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새김포에 도착한 아이누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목욕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새김포를 둘러보고 싶어했지만 혹시 이주 선단을 통해 전염병이 유입될까 걱정한 정성국 때문에 이주 선단이 정박한 선착장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머무는 곳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씻고 옷을 세탁하거나 갈아입기 전엔 나가지도 못했고.
아무리 아이누인들이 외교 사절이라 하더라도 그런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이를 불쾌해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설명한 웅크린 늑대였고 아이누인들은 크게 불쾌해하지 않았다.
이들이 얼마나 청결과 위생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는 투로시노를 통해 여러 차례 듣기도 했었을뿐더러 포로나이 항에서 배를 탈 때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으니 말이다.
다만 원상이 포로나이에 진출한 이후 곳곳에 뜨거운 물로 목욕할 수 있는 목욕탕을 만들어두었기에 이미 씻는다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과는 달리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은 여전히 어색해했다.
아무래도 아이누인들은 추운 지역에 살았기에 자주 씻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투로시노는 무척 어색한 표정으로 목욕탕을 나오는 샤쿠샤인을 보고 피식 웃었다.
“뭘 그리 어색해하나. 깨끗하게 씻으니 기분 좋지 않나?”
투로시노의 말에 샤쿠샤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그런 샤쿠샤인을 보고 투로시노는 웃으면서 말했다.
“홋카이도도 발전해서 곳곳에 목욕탕이 생긴다면 익숙해질걸세.”
“그럴려나...? 근데 이들은 매일 이렇게 목욕을 하는 건가?”
분명 따뜻한 물과 비누를 사용해 씻고 나니 개운하긴 했다.
더불어 은은한 비누 향 때문에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걸? 이들은 청결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거든. 더러우면 전염병이 걸린다고 믿던데?”
투로시노가 원상과 어울리며 위생과 청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투로시노가 듣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병을 옮긴다는 소리는 조금 황당하게 들렸다.
그래서 투로시노는 단순한 문화나 풍습으로 생각해 이야기하자 샤쿠샤인은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이들의 풍습이란 거군. 만약 우리가 북미왕국에 합류한다면 우리도 이렇게 청결을 신경 써야 할까?”
샤쿠샤인의 물음에 투로시노는 예전 정성국과 함께 배를 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아마 그럴걸? 다른 건 몰라도 청결은 대방 어르신이, 아.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무척이나 신경 썼거든.”
“흐음.”
투로시노의 입에서 정성국의 이야기가 나오자 샤쿠샤인이 집중해서 들었다.
“예전에 지급 함선을 타고 이곳으로 항해했을 때도 투덜거리곤 했거든. 배에도 목욕탕을 설치하고 매일 씻을 수 있으면 좋을 거라고 말이지.”
“허어. 그래?”
“아아. 목욕탕을 만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데 그곳에서 사용할 물을 감당키 어려워서 결국 포기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투로시노는 예전 태평양을 횡단하던 기억이 떠올라 키득거렸다.
그때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적은 물로 씻는 것을 보며 툴툴거리던 것을 기억하고 나중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박경수에게 정성국이 왜 저러는지를 물었고 이에 박경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저것이었다.
이를 듣고 샤쿠샤인은 북미왕국에 합류하게 되면 매일같이 이렇게 씻어야겠구나 싶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 *
아이누인들은 깨끗하게 씻고 북미왕국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고 잠시간의 휴식 후에 바로 웅크린 늑대와 외무청 관리들의 안내를 받아 새김포를 둘러보았다.
이번 북미왕국 행에는 샤쿠샤인과 투로시노 뿐만아니라 수행원으로 50명에 가까운 아이누인들이 따라왔다.
딱히 호위의 목적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아이누인들은 원상과 북미왕국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으니.
거기에 이주 선단에 끼어 가는 셈이라 샤쿠샤인은 그냥 수행원 없이 가는 것을 고려했으나 투로시노가 반대했다.
이 기회에 아이누인들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면서.
투로시노 본인이 정성국을 따라 배를 타고 고작 섬이 전부가 아닌 이 세상은 무척이나 넓고 섬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었으니 이를 다른 아이누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젊은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과 홋카이도 섬의 아이누인들이 수행원으로 따라오게 되었고 이들은 외무청 관리의 뒤를 따라 새김포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나마 포로나이에서 살던 아이누인들은 조금 덜했지만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은 도로를 따라 건물들이 죽 늘어선 새김포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샤쿠샤인도 그중에 하나였고.
“저들이 부럽군.”
“응? 뭐가?”
옆에서 새김포의 거리를 구경하던 투로시노가 샤쿠샤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이에 샤쿠샤인은 쓴웃음을 머금고 다시 고개를 돌려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걸어가는 거리 맞은편의 남성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들을 보게.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지 않나.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고. 저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군.”
이곳 새김포의 거리를 오전 내내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무척 여유롭다는 것이다.
이는 함께 배에 타고 이곳까지 왔고 아직 격리되어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선에서 온 이주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주민들 대부분은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원상을 믿고 배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고 약간 날카로운 기색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행동에서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를 언급하자 투로시노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하. 그렇지. 어때? 직접 이들을 보니 어떻게든 아이누인들도 저들처럼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아...그래서...”
이에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쪽에서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구경하기 바쁜 젊은 아이누인들을 보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더 많은 아이누의 젊은이들을 수행원으로 뽑은 걸세. 그리고 이 이 광경을 보고 여러 감정을 느끼길 원했고. 뭐 저 녀석들이야 그저 낯선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군.”
샤쿠샤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자 투로시노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부러워할 것 없어. 우리 아이누인들도 곧 저렇게 될걸세.”
“그게...가능할까?”
샤쿠샤인의 물음에 투로시노가 피식 웃으면서 잡고 있던 샤쿠샤인의 어깨를 꽉 쥐면서 말했다.
“그러려고 그 넓은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온 것 아닌가?”
지도자인 네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냐는 얼굴을 한 투로시노를 보고, 그리고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린 샤쿠샤인이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랬지. 그것 때문에 온 거지.”
그런 샤쿠샤인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던지 투로시노는 어깨동무를 풀면서 말했다.
“그리고 자네가 포로나이 항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아이누 섬의 경우는 이들이 전해준 감자 덕분에 예전에 비하면 훨씬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졌어. 더불어 교역까지. 덕분에 이들처럼 잘 정비된 도시는 없을지언정 분위기나 여유는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그러니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인들도 곧 그렇게 될걸세.”
그 말을 끝으로 걸어가는 투로시노의 등이 왠지 모르게 커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샤쿠샤인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 * *
갑작스럽게 보고할 것이 있다며 정성국의 집무실에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이 찾아왔다.
그리고 먼저 조용한 곰이 보고를 시작했고 정성국은 이를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이누 부족 연합의 사람들이 새김포에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그래? 항해 도중에 별일은 없었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전하.”
이번 이주 선단 편에 아이누 부족 연합 일행 50명이 안전하게 새김포에 도착했다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누 부족 연합의 지도자 중 둘이 직접 배를 타고 이곳을 방문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들에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중에 골치 아파지니 말이다.
“다행이군. 그럼 아직 새김포에 있나?”
“예. 새김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아마 모래 정기선을 타고 이곳 새한성으로 안내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정기선을 타고 반나절을 이동하면 도착하는 만큼 모래면 아이누 부족 연합이 이곳에 도착한다는 소리였기에 정성국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았네. 아이누 부족 연합은 중요한 동맹이나 다름없으니 맞이하는데도 최대한 신경 쓰도록 하게.”
이에 조용한 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조용한 곰이 집무실로 함께 찾아온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이 입을 열었다.
“전하. 탐사대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 보고에 정성국은 살짝 긴장해서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뭐라던가?”
그런 정성국을 보고 군사청장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하려 했던 두 부족의 근거지는 철저하게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래? 피해는?”
“전무합니다. 전투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탐사대 전원이 바람같이 달려가 마을을 에워싸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 말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탐사대는 제대로 된 기병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에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피해가 발생할까 내심 걱정했기에.
“다행이군...다른 부족들의 반응은?”
이에 군사청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군사청장이 탐사대를 보내 이번에 북미왕국을 공격한 자들의 근거지까지 공격하려 했던 것은 복수도 복수였지만 결국 북미왕국의 힘을 주변 부족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번 탐사대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청장이 원하던 대로 주변 부족들은 북미왕국의 힘에 놀라며 탐사대의 눈치를 보기 급급했다고 하니 이번에 탐사대를 보내 목표는 모두 달성한 셈이다.
“다른 부족들 역시 탐사대가 직접 움직이니 그 위용에 움츠러든 기색이 역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하고요.”
“그래? 다른 아파치 족들도?”
그런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대답했다.
“탐사대와 함께 이동한 외무청의 관리의 보고에 따르면 혹시 자신들의 마을을 공격할까 내심 두려워하는 모양새였지 조그마한 부족의 생사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외무청의 관리조차 그렇게 판단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은 이내 전후처리에 관심을 두었다.
“다행이군. 그럼 포로들은?”
“산타페로 일단 데려와서 일을 시킬 생각입니다.”
비록 전사들은 대부분 죽거나 이미 포로로 잡혔기에 이번에 포로로 잡은 아파치 족은 대부분 노약자나 여인, 아이의 비중이 무척 높을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들의 일손이라도 필요한 것이 현재 북미왕국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탄광에 보내겠다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재교육해서 어떻게든 써먹겠다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긴 하지만 저들이 북미왕국을 공격해 경비대원이 죽은 이상 그냥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뭐...너무 가혹하게만 대하지 않으면 되겠지.’
“알겠네. 다만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는 말게. 그리고 아이들을 어미와 떼어놓지도 말고.”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