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120화 (120/850)

120화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이곳 새김포의 선착장 주변은 무척이나 붐볐다.

정성국이 통바 족의 영역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인급 전선 한 척을 먼저 새김포로 보내 소식을 알린 탓이었다.

이번 전쟁은 정성국이 직접 함대를 이끌고 자신들보다 훨씬 커다란 나라인 에스파냐를 공격했다.

그리고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저들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의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협상을 청했고 그 대가로 북미 지역의 모든 권리를 받아왔다.

당연히 이 소식이 전해지자 청장들은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자리를 비운 동안 북미왕국을 이끌어나가던 청장들은 한목소리로 승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기로 했다.

정성국과 원정 함대가 새김포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이 때문에 정성국이 직접 함대를 이끌고 해적질을 일삼던 에스파냐를 공격해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북미왕국 전역에 퍼져나갔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성국과 함께 떠난 대함대가 돌아왔으니.

멀리서나마 이를 구경하기 위해 새김포의 모든 주민이 선착장 주변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개똥이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개똥이는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고 감탄했다.

“와...사람 정말 많구먼. 새김포에 모든 사람이 다 나온 모양이네.”

개똥이의 말에 함께 나온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여. 이거 전에 에스파냐 놈들을 때려잡기 위해 출정했던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것 같은데?”

“그렇지요? 그때는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개똥이의 말에 함께 온 젊은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죠. 전에는 백성들이 불안해할까 봐 좀 쉬쉬하지 않았소.”

젊은 사내의 말에 중년 사내가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랬지. 뭐 그때도 병사들을 통해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하긴 했지만...행정청에서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구나.”

이에 젊은 사내는 잔뜩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 북미왕국의 바다에서 노략질하려던 그 무도한 에스파냐라는 서양놈들의 근거지를 전하께서 직접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굳이 승전을 감출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이렇게 축제도 연 것이고! 그러니 이전과는 달리 이곳에 나온 사람들이 더 많겠죠.”

“그렇구나.”

젊은 사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개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고 개똥이 일행은 다들 고개를 쭉 빼고 저 멀리 보이는 함대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주 선단 같은 경우에는 여러 척의 선박이 진형을 이루어 이동한다 하더라도 이곳 내해에서는 진형을 풀고 줄지어 이동하는 편이었다.

헌데 이번의 원정 함대는 선착장 인근에서 원정 함대를 구경하느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한 모양인지 평상시와는 달리 진형을 이루고 칼같이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선착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허어! 전과는 달리 저렇게 일제히 다가오니 정말 장관일세!”

이를 보고 개똥이가 감탄하자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나 말일세. 정말 장관이야. 그리고 저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든든하군. 내가 전에 경상좌수영에 정박해있는 판옥선을 본 적이 있는데...확실히 느낌이 다르구먼.”

중년 사내의 감탄에 당연하다는 듯 젊은 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럼요. 그럼요. 어디 판옥선을 저 대선에 비교한답니까.”

이에 개똥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판옥선도 나쁘진 않은데...확실히 저게 더 보는 맛이 있긴 해. 근데 조선 수군은 왜 저 대선을 안 쓰나 모르겠어. 원상에 요청하면 저 대선을 건조할 수 있지 않으려나?”

개똥이의 의문에 답을 해준 것은 의외로 박식한 젊은 사내가 아닌 중년 사내였다.

“아. 그건 내가 알지. 처음 원상이 커다란 배를 만든 것을 보고 조정에서 꽤 관심을 두긴 했는데...나중에 조선 수군엔 썩 맞지 않는 배라면서 관심을 끊었다고 하던데?”

“예? 저 멋진 배를 보고 말입니까?”

개똥이의 의문에 중년 사내는 기억이 잘 안 나는지 잠시 눈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뭐라더라? 아! 연안 방어엔 썩 맞지 않는 쓸모없이 커다란 배라고 했다나? 오히려 조운선으로 써먹으려다 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고 들었어.”

이에 반발할 줄 알았던 젊은 사내가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선 사정에 썩 맞진 않죠. 거기에 당시엔 노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범선이었으니.”

젊은 사내의 말에 개똥이는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거여? 배는 크면 좋은 것 아니었어? 요새 개척촌에서 온 이주민들 이야기 들어보면 큰 배가 좋다고 어떻게든 제일 커다란 배를 타려고 난리라던데.”

이에 젊은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먼바다를 항해하려면 커다란 배가 좋지요. 하지만 조선 수군이 먼바다로 나갈 일이 뭐 있겠습니까.”

“하긴...그렇긴 하네.”

그때 중년 사내가 함대 맨 앞에서 함대를 선도하는 지급 전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 저기 흰머리수리 깃발이다!”

다른 배와는 다르게 유일하게 삼태극 문양의 깃발과 함께 흰머리수리의 깃발이 휘날리는 배를 보고 개똥이가 잔뜩 흥분했다.

“저게 왕실의 깃발이라면서? 그럼 저 배에 전하가 타고 계신 건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원정 함대가 출항한 이후 삼태극 문양의 깃발이 국기라는 것과 더불어 흰머리수리가 그려진 깃발이 왕을 상징하는 깃발이라는 것이 북미왕국에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다들 잔뜩 흥분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함대의 맨 앞쪽에 위치한 지급 전선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외쳤다.

“어어! 지나간다!”

개똥이 일행은 자신들이 자리 잡은 지역을 유유히 지나가는 함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와아아!”

“주상 전하 천세!”

“북미왕국 천세!”

* * *

정성국은 마침내 지급 전선이 선착장에 정박하자 제일 먼저 지급 전선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전아라와 하얀 들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물론 그들의 뒤에 청장들도 줄줄이 서 있었지만, 정성국의 눈에는 맨 앞에 서 있는 전아라와 하얀 들꽃의 얼굴 외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보고 무척 환하게 웃는 전아라와 하얀 들꽃이었지만 정성국이 보기엔 평소보다 살짝 수척해 보였다.

이를 보고 마음고생이 심했나보다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 정성국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먼저 전아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덥석 안았다.

주변의 눈치 때문에 애써 담담한 척하던 전아라는 정성국의 품에 안기자 그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살짝 글썽거렸다.

“오라버니!”

그런 전아라를 보고 정성국은 미소지으면서 대답했다.

“다녀왔어.”

“흑.”

“에이. 울지 말고.”

정성국은 품 안에 쏙 들어온 전아라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달랬다.

잠시 후 감정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전아라가 정성국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이에 정성국은 오히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정성국은 첫 아카풀코 공격을 제외하면 후방에서만 대기했다.

거기에 아카풀코 공격 역시 김봉길과 호위대장의 걱정 때문에 정성국은 제대로 구경조차 못 했었다.

이를 편지를 이용해 이미 알리기도 했고.

헌데 전아라는 그런데도 정성국이 혹시 다쳤을까 노심초사한 것이 느껴졌기에 쓴웃음도 나오고 또 그만큼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의 품 안에서 빤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전아라가 이상하게 귀엽게 느껴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약속대로 전투 시엔 맨 후방에 있었는걸? 다칠 이유가 없지.”

정성국의 확답을 듣고 전아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다행이다.”

그런 전아라의 얼굴을 가까이서 빤히 바라본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수척해 보여?”

이에 전아라의 입술이 살짝 삐죽였다.

“그야 오라버니 걱정하느라 그랬죠.”

“그래서 계속해서 편지 보냈잖아?”

하지만 전아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전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그나마 이렇게 빨리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에요.”

그러면서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 전아라를 보고 정성국은 미소지었다.

“그러게. 전쟁 길게 끌었으면 정말 큰일 났겠다.”

그 말을 끝으로 전아라를 한번 강하게 안아주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정성국은 곧 그녀와의 포옹을 풀면서 하얀 들꽃을 바라보았다.

이에 전아라는 빙긋 웃으면서 슬쩍 옆으로 물러났고 하얀 들꽃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전하.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그래. 나 없는 동안 고생했지?”

“아니옵니다. 전하.”

정성국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하얀 들꽃을 보고 전아라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 잠시 그녀를 껴안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성국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하얀 들꽃은 잠시 정성국의 온기를 느끼자 진정이 되었는지 얼굴을 떼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하얀 들꽃을 보고 정성국은 웃으면서도 살짝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녀를 책망했다.

“아라도 너도 왜 이리 수척해 보이는지 모르겠네. 내가 분명 떠나기 전에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정성국의 책망에 정성국의 품 안에서 고개를 살짝 저으며 환하게 웃는 하얀 들꽃이었다.

“전하의 엄명이신데 어찌 이를 어겼겠습니까.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불편을 감수하고 전쟁터에 나가 계시는데 어찌 이곳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어...딱히 불편한 건 없었는데...”

딱히 불편한 것은 없었다.

애초에 정성국이 구중궁궐에서 태어나 고생 한번 하지 않은 왕족도 아니고 바깥에서 지낸다고 그렇게 고생스러워할 인사가 아니었다.

거기에 후방의 임시 보급항에서 별다른 불편 없이 일만 했고.

이에 괜히 머쓱해진 정성국이 곧바로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보고서를 보니 내가 없는 빈자리를 잘 메꿔준 것 같더구나. 고맙다.”

“아니옵니다. 전하.”

“그럼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이야기하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하얀 들꽃의 이마에도 입을 맞춘 정성국이 포옹을 풀었다.

하얀 들꽃은 잠시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정성국이 두 왕비와 애틋한 모습을 보이자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청장들이 정성국이 다가오자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정성국을 환영했다.

“전하!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이에 정성국은 자신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별다른 흔들림 없이 북미왕국을 이끌었던 청장들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아. 다들 오랜만이오. 헌데 북미왕국 전역에 소식을 널리 알린 것이오? 어째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이는데?”

이에 행정청장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미 승전을 했는데 이를 감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보고서를 통해 이미 보고를 올렸지만, 특히 조선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묘하게 불안해하는 눈치라 대대적으로 승전을 알려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북미왕국의 힘을 그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에스파냐에 호전적이었던 원주민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은 전쟁이라는 소식에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을 떠나 바다를 건너 이곳에 정착해 이제야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만약 이번 전쟁에서 북미왕국이 패배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파악한 행정청이 이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올렸었다.

“그건 그렇지. 잘 판단했군. 그래서 저렇게 좋아하는 건가?”

“그렇지요.”

이에 정성국은 행정청의 보고서를 보고 떠올렸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럼 축제라도 여는 것이 어떻겠소? 이번 승리는 우리 북미왕국의 승리지만 이는 후방에서 묵묵히 지원해준 백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으니 그들도 승리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게 말이오.”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이번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전하.”

자신이 지적하기도 전에 이미 일을 처리한 행정청장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정성국이었다.

이렇게 알아서 일을 처리해준다면 그만큼 자기 일이 줄어들 테니까.

“아. 그렇소? 이제 굳이 내 명령 없이도 알아서 잘하는구만.”

만족스럽게 웃는 정성국을 보고 행정청장은 살짝 정색하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자리를 비울 생각은 마시지요. 전하.”

그러면서 은근슬쩍 정성국의 뒤쪽에 서 있는 두 여인을 바라보는 행정청장의 행동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끙...알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