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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24화 (124/850)

124화

도공들에게 정성국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대받으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조선 시절과는 달리 원상에 소속되면서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이곳으로 이주하고 나선 도공들을 장인 취급하며 확실하게 대우해주었으니까.

물론 이러한 경향은 조선에서 천대받던 기억이 있는 여러 분야의 장인들도 다 비슷하긴 했다.

더불어 연구원들은 정성국이 집필한 책을 보고 공부했고.

그렇기에 공돌이들이 모여있는 연구청에서 정성국이 갖는 위치는 새삼 대단했고.

그런 정성국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이상돈은 정성국의 명령이라면 도공들도 기꺼이 수긍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기회에 북미왕국의 도자기의 품질과 생산성을 한층 더 끌어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에스파냐를 통해 북미왕국의 도자기가 유럽에 팔리게 된 만큼 북미왕국의 도자기 품질과 물량을 늘린다면 유럽의 도자기 시장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 북미왕국을 개발하는데 돈이 부족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곧 유럽에서도 제대로 된 도자기가 만들어질 시기가 되었다.

이 도자기로 인해 현재 유럽을 석권하던 동양의 도자기들은 서서히 몰락해버렸고.

유럽의 도자기가 세계를 장악하게 된다.

이는 서양의 도자기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과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도자기의 성질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발전시킨 반면 동양의 도자기는 과학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하기보다는 오로지 장인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기에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도자기는 완벽하게 몰락했고 일본의 도자기는 몰락했다가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다시 회생하게 된다.

그런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정성국은 아직 유럽의 도자기가 태동하기 전에 도자기의 기술을 더욱 끌어 올려 저들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 일단 도공들과 이야기해보고...그들이 조금이나마 불만을 표시한다면 아예 공방을 하나 새롭게 만들어. 그리고 기존의 도공들로 이루어진 공방에서는 더욱 높은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게 해.”

“그럼 새로 만드는 공방에서는?”

“새로 만드는 공방은 철저하게 분업화시켜서 일정한 품질의 도자기를 최대한 많이 생산하게 해야지.”

“으음...”

“아. 그리고 기존의 공방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들은 밑에 왕실 문양인 흰머리수리 문양을 새기도록 허락하겠네. 더불어 제작 연도와 장인의 이름도 새기도록 하고.”

정성국의 말에 이상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도공들도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자기의 생산량이 너무 많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 물량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정성국의 계획에 따르면 새롭게 만든 공방에서 일정 품질 이상의 도자기를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최대한 물량을 찍어내겠다는 계획인데 그걸 과연 유럽에서 소화할 수 있을지가 걱정인 이상돈이었다.

잘못하다간 물량 과잉으로 도자기의 가치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이상돈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이 시기 유럽 왕실과 귀족들은 동양의 도자기를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다.

동양의 도자기는 아주 값비싸고 이국적인 예술품이었으며 부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더불어 차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문제는 그동안 가장 많은 물량을 쏟아내던 중국의 도자기의 물량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이는 명 청 교체기에 도자기 생산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경덕진이 초토화되어 아직 제대로 복구가 되지 못한 것도 있었고 현재 청나라는 해외로 도자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서양 상인에 의해 열심히 빠져나가고 있긴 했지만, 어쨌건 예전보다 물량은 적었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들은 그 대안으로 일본의 도자기를 선택해 유럽에 선보이고 덕분에 일본의 도자기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그러다 원상이 네덜란드의 상인들에게 선보인 우윳빛의 튼튼한 도자기가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에 알려져 엄청나게 고평가받고 있었다.

물론 현재 유럽에서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원상의 도자기가 무척이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유행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아직 원상이나 정성국은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이번 에스파냐와 도자기의 가격 협상을 하면서 어느 정도 사정을 파악했기에 대략적인 흐름을 기억하고 있는 정성국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서양에선 없어서 못 파는 게 도자기다.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아. 그리고 북미왕국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고 텍사스 지역에 우리 북미왕국의 항구가 생기게 되면 아마 유럽의 상인들과 선장들은 기꺼이 대서양을 횡단할걸? 우리가 생산하는 도자기를 노리고 말이야.”

그런 정성국의 확답에 이상돈은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까요?”

“그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생산량을 늘려. 그리고 도자기 연구소도 설립해봐.”

“도자기 연구소요?”

“그래. 도자기의 품질도 올리고...공산품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연구도 좀 하고.”

이 시대엔 플라스틱이 없었기에 일반 백성들은 주로 나무로 만든 목제 식기를 사용하곤 했다.

만약 일정 품질 이상의 도자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불결한 목제 식기를 대체할 수 있는 도자기는 생활필수품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순순히 대답하면서 어떻게 도자기를 대량생산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이상돈을 못 본 척하면서 정성국은 그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최주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명아.”

“예. 스승님.”

“새남포의 조선소는 어떻게 되었지?”

새남포의 풍부한 목재 자원과 원주민들을 고용하기 위해 새남포에도 따로 조선소를 건조하기로 했었다.

이 진행 상황을 정성국이 묻자 최주명은 곧바로 대답했다.

“곧 조선소의 건설이 마무리될 거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슬슬 새남포로 보낼 장인들을 선발하고 있고요.”

“그럼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겠군.”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는 정성국이었다.

그동안은 에스파냐의 전쟁을 대비해서 전선을 건조하느라 다른 선박들은 건조할 틈이 없었다.

덕분에 몇 대 안 되는 조그만 정기선만으로 수많은 물품을 운송하느라 문제가 컸고.

다만 이제 에스파냐와의 전쟁은 끝났고 새남포에 새로운 조선소도 곧 들어서는 만큼 슬슬 민간 선박들을 건조한다면 숨통이 좀 트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 역시 동의하면서도 당장 새남포의 조선소에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럴 겁니다만...아무리 새남포에 장인들을 보낸다 해도 일꾼의 숙련도 때문에 당분간은 이곳처럼 많은 배를 건조하지는 못할 겁니다.”

최주명의 말에 살짝 아쉬워하면서도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장인들을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는 것 알지?”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압니다. 텍사스 지역에도 조선소를 만들어 배를 건조해야 할 테니까요.”

“이곳 새김포처럼 꽤 커다란 조선소를 만들 생각이야. 그런 만큼 당분간은 최대한 많은 장인을 키워보렴.”

“알겠습니다. 스승님.”

최주명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여유로워 보이는 최주명이 얄미워 슬쩍 일거리를 더 늘려주었다.

“그리고 슬슬 철선에 관해 연구해봐라.”

“철선이라...”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이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그 옆에 앉아있던 김신철이 입을 열었다.

“저기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정성국이 김신철을 바라보자 그는 현재 북미왕국의 철 생산량에 대한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넘겨주면서 말을 흐렸다.

“이 보고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가뜩이나 요새 강철 소모량이 급증하는 상황이라...”

철선을 연구한다고 막대한 철을 엄한 곳에 소비할 수는 없다는 표정을 짓는 김신철이었다.

그런 김신철의 표정을 보고 정성국은 그가 건네준 보고서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새나주까지 깔 철도의 생산도 어려운가?”

“아. 그건 가능합니다.”

“새나주에서 텍사스까지 깔 철도의 생산은 어렵고?”

계속해서 보고서를 살피며 묻는 정성국을 보고 김신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흐음...”

김신철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김신철이 건네준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신음을 흘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꾸준히 강철 생산량은 늘어나고 있었지만, 북미왕국이 발전됨에 따라 강철 소모량이 강철 생산량을 따라잡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미리 이야기해두었기에 새나주까지의 철도 생산은 가능했지만, 그것도 5년에 걸쳐 생산하는 상황이라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강철 생산량을 급격히 늘릴 수도 없는 것이 이것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을 광산에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 북미왕국의 상황에선 어려웠다.

‘쯧. 외무청이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을 설득해서 일꾼을 고용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을 고용해서 길을 만드는 김에 철도까지 싹 깔아볼까 했더니...역시 힘들려나.’

정성국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신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조선에서처럼 에스파냐를 통해 철광석이나 무쇠를 수입한다면 이 물량 부족을 해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개척촌에서는 직접 광산에서 철을 캐내기보다는 조선 각지에서 철광석이나 무쇠를 사들여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강철을 생산했었다.

이것처럼 바로 남쪽에 있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자원을 사서 쓰자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긴 하네. 그럼 일단 이건 내가 외무청에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스승님.”

김신철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최주명은 해맑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일단 철선은 연구만 해두겠습니다.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본격적으로 제작해보고요.”

최주명의 대답에 정성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그리고 기동아. 너 요새 뭐 연구하니?”

꽤 피곤한 모양인지 정성국이 다른 제자들과 대화하는 도중 열심히 하품하던 박기동은 정성국이 그를 바라보며 묻자 고개를 흔들어 잠기운을 내쫓고 대답했다.

“하음. 요새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트랙터입니다.”

예전에 이미 트랙터에 관한 연구를 하긴 했지만, 실제 만들어내진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정성국은 별다른 기대 없이 예의상 물어보았다.

“그렇구나. 성과는 좀 있고?”

그것을 눈치챈 박기동은 정성국을 보고 히죽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런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눈을 크게 뜨며 흥미를 보였다.

“호오? 정말?”

정성국의 반응이 기꺼운지 박기동은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증기기관차를 실제로 제작하면서 그동안 막혔었던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곧 20마력의 증기기관이 장착된 트랙터가 완성될 겁니다.”

“그래?”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의 안색은 무척이나 환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랙터가 농가에 보급된다면 자연스럽게 농가의 생산성도 몇 배나 늘어나게 된다.

기존의 인력과 축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니까.

물론 초기의 트랙터가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싶긴 했지만.

일단 초기의 트랙터라도 만들어 사용하면서 점차 개량해나가다 보면 나중엔 쓸만한 트랙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북미왕국은 워낙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지라 트랙터가 하루라도 빨리 개발되길 기다리고 있었고.

농부들은 기본적으로 땅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개척단에서 나온 후 최대한 넓은 땅을 받아서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다만 아무리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 한들 농부 한 명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트랙터가 보급된다면 이 한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농부는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테고 북미왕국 역시 더 많은 식량을 이용해 북미 지역의 원주민들을 꼬드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는 정성국의 귓가에 박기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이 해주신 말씀대로 최대한 많은 작업에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중이긴 한데...일단 좀 만들어보고 실제 운용해보면서 계속 개량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박기동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이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아무튼, 고생했다.”

“아닙니다. 스승님.”

그 말을 끝으로 정성국은 제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일단 일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다 한 것 같으니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오오!””

정성국의 말에 오랜만에 술을 마신다면서 희희낙락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 정성국은 최대한 좋은 술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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