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북미왕국의 원정준비는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이번 원정은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정성국은 꽤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었고.
특히 전쟁은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정성국이었기에 물자 생산과 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더욱 신경 썼다.
동시에 자신이 잠시 북미왕국을 비우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장들의 권한과 책임을 늘렸고 하얀 들꽃에게 일상적인 행정 업무는 모두 맡겼다.
다행히 하얀 들꽃은 그동안 정성국의 곁에서 일을 도왔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했고.
정성국은 이를 이용해서 친정을 반대하는 청장들을 설득해 결국 이번 원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 * *
“공격을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급히 보고할 것이 있다며 집무실로 찾아온 조용한 곰에게 차를 권했지만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으며 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이번에 푸에블로 족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외무청 소속의 관리와 탐사대원들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였다.
이에 정성국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다가 일단 피해 여부부터 확인했다.
“혹시 다친 사람은 있나?”
“탐사대원 두 명이 살짝 다친 모양입니다. 그 외엔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성국이 적들은 어떤가 싶어 물어보았다.
“휴우. 그럼 저들은? 포로는 잡았나?”
“적들이 무척 거세게 덤벼들었고 수적으로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포로를 잡을 여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수적으로 부족했는데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고?”
“만약을 대비해 단총을 소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무기의 질에서 차이가 났으니.”
“아.”
일단 푸에블로 족과 접촉하는 외무청 관리들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붙는 탐사대원들은 통바 족으로 위장해야 했기에 갑오 소총 대신 강철로 만든 칼과 방패로 무장을 했다.
특히 이곳의 원주민들은 에스파냐와 교류가 있었기에 머스킷을 알고 있었으니 갑오 소총으로 무장할 수는 없었다.
다만 무장이 빈약해 불안했기에 숨기기 쉬운 단총을 짐 안에 넣고 다녔는데 이를 사용해 습격을 수월하게 방어한 듯싶었다.
“포로가 없다면 우리를 공격한 원주민이 어느 부족인지 모르겠군?”
그러면서 정성국은 안색을 굳혔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때 정성국의 귓가에 조용한 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로는 아파치 족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의외의 보고에 정성국은 생각을 멈추고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아파치 족?”
“그렇습니다. 전하.”
“흐음.”
갑자기 아파치 족이 나타나 습격했다는 이야기에 혹시 아파치 족에게 북미왕국의 이야기가 알려졌나 싶어 잠시 인상을 쓰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저희가 푸에블로 족과의 교류를 위해 통바 족으로 위장하고 주로 소금과 말린 생선 등을 챙겨 저들과 교역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가 저들에게까지 흘러 들어간 모양입니다.”
“아.”
북미왕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밥이었던 푸에블로 족과 교역을 하는 통바 족을 노렸다는 이야기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이 탄식을 토해냈다.
“이를 탐낸 아파치 족이 푸에블로 족의 영역 서쪽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우리가 보이자 곧바로 습격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탐사대원들이 잘 대처했고 말입니다.”
그제야 정성국은 전에 보고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푸에블로 족은 아파치 족과 나바호 족에게 시달리다 결국 에스파냐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정성국은 나중에 푸에블로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에나 저들과 부딪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조금은 의외였다.
그리고 외무청에서 보고했던 아파치 족의 영역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아파치 족의 활동 범위가 넓은 건가? 푸에블로 족 영역의 북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니었어?”
“아. 아파치 족 중의 일부는 말을 타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때문에 아파치 족의 활동 범위가 넓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만.”
“하아.”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타고 습격하는 아파치 족이라니.
이는 정성국이 전생에서 아파치 족하면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이긴 했다.
말을 타고 토마호크를 던지며 미국 기병대를 공격하는 강인한 전사의 이미지.
문제라면 그 아파치 족을 이제 북미왕국이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그런 이미지의 아파치 족은 1800년대에 생긴 이미지였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건 좀 의외였다.
‘빌어먹을 스페인놈들. 말 관리 좀 잘하지.’
원래 말은 신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멕시코 지역을 장악한 이후 말을 들여오면서 신대륙에도 말이 보급되었다.
거기에 스페인은 멕시코를 장악한 이후 꾸준히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고 몇 번이고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타고 왔던 말이 야생마가 되었고 결국 북미 대륙에도 야생마가 생겨났다.
아파치 족은 이런 야생마를 길들여 타고 다니는 듯싶었다.
덕분에 아파치 족의 행동반경이 더욱 넓어졌고.
‘다행이라면 일부만 말을 탄 것을 볼 때 아직 말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건가? 어쨌건 간에 아파치 족이 말을 이용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에스파냐를 대신해서 푸에블로 족을 도와야 하는 북미왕국으로서는 당연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냥 약탈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약탈하는 상대였으니.
원래의 계획대로였다면 푸에블로 족의 마을에 경비대원을 배치하는 선에서 끝낼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이렇다면 계획을 어느 정도 수정해야 했다.
‘일단 탐사대의 규모를 키워야겠네. 그리고 나중에 기병대와 탐사대를 분리하면 되겠지.’
정성국은 속으로 군사청장에게 내릴 명령들을 기억하면서 다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습격을 방어하고 바로 물러난 건가?”
“아닙니다. 경미한 피해였기에 강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에야 보고가 올라온 것이구요.”
“그럼 임무는?”
조용한 곰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예정대로 푸에블로 족에게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렸다고 합니다.”
이에 정성국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고 합니다만 원주민들이 뭉쳐 백인들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 하니 몹시 관심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조용한 곰이 전해준 푸에블로 족의 반응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예. 아무래도 그동안 저들과 교류하면서 친해졌기 때문인지 우리가 위장했던 통바 족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했다고 하자 몇몇 마을의 부족장들은 혹시 북미왕국에 합류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조용한 곰이 덧붙인 말에 정성국은 입꼬리가 승천하기 시작했다.
“좋았어!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군.”
“그렇습니다. 전하.”
“그럼 이후는...”
조용한 곰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출전하신 이후에 다시 푸에블로 족의 마을들을 방문해서 예정대로 소문을 풀겠습니다.”
외무청의 보고를 통해 파악해보니 정성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푸에블로 족은 에스파냐에 대한 반감이 큰 편이었다.
정성국은 푸에블로 족과 교류하며 그들을 종교 문제로 자극해 에스파냐에 대한 불만을 키울 생각이었지만 실제 외무청의 보고를 통해 파악해보니 이미 불만은 어마어마했다.
단지 내색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
에스파냐가 푸에블로 족을 통치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60년이 흘렀다.
이 통치 기간에 에스파냐는 푸에블로 족의 영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에스파냐어를 쓰게 했고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렇다고 푸에블로 족이 풍족해진 것도 아니다.
에스파냐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아파치 족과 나바호 족의 약탈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그만큼 에스파냐가 뜯어갔으니까.
이 때문에 에스파냐의 반감이 무척이나 컸다.
다만 푸에블로 족이 일제히 에스파냐에 봉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봉기해서 에스파냐와도 적대하게 되면 주변이 온통 적대세력에 둘러싸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푸에블로 족은 참고 있었을 뿐이다.
헌데 이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리고 작년에 있었던 에스파냐 교역 선단과의 교전에 대한 소문을 퍼트려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와 대등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식시킨다면?
그리고 북미왕국에 푸에블로 족에게 손을 내민다면?
푸에블로 족은 기꺼이 에스파냐보다는 북미왕국을 선택할 거라는 외무청의 보고가 있었다.
아니. 아직 그러한 소문을 퍼트리지도 않고 북미왕국의 존재만을 알렸을 뿐인데도 북미왕국으로 합류할 수 있을지 묻는 부족조차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정대로 에스파냐 교역 선단과의 교전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고 후에 누에바 에스파냐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 그리고 결국 승리했다는 소문까지 퍼트린다면 손쉽게 푸에블로 족을 북미왕국으로 합류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소문이 다 퍼진다면 아파치 족이나 나바호 족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 계산 실수로군.’
정성국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부분은 외무청에서 그동안 잘 해왔으니 믿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전하.”
* * *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나가자마자 호위대원을 시켜 군사청장을 찾았다.
군사청장 역시 곧 있을 원정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정성국이 직접 군사청 건물로 이동했다.
“전하? 여긴 어쩐 일로...”
“급하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네.”
그러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군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탐사대에서 올라온 보고를 듣긴 했습니다. 해서 다음 회의 때 전하께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아. 그런가? 뭐 누가 보고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아파치 족이 우리의 생각보다 활동 반경이 넓다는 거야.”
“그렇지요.”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군사청장의 안색은 심각해졌다.
군사청장은 조선 출신이었기에 말을 타고 틈을 노려 약탈하는 여진족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군사청장은 북미왕국에서도 제대로 된 기병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이야기했다.
그 의견에 정성국 역시 동의했고.
분명 기병을 막을 수 있는 건 제대로 된 성벽이나 같은 기병뿐이었으니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헌데 지금 병사의 여유가 별로 없지?”
“예. 작년 겨울에 5천을 더 모집해 경비대에 소속시키긴 했습니다만...이번 원정에 경비대 2천이 따라가기로 되어있고 만약을 대비해 북미왕국 남쪽의 방어를 위해 새나주에 2천, 은 광산지대에 1천의 경비대가 내려가 있는 상황이라...”
육군이 부족할 것 같아 작년에 미리 5천의 병사를 더 늘린 북미왕국이었지만 이미 모집한 병사 대부분은 이번 원정에 대비해 북미왕국 남쪽으로 포진해 있었다.
에스파냐가 육지로 북미왕국으로 쳐들어올 능력이 없다는 것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3천을 북미왕국 최남단의 새나주 인근에 나누어 배치했다.
그리고 2천은 이미 통바 족의 영역에서 이미 실어날랐던 보급 물품을 지키면서 원정군이 남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 중 절반은 배를 타고 남하해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에 건설될 임시 선착장의 경비를 맡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군사청에는 여유 병력이 전혀 없었다.
이는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별수 없지. 더 모집하는 수밖에. 다만 이미 병사를 모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2천 정도만 더 모집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들은 탐사대로 배속시키고.”
애당초 병사를 모집하는 이유가 기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이번에 모집하는 병사를 모두 탐사대로 배속시켜 탐사대의 규모를 늘리라고 이야기하자 군사청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전하. 차라리 경비대원들 중에 말에 익숙한 자들을 뽑아 탐사대로 배속시키고 새로 모집하는 인원들은 경비대에 소속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만...”
아직 북미인들에게 말은 익숙한 동물은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이주 선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마소를 많이 옮겨옴에 따라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인 상황이었지만 주로 민간엔 소를, 군에선 말을 다뤘기에 오히려 경비대원들 중에 말을 탈 줄 아는 사람들을 탐사대로 배속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는 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게. 중요한 것은 탐사대의 인원을 늘리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