?”

오니비시를 거론하는 정성국의 말에 샤쿠샤인은 이곳에 오지 못해 꽤 투덜거렸던 오니비시의 얼굴을 떠올리고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하하. 그렇습니다. 전하. 개척촌에 다녀온 후로 느낀 것이 많았는지 이번에도 함께 오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해 아쉽게 오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군요. 어차피 이주 선단은 자주 운항하니 기회를 봐서 방문해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환영한다고.”

오니비시 역시 아이누인들의 대표라 할 수 있었으니 한 번쯤은 얼굴을 봐둘 필요가 있었기에 정성국이 지나가듯 이야기하자 샤쿠샤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오니비시가 들으면 참으로 좋다고 하겠군요. 아마 곧바로 이곳에 오겠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마차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마차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멈춰섰고 호위대원들이 문을 열었다.

“선착장에 도착했군요. 자. 내립시다.”

“예. 전하.”

정성국은 샤쿠샤인과 함께 마차에서 내려 곧 새김포로 떠나는 정기선이 정박해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슬슬 배가 출발할 건가 봅니다. 바로 승선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도 샤쿠샤인은 정성국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저 자신감 넘치는 젊은 왕 덕분에 결국 아이누인들은 샤모들을 물리치고 독립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저 자비로운 젊은 왕 덕분에 아이누인들도 이젠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저 듬직한 젊은 왕이 자신의 어깨에 메였던 묵직한 책임을 대신 넘겨받았다.

이에 샤쿠샤인은 크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난 후 곧바로 땅바닥에 큰절했다.

“어어?”

정성국이 당황한 가운데 샤쿠샤인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누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결국 책임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아이누인들이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왕 전하.”

샤쿠샤인의 목소리 속에 담겨있는 물기를 파악한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축하며 그를 일으켜 세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이제 당신도 북미왕국의 관리이지 않습니까. 북미왕국에선 그런 과도한 예는 금물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샤쿠샤인은 그동안의 고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크게 웃으면서 다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부디 옥체를 보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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