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130화 (130/850)

130화

“건물은 다 완공했나?”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하는 회의에서 정성국은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이에 개발청장은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계획대로 각 청의 건물과 전하께서 기거하실 궁 일부는 모두 지었습니다. 더불어 관리들이 지낼 관사와 전하를 따라 새로운 수도로 이주할 백성들이 거주할 집도 계획한 만큼은 지었습니다.”

정성국이 처음 상륙한 곳이 바로 이곳 새김포였다.

그렇지만 이곳 새김포는 주위가 바다였고 동쪽엔 산맥이 존재했기에 확장하려면 내해를 따라 남쪽으로 길게 늘어지게 확장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 때문에 나중을 생각해 전생의 캘리포니아주의 주도인 새크라멘토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었고 개발청은 예정대로 건설을 끝냈다.

물론 고작 3년 만에 거대한 수도를 건설한 것은 전혀 아니다.

애초에 정성국이 머물 궁궐조차 부지는 넓게 잡았지만, 그 넓은 부지에 건설된 건축물은 딱 두 채가 다였으니까.

마찬가지로 궁을 주위로 건설된 여러 청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훗날을 고려해 부지는 넓게 잡았지만, 그 부지의 절반은커녕 2할이나 간신히 채웠달까.

그렇기에 일단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한들 무척 휑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기반공사를 끝내고 일부 건물을 예정대로 완성한 것만 해도 대단했기에 정성국은 개발청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고생했네.”

그런 정성국의 칭찬에 개발청장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하. 그리고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건물을 올려야 하니 그런 말을 듣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럼 계속 고생해주게.”

정성국은 개발청장을 굳게 믿는다는 눈길로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행정청장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일단 예정대로 건물은 완공되었다고 하니...행정청장. 이전 준비는 잘 되어가나?”

“그렇습니다. 전하. 추위가 풀리면 바로 각 청 단위로 이전할 겁니다. 이미 화물선도 모두 준비 중이고요.”

“그래? 그거 다행이군.”

이미 전부터 새로운 수도의 건설이 일부 완료된다면 모든 청이 차례대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두었었고.

다행히 이곳 새김포에서 배를 타고 새로운 수도까지 새한강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만큼 이전이 수월했다.

더불어 전쟁이 끝난 후 이에 대비해 화물선을 열심히 건조했었으니.

미리 세워두었던 이전 계획을 자세하게 보고하는 행정청장이었고 정성국은 그 보고를 듣고 만족했다.

굳이 자신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관리들이 알아서 모든 계획을 잘 짜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정성국의 귓가에 행정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데 전하. 이제 슬슬 새로운 수도로 이전하는 만큼 수도의 이름을 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으음...”

행정청장의 요청에 정성국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마을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선에서 사용하는 마을 이름을 적당히 차용하곤 했지만 새로운 느낌이라며 만족해하는 원주민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은 너무 무성의하게 이름 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정성국이었으니까.

그렇게 슬쩍 입을 삐죽이고 있는 정성국의 귓가에 행정청장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더불어 현재 계획하고 있는 몇몇 항구의 이름도 전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시지요.”

그런 행정청장의 요청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딜?”

이에 행정청장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일단 에스파냐가 자주 드나드는 임시 보급항을 언제까지 이름 없이 임시 보급항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

에스파냐와 전쟁을 했을 당시 보급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임시로 붙인 명칭이 임시 보급항이었다.

처음에는 전쟁이 끝나면 철수할 생각이었으나 에스파냐와의 교역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만큼 새로 이름을 정하긴 해야 했다.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정성국을 보고 행정청장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통바 족의 영역에도 제대로 된 항구를 세울 계획이고 새나주란 이름이 전하께서 직접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된 통바 족의 추장들이 새롭게 건설되는 항구 이름을 전하께서 직접 지어주길 내심 바라는 눈치입니다.”

“끙...”

지금까지는 자잘한 마을의 경우 기존에 부르던 마을 이름을 그대로 쓰거나 행정청에서 알아서 붙이곤 했다.

하지만 통바 족이 정성국이 직접 마을 이름을 내려주길 바라고 있다면 이를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통바 족의 영역은 옛 로스앤젤레스 지역인 만큼 정성국도 신경 쓰고 있었고.

‘뭐 전생과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과연 로스앤젤레스만큼 성장하고 인구가 집중될까 싶기는 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행정청장은 계속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곳은 몰라도 텍사스 지역에 세울 항구 역시 전하께서 이름을 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은 동부의 중심지가 될 공산이 무척 크니 말입니다.”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생에서 동부의 중심지는 주로 북부지역이긴 했지만, 현재 그곳은 잉글랜드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훗날 이곳까지 철도를 연결할 생각이었으니 자연스럽게 텍사스 지역에 들어설 항구 도시는 무척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흐음...근데 뭐...내 작명법은 대충 알고 있지 않나?”

정성국의 마을 이름 작명법이라고 해봐야 조선을 기준으로 비슷한 위치의 고을 이름 앞에 새롭게 만드는 마을이라는 의미에 새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이 다였기에 회의실에 있던 조선인 청장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의외로 원주민들은 정성국이 짓는 도시 이름을 새롭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이주민들은 무성의한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긴 했어도 익숙하다며 크게 불만을 품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만큼 청장들은 해탈한 표정으로 정성국에게 항구 이름을 청했고 정성국은 청장들의 얼굴에 걸린 쓴웃음을 애써 모른척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뭐 좋아. 이름을 붙여주길 원한다면야. 일단 통바 족의 영역에 지을 항구 이름은 새목포로 하지. 그리고 그 밑에 에스파냐인과 교역을 하는 임시 보금항은 이제부턴 새진도로 하고. 텍사스 지역에 새로 건설할 항구는 새진주라고 하세.”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조용한 곰을 제외한 조선인 청장들의 얼굴에 걸려있던 쓴웃음이 더욱 깊어지긴 했지만, 정성국이 애써 못 본 척하고 있을 때 행정청장의 맥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예상은 했었습니다만...헌데 진도는 섬 아닙니까?”

행정청장의 의문에 정성국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뭐 지리적으로야 연결되어 있긴 한데...실제로는 배를 타고 드나들 수밖에 없으니까. 대충 위치를 생각해서 가져다 붙인 거니 따지지 말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은 웃으면서 가장 중요한 수도의 이름을 물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수도의 이름은 역시 새한성으로...?”

행정청장의 물음에 정성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새로운 수도는 새한성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는 정성국이 처음 이곳을 새김포로, 그리고 안쪽의 강과 연결된 포구가 있는 마을을 새마포로 이름을 붙여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이주민들이 내해와 연결된 강을 새한강으로, 그리고 새로운 수도를 새한성으로 부르곤 했다.

정성국의 작명방식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뻔히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바꿀 필요는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수도의 이름을 그럴싸하게 지어볼까 싶긴 했지만, 마땅히 붙일 이름도 없었고.

이곳 원주민들의 언어로 지어볼까도 했지만, 북미왕국의 초창기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4개 부족의 언어에도 차이가 있었기에 어떤 한 부족의 단어를 선택하기에도 어려웠다.

차라리 지금껏 정성국이 하던 대로 하는 게 그나마 원주민들은 불만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었달까.

그리고 외국어였기에 그럴싸해 보일 뿐이지 실제 이 시기 신대륙에 건설되는 도시에 붙이는 이름 대부분은 기존의 도시 이름 앞에 새롭다는 의미의 뉴, 니우, 누에바, 누벨 등의 단어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크게 거리끼지도 않았고.

다만 정성국은 이주민들이 새로운 수도를 새한양이 아닌 새한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의아할 정도였다.

한성이라는 단어는 옛 백제 시절부터 한양 부근을 부르던 명칭이었고 이 때문인지 조선 사람들은 주로 한양이라고 불렀으니까.

“으음...뭐 그러라고 하게.”

정성국이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행정청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 행정청장의 표정에 슬쩍 입을 삐죽였지만 조용한 곰을 제외한 조선 출신 청장들은 다 비슷한 표정이였기에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툴툴거리면서 계속 회의를 진행해나갔다.

이미 에스파냐와의 분쟁이 마무리된 북미왕국의 새로운 목표는 바로 동진이었다.

내륙 지역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긴 했지만 당장은 텍사스 지역까지 동진하고 그곳에 항구를 건설해 최대한 빨리 플로리자 지역까지 이동해야 했으니.

그 때문에 청장들이 모여 길을 어떻게 낼지 고민한 끝에 결국 길의 경로를 정했고.

그러한 경로 위에 병영과 마을을 건설하는 문제에 대해 보고를 시작했다.

정성국은 청장들이 논의해 결정한 길의 경로가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이 길은 주로 국경선에 인접해 있었다.

즉 새나주에서 동남쪽으로, 그리고 국경선을 따라 동쪽으로 길이 나 있는 형태였달까.

그러다 보니 양 끝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과 비교해보면 꽤 돌아가는 형태이긴 했다.

이는 원시적인 도구만을 이용해 길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최대한 험지를 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직선으로 길을 내면 실제 길을 이용할 때야 좋겠지만 그만큼 길을 내기가 힘들 테니 말이다.

특히 전생에 곡괭이와 화약만으로 산과 계곡에 철도를 뚫겠다며 부지기수로 죽어 나간 중국인들을 떠올리니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최대한 돌아가더라도 공사하기 편한 방향으로 길을 정하라고 이야기했기에 청장들이 이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다.

그런 만큼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청장들의 보고를 듣고 있던 정성국은 관리청장의 이야기에 손을 들었다.

“잠깐만. 몇 명이라고?”

최근 에스파냐와의 협상을 통해 국경선 인근의 누에바 에스파냐 영역의 원주민 마을로 가서 직접 일꾼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개발청에서 나서야 했지만, 개발청의 일이 워낙 많기도 했고 모집된 인원을 배분하고 운용하는 것은 몰라도 이들을 고용하는 것까지 개발청이 신경을 쓰기엔 어려웠기에 관리청에서 대신 나서서 외무청의 도움을 받아 국경선을 넘어 원주민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에스파냐와의 협상한 사실을 알리며 일꾼을 모집했고.

그에 관한 보고를 하던 중에 들려온 관리청장의 보고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이에 정성국은 회의가 길어져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 관리청장을 바라보았지만, 관리청장의 표정 역시 무척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게...지금까지 모집한 인원이 4만 명가량 됩니다.”

푸른 안개가 예상한 일꾼의 수는 1만에서 2만 수준이었기에 최대 2만까지 모집할 것을 계산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배에 달하는 인원이 모집되었기에 관리청장은 썩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성국은 오히려 4만이라는 숫자에 놀라버렸다.

이제 막 푸에블로 족이 부족 별로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고 있어 북미왕국의 인구수가 드디어 50만을 넘기긴 했다.

헌데 그 1할에 가까운 4만이라는 일꾼이라니.

더불어 40여 곳의 마을에서 모집한 일꾼의 수가 4만이라는 뜻은 한 마을당 대략 천명 가량의 일꾼을 모집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멕시코 지역의 원주민이 천만에 가깝다더니...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면 큰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라고 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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