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정성국은 연구청장과 샤쿠샤인, 그리고 투로시노와 함께 새한성 남쪽의 한 공터로 이동했다.
연구청에서 만든 트랙터의 시범 운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정성국과 연구청장 둘이 참석하려 했으나 북미왕국으로의 합류가 결정된 후 새한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관광하느라 여념이 없던 투로시노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샤쿠샤인과 함께 나타나 시범 운행에 참석하길 원했다.
이에 정성국은 흔쾌히 승낙했고.
어차피 나중에 양산되면 아이누 섬은 어려워도 홋카이도에는 몇 대 보내 전생의 토카치 평야 쪽을 개간해볼 생각이었으니 이들에게 미리 보여 나쁠 것은 없었기에.
‘아무리 시범 운행이어도...기동이 녀석이 나를 부를 정도면 어느 정도는 구동이 된다는 의미니까...별 문제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새한성 남쪽에 마련된 트랙터의 시범 운행이 예정된 공터에 들어서자 묘하게 생긴 트랙터가 보였고 정성국은 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큭큭.“
이에 정성국의 뒤에 있던 연구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아닐세. 크흠.“
정성국이 웃은 것은 트랙터의 모양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증기기관은 물을 끓이는 보일러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보일러의 모양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증기기관차의 경우는 이 보일러의 크기가 꽤 거대한 편이었고 고 마력의 증기기관을 사용했기에 증기기관의 크기가 커서 육중하다는 느낌이 우세했다면 지금 정성국의 눈앞에 보이는 트랙터는 마치 군고구마 장수가 끌고 다니는 손수레 위에 얹힌 고구마를 굽는 드럼통처럼 보였기에 정성국이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연구청장이나 아이누인들뿐만 아니라 정성국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연구원이나 장인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혹시 트랙터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보이는 겁니까?“
박기동이 다가와 물었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일 아니다. 그래. 바로 시범 운행이 가능하겠느냐?“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시범 운행을 위해 이미 보일러를 충분히 가열해 두었습니다.“
”호오. 그래? 그럼 기대하마. 바로 시범 운행을 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박기동은 곧장 트랙터 주위의 장인에게 손짓했고 이에 다른 연구원과 장인들은 트랙터 주위에서 물러나고 한 젊은 사내가 트랙터 위 공간에 서서 보일러 뒤쪽의 손잡이를 조작하자 트랙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연구청장은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함께 따라온 샤쿠샤인과 투로시노의 반응은 조금 격했다.
”허억?!“
기괴하게 생긴 수레가 스스로 움직이는 셈이었으니.
아무리 북미왕국의 기술과 문명 수준이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다지만 저 괴상한 수레는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물건이었다.
”대체 저게 뭡니까? 말도 없는데 어떻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을 따라왔던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이를 보고 경악하며 옆에 있는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이에 연구청장은 웃으면서 증기기관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해 주었고.
이를 듣고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을 끓인 힘으로 움직이는 거란 말입니까?“
”그렇게 말해도 이해가 가진 않는군요.“
그런 아이누인들의 반응에 연구소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그냥 그런 원리로 작동되는 장치일 뿐입니다. 아. 그렇지. 아이누인들에게 익숙한 지급 전선에도 저 장치가 달려 있지요.“
이미 북미왕국에선 잘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연구청장이 지급 전선을 언급하자 투로시노가 눈을 크게 뜨고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어? 지급 전선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었습니까?“
”정확히는 둘 다 사용합니다. 바람의 힘과 저 증기의 힘을. 지급 전선 한 가운데 굴뚝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기에도 조그마한 굴뚝이 보이죠?“
”아!“
동그란 통 위쪽에 보이는 굴뚝을 보고 정말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누인들이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오로지 공터를 느릿느릿하게 이동하고 있는 트랙터를 바라보았다.
공터를 주행하기 위해 아무것도 장착하지 않았기에 생각보다는 속도가 빨랐다.
사람이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보다는 못하고 속보보다는 조금 빠른 듯싶었다.
그렇게 공터를 이동한 트랙터는 속도를 줄여 유턴한 뒤 멈췄다.
그리고 트랙터를 운전하던 젊은 사내가 내려 공터 한쪽에 있던 쇳덩이와 트랙터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물었다.
”저건...쟁기냐?“
”예. 주행 시험은 끝났으니 이젠 실제로 쟁기를 매달고 밭을 갈아엎어야겠죠.“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끄러미 멈춰서 있는 트랙터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젊은 사내가 다시 트랙터 위로 올라섰고 곧 트랙터가 뒤에 달린 쟁기를 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쟁기를 매달자 느려지긴 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이동하는 트랙터를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정성국은 트랙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 뒤에 매달린 쟁기를 확인하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생각보다 쟁기가 꽤 크구나?“
기존의 소나 말이 끌던 쟁기와는 크기 자체가 달랐기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트랙터의 힘이 생각보다 좋아서 저 정도는 충분히 감당되더군요.“
”거기에 길이도 꽤 길고...“
”예. 기존의 쟁기에 4배는 됩니다.“
정성국이 박기동과 말하는 중에 트랙터는 점점 다가와 정성국의 근처에서 지나쳤다.
‘콰드득’
그리고 정성국은 직접 무거운 쟁기가 땅을 갈아엎는 모습을 보며 살짝 감탄했다.
”오. 생각보다 땅을 잘 갈아엎네?“
트랙터가 성공적으로 쟁기를 끌고 공터를 갈아엎자 박기동은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정성국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요. 솔직히 저것만으로도 트랙터를 양산할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만...“
”그렇긴 하네.“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터를 갈아엎는데 열심인 트랙터를 바라보았다.
트랙터를 움직이는 젊은 사내는 꽤 능숙하게 쟁기가 매달린 트랙터를 유턴시켰다.
그렇게 몇 번을 이동하자 단단한 땅이었던 공터가 모두 갈아엎어졌다.
”와...이 넓은 공터를 싹 갈아엎는데 생각보다 금방이네.“
”그렇습니다. 다음은 써레를 부착하고 가동하겠습니다.“
멈춰선 트랙터에서 젊은 사내가 내려 연결되어 있던 쟁기를 떼고 써레를 연결한 후 다시 트랙터에 올라탔다.
이에 정성국은 무척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트랙터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평평하고 단단한 땅 위에서 움직였지만, 이제는 한번 갈아엎어 울퉁불퉁한 땅 위에서 이동해야 하는 만큼 과연 트랙터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말은 안 했지만, 박기동도 내심 긴장한 눈치였고.
그렇게 두 사제가 써레가 연결된 트랙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 곧 트랙터가 울퉁불퉁한 땅을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오...바퀴가 두꺼워서 그런가? 생각보단 안정적으로 움직이는구나.“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속도야 약간 느린 것 같다만...저 정도면 괜찮네.“
”휴우.“
정성국은 트랙터 양옆에 달린 커다랗고 두꺼워 보이는 4개의 쇠바퀴를 보면서 덧붙였다.
”다만 나중에 바퀴를 좀 연구해볼 필요는 있겠다.“
”바퀴를요?“
박기동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정성국을 바라보았지만, 정성국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트랙터 위에서 애써 중심을 잡고 운전하는 젊은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저 바퀴에 고무를 덧씌우면 괜찮을 듯하니 한번 연구해보렴.“
에스파냐를 통해 천연고무를 얻을 수 있었고 이 천연고무가 새진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성국은 곧바로 천연고무부터 새김포로 수송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연구청에 연구과제를 던져주었고.
천연고무는 그 자체로는 산업적으로 이용하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이 방수나 장난감으로 이용하던 고무를 콜럼버스가 발견하고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었고.
기껏해야 지우개나 우비로 사용되는 수준이었달까.
그러다 1839년 미국의 발명가 굿이어가 키우던 고양이 덕분에 우연히 가황법을 발견하면서 산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전생의 이러한 흐름을 알고 있던 정성국이었기에 고무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천연고무에 유황을 섞어 가열해 새로운 성질의 고무를 만들어보라는 연구과제를 던져주었다.
그 덕분에 연구원들은 인조고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쳐 인조고무를 만들기에 적당한 고무와 유황의 비율, 그리고 가열할 때 지켜야 하는 온도와 시간을 찾아 결국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조고무를 만들었다.
이는 박기동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렇게 생산된 인조고무를 잘 써먹고 있긴 했다.
하지만 박기동도 고무를 바퀴 전체에 씌운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 같아 슬쩍 이를 지적한 정성국이었고.
이에 박기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무라...확실히 저 바퀴에 고무를 씌우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네요. 진동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테고. 알겠습니다. 한번 연구해보도록 하지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웃으며 허리를 숙여 쟁기로 땅을 갈아엎고 써레로 거친 흙덩이를 부서 부드러워진 땅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없지?“
”예. 스승님. 준비한 건 쟁기와 써레뿐입니다.“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일어나 손에 묻은 흙을 털면서 저 멀리 멈춰선 트랙터와 어느덧 다시 적당히 평평해진 공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수확할 때 일손을 덜어줄 작물을 베는 장치는 아직 연구 중이라고 했으니 일단 넘어가고. 보통 밭에는 배수를 위해 고랑을 파잖아? 그리고 이랑을 만들어 작물을 심기도 하고.“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을 잡았다.
”아...그렇긴 합니다. 허면 밭고랑과 밭이랑을 만드는 장치도 만들어야겠군요.“
”그건 만들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쟁기의 날의 방향을 조금 개조하면 쉽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
그러면서 정성국은 손으로 쟁기날을 대각선으로 표현하자 박기동은 반색했다.
정성국의 말대로 쟁기의 날을 조정하면 밭고랑을 파면서 흙이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뭉쳐 이랑을 만들 테니.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날의 각도를 연구해서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만 시급하게 개발할 것은 바로 수확할 때 사용할 장치야. 알지?“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쪽에 멈춰선 트랙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경제성을 따져보면 조금 애매하긴 했다.
분명 트랙터는 소 여러 마리를 대체할 수 있었다.
후하게 계산해서 트랙터가 소 10마리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소 10마리의 가격을 계산해서 그 돈으로 트랙터를 만들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트랙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고장이 난다면 이를 수리하기도 쉽지는 않을 테고.
거기에 그냥 풀을 뜯어 먹으면 되는 소에 비해 트랙터는 연료를 보충해줘야 하니 유지비도 더 많이 들어갈 테고.
‘하지만...그래도 이 넓은 땅을 최대한 개간하려면 기계의 힘이 필요하긴 하니 일단 조금 양산해서 써먹어 보고 문제점을 찾아 계속 개선해 나가야겠지. 그리고 트랙터 뒤에 부착하는 장비들이 큰 편이라 최소한 시간은 어느 정도 단축할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네.’
생각을 끝낸 정성국이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저거 양산은 가능하지?“
양산이란 말에 환한 얼굴을 하는 박기동이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럼 일단 10대만 만들어서 실제 사용해보도록 하자고. 그러면서 개선해 나가자고.“
”알겠습니다. 스승님.“
우렁차게 대답하는 박기동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정성국이 덧붙였다.
”아. 그리고 가뜩이나 부족한 연구원들을 트랙터를 운전하는데 차출할 생각이 아니라면 제대로 트랙터 운용법을 만들어서 교육할 준비를 해둬. 그리고 간단한 정비 정도는 할 수 있게 말이야.“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식겁한 표정으로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몸을 돌려 뒤쪽에서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를 향해 걸어가려다 문득 생각이 나서 박기동에게 말했다.
”그리고 저 트랙터를 양산할 생각이니...정식 명칭은 경운차라고 하자.“
”경운차라...알겠습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