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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47화 (147/850)

147화

그 후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조용한 곰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식으로 북미왕국에 합류하게 되는지에 대해 의논하고 또 여러 조언을 들었다.

비록 아이누 부족 연합으로 부르며 외교적으로는 한 나라 취급을 하긴 했지만, 실제 아이누 부족 연합은 그저 단순한 부족 연합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청장들은 그동안 북미 지역의 수많은 원주민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키며 숙달된 일 처리로 능숙하게 아이누 부족 연합을 자잘한 부족별로 해체해 북미왕국의 행정 체계에 편입시켰다.

다만 다른 곳과는 달리 이번에 북미왕국의 영토로 편입된 홋카이도나 아이누 섬은 북미왕국 본토와의 거리가 꽤 먼 편이었고 기존의 이주 선단 편으로 연락을 주고받기엔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정성국은 최주명에게 최대한 빠른 연락선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곧바로 정성국의 집무실로 찾아온 최주명을 보고 정성국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어? 안 바쁘냐? 네가 여길 왜 왔어?”

새김포에 연구소 중 일부는 새한성으로 옮겼지만 아직 옮기지 못한 연구소는 많았다.

그리고 최주명의 경우는 새김포의 조선소 안에 마련된 연구소에서 일하는 만큼 새김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 직접 그를 부르기보단 보고서로 명령을 내린 것인데 갑자기 새한성의 집무실에 들이닥쳤으니 놀랄 수밖에.

그런 정성국의 얼굴을 보고 최주명은 히죽 웃으면서 대답했다.

“일이 있어서 새한성에 들렸다가 스승님이 연구청을 통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들렸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탁자를 가리키며 최주명을 앉히고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정성국이 직접 차를 우려 건네자 최주명은 황송해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아들었고 그런 최주명을 보고 피식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래? 온 김에 이야기나 좀 하자 그럼.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지?”

정성국이 건네준 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던 최주명이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얼핏 듣기론 쾌속선 연구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슬쩍 턱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쾌속선이라...내가 말한 건 연락선이긴 한데 뭐 비슷하니 상관없겠지. 이번에 아이누인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은 알지?”

아직 아이누인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북미왕국 전체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관리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최주명도 모르지는 않았기에 웃음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아이누인들에게나 북미왕국에나 서로 좋은 일이죠.”

“그렇긴 하지. 문제는 이곳과의 거리가 워낙 멀어 연락을 주고받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란 말이지.”

기존 이주 선단의 경우 가장 빠르다는 천급 함선으로 구성된 이주 선단이 개척촌에서 새김포까지 도착하는데 평균 25일이 걸렸다.

물론 개척촌에서 출발하는 이주 선단보다야 포로나이에서 출발하는 정기 연락선은 거리 때문에 조금 단축되긴 하겠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이는 포로나이에서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 해도 이 보고가 새김포를 거쳐 새한성까지 도착하고, 이를 보고 받고 결정을 내려 명령이 다시 새한성에서 포로나이까지 도착하는데 대략 2달은 소모된다는 의미였다.

이러니 이를 단축할 방법이 필요했다.

해저 전신을 깔기 전까지는 쾌속선을 이용한 연락선밖에는 답이 없었기에 정성국은 최주명에게 빠른 연락선의 개발을 명령한 것이었고.

이를 이야기하자 최주명은 왜 갑자기 쾌속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쾌속선 이야기가 나온 거군요?”

“그래. 어차피 연락선으로 쓸 생각이라...적재량 이런 것도 크게 신경을 쓸 필요 없어. 오로지 속도 하나만을 고려해서 배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지?”

정성국의 물음에 최주명은 찻잔의 온기를 느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으음...마침 잘됐네요.”

“응?”

“기동이 녀석이 새로운 증기기관을 개발 중인데 이번엔 별다른 문제가 없다나 봐요. 저도 그 증기기관 때문에 새한성에 왔던 거고. 그 증기기관을 사용해서 쾌속선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네요.”

그런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살짝 당혹한 표정으로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연구청에서 올라온 보고서 중에 새로운 증기기관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었다.

“그래? 아니. 근데 난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

그러자 최주명은 자신의 말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아직 제대로 완성한 것은 아니라서요. 가동 실험을 한다기에 그거 구경하러 갔었던 거거든요. 그리고 가동 실험 중에 큰 문제는 없었고...지금은 장기간 가동 실험에 들어갔으니...아직 실험도 다 끝나지 않았죠. 그러니 아직 전하께는 보고가 안 올라갔을 겁니다.”

가동 실험 중에 멈추거나 실험이 실패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렇기에 모든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에야 정성국에게 보고되는 만큼 아직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한 정성국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증기기관에 무척 관심을 보였다.

최근 박기동과 휘하 장인들에게 워낙 많은 일을 맡겼기에 정성국이 연구소를 찾아가기만 해도 기겁하는 눈치여서 최근엔 출입을 자제했기에 이들의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그래? 헌데 그 증기기관은 몇 마력인데? 한 350마력쯤 되나?”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음...500마력을 목표로 하긴 했는데...실제론 450마력에 살짝 못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기동이는 그 증기기관은 연구용으로 남겨두고 더 연구해서 어떻게든 500마력을 넘겨볼 작정이라고 하던데...”

“헉. 그래?”

정성국은 최주명의 대답에 기겁했다.

북미왕국에서 선박에 달린 증기기관은 대부분 250마력짜리 증기기관이다.

헌데 비록 500마력은 넘지 못했지만 450마력만 해도 확실히 출력이 대폭 향상된다는 뜻이고 기존의 선박에 달린 증기기관을 교체하기만 하면 선박의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이는 그만큼 더 많은 물자와 인력을 운송할 수 있다는 뜻이니 북미왕국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에 정성국의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가 되었을 때 최주명이 무심한 목소리로 그런 정성국의 행복회로를 박살 내버렸다.

“예. 뭐 대신 크기도 조금 더 커져서 기존의 250마력 증기기관을 교체하려면 선박을 분해하고 개조해야 할 것 같더군요. 거의 새로 건조하는 수준이랄까.”

“끙...”

그 말에 정성국의 표정은 확 구겨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해도 이 새로운 증기기관의 개발에 성공한다면 새롭게 건조되는 선박을 설계 변경을 통해 장착하면 되니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해 다시 얼굴이 밝아졌을 때 최주명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기동이는 그 새로운 증기기관은 실험에 성공하더라도 양산하지 않고 더 연구할 생각인가 본데...스승님의 명령이 있는 만큼 실험이 모두 성공적으로 끝나면 몇 개 양산해서 쾌속선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지원을 해줄 테니 제대로 된 쾌속선을 만들어봐. 새남포에서 포로나이까지...음...최소한 10일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정성국의 대답에 최주명은 기겁하다 자세히 따져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허억...어? 그 정도면 아예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결국, 새로 개발해야 하는 쾌속선은 평균 20노트는 나와야 한다는 거군요. 흐음...알겠습니다. 근데 왜 새남포입니까? 새김포나 새한성이 아니라?”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새남포에서는 정기선 편으로 보내면 그만이니까.”

정성국의 대답에 살짝 애매하다는 표정을 짓는 최주명이었다.

“아...근데 그러면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새남포에서 정기선 편에 새김포로, 새김포에서 또 정기선 편으로 새한성까지...”

그런 최주명을 보고 정성국은 한숨을 쉬었다.

그도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금 더 빠른 연락망을 구축하겠답시고 쾌속선을 대량으로 건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이 정기 연락선을 일주일, 아니 10일 간격으로 보낸다고 쳐도 선원들의 휴식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함선까지 고려하면 최소 4척은 필요했다.

이것도 새남포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지 새김포까지라면 한두 척은 더 건조해야 했으니.

“뭐 여유가 있다면야 그러면 좋긴 하지. 헌데 정기 연락선을 왕창 건조할 여력이 없으니 문제겠지?”

정성국의 말에 조선소의 상황을 떠올린 최주명이 그렇구나 싶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긴 하죠.”

그런 최주명을 보고 정성국이 덧붙였다.

“거기에 이번에 해군을 개편한다는 소식은 들었지?”

“아. 그럼요. 어? 그럼 전선을 더 건조해야 합니까?”

놀란 최주명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3함대에 인급 전선 4척을 더 건조해서 배정할 생각이야. 아. 그리고 해군 탐사대의 전용 함선도 건조해야 할 테니.”

점점 더 많은 일거리를 던져주는 자신의 스승을 보고 최주명은 질린 기색으로 물었다.

“탐사대 전용 함선? 그건 또 어떤 방향으로 설계해야 하는 겁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최주명을 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제자를 살려줄 겸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제대로 된 탐사선을 만들었으면 싶지만...당장 그럴 여유는 없으니까 일단 인급 전선을 기초로 해서 적당히 개조해서 만들도록 해. 인급 전선과는 달리 화포는 선수포와 선미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빼고 짐을 실을 공간을 만들고. 장기간 항해에 대비해서 말이지.”

그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최주명이었다.

“음...그 정도면 크게 어려울 것은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헌데 이 탐사선도 많이 건조하실 생각입니까?”

최주명의 의문에 정성국은 자신의 집무실 한쪽에 걸려있는 커다란 북미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길 보라고. 저 새남포를 기준으로 북쪽의 커다란 영토를 해안가를 따라 샅샅이 탐사해야 하는데...그걸 한두 척 가지고 가능하겠어?”

정성국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최주명은 광활한 북미 지역의 지도를 보고 질린 기색으로 수긍했다.

“그...그렇네요. 쉽지 않겠는데요?”

“그리고 상황을 봐서 하와이를 모항으로 남태평양의 섬들을 탐사도 진행할 생각이야.”

정성국의 말에 끝나자 광활한 태평양을 떠올리고 최주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성국은 이 해군 탐사대를 왕창 키울 작정으로 보였기에.

“...어휴. 그럼 정말 해군 탐사대의 규모가 정말 커지겠네요?”

“그래야지. 하지만 워낙 넓은 바다라...쉽지 않을 거야.”

막막하다는 표정을 하는 스승을 잠시 바라보던 최주명은 뒤늦게 떠오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정성국에게 묻기 시작했다.

“헌데 스승님. 남태평양을 탐사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습니까? 설마 스승님은 저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도 원하시는 겁니까?”

이에 정성국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뭐 솔직히 북미왕국에 꼭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서양놈들이 저 섬들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깃발을 꽂을 거란 말이지?”

“아...그게 거슬린단 뜻이로군요?”

“그렇지.”

정성국은 굳이 태평양을 내해로 만들겠다는 야심은 없었다.

어차피 아이누 부족 연합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상, 그리고 하와이에 거점을 마련한 이상 북태평양 일부는 내해에 가까웠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다만 훗날 남태평양을 탐사하며 섬 곳곳에 깃발을 꽂을 서양 세력들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불어 집무실 벽에는 없는 호주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호주에 묻혀있는 자원을 생각하면 그냥 영국놈들한테 넘겨주기도 좀 아깝긴 한데...그건 어쩔 수 없어도 다른 섬들은 딴 놈들이 마음대로 깃발을 꽂게 놔둘 수야 없지.’

그런 생각을 하는 정성국의 귓가에 최주명의 푸념이 들려왔다.

“끙...오랜만에 스승님의 얼굴을 뵈려다 차 한잔 얻어 마시고 엄청난 일거리를 받은 셈이네요...”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면서 찻잔에 남은 차를 마신 후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어쩌겠어? 북미왕국의 발전을 위해 너희들은 고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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