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정성국은 새한성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정성국의 이동은 늦은 감이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훨씬 전에 새한성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전아라가 회임하자 그녀와 아이의 안전을 위해 이를 미뤘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각 청이 새김포에서 새한성으로 이동하면서 청장들 역시 대부분 이동한 상황이라 아무래도 업무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에 전아라는 정성국 먼저 새한성으로 이주하길 권했으나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청장들의 권한을 지속해서 확대해온 만큼 정성국이 잠시 부재중이라 하더라도 큰 문제가 생길 여지는 적었다.
그리고 회임한 이후 무척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전아라였지만 이곳에 홀로 두고 새한성으로 떠나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해서 전아라가 안정기에 진입할 때까지 기다렸고 마지막으로 군사청이 새한성으로 옮겨간 지 2주 후에 정성국은 새한성으로의 이주를 결정했다.
새김포에서 배를 타고 내해 안쪽으로 들어가 새한강을 타고 새한성까지 이동해 선착장에서 내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차로 옮겨탔다.
다행히 전아라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기에 정성국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차 옆의 유리창을 통해 새로운 수도인 새한성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야...많이 달라졌는데?”
정성국의 감탄사에 전아라 옆에 붙어있던 하얀 들꽃은 시선을 마차 밖 풍경에 고정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널찍하고 커다란 대로를 따라 2층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는 풍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네요. 전에는 그냥 벌판에 불과했는데! 저렇게 큰 건물들이 생겼을 줄은 몰랐네요.”
“그랬어?”
“예! 형님!”
전아라와는 달리 정성국과 하얀 들꽃은 이곳 새한성의 건설 초기에 한번 와 본 적이 있었다.
이때 보았던 풍경을 이야기하는 하얀 들꽃을 전아라가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주었고.
정성국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통해 흘러가는 새한성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지속해서 공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정성국이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개발청에서는 선착장과 궁전까지의 대로 주변을 집중적으로 개발했기에 새김포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공간이 넓어 곳곳에 공터나 광장을 만들고 가로수도 심겨 있어 오히려 살짝 복잡한 감이 있던 새김포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했고.
더불어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보인다는 점이 무척 만족스러운 정성국이었다.
그렇게 눈으로는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귀로는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잠시.
마침내 정성국은 새로 지낼 궁궐에 도착했다.
궁궐터는 훗날을 생각해 무척이나 넓게 잡았지만, 그 공간에 건설한 건물은 정성국이 업무를 볼 건물과 왕실 가족이 지낼 건물만 지어져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북미왕국의 왕이 지낼 공간인데 아무리 건설이 끝나지 않았다 한들 개발청에서 정성국의 생각처럼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을 리가 없었다.
많은 인력을 동원해 당장 쓰지 않을 땅에 그럴듯한 정원을 만들어두었기에 마차에서 내린 전아라와 하얀 들꽃의 표정은 무척 밝아졌다.
“어머!”
“예쁜 정원이네요. 회임한 후론 방안에만 머물러 답답했는데 가끔 산책하기 좋겠어요.”
“그러게. 너무 황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네.”
정성국 역시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더불어 이 정원과 어울리는 건물의 모습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궁궐을 아예 조선식으로 지어볼까 했지만, 북미왕국의 건축 양식은 조선의 건축 양식과는 매우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 궁궐만 조선식으로 짓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에 이를 개발청에 슬쩍 이야기했고 덕분에 눈앞에 있는 건물은 모양 자체는 북미왕국의 다른 건축물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궁궐이라 벽돌로 장식을 해 조금 더 화려해 보였고 건물의 크기는 다른 건물에 비해 훨씬 컸으며 수많은 유리창으로 장식되어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시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것이 끝나자 정성국 일행은 이제부터 그들이 생활하게 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새김포에서 지내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화려한 장식과 물품들로 가득했기에 정성국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고개를 움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개발청장을 탓할 정도로 정성국이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한창 구경에 정신없는 전아라와 하얀 들꽃에게 슬쩍 이야기한 후 정성국은 그가 업무를 볼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궁궐의 정문에서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이 커다란 건물은 공간 구성 자체는 새김포에서 정성국이 지내며 업무를 보았던 곳과 비슷했다.
해서 정성국은 바로 2층에 마련된 새로운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간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일해왔던 새김포의 집무실에 비하면 몇 배는 넓은 집무실이 무척 쾌적해 보였으니까.
더불어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책상 뒤편의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북미지역의 지도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갔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정성국은 북미지역 전체가 그려진 커다란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끼운 것 같긴 한데...”
그러면서 정성국은 앞으로의 북미왕국의 확장과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일단 성공적으로 캘리포니아 지역에 정착했고 이를 기반으로 멕시코 만까지 확장이 가능해졌다.
그렇지만 아직 멀었다.
후하게 계산해서 전생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지역을 모두 북미왕국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해도 북미지역의 광활한 영토를 생각하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정성국이 생각하는 북미지역은 멕시코 지역 이북, 전생의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지역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나마 에스파냐와는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된 상황이기도 하고 그들이 북진할 길목을 막아버린 셈이니 당분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본국과 물자 운송이 원활한 해안가의 땅을 원하지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내륙으로의 진출은 크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해 꺼리는 만큼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저들이 해안가를 따라 남하하는 것도 문제긴 했지만, 플로리다만 장악하기만 해도 저들을 어느 정도 견제하긴 충분했으니까.
문제라면 약 15년 후에 북쪽에서 강을 따라 내륙을 탐험하고 그 땅을 루이의 땅인 루이지애나라고 주장하는 프랑스였다.
지금 시기 유럽의 패권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라면 북미왕국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기에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에스파냐를 통해 유럽에 북미왕국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미시시피 강을 탐사하면서 미시시피 강 주변의 부족들을 회유해야 했지만, 솔직히 막막한 것이 사실이었다.
미시시피 강은 워낙 길었고 본류와 지류가 많았기에.
그렇다고 마땅히 프랑스를 견제할 방법도 없었고.
이에 정성국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커다란 북미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정말 더럽게 크긴 하네...이걸 어느 세월에 다 장악하냐...”
* * *
새롭게 이주한 새한성의 궁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정성국은 곧바로 청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새김포의 비좁은 회의실과는 전혀 다른 커다란 회의실에서 정성국은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장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오랜만에 보는데 신수가 훤하군? 새로 옮긴 청사가 마음에 드나 본데?”
““하하하.””
정성국의 말에 앉아있던 청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예전 새김포의 청사들은 워낙 작았고 북미왕국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관리들이 일할 공간이 없어 주변 건물에 분산되어 일했기에 업무 효율이 썩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새한성의 청사는 새김포의 청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편이었고 나중에 청사가 좁아지면 추가로 건물을 지을 공간까지 충분히 마련해두었고 당장은 쓰지 않을 이 공간을 휴식 공간으로 마련해두었으니 마음에 들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오랜만에 회의를 시작해보자고. 군사청장. 아직 소식은 없지?”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산타페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이제 막 출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되어 말했다.
“별일은 없겠지?”
정성국은 그저 저번 아파치 족의 공격에 죽거나 다친 병사들이 생각나 그런 말을 했지만, 그 말을 군사청을 믿기 힘들다는 말로 알아들은 군사청장은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소리쳤다.
“물론입니다! 전하! 믿어주십시오!”
그런 군사청장의 모습에 다른 청장들은 바짝 긴장했고 정성국도 당혹스러워했다.
그때 옆에 있던 조용한 곰이 나서서 군사청장을 지원해줬다.
“별일 없을 겁니다. 전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주변 부족의 규모를 볼 때 말을 탄 3500명의 탐사대는 무척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함부로 덤벼들기엔 탐사대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믿어. 믿는다고. 그러니 군사청장은 좀 앉게.”
“송구하옵니다. 전하.”
그런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교육청장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교육청장.”
“말씀하시지요. 전하.”
“그동안은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부족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위생과 농사에 대한 여러 지식을 가르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 하지만 북미왕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보네.”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딱히 질책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정성국도 다른 부분에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에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교육을 전면 개편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교육청장이 묻자 정성국은 짓궂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거야 자네들이 고민할 문제지.”
“그...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온전히 교육청에만 맡길 생각은 아니었다.
저들이 어느 정도 교육 체계 개편을 고민하고 연구하면 그때 적당히 슬쩍 개입할 생각이었다.
다만 정성국은 훗날을 위해서라도 관리들의 역량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고 여겼기에 이런 방식을 취했다.
“다만 그건 좀 장기적으로 생각하도록 하고. 일단 당장 급한 인력을 기르는 문제부터 손을 대야 할 것 같아. 김 의원의 말을 들어보니 의원의 수가 무척 부족한 것 같더군. 더불어 어떤 식으로 교육을 개편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가르칠 선생의 수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
의원도 그렇지만 제대로 가르칠 선생도 무척이나 부족했다.
오죽하면 부족이 합류한 후 똑똑한 친구들을 뽑아 단기 교육해서 다시 자신의 부족으로 보내겠는가.
이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은 선생이 가르치는 곳은 새김포와 새마포, 그리고 처음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의 마을 정도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에 교육청장이 동의하자 정성국은 말을 이었다.
“또한, 북미왕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선 것이 바로 기술일세. 그러니 제대로 된 연구원들이 계속 합류해 이를 뒷받침해줘야 하고. 헌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단 말이지. 개척촌에서 키우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어.”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뿐만 아니라 회의실에 있는 모든 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구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북미왕국이 서양의 대국이라는 에스파냐를 손쉽게 이긴 것이 다 월등한 기술 때문이 아닌가.
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정성국뿐만 아니라 북미왕국 청장들의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다른 부분은?”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군사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이건 교육청에서 주관하기보단 군사청에서 주관해야 할 것 같은데...”
이에 군사청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군관을 교육하는 문제 말이군요.”
“그렇지. 지금도 군사청의 규모가 큰 편이지만 더욱 키워야 하는데...육군 훈련소에서는 병사를 키우는 것이 전부이지 군관이나 장수를 키우는 곳은 아닐세.”
“그렇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군사청장이 알아들은 듯 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의실 안의 다른 청장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밖에도 북미왕국에 필요한 인재는 무척 많아. 그러니 함께 논의해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하도록 하게. 그곳에서 제대로 인재를 키워야 북미왕국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