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현 에스파냐의 왕인 카를로스 2세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북미 지역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멕시코와 남미 지역에서 나는 귀금속에만 관심이 많았을 뿐.
그러나 카를로스 2세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단절되고 등장하는 스페인 부르봉 왕조는 북미 지역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북미 여러 지역에 스페인 탐사대를 보내 지형을 파악하고 북미의 꽤 넓은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해 영토만으로 따지자면 스페인 제국의 최전성기를 달성하게 된다.
허나 이번에 에스파냐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이 가져옴에 따라 더는 그럴 일이 없게 되었다.
물론 저들의 생각대로 북미왕국이 북미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부딪치며 발목이 잡힌다면 에스파냐 역시 나중에 전쟁을 통해 북미 지역을 노리겠지만 정성국의 생각대로 북미왕국이 발전해나간다면 감히 에스파냐가 이를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정성국은 푸른 안개가 조약문과 함께 올린 교역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고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저들이 원하는 도자기의 수량이 꽤 많군요?”
정성국의 말에 푸른 안개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처음엔 이 정도의 수량은 아니었습니다만...전하께서 연회 때 보여주라고 했던 장인들의 최고급 도자기를 보고 어떻게든 더 많은 도자기를 원하더군요.”
에스파냐와의 교역을 통해 수입할 것이 생각외로 많았다.
당장 필요한 고무와 구리, 구아노 등은 꽤 지속해서 수입해야 했는데 무역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이쪽에서도 지속해서 팔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들에게 팔만한 물건은 도자기 외엔 딱히 없었고.
그렇기에 저들에게 더 많은 도자기를 팔아먹기 위해 정성국은 장인이 생산한 도자기 중에 최고급품을 챙겨 떠나는 푸른 안개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교역품을 협상할 때쯤에 구실을 만들어 연회를 열고 이 도자기들을 사용하라고.
푸른 안개는 정성국의 명령대로 연회를 열고 그 연회에 도자기를 선보였고 이를 보고 눈이 돌아가 버린 에스파냐인들이었다.
그리고 연회 다음날 바로 북미왕국의 도자기 수준을 짐작하기 힘들어 극히 소량만 주문했던 물량이 대폭 증가했고.
그것을 기억하고 흐뭇하게 웃는 푸른 안개를 보고 정성국은 자신의 계획이 통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랬겠지요. 다행이군요. 도자기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구아노와 고무, 그리고 구리를 왕창 가져올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최대한 저들이 원하는 수량을 맞춰주려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약간의 모피 정도지요. 그리고 원상에서 취급하는 여인들이 사용하는 물품들은 저들이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아 일단 그냥 선물로 넘겼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의 무기도 탐내긴 했습니다. 거부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협상이 끝나자 은근슬쩍 북미왕국의 무기를 탐내면서 혹시 무기 거래가 가능한지 물어오던 에스파냐인들이었다.
당연히 푸른 안개는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을 하며 느낀 것이 이 에스파냐인들은 참으로 교활하고 못 믿을 자들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사기를 치려는 오를란도나 그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로하스나 다 똑같았다.
거기에 저들은 북미왕국에 북미 지역을 넘기며 내심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와 다투며 약해지길 바라는 것이 빤히 보였다.
그런 이들에게 북미왕국의 소중한 무기를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저들이 북미왕국의 무기를 손에 넣게 되면 기회를 봐서 다시 덤빌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푸른 안개였다.
“잘하셨습니다. 저들에게 함부로 우리의 무기를 팔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정성국의 대답에 푸른 안개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러주신 대로 사석에서 나중에 머스킷을 팔 수도 있다고 슬쩍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정말 저들에게 신식 소총을 파실 생각이십니까?”
정성국은 푸른 안개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인지 짐작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장은 아닙니다만...뭐 상황을 봐서 못 팔 것도 없지요.”
정성국의 대답에 푸른 안개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푸른 안개였다.
“하지만...”
푸른 안개가 무어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정성국이 짓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스파냐가 아이누 부족 연합처럼 우리의 확고한 동맹이 된다면 말입니다.”
이는 에스파냐에 신식 소총을 팔 마음이 없다는 말이었기에 왜 정성국이 사석에서 그런 언질을 주라고 한 것인지 이해한 푸른 안개가 큰 소리로 웃었다.
나중에 저들이 불만을 표시한다 해도 저들이 먼저 자신들을 속였으니 이를 언급하면 무어라 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하하하. 알겠습니다.”
* * *
이미 전쟁은 끝난 만큼 임시 보급항에 계속 주둔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만 이곳에서 짓고 있던 건물들이 꽤 있었고 이곳은 인력이 부족한 만큼 귀환을 살짝 미루고 병사들을 모두 동원해서 짓고 있던 건물들만 완성했다.
그리고 이곳을 관리할 경비대원 100명과 이곳과 통바 족의 영역을 오가며 물자를 옮길 인급 전선 3척을 이곳에 남겨두고 모두 배에 올라 임시 보급항을 떠나 북쪽으로 항해했다.
그렇게 며칠을 항해한 끝에 통바 족의 영역의 선착장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쉬기로 했다.
* * *
통바 족은 에스파냐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북미왕국에 합류하고 나서 에스파냐와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꽤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 전쟁에서 북미왕국이 승리하자 무척이나 기뻐하며 정성국을 만나기 위해 추장들이 몰려들었다.
정성국으로서는 이런 추장들의 만남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일이 만나 면담을 하고 저녁이 되자 휴식을 위해 지급 전선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지급 전선의 선장실에서 김봉길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김봉길이 경험했던 파나마 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다.
호위대장이 선장실로 들어와 들고 있던 종이를 정성국에게 넘겨주면서 보고했다.
“전하. 새나주에서 올린 보고서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의아한 표정으로 호위대장이 건네준 종이를 받았다.
“새나주에서? 이게 왜 여기에? 보고서는 일단 새김포로 가야 하지 않나?”
정성국의 의문에 호위대장이 이곳에서 만났던 전령을 떠올리며 말했다.
“전하께 급히 알려야 할 사항이라 임시 보급항으로 보고서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급히 알려야 할 사항?”
정성국은 굳은 표정으로 봉인된 종이를 펼치며 살짝 걱정했다.
새나주에서 급히 알려야 할 사항이라니.
설마 푸에블로 족이 자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의 병사들과 충돌한 것이 아닌가 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보고서를 읽었다.
그런 정성국을 보고 김봉길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정성국의 안색이 밝아지면서 감탄사를 흘렸다.
“아!”
정성국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뀐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봉길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김봉길의 물음에 정성국은 다시 한번 보고서를 확인하고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드디어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군.”
애당초 새나주를 개발한 목적이 바로 석유 때문이었다.
다만 아직 새나주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전생에서는 베이커스필드에 철도가 통과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며 영역이 넓어지게 되고 그 주변의 땅을 개간하면서 석유를 발견하게 되지만 아직 새나주의 영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비록 요쿠츠 족이 최근 새나주로 모여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해서 정성국이 이번 전쟁에 참여하기 전 새나주에 들렀을 때 그곳에 주둔한 군사청 소속의 병사들과 행정청에 명령을 내렸었다.
악취가 나는 검은 물을 찾아보라고.
그리고 발견하면 즉각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말이다.
정성국이 직접 새나주까지 방문해서 명령했기 때문일까.
새나주에 주둔하고 있던 경비대원들과 탐사대원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결국 석유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석유...요? 그게 뭡니까?”
김봉길은 정성국이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정성국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척이나 중요한 자원일세. 연료로 사용할 수 있지.”
“연료라면...? 석탄 같은 겁니까?”
석탄과 석유는 생성과정부터가 완전히 달랐지만, 학자도 아닌 김봉길에게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이었다.
“석탄이 고체라면 석유는 액체지. 뭐 간단하게 말해서 석탄보다 효율이 높은 연료라고 생각하면 될걸세.”
“오! 그렇습니까?”
정성국의 대답에 김봉길은 안색이 밝아졌다.
석유가 석탄보다 효율이 높다면 그만큼 선박의 운항 거리도 늘어나는 셈이었으니까.
이에 정성국은 김봉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고개를 저었다.
“당장 써먹기는 어려울 테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캐서 그냥 써먹을 수 있는 석탄과는 달리 석유는 정제부터 해야 하거든. 어느 정도 연구해야 하니 실제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걸세.”
정성국의 말에도 김봉길은 은근슬쩍 기대 섞인 눈초리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뭐...그래도 제가 은퇴하기 전에 석유를 사용하는 새로운 선박이 만들어지겠죠?”
“하하하! 그럼!”
정성국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일단 석유를 발견했으니 이를 채취해서 새김포로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려야겠군. 당장은 연구용으로 사용할 테니 크게 상관없지만...나중을 생각하면 석유를 운송할 수단이 필요한데. 송유관은 턱도 없고...기차로 운송한다 치면 철도를 깔아야 하나? 젠장. 조금만 여유로웠다면 이번에 텍사스 지역까지 길을 정비할 때 철도도 함께 깔면 좋을 텐데.’
석유를 운송하는 방안으로 철도를 생각한 정성국은 이내 골치가 아파졌다.
이 북미 지역은 워낙 넓은 만큼 철도를 부설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장 텍사스까지 제대로 된 길을 닦아야 하는 만큼 인력이 부족할 것은 뻔했고.
그 때문에 감히 이번에 길을 만들면서 함께 철도를 깔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현재 새로운 수도가 들어서고 있는 새크라멘토에서 텍사스 지역의 거점이 될만한 위치에 자리 잡은 휴스턴까지 직선거리만 해도 2500km였다.
당연히 실제 길을 만들게 되면 더욱 길어질 테고.
이 때문에 감히 제대로 된 길을 만들 생각조차 못 하고 적당히 험한 지형만 정비할 생각인데 철도는 꿈에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동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결국 철도가 필요하긴 한데...’
에스파냐와 일단 평화 협상을 맺은 만큼 뱃길을 이용할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가 없는 상황이라 새김포에서 텍사스 지역까지 뱃길을 이동하려면 남미를 빙 돌아야 했기에 일반적인 화물을 배로 옮기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 만큼 북미왕국이 동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철도가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문제는 가뜩이나 북미왕국의 인구수가 적고 다른 곳을 동시에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철도를 깔기 위해 많은 인력을 동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병사도 더 모집해야 하고 광산에 동원하는 인력도 부족한 판에...어휴. 어디 남는 인력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