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이게 사실인가?”
“최소한 에스파냐가 북아메리카 지역의 권리를 북미왕국이란 나라에 넘긴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 참...”
잉글랜드의 군주이자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인 찰스 2세는 보좌관이 건네준 보고서를 쭉 읽어보고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보좌관이 들어오기 전에 마시던 홍차가 담겨있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잉글랜드의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북아메리카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해 뉴욕으로 이름을 바꾼 후 네덜란드를 만만하게 보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는 잉글랜드가 우세했으나 프랑스가 네덜란드에 가세한 것이 컸다.
더불어 전쟁이 시작된 직후 런던엔 흑사병이 돌아 런던에서만 10만이 죽어 나갔고.
그 흑사병이 좀 진정되었다 싶었더니 최근엔 런던에서 대화재가 발생해 런던의 2할에 가까운 면적이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7만 명의 시민들이 집을 잃어버렸다.
덕분에 런던의 분위기는 무척 험악했고 이를 수습하느라 골치였는데 신대륙에서도 문제가 생길 판이었으니.
특히 현재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북미왕국이란 존재는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에스파냐를 제외하면 아무도 인정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해 북아메리카 지역이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던 에스파냐가 그 북아메리카 지역의 권리를 모두 북미왕국에 넘겼다고 선언했으니.
훗날 이 북미왕국과 마찰이 생길 여지가 다분했다.
찰스 2세가 판단하기에 이 북미왕국은 유럽의 정세에 무지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협상을 통해 에스파냐를 제외하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넘겨받는 것으로 종전 협상에 서명한 것일 테고.
문제는 이 협상 때문에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지역을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할 테니 나중에 북아메리카 지역 동해안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과 부딪칠 확률이 높았다.
이에 홍차를 마시면서 계속 고뇌가 섞인 표정으로 생각을 하던 찰스 2세는 손으로 보고서를 가리키며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생각하기엔 저 보고서 마지막에 적혀있는 북미왕국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다고 보나?”
찰스 2세의 물음에 보좌관은 머뭇거렸고 그런 반응에 찰스 2세가 다그치자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 생각보다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원주민들로 구성된 국가가 화약을 사용하고 갤리온 급의 선박을 수십 척이나 보유하고 있고 수십만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면서 이 보좌관을 갈아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표정을 한 찰스 2세의 반응에 보좌관은 잽싸게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제가 알기로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라고 할 수 있는 아카풀코 항에는 해적들의 약탈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와 해군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 드레이크 경조차 아카풀코 항은 약탈하지 못했었지요.”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아닌가.”
“예. 그리고 제가 알아본 결과 그 아카풀코 항도 북미왕국의 공격에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에 건설된 항구 중 아카풀코 항은 에스파냐의 아시아 무역을 전담하는 무척 중요한 항구였기에 이곳의 방어 수준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헌데 그 아카풀코 항이 북미왕국에 의해 불타올랐다니.
보고서에 서해안이 모두 불타올랐다는 문장이 적혀있긴 했지만, 과장이나 관용적인 표현으로 생각했던 찰스 2세에게 보좌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응?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이 모조리 불타올랐다는 것이 그냥 과장이 아니라 정말 아카풀코 항까지 박살 났다는 소린가?”
“그렇답니다. 더불어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에 배치되어 있던 갤리온이 북미왕국의 공격에 모두 침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에바 에스파냐의 안토니오 부왕이 대항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곧바로 북미왕국과 협상을 한 것이고요.”
“이것 참...”
믿기 어려운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충 훑어보았던 뒷장의 소문들이 적혀있는 부분을 다시 살펴보려 보고서에 손을 가져갈 때 보좌관의 목소리가 찰스 2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신대륙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국가였던 아즈텍 제국이나 잉카 제국 모두 인구수나 동원할 수 있는 병사 자체는 많지 않았습니까?”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멈칫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신대륙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국가들은 꽤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었으니까.
그리고 북미왕국 역시 신대륙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나라인 만큼 아즈텍 제국이나 잉카 제국처럼 거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일 수도 있었다.
더불어 제대로 철조차 만들지 못했던 아즈텍 제국이나 잉카 제국과는 달리 북미왕국은 문명 수준도 무척이나 높아 보였으니 찰스 2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거군?”
찰스 2세의 혼잣말에 가까운 물음에 보좌관은 동의하면서도 덧붙였다.
“예.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 적혀있는 내용 중에 북미왕국이 화약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지만, 보좌관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러니 북미왕국과 적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협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그렇기에 에스파냐 본국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겠지요. 아니었다면 저 광신도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보좌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찰스 2세였다.
원주민 국가를 만만하게 보고 공격해 결국 기존의 국가를 멸망시키고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했던 에스파냐 놈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북미왕국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만큼 북미왕국의 힘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강력할 확률이 커 보였다.
“그렇긴 하지...화약 무기를 사용하는 수십만의 군대라...거의 아시아의 청나라와 비슷한 급이라는 건가?”
“최소한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본국으로 전해진 정보로만 생각하면 그러한 결론이 나왔으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로 생각합니다. 한때 이교도 국가인 명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광신도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하고 나서 조용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끙...”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의 안색은 더욱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북미왕국이 자신들의 예상대로 청나라와 비슷한 강력한 문명국이라면 자신들이 북아메리카에 건설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더욱 많은 군비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식민지에서 얻는 수익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식민지는 자영농으로 구성된 가족 단위의 정착민을 이주시켜 직접 농지를 개간하는 방식이었기에 아직은 수익이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식민지를 보호하겠다고 막대한 군비를 소모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셈이다.
그런 찰스 2세를 보고 보좌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일단 북미왕국은 최근에 알려진 만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제대로 된 정보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만...”
그 말에 찰스 2세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단 표정을 풀면서 보고서 뒷장에 첨부된 북미왕국의 소문이 적힌 부분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건 그래.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마법으로 움직이는 배라니...거 참.”
북미왕국의 배는 돛도 노도 없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배도 있다는 부분을 읽고 혀를 차던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은 노예조차 도자기를 사용할 정도로 문명 수준이 높다고 적힌 부분에서 자신이 무언가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고서 바로 옆에 놓여있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찻잔을 보고 깨달았다.
“아!?”
보좌관은 그런 찰스 2세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북미왕국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익숙하다 싶었더니...이 도자기를 북미왕국에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 찰스 2세가 사용하는 저 도자기는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럽에 알려진 아시아의 도자기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그 도자기는 최근에 아시아에서 구한 도자기 아닙니까?”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저은 찰스 2세는 바로 시종을 불러 도자기와 함께 올라온 보고서를 가져오라 명령했고 곧 시종은 아시아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가져왔다.
“어디 보자...맞구만. 북미왕국. 허...”
제임스가 쓴 보고서에는 네덜란드 상인이 현재 유럽에 팔고 있는 새로운 도자기는 북미왕국이라는 나라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접촉해 결국 거래를 틀 수 있었다고 했고.
더불어 이들이 파악한 북미왕국의 여러 가지 정보와 일본에서 있었던 일에 이 북미왕국이 어떻게 개입했었는지도 꽤 자세하게 쓰여 있었고.
이를 쭉 읽어보고 보좌관에게 보고서를 넘겨주자 보좌관은 보고서를 재빠르게 읽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에스파냐에서 나온 정보를 볼 때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의 나라가 분명한데 갑자기 아시아에서 등장하다니...그럼 러시아의 주장처럼 정말 아시아와 신대륙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그건 모르지. 다만 두 대륙이 연결되어있든 아니든 북미왕국의 국력이 생각외로 대단한 듯싶군.”
찰스 2세는 어깨를 으쓱였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예상보다 북미왕국의 국력이 강해 보였던 탓이다.
만약 아시아와 신대륙이 연결되어있다면 그만큼 북미왕국의 영역이 넓다는 의미였고 아니라고 해도 그 넓은 태평양을 오가면서 이들을 지원해주었다는 뜻이니 그만큼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더불어 만약 신대륙과 아시아가 연결되어있다면 그동안 잉글랜드가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북서항로는 헛수고였다는 소리였으니.
이 시기 가장 돈이 되는 것은 아시아 무역이었지만 기존의 항로는 너무 멀었다.
그 때문에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시아로 가려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었고.
그 이후에도 유럽인들은 그린란드 서쪽을 통해 신대륙을 돌아 태평양에 진출해 아시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고.
헌데 이게 헛수고일 가능성이 생긴 셈이니 안색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타국의 반란에 개입해 결국 승패를 바꿨을 정도이니...”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북서항로에 관한 언급은 애써 피했다.
그런 보좌관을 보고 찰스 2세는 애써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보고서와 에스파냐에서 얻은 정보를 볼 때 이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국가일 확률이 높아. 그런 만큼 당분간 북미왕국과 부딪칠 일은 없지 않을까 싶군. 더불어 이들과 접촉해 북서항로의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해볼 수도 있고.”
그런 찰스 2세의 발언에 보좌관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과장되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군요. 비록 북미왕국의 존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일본에 설치된 상관을 통해 이 북미왕국과 접촉할 수도 있으니 일단 그들과 접촉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북미왕국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요.”
바로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던 찰스 2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묘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면 되겠어. 다만...이 협상에 따르면 북아메리카 지역만 북미왕국에 넘어간 거지?”
“그렇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보좌관을 보고 찰스 2세는 씩 웃으면서 선언했다.
“그럼 우리는 일단 서인도 제도의 확장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
서인도 제도는 사탕수수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유럽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식민지 건설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더불어 돈이 되는 상품작물들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현재 잉글랜드도 자메이카나 바하마 제도의 몇몇 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를 발판으로 서인도 제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아! 그렇군요! 서인도 제도의 확장은 북미왕국과는 큰 상관도 없을 테고...”
“더불어 이 음흉한 에스파냐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줄 수도 있으니.”
에스파냐는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질을 했기에 살짝 짜증이 난 표정을 짓는 찰스 2세를 보고 보좌관은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