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정성국은 허겁지겁 집무실로 들이닥친 군사청장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군사청장이 전한 보고를 듣고 정성국은 기겁했다.
“뭐라고? 아파치 족이 공격해왔다는 건가? 산타페를?”
“정확히는 산타페 인근의 마을을 약탈하기 위해 공격했고 일단은 탐사대의 지원으로 격퇴했다는 보고입니다. 전하.”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의 규모는?”
“200명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아파치 족이 대규모로 산타페로 몰려왔나 싶었는데 보고를 듣자니 그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아마 근처 아파치 족으로 구성된 조그마한 부족이 노략질하러 왔나보다 싶어 정성국은 일단 안도했다.
“휴우...그럼 아파치 족 전체가 나선 것은 아니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보고에는 공격해 들어온 아파치 족을 격멸한 후 추가 공격이 있을까 봐 탐사대원들이 무장하고 인근을 정찰했지만 다른 아파치 족은 보이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설명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군사청장을 보고 물었다.
“그럼 피해 상황은?”
그러자 군사청장은 살짝 어두운 얼굴로 들고 있던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주면서 군사청의 피해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주둔해 있던 경비대원들의 피해가 큽니다. 그리고 뒤늦게 지원을 간 탐사대원들도 피해가 조금 있었고요.”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도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가 넘겨준 보고서를 살펴보며 신음을 흘렸다.
“이런...경비대원 3명 사망에 6명 중상이라...”
에스파냐와의 전쟁이 끝난 직후 협정에 따라 국경선이 정해지고 이 국경선 북쪽에 머물던 에스파냐인들은 큰 반발 없이 멕시코 지역으로 되돌아갔다.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도 관리를 보내 따로 보상을 해주기로 했고 자신들을 지켜주는 에스파냐 병사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 남아봐야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 빈자리를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채워나갔다.
그렇게 푸에블로 족의 영역으로 이동한 병사들이 5천 명이 넘었지만, 탐사대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푸에블로 족의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경비대 병력은 2천 명이었다.
에스파냐가 주둔시켰던 기존의 병력보다는 많았지만 그래도 푸에블로 족의 영역을 생각하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푸에블로 족의 중심지이자 에스파냐에게 넘겨받은 산타페에 병력의 절반을, 나머지는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부족의 마을 규모에 따라 곳곳에 분산시켜 배치했다.
그리고 이번 공격을 당한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경비대원은 총 30명.
그중 3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이라는 보고에 내심 입맛이 쓴 정성국이었다.
‘확실히...육전은 또 다르구나. 분명 아파치 족은 가난한 부족이라 무장 자체는 별거 없다고 보고 받았는데...그런데도 사망자가 발생하다니...갑옷이라도 만들어서 입혀야 하나? 이것 참...’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무척이나 일방적인 기습으로 시작했기에, 그리고 화력에서 차이가 났을뿐더러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선의 방어력을 높이고 원거리에서 화포만으로 교전했기에 사망자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시 임시 보급항으로 불리었던 새진도에서 진지 공사를 하다 부상을 당하거나 파나마 공격을 위해 장기간 항해하다 병이 난 병사는 있었지만 말이다.
신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파냐와 전쟁을 치렀을 때도 발생하지 않았던 사망자가 소규모 부족의 습격 때문에 생겨나자 정성국은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얼굴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본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북미왕국의 경비대 30명과 태반이 흑요석을 갈아 만든 무장을 한 아파치 전사 200명.
일반적인 전투였다면 당연히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대의 화력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파치 족의 약탈자들은 북미왕국이 화약 무기를 쓴다는 것을 알고 해가 떨어진 후 최대한 접근해서 기습 공격을 통해 전투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피해가 컸고 이 기습에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후 경비대원들은 자신들의 숙소라고 할 수 있는 병영 건물의 옥상에 마련된 봉화에 불을 피우고 농성에 들어갔고 다행히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병영 건물을 지었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더불어 저들의 목적은 마을의 식량을 약탈하는 데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농성에 들어가자 대치상태를 유지하면서 일부가 물러나 창고들을 털며 식량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파치 족 전사들 일부는 약탈을 위해 흩어지고 일부는 병영에서 농성하는 북미왕국의 병사를 상대하다 병영에서 날라오는 총알에 의해 피해를 본 상황에서 봉화가 피워지자 곧바로 출동한 탐사대원들이 도착하자 승부가 갈렸다.
하지만 탐사대원들이 도착하자 불리함을 느끼고 도망치는 아파치 족을 탐사대원들이 추적했고 이에 격렬하게 반항하는 아파치 족의 전사들 때문에 탐사대원 일부가 낙마해 8명이 다쳤다는 부분에서 정성국은 다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탐사대원들도 다쳤다라...”
정성국의 혼잣말에 군사청장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아파치 족의 저항이 워낙 거셌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전사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흐음...”
정성국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고서를 마저 읽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푸에블로 족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괜히 약탈하겠다고 눈이 뒤집힌 아파치 족에게 식량을 넘기지 않겠다며 반항했다면 피해가 컸을 텐데 아파치 족을 몹시 두려워했던 탓인지, 아니면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아파치 족을 곧 물리칠 거라 생각한 것인지 일단 아파치 족의 약탈을 거의 방관했고 덕분에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
더불어 아파치 족에게 약탈당한 식량도 탐사대원들이 퇴각하는 아파치 족을 끝까지 추격해 결국 돌려받았으니.
정성국은 보고서를 다 읽고 내려놓으면서 먼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일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지.”
“말씀하십시오. 전하.”
“이번에 북미왕국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적과 맞서다 사망한 이 병사들은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게. 그리고 이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 역시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 부족들은 원래 주로 풍장으로 장례를 치르곤 했다.
하지만 정성국은 조심스럽게 이들의 장례 문화를 매장으로 바꾸도록 시간을 들여 설득했다.
시신을 자연에 그대로 내버려 두는 풍장의 경우 아무래도 위생 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설득이 어렵지는 않았다.
북미왕국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바로 위생에 관한 상식이었기에.
더불어 이들이 풍장을 택하는 이유는 죽은 후 시신을 내버려 두면 바람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어서인데 정성국은 대추장들과 주술사들에게 자연의 순환작용을 설명하면서 땅에 묻더라도 자연으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고 설득했고 이것이 먹혔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국립묘지의 경우는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결정한 후 당연히 이 전쟁을 통해 전사자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고 새김포 동쪽의 산기슭에 국립묘지를 만들어두었었다.
정성국이 예상했던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는 전사자가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지도 않았던 약소한 부족의 약탈 때문에 전사자가 발생해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 정성국은 이어서 물었다.
“그리고 따로 취할 조치는 있나?”
정성국의 물음에 군사청장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일단 정찰 중인 탐사대를 모두 산타페로 집결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고 탁자 위에 올려진 보고서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흐음...설마 보복까지 생각하는 건가?”
“비록 탐사대원들이 철저하게 추적한 끝에 북미왕국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을 대부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긴 했습니다만...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하.”
“으음...”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생각에 잠기자 군사청장은 이때다 싶어 고개를 숙이면서 살짝 언성을 올려 간언했다.
“전하. 원주민들에게 제대로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보복이 필요합니다.”
정성국 역시 군사청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제대로 힘을 보여주어 감히 덤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육전의 경우 아무리 유리하고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걸렸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의 인구는 무척 적었기에 병사 한명 한명이 소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이번 습격은 기습 공격을 당했고 어두웠기에 총기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이쪽에서 먼저 공격해 들어간다면 큰 피해 없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도 있긴 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탐사대원들이 다쳤다는 보고가 영 마음에 걸렸다.
‘아파치 전사들이 독하거나 탐사대원들의 기마술이 생각보다 별로라던가...어느 쪽이든 긍정적이진 않군. 쩝.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면 육전을 피하고 최대한 원주민을 우호적으로 포섭하는 것이 최고긴 한데...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나?’
고민을 끝낸 정성국은 군사청장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명령했다.
“일단 탐사대를 산타페로 집결시키는 것까지는 승인하겠네. 다만 나머지는 포로들을 심문해 파악한 정보를 확인한 후 결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곧바로 공격을 승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성국이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군사청장이었다.
“그보다 우리가 에스파냐를 대신해 산타페로 이동한 이후 이런 공격은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분명 외무청의 보고서나 군사청의 보고서에는 주변 부족들이 일단 북미왕국을 관망하는 모양새라고 올라왔던 것 같은데...”
처음 에스파냐를 대신해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산타페 지역으로 이동하고 난 후 혹시 북미왕국을 얕보고 주변 부족들이 공격해 들어올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이 때문에 탐사대도 처음엔 산타페 인근을 무리 지어 정찰하면서 북미왕국의 세를 과시하기도 했고.
푸에블로 족에게 식량을 주어가며 그들을 동원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농성할 수 있게 병영 건물을 짓고 그 옥상에 망루 비슷한 것을 만들어 봉화까지 설치해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 결과 북미왕국이 다른 부족보다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덕분에 주변 부족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헌데 갑자기 커다란 부족도 아니고 고작 전사 200명을 동원하는 수준의 작은 부족이 북미왕국의 휘하에 들어왔다고 알려진 푸에블로 족을 공격한 것이 의아했다.
이에 군사청장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라고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병력을 더 이동시켰으면 하는데...”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는 병력이 없는...아. 최근 모집한 병사라도 보낼까요?”
텍사스와 플로리다에도 병사를 배치하려면 현재 북미왕국의 병사로는 부족했다.
다만 아직 텍사스의 건설도, 그리고 플로리다로 보낼 수단도 없었고 이번에 새로 얻은 지역은 멕시코 지역 원주민을 고용해서 개발한다고 쳐도 기존의 북미왕국 지역의 개발도 늦출 수는 없었기에 작년 겨울에는 최소한으로 병사들을 모집했고 이때 모집한 1천 명의 병사가 육군 훈련대에서 열심히 훈련 중이었다.
군사청장이 이들을 거론하자 이들의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텍사스 지역에 건설될 새진주로 보내 치안을 유지할 생각이었던 정성국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보내놓고 상황을 봐서 다시 이동시키면 될 테니 말이다.
“쩝...병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그러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