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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40화 (140/850)

140화

“이곳이로군...북미왕국이.”

마침내 도착한 북미왕국의 새김포를 천급 함선의 갑판 위에서 바라보는 샤쿠샤인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누인들의 독립을 도왔던 원상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정성국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 드디어 도착했으니.

그 과정에서 원상의 힘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지금 샤쿠샤인이 타고 있던 천급 함선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보아왔던 그 듬직한 지급 전선보다 더욱 커다란 배가 포로나이 항에 여러 척 정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홋카이도에서 온 아이누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이 천급 함선을 타고 항해하면서 들른 원상, 아니 북미왕국이 곳곳에 징검다리처럼 만들어놓은 항구의 크기도 포로나이와는 비교하기 어려웠지만, 홋카이도의 항구보다는 큰 편이었기에 꽤 놀랐고.

저들의 새로운 본거지라는 새김포의 커다란 선착장과 곳곳에 정박해있는 선박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 샤쿠사인의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정말 엄청 발전했는데? 이거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곳 맞나?”

샤쿠샤인이 고개를 돌리자 뒤편에선 막 선실에서 갑판 위로 나온 투로시노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샤쿠샤인은 그런 투로시노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왔나? 투로시노? 그러고 보니 넌 이곳에 방문했었다고 했지?”

샤쿠샤인의 물음에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뻗어 선착장 뒤편의 커다란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원상이 처음으로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함께 왔었거든. 그때는 저기 저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작은 숲 정도만 있었지.”

“그래?”

“응. 근데 어디 보자...한 7년쯤? 헌데 그사이에 이렇게 커다란 선착장과 항구가 들어서다니. 대단하네.”

그러면서 최근 급격하게 확장하고 있는 포로나이의 선착장과 비슷한 크기의 새김포 선착장을 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크기는 비슷할지언정 새김포의 선착장은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런가. 확실히...직접 오기를 잘했군.”

이에 투로시노가 웃으면서 이 자리에 없는 오니비시를 거론했다.

“하하하. 그렇지? 오니비시가 괜히 안타까워한 게 아니라니까? 오니비시는 개척촌까지 다녀왔었으니 이곳도 직접 보고 싶었을 거야.”

개척촌에 방문했지만, 원상을 만들었다는 정성국을 직접 만나지 못해 실망했던 오니비시는 이곳 북미 지역도 직접 방문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잉글랜드의 선박이 아이누 부족 연합에 도착해 아이누 부족 연합 뒤에 있는 원상과 접촉을 요구한 이후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잉글랜드에 원상이 아닌 북미왕국이란 이름으로 접촉한 만큼 입을 맞출 필요가 있었기에 최소한 아이누 부족 연합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샤쿠샤인, 오니비시, 투로시노에게는 바다 건너 새로 발견해 개척한 땅에 원상의 대방이었던 정성국이 최근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고 알렸다.

이에 세 명은 내심 낙담했다.

개척촌에 다녀오고 포로나이에서 원상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알게 된 후 아이누인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성국을 왕으로 옹립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에 어찌해야 하나 싶어 일단 이 북미왕국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이주 선단의 경유지인 포로나이에 머물렀던 투로시노가 동분서주했다.

그나마 투로시노는 예전 원상의 배를 타고 항해했었기에 아는 선원도 적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겠지만 투로시노는 아이누인들의 대표나 다름없었기에 그들도 너무 감추려고 들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었고.

아무튼, 그렇게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북미왕국이 이주민과 그 땅의 원주민들이 함께 세운 국가이고 주변 부족들이 북미왕국에 자발적으로 합류해 북미왕국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투로시노는 이거다 싶었다.

아이누 부족 연합 역시 저 북미 지역의 원주민 부족처럼 북미왕국에 합류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물론 북미왕국에서 받아준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했지만 투로시노가 생각할 때 안전한 항로를 위해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을 지원하고 막부와의 충돌까지 불사했던 원상과 북미왕국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동맹보다는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것이 북미왕국의 입장에서도 더 안정적이지 않겠는가.

이를 샤쿠샤인과 오니비시에게 이야기하니 이들 역시 오랜 고민 끝에 투로시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를 슬쩍 아이누인들과 친분이 깊은 정일신 함장이나 박경수에게도 알리며 조언을 구했고 이 둘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이들은 만약 북미왕국에 합류할 생각이라면 하루빨리 합류하길 권했다.

이주 선단을 통해 들려오는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 둘은 북미왕국의 확장세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최대한 빠르게 북미왕국에 합류해 여러 지원을 받는 것이 아이누인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둘의 조언과 원상에서 북미왕국으로의 방문을 허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곧바로 아이누 부족 연합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샤쿠샤인과 오니비시, 투로시노는 모여 한참 동안 아이누인들의 미래를 위해 토의했다.

그 결과 이번 북미왕국 행에서 정성국을 직접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개척촌에 방문한 후 정성국을 만나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며 이번 북미왕국 행에 참가하려던 오니비시는 이번 북미왕국 행이 가지는 중요성에 결국 샤쿠샤인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투로시노야 아이누 섬의 아이누인들 중 가장 중요한 위치이기는 했지만, 부족장은 아니었기에 자리를 비워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샤쿠샤인과 오니비시는 홋카이도섬을 양분하는 대부족의 부족장이었기에 둘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신보다는 협상에 능한 샤쿠샤인이 정성국을 만나는 것이 아이누인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깔끔하게 북미왕국 행을 포기했다.

투로시노가 샤쿠샤인을 대신해 홋카이도에 남은 오니비시를 언급하자 샤쿠샤인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가 왜 그렇게 안타까워했는지는 알 것 같긴 해. 하지만 오니비시라면 차라리 내년에 마음 편히 이곳을 구경하는 게 그를 위해서도 더 나을걸?”

“하하하. 아무래도 그건 그렇지.”

그렇게 갑판 위에서 샤쿠샤인과 투로시노가 잡담을 하고 있을 때 천급 함선이 선착장에 정박했다.

투로시노와 샤쿠샤인은 함께 천급 함선에서 내렸고 주변을 둘러보다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기...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조선인과 원주민이라고 했던가?”

“그럴걸?”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쿠샤인은 신기하다는 듯 이주 선단에서 내리는 이주민들을 마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들은...원주민인가보군? 이곳 원주민들은 저렇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풍습이 있나 보네?”

그런 샤쿠샤인의 발언에 투로시노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아닌데? 내가 예전에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 원주민들은 수염은 없었지만,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뜨린 장발에 가까웠는데...”

그때 뒤에서 천급 함선의 선장이 그들을 따라 선착장에 내리면서 대답했다.

“지금 마중 나온 저 친구들은 대부분 조선인입니다.”

“그래요? 헌데 원상의 조선인들과는 겉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선장의 대답에 투로시노도, 샤쿠샤인도 의아한 기색에 선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다만 이곳은 여름에 무척 더운 곳이거든요. 더불어 북미왕국에서는 무척이나 위생을 신경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이곳에 도착한 조선인의 대부분은 저렇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릅니다. 그리고 그게 편해 보였는지 이곳 원주민들도 따라서 머리를 손질하더군요.”

다른 이주민들은 배 안에서 선원들에게 기초 교육을 받으며 여러 지식을 습득하지만 아이누인들은 이주민이 아닌 관계로 선원들의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몰랐던 부분을 선장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음...그럼 강제는 아니란 말입니까?”

샤쿠샤인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살짝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확인하자 선장은 웃으면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럼요. 딱히 강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곳은 생각보다 덥고 위생 때문에 매일 씻을 때 귀찮기에 결국은 다 자르지만요.”

“으음...”

선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훗날 북미왕국에 합류하게 되면 이들을 따라 머리와 수염을 깎아야 하는지 살짝 고민하는 샤쿠샤인이었다.

특히 아이누인들은 기본적으로 온몸에 털이 풍성한 편이었기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수염마저 깨끗하게 밀어버린 조선인과는 무척 다르게 보이는지라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선장이 손을 들었다.

“오. 저기 외무청 관리들이 보이는군요. 여깁니다!”

이에 외무청 관리들이 재빠르게 다가와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를 보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 마중이 늦어서 무척 죄송합니다. 이주 선단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아서 그만...”

그리고 그런 외무청 관리의 대응에 샤쿠샤인은 내심 안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북미왕국의 반응을 묘하게 걱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원상과 교류하면서 이들이 왜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항해를 통해 원상, 아니 북미왕국의 힘을 실감하게 되면서 위축된 것이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누 부족 연합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북미왕국의 도움이 아니라면 독립을 유지하기도 어려웠으니까.

헌데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마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과하는 외무청의 관리를 보는 순간 역시 이들은 왜인들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교역을 통해 막대한 폭리를 취하면서도 마치 교역을 허가해주는 것이 아이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인 양 거들먹거리면서 교역을 할 때마다 절을 시키던 왜인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이 고마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샤쿠샤인은 얼굴에 걸린 미소를 숨기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죄송할 게 무엇입니까. 그렇다고 딱히 늦게 온 것도 아니고.”

그런 샤쿠샤인의 대응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외무청의 웅크린 늑대라고 합니다.”

그나마 익숙하던 조선 이름과는 다른 이름에 원주민임을 깨달은 샤쿠샤인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투로시노가 옆에서 툭 치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저는 샤쿠샤인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투로시노구요.”

“아. 아이누 부족 연합의 지도자분들이시군요. 북미왕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웅크린 늑대의 말에 샤쿠샤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헌데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는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그런 샤쿠샤인의 물음에 웅크린 늑대는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원래라면 곧바로 국왕 전하와의 만남을 주선했겠지만 국왕 전하는 지금 이곳에 안 계십니다.”

“예?”

그들이 이곳까지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북미왕국의 왕인 정성국을 만나기 위함인데 지금 이곳에 없다는 말에 순간 당황한 샤쿠샤인과 투로시노였다.

그런 둘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재빨리 덧붙였다.

“그동안은 이곳 새김포에서 머무르셨지만 최근 내륙의 새한성이라는 곳으로 옮겨가셨습니다. 해서 잠시 이곳에서 쉬면서 오랜 항해에 쌓인 여독을 푼 후에 다시 수도인 새한성으로 가시면 될 듯 합니다만...”

그제야 안심을 한 샤쿠샤인과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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