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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114화 (114/850)

114화

멕시코 시티의 집무실에서 자신의 보좌관과 이야기하고 있던 안토니오 부왕은 조심스럽게 집무실에 들어와 보고하는 행정관을 바라보았다.

“오를란도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부왕전하.”

그러면서 행정관은 가지고 온 편지를 안토니오 부왕에게 건넸고 안토니오 부왕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개봉에 빠르게 그 내용을 파악했다.

그리고 행정관에게 손을 내밀어 나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고.

행정관이 안토니오 부왕에게 고개를 숙인 후 집무실에서 나가자 안토니오 부왕은 다시 한번 오를란도가 보낸 편지를 확인한 후 자신의 보좌관을 보고 입을 열었다.

“흐음...북미왕국이 협상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군.”

이에 보좌관이 일단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급히 상황 파악을 위해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협상에 들어간 겁니까?”

보좌관의 물음에 안토니오 부왕은 고개를 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식 협상은 앞으로 일주일 후에 하기로 했다는 소식일세.”

“바로 협상을 하지 않고 정식 협상의 날짜를 미루었다는 뜻은...”

그러면서 말을 흐린 보좌관을 보고 안토니오 부왕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시간을 줄 테니 협상할 때 전권을 갖고 오라는 뜻이겠지. 뭐 어차피 오를란도에게 협상에 대한 전권을 줄 생각이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이에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토니오 부왕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데 저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어찌합니까?”

보좌관의 물음에 안토니오 부왕은 그것이 문제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상황이라 너무 불리한 협상이 될 것이 뻔히 보였던 것이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협상하는 셈이었으니.

“후우...그게 문제긴 하지.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기엔...”

그러면서 말을 흐린 안토니오 부왕이었고 보좌관은 고개를 저으며 부디 북미왕국이 적당한 요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했다.

“저들이 아카풀코 항의 항복을 받아들이면서 은을 가져갔으니 차라리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오히려 안토니오 부왕은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건 오히려 최악일세.”

“예?”

의외의 반응에 보좌관이 움찔했을 때 안토니오 부왕이 입을 열었다.

“고작 아카풀코 항을 잠시 내버려 두는 협상으로 100만 페소에 달하는 은을 가져간 북미왕국일세. 헌데 종전 협상을 돈으로 해결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은을 줘야 하겠는가.”

“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보좌관이 탄식을 토해냈다.

확실히 안토니오 부왕의 말이 맞았다.

고작 아카풀코 항을 잠시 내버려 두는 조건으로 100만 페소를 주었다면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을 내버려 두는 조건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은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신대륙에서 한해 채굴하는 은이 200만 페소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향후 몇 년간 본국에 가져갈 은을 고스란히 북미왕국에 넘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를 상상한 보좌관이 부르르 떨 때 안토니오 부왕이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어차피 약탈당할 바엔 그냥 내어주고 안전을 도모한다는 오를란도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네만...그때 넘겨준 액수가 너무 커. 운이 없었지. 하필 교역 선단에 실을 은을 산 디에고 요새에서 보관하고 있을 때 쳐들어왔으니. 아무튼, 만약 저들과 돈으로 협상하게 된다면 향후 몇 년간 본국에 가져갈 은조차 없을걸세.”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안토니오 부왕을 바라보았다.

그럼 대체 저들과 무엇으로 협상할 생각이란 말인가.

“그럼 저들에게 내어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이 물음에 안토니오 부왕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영토가 있지 않나.”

“예?! 부왕전하! 그것은!”

당연히 보좌관은 기겁해서 부왕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때 보좌관의 귀에 장난기가 가득한 안토니오 부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목상의 영토 말일세.”

“아!”

“이미 유명무실해져 버린 토르데시야스 조약이지만...어쨌건간에 이 신대륙은 우리 에스파냐의 땅일세. 허니 그 영토를 넘겨주면 되겠지.”

이에 보좌관은 멍청한 표정으로 안토니오 부왕을 바라보았다.

영토라고 해서 당연히 누에바 에스파냐의 영토 일부를 떼어주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토니오 부왕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영토를 저들에게 내어주는 것으로 협상을 끝내려 했다.

기발하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본 보좌관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이 그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저들은 이 신대륙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나라잖습니까. 그러니 토르데시야스 조약 자체를 무시할 텐데요? 당연히 이 신대륙이 우리 에스파냐의 땅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테고요.”

보좌관의 지적에 안토니오 부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로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지만...적당히 속이면 되지 않겠나.”

“속인다고요?”

어리둥절한 보좌관을 보고 안토니오 부왕은 협상을 결정한 이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에스파냐가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럽 대부분 나라는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준수한다고 말일세. 이 조약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유럽 대부분 나라와도 싸우겠다는 의미라고 이야기해줘야지.”

그러면서 씩 웃은 안토니오 부왕이었지만 보좌관은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묘안이긴 하지만...통하겠습니까? 저들이 유럽에 대해 무지하다면 신경 쓰지 않을 텐데요?”

이에 안토니오 부왕은 보좌관이 놓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지적했다.

“그럼. 통할걸세. 최소한 저들 중 일부는 에스파냐어를 사용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저들에겐 우리 에스파냐의 군인들이 포로로 있지.”

안토니오 부왕의 지적에 보좌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속으로 계산해보고 안토니오 부왕의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당연히 정보를 얻었겠군요. 유럽의 정보를. 하지만 약간은 편향된 정보를. 특히 이미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에스파냐의 군인이 인정하지는 않았을 테니.”

보좌관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확인한 안토니오 부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런 만큼 유럽 여러 나라와의 전쟁은 아무리 북미왕국이라 해도 부담스러울 거야.”

이에 보좌관은 절묘한 안토니오 부왕의 술책에 감탄하면서도 고심하기 시작했다.

“흐음...허면 결국 영토 협상이라는 뜻인데...어디까지 용인하실 생각이십니까?”

보좌관의 물음에 집무실 한쪽에 걸린 신대륙의 지도를 잠시 바라보던 안토니오 부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최대 북아메리카 지역을 모두 넘길 각오도 하고 있네.”

“예에? 부왕전하. 그건 너무...”

안토니오 부왕이 북아메리카 지역을 모두 넘긴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기겁한 보좌관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을 때 안토니오 부왕은 그 말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북미왕국은 북아메리카 지역 전체를 자신의 땅으로 선언할 테고...자연스럽게 섬나라 놈들과 다툴 수밖에 없겠지.”

“아?!”

안토니오 부왕의 말에 보좌관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보좌관의 귓가에 담담한 안토니오 부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북아메리카 지역을 통째로 넘겨봐야 우리 에스파냐로선 크게 손해 볼 건 없어. 그동안 그렇게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성공한 것은 산타페와 산아구스틴 정도이지 않은가.”

이에 정신을 차린 보좌관이 머릿속으로 생각해보고 부왕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동안 에스파냐는 북아메리카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수백 년간 노력해왔지만 성공한 적은 드물었다.

그나마 북아메리카 지역에 유지한 식민지 중 플로리다에 건설한 산아구스틴은 최근 반란과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져 아직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걸핏하면 해적들의 습격도 받았고.

그리고 산타페도 원주민들의 반란 때문에 꽤 많은 에스파냐의 병사를 주둔시켜야 했기에 이득이 크지 않았고.

그러니 이 두 지역을 포함한 북아메리카 지역을 북미왕국에 넘겨봐야 에스파냐로선 크게 손해는 아니었다.

다만 향후 북아메리카 지역에 식민지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걸릴 뿐.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요새 섬나라 놈들이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확장 중인데 우리 에스파냐로선 그것을 막을 여력이 없지.”

현재 플로리다는 에스파냐의 영역이었다.

이 플로리다를 차지하기 위해 에스파냐는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프랑스와 싸워 결국 프랑스를 내쫓았고.

하지만 최근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확장하던 잉글랜드가 은근슬쩍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플로리다 북쪽의 캐롤라이나에서 잉글랜드 이주민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막기가 쉽지 않다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플로리다를 두고 다시 에스파냐와 잉글랜드가 한판 붙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는데 문제는 현재 에스파냐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것.

“허면...”

그러니 잉글랜드와 대신 싸워줄 상대를 구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북아메리카 지역을 북미왕국에 넘겨버리고 둘이 싸우게 하는 것이 최선일세. 아니지. 아예 북아메리카 지역은 북미왕국의 땅이라고 유럽에 널리 알리는 것도 괜찮겠군. 그러면 식민지를 건설하고 싶어하는 여러 나라가 북미왕국과 다툴 테니까.”

그러면서 보좌관을 보며 씩 웃는 안토니오 부왕이었다.

“오오!”

그리고 보좌관은 안토니오 부왕의 설명을 다 듣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분명 현재 상황은 에스파냐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북아메리카를 북미왕국에 넘겨버리면서 북미왕국의 국력을 소진 시키고 유럽의 여러 나라와 원한 관계를 만들 묘수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에스파냐는 커다란 손해도 보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그냥 북아메리카 지역을 넘기는 것이 최선일세. 괜히 저들이 우리 부왕령의 금광이나 은광에 눈독을 들이면 에스파냐의 손해이니 말일세. 그리고 저들은 원주민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니만큼 우리의 제안을 무시할 수는 없을걸세. 명분상 말일세. 물론 저들이 그런 명분을 신경 쓸 정도로 문명화된 국가인지는 의문이네만...”

그러면서 말을 흐리는 안토니오 부왕이었지만 보좌관이 나서서 그 말을 받았다.

“오를란도의 보고가 정확하다면 어느 정도 문명화된 나라라고 판단되니 제대로 먹힐 겁니다!”

이에 안토니오 부왕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 분명 현재 우리 에스파냐의 상황은 좋지 못하네. 영광은 잊히고 시련만이 가득한 시기이지.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시련만이 가득하지는 않을 거라 믿네. 그리고 그때 이 굴욕을 갚아주면 그만인걸세.”

“역시!”

미래를 바라보는 안토니오 부왕을 보고 보좌관은 감동한 눈빛을 보내며 안토니오 부왕을 바라보았고 그는 그런 보좌관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그러니...자네도 아카풀코로 가서 오를란도를 돕도록 하게. 비록 편지로 이러한 내용을 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편지로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말일세.”

이에 보좌관은 굳은 결의를 보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왕전하. 꼭 부왕전하의 계책대로 협상을 이끌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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