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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46화 (146/850)

146화

숙소에 머물며 내심 정성국이 다시 부르기만을 기다리던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정성국의 부름에 곧바로 회의실로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그렇게 급하게 오실 일은 아니었는데...일단 앉으시죠.”

허겁지겁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둘을 보고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시종을 불러 차를 가져오게 시켰다.

그리고 시종이 차를 가져올 때까지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정성국은 시종이 차를 가져오고 이를 마시면서 샤쿠샤인과 투로시노가 어느 정도 진정된 듯 하자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청장들은 아이누 부족 연합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것을 무척 반가워하더군요.”

정성국의 말에 샤쿠샤인이나 투로시노는 살짝 안도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회의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아이누 부족 연합의 영역을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긴 했습니다만...아직은 뼈대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더 걸릴 거에요.”

이에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누 부족 연합의 영토와 인구수가 적지 않았으니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군요.”

“해서 일단 결정된 사항과 여러분과 논의할 사항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정성국이 말을 하자 이제부터가 본론이라고 느낀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정성국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에 슬쩍 미소를 머금은 정성국은 아이누인들이 제일 우려할만한 일부터 덜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일단 아이누 부족 연합의 해군은 없는 만큼 북미왕국의 해군을 추가로 보내 혹시 모를 막부의 도발을 사전에 차단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둘의 안색이 무척 밝아지며 감사를 표하자 정성국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이제 아이누인들도 북미왕국의 일원이니 당연한 겁니다. 다만 북미왕국의 육군은 현재 확장된 영역을 방어하는 것으로 벅찬지라 홋카이도와 아이누 섬은 아이누인들이 직접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성국의 말에 투로시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샤쿠샤인은 오히려 살짝 기대 섞인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북미왕국의 병사가 된다면...우리도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처럼 화약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화약 무기는 아이누인들이 보기에 무척 대단한 무기였다.

그 때문에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이 화약 무기를 다루는 것을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무척 부러워했었고.

헌데 이제는 훗카이도의 아이누인들도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처럼 화약 무기를 다룰 수 있다는 소리에 어찌 기대하지 않겠는가.

정성국은 그런 샤쿠샤인을 보고 살짝 웃으면서 긍정했다.

“물론입니다.”

“오오! 그렇다면 아마 아이누 전사들은 모두 북미왕국의 병사가 되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서 샤쿠샤인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1만이 넘는 전쟁을 경험했던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 모두가 병사가 되기를 원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더불어 그 정도면 샤모들을 제대로 혼내줄 수도 있을 거라고 덧붙였고.

이에 정성국은 웃으면서 샤쿠샤인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건 참 고마운 소립니다만...너무 많은 병사를 모집하고 유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의 유지비도 생각해야 하고 전사라는 소리는 결국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내라는 뜻과도 같은 만큼...”

정성국이 조곤조곤 이야기하자 샤쿠샤인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샤쿠샤인 역시 대부족을 이끌었던 사람이니 이를 모르진 않았으니까.

“아...그건 그렇지요. 허면 얼마나 모집하실 생각이십니까? 전하.”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슬쩍 숫자를 늘려 대답했다.

“아이누 섬에 1천, 홋카이도 섬에 3천, 그리고 아이누 섬과 카무이 반도 사이에 여러 섬에 배치할 병력을 합쳐 총 5천의 병사를 모집해 유지할 생각입니다.”

원래는 훗카이도 섬에서 1천을 모집할 생각이었다.

3함대를 이동시키면 아무리 막부라 해도 함부로 움직이기는 힘들 테니 경비대를 많이 모집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쿠샤인의 방금 행동을 볼 때 가뜩이나 인구가 많은 홋카이도에서 고작 1천을 모집한다면 무척 실망할 것 같기도 했고 병사야 많아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슬쩍 수를 늘렸다.

‘연구청장이 올린 보고서가 아니었다면 고민을 좀 했겠지만...’

회의가 끝난 후 연구청장이 정성국의 집무실로 찾아와 어업 연구소의 해삼 양식에 관한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다.

어업 연구소는 농업 연구소 이후에 세워진 연구소로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해삼 양식과 각종 물고기의 양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 잔뼈가 굵은 어부들로 구성된 어업 연구소에서는 이곳 바다는 무척 풍부한 어장을 자랑하는데 굳이 이런 연구가 필요하냐는 분위기였지만 하늘 같은 정성국의 명령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정성국이 붙여준 어업 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은 정성국의 말도 일리는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풍부한 어장이라고 하더라도 태어나는 물고기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면 결국 황폐해질 테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정성국의 말을.

더불어 바다의 경우는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사는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만큼 풍부한 어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어획한 만큼은 치어를 방류해야 한다는 정성국의 주장을.

이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여러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아무래도 이런 연구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기에 정성국은 별다른 보고가 없어 잊고 있었다.

헌데 연구청장이 가져온 보고서에는 최근 해삼의 종묘 생산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담겨 있었다.

이 보고서를 보고 정성국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아이누 부족 연합의 영역이 북미왕국의 영역이 되어버린 이상 이곳을 발전시키려면 꽤 큰 비용이 지속해서 들어갈 텐데 해삼 양식이 가능해진다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청나라의 해삼 시장은 무척이나 큰 편이었고 이를 장악하기만 한다면 돈은 갈퀴로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잘못하다가 해삼의 씨를 말릴까 걱정되어 철저하게 소량만 채취해 건해삼으로 가공해 밀무역으로 청나라에 건해삼을 팔았다.

이 건해삼을 거래하게 된 광둥 상인은 최상품의 건해삼을 거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고.

덕분에 이 밀무역으로 유통되는 홋카이도의 건해삼은 북해삼이라는 이름을 달고 최고급품으로 청나라에서 무척 비싸게 팔린다는 원상의 보고였다.

다만 물량이 워낙 부족한 것이 흠이었는데 이번 연구로 인해 청나라의 해삼 시장을 장악할 방법이 생긴 셈이다.

‘해삼 양식이 제대로 진행된다면...다음은 전복 양식 연구를 권해야겠군.’

해삼이 바다의 삼으로 불리며 중국 남성들의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면 전복은 바다의 웅담으로 불리며 중국 여성들의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더불어 상어 지느러미와 함께 바다의 삼보로 꼽히고.

그런 만큼 전복 양식까지 가능해진다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성국의 입이 귓가에 걸렸을 때 샤쿠샤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허어...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사 5천이라니...”

샤쿠샤인의 감탄에 정성국은 이내 망상을 끝내고 정신을 차린 후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이야기했다.

“그 정도에 추가로 배치된 북미왕국의 해군과 포로나이를 드나드는 원상의 선박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막부라도 손쉽게 홋카이도를 공격하긴 어려울 겁니다.”

정성국의 말에 샤쿠샤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투로시노는 활짝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럴 겁니다. 된통 당한 기억이 있으니까요. 정말 다행이군요.”

정성국은 이쯤에서 이야기의 주제를 살짝 돌렸다.

“헌데 듣기로는 공들을 따라 북미왕국에 도착한 수행 인원들이 아이누인들의 대들보라면서요?”

이에 샤쿠샤인은 슬쩍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행 인원 가운데는 오니비시나 샤쿠샤인의 자식들도 있었으니.

“아...그렇습니다. 조선말을 할 수 있는 똑똑한 녀석들입니다. 투로시노가 워낙 젊고 똑똑한 녀석들에게 견문을 넓혀줘야 한다고 주장한 탓에...”

“하하하. 맞는 말이지요. 역시 투로시노 답군요.”

정성국은 자신의 이야기에 민망한 표정으로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투로시노를 보고 박수를 쳐가며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민망해 어쩔 줄 모르는 투로시노의 예전 모습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렇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을 때 샤쿠샤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그들은 왜...”

“아. 혹시 그들을 이곳에 두고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으음...”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샤쿠샤인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이를 깨닫고 정성국은 곧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인질이 아닙니다. 북미왕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현재 북미왕국은 내륙 지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터라 관리가 무척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래서 홋카이도나 아이누 섬에 파견할 관리가 없지요.”

이에 샤쿠샤인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아...설마 이들을 가르쳐서?”

그런 샤쿠샤인을 보고 정성국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애당초 수행 인원 대부분이 부족장들의 자식들이고 그중에는 오니비시나 샤쿠샤인의 자식도 있었기에 잘못하면 이들의 영향력이 대를 이어 나갈 수도 있었지만, 정성국은 그런 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들이 아무리 영향력을 키워봐야 훗날 홋카이도나 아이누 섬의 주변 국가를 생각해보면 감히 본국에 이를 드러내지는 못할 테니까.

더불어 가뜩이나 쓸 수 있는 고급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선말과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아이누인들이라면 어떻게든 관리로 만들어 굴려야 하지 않겠는가.

“예. 제대로 가르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당장 필요한 것만 단기간에 가르쳐서 관리로 다시 홋카이도와 아이누 섬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정성국의 확답에 샤쿠샤인은 밝은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수행 인원 대부분은 부족장들의 자식이고 그중에는 샤쿠샤인의 아들과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이곳에서 교육받은 후 관리로 돌아온다면 이들의 미래도 밝을 테니 말이다.

그런 샤쿠샤인을 보면서 정성국은 덧붙였다.

“아마 당분간은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곳에서 어느 정도 배우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면 그때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허어...그것 참...기대되는군요.”

정성국의 말에 투로시노도, 샤쿠샤인도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성국이 슬쩍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샤쿠샤인 공과 투로시노 공, 그리고 이 자리엔 없는 오니비시 공까지 설마 자리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하게 세월을 낚으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이에 샤쿠샤인은 정성국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누인들과 북미왕국을 위해서라면 신명을 다 바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투로시노는 뒤늦게 고개를 숙였고.

그런 둘의 뒤통수를 보면서 정성국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그럼 공들이 북미왕국을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할 텐데...이 부분은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세요. 미리 이야기해두었으니.”

이에 샤쿠샤인은 무척 감격스러운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북미왕국에 합류했지만 샤쿠샤인은 홋카이도 아이누인의 절반을 지배하던 대부족장이었다.

물론 웅크린 늑대와 이야기 하면서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두려움을 지울 수 있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었기에 내심 근심하고 있었고.

더불어 북미왕국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혹시 자신과 오니비시를 배제해 뒷방 늙은이로 만들고 투로시노를 밀어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진 않았다.

헌데 정성국이 직접 이를 언급했기에 그럴 일은 없겠구나 싶어 샤쿠샤인은 감격한 것이다.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아닙니다. 당연한 거지요.”

그런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를 바라보는 정성국은 의욕 넘치는 사원을 바라보는 악덕 사장의 눈빛과 무척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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