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새김포로 돌아온 정성국은 전아라와 하얀 들꽃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성국은 딱히 휴식을 취할 필요는 없었지만, 꽤 수척해진 전아라와 하얀 들꽃을 그냥 모른척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들과 시간을 보낸 정성국은 곧바로 청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다 짐작하고 있지?”
정성국의 물음에 회의실에 앉아있던 청장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에스파냐가 넘겨준 북미 지역을 어떻게 개발하는가에 대한 회의라는 것은 다들 짐작하고 있었으니.
더불어 평소와는 달리 정성국의 뒤편에는 커다란 북미 지역의 지도가 걸려있었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 반응을 확인한 정성국은 만족스러워하며 굳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이기도 했고.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번 에스파냐와의 협상을 통해 동진할 길이 열렸어.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동쪽으로 진출해야 하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푸에블로 족과 접촉해 그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켜야겠지. 안 그런가?”
그러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동안 푸에블로 족과는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고 이번 조약에 따라 에스파냐의 병사들이 철수한다면 아파치 족의 약탈 때문에라도 북미왕국으로 합류할 겁니다. 특히 최근에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지고 나서 이쪽으로 합류하고 싶다던 추장들이 몇 있었으니 그들부터 끌어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에스파냐는 국경선 기준 북쪽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고 1년 안에 모든 에스파냐인은 국경선 기준 남쪽으로 물러나기로 했다.
더불어 이들은 원주민을 거의 노예 취급했었기에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해 원주민을 이주시킬 계획이었고.
당연히 북미왕국은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협상을 통해 원주민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다만 에스파냐인들을 믿을 수 없었던 푸른 안개는 만약 강압을 통해 원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이 적발될 경우 다시 전쟁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푸른 안개의 그러한 발언에 에스파냐인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하니 원주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남거나 에스파냐인과 함께 남쪽으로 떠날 것이다.
다만 외무청이 파악한 푸에블로 족의 분위기를 볼 때 대부분은 남아 북미왕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정성국은 혹시 그들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외무청의 관리가 나서서 그들의 마음을 휘어잡길 원했고 조용한 곰은 이미 정성국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북미왕국에 호의적인 부족부터 끌어들이면서 저들의 마음을 북미왕국으로 향하게 할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에 만족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보고 믿는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그 부분은 외무청에서 전적으로 맡도록 하게. 그리고 군사청장.”
“예. 전하.”
정성국이 고개를 돌려 군사청장을 바라보고 명령을 내렸다.
“일단 새나주에 주둔하고 있는 경비대를 동쪽으로 이동시킬 준비를 하게. 그리고 푸에블로 족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하면 바로 동진해서 산타페에 주둔하는 것으로 하고.”
충분히 예상하였던 명령이었기에 군사청장은 담담하게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 군사청장을 보며 정성국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현재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경비대가 모두 3천인가?”
“정확히는 3500명입니다. 전하. 새나주에 2천, 은 광산지대에 1천, 그리고 통바 족의 영역에 500명의 경비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일단 전쟁을 대비해서 당시 북미왕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통바 족의 영역에 수많은 물자를 옮겨두었다.
물론 후방이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이곳을 지킬 경비대를 대동했고 이번에 복귀할 때 그곳에 병사를 일부 남겨두었었다.
이를 이야기하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아. 그렇지. 통바 족의 영역에도 병사가 있었어. 흐음...일단 새나주에 주둔한 2천 명의 병사만 이동시키는 것으로 하세. 그리고 통바 족의 영역에 주둔한 병사 일부를 새나주로 보내고.”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명령을 내리고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에스파냐의 병사들과 북미왕국의 경비대는 무장 수준이 다르다.
머스킷과 갑오 소총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화력 차이가 컸다.
그런 만큼 아파치 족의 약탈에 대비해 그곳에 주둔한 에스파냐의 병사보다 많은 병사를 주둔시킨다면 아파치 족의 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파치 족은 절대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푸에블로 족은 나약하다고 판단했기에 공격해 약탈하는 것이지 만약 푸에블로 족이 강하다고 판단했다면 함부로 덤비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푸에블로 족이 에스파냐 밑으로 들어간 이후 에스파냐 병사들을 상대해보고 나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아파치 족이 에스파냐의 병사가 없는 곳을 찾아 약탈하거나 에스파냐와는 대화를 하려 했던 사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에스파냐의 병사들보다 더욱 많은 병사가 주둔한다면 아파치 족이 함부로 덤비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되면 더욱 말이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탐사대까지 모두 이동시키기로 했다.
물론 이 소중한 기병 3500명을 고작 아파치 족의 습격을 방어하는데 동원할 마음은 없었다.
정찰에 동원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만약 아파치 족이 계속해서 북미왕국을 적대시한다면 이들을 동원해 아파치 족을 공격할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북미왕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소문을 믿지 못하고 결국 북미왕국을 얕잡아본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렇게 되면 탐사대를 모조리 동원해서라도 저들을 공격해 북미왕국의 힘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북미왕국의 힘을 인정하고 숙일 테고 훗날 무의미하게 뿌려질 피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그리고 탐사대도 모두 보내도록 하게. 이들의 주둔지를 동쪽으로 옮겨 일단은 산타페에서 텍사스 지역까지의 지형과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의 영역을 파악하고 우호적으로 접근하도록 하게.”
그동안 새나주를 근거지로 산타페까지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주변 지형을 파악했던 탐사대였지만 산타페 동쪽으로 진출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정확한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탐사대의 주둔지를 동쪽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에 군사청장은 오히려 환영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성국의 명령대로 탐사대는 동쪽으로의 정찰에 집중시킬 생각이지만 이들의 주둔지를 산타페로 옮긴다면 만약의 사태에 탐사대도 동원할 수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그건 그렇고 현재 남는 병사는 이번 원정에 동원되었던 경비대 1500명이 다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 참...택도 없이 부족한데...”
현재 북미왕국의 군사청에 소속된 병사의 수는 총 1만 7천에 달했다.
다만 이중 해군과 정성국을 호위하는 호위대 소속의 병사를 제외하면 실제 병력은 1만이었고 이중 탐사대가 3500, 경비대가 6500이었다.
이 6500명의 병사 중 2천을 푸에블로 족의 영역에 주둔시키고 또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선착장을 방어하기 위해 동원되었다가 복귀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1500의 병사까지 투입할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병사 수는 부족했다.
정성국이 인상을 찌푸리자 관리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지 않았습니까. 전하. 그리고 굳이 텍사스 지역에는 많은 병사가 주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관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뒤편에 걸려있는 북미 지역의 지도 중 텍사스 지역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의 원주민이 우리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보장이 없네. 그리고 이곳은 서양의 해적들이 덤벼들 수도 있어. 이곳을 개발하고 전선을 건조하기 전에는 꽤 많은 병사를 주둔시켜야 할 거야.”
에스파냐의 보물선을 노리고 모여든 수많은 해적선이 존재하는 카리브해가 바로 옆에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나 이번에 넘겨받기로 한 산아구스틴 요새도 몇 번이나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청장들도 이미 푸른 안개에게 들었으니.
“으음...그렇군요. 허면 차라리 해군 일부를 이곳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행정청장이 해군을 이동시키자는 의견을 냈지만, 정성국은 썩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보였다.
“해도도 없는데 그 먼 거리를 이동시키라고? 글쎄...썩 내키지 않네.”
이곳에서 멕시코만까지 항해하려면 최소 3만km의 거리를 항해해야 하는 만큼 연료 보급 문제도 있었고 도중에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에 걸릴 위험도 있었으며 험하기로 유명한 마젤란 해협도 통과해야 했고 해적들이 넘쳐나는 카리브해를 지나야 했다.
그러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일단 텍사스 지역이나 플로리다 지역에 주둔할 병사는 천천히 생각하자고.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
일단 시간이 좀 있으니 병사를 늘리겠다는 말이 생략된 정성국의 발언에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고...행정청장. 그리고 개발청장.”
““예. 전하.””
“3년 안에 플로리다 지역에 병사를 보내려면 그 전에 이곳 멕시코 지역에 조그마한 항구를 건설해야 하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뒤편에 있는 북미 지역이 그려져 있는 지도에서 전생의 휴스턴이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정성국이 가리킨 장소를 잠시 바라보던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하.”
그리고 옆에서 몹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개발청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못 들은 척 넘겨버린 정성국은 개발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일단은...제대로 된 길부터 만들도록 하지.”
정성국이 입을 열자 개발청장은 순간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정성국의 말뜻을 이해하고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듯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눈대중으로만 봐도 거리가 장난이 아닌데 길을 만들겠다니.
가뜩이나 개발청 인력 대부분을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것과 새한강 유역을 개간하는데 투입된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개발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손뼉을 치며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아. 정정하지. 제대로 된 길부터 정하도록 하지. 당장 길을 만들 여력은 없으니...일단 나중에 만들 길의 노선부터 정하도록 하게.”
정성국도 현재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길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일단은 나중에 제대로 길을 만들도록 하고 그 길을 따라 조그마한 병영을 건설하고 근처에 이동하는 동안 잠시 쉴 수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먼저 만들 생각이었다.
새나주에서 멕시코 만의 해안가까지 직선거리만 해도 약 2400km인 만큼 중간에 쉴만한 장소를 만들지 않고서는 이동이 어려웠다.
“아. 이해했습니다. 일단 길부터 정하고 나서 마을을 만드실 생각이시군요.”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계곡이나 조금 험한 길은 적당히 정비하도록 하고. 문제는 이곳은 워낙 넓어서 100km마다 조그마한 마을을 만든다 해도 그 수가 적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쉬며 뒤편의 북미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는 정성국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한숨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개발청장이었다.
“그렇겠지요. 그 부분은 외무청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곧바로 조용한 곰을 쳐다보았고 조용한 곰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대답했다.
“그러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