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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99화 (99/850)

99화

“거기에 어차피 우리 북미왕국은 계속해서 개척촌과의 교역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저들의 은이 우리 북미왕국으로 몰린다면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과연 에스파냐의 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한 해에 스페인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은의 양은 약 2, 3백만 페소.

무게로 따지자면 약 50~80톤에 가까운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 만큼 최소한 북미왕국에서 매년 5~8톤의 금을 캐야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비율이 1:12였지만 지속해서 비율이 상승해 1700년대에만 하더라도 1:15까지 변화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유럽의 교환 비율이 상승하는데 이 계획처럼 북미왕국의 교환 비율을 1:10으로 고정해버린다면 그만큼 북미왕국이 손해를 볼 테니까.

물론 청과의 무역을 통해 추후에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한들 잘못하다간 금과 은의 지속적인 유출과 유입으로 인해 경제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기에 고민이 커졌다.

이를 슬쩍 흘리자 정평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럼 아예 금화는 발행하지 말고 일단 은화만 발행할까요?”

“으으음...”

일단 은본위제를 시행하자는 정평국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정성국은 슬쩍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아무리 전생의 지식이 있다고 한들 경제 전문가도 아닌데 바로 결정을 내리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일단 한 냥짜리와 한 돈짜리 금화 은화를 모두 발행하고 대신 원으로 표기하는 건 은화로 한정하자.”

이에 정평국은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럼 금화를 사용하기 조금 불편할 텐데요.”

애초에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서인 만큼 이를 걱정하는 정평국이었지만 정성국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금화는 고액화폐라 일반 백성들은 크게 불편한 것을 모를 거야.”

“그렇긴 합니다만...”

어차피 1원짜리 은화조차 액면가가 커서 백성들의 편의를 생각하자면 나중에 동전을 찍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이에 정평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마저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단은 계획처럼 1:10을 기준으로 금은을 교환해주고...상황을 봐서 교환 비율을 조절하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헌데 그럼 주화는 실제 무게대로 만듭니까?”

한 냥은 37.5g이고 한 돈은 3.75g이었는데 이를 순수 금은으로 채우냐는 정평국의 물음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야 있나. 주조 비용을 생각해야지. 음...적당히 불순물을 좀 섞어서 제조하자고 하자고. 한 1할 정도?”

가뜩이나 교환 비율 때문에 금화가 서양으로 빠져나갈 확률이 다분한데 순수 금으로 금화를 주조하면 북미왕국으로서는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최소한 주조 비용이라도 건져야 했기에 이 부분은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정성국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화의 도안은 어떻게?”

“흐음...이건 좀 고민해봐야겠는데.”

그러면서 잠시 고민에 빠진 정성국이었다.

북미왕국은 신생 왕국이라 제대로 된 상징이 없었다.

‘전생의 사용했던 동전을 생각해보면...건물, 식물, 위인, 동물인가? 근데 북미왕국에선 딱히...’

그때 슬쩍 정평국이 넌지시 형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유럽에서 금화를 찍어낼 때는 보통 그 나라 왕의 옆모습을 도안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있다던데...”

이에 정성국은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는 100원짜리 동전과 엘리자베스 2세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는 1파운드 동전을 떠올리고 잠시 고민했지만, 썩 내키지 않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 화폐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영광이기는 했다.

하지만 생전에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옆모습을 도안으로 쓰겠다고? 글쎄...딱히 내키진 않네.”

“그렇습니까?”

정성국의 거부에 시무룩해진 정평국이었다.

그런 정평국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고 입을 연 정성국이었다.

“으음...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동물은 역시 흰머리수리지?”

이에 정평국은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흰머리수리를?”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북미왕국에서 새롭게 제조될 화폐의 도안이 결정이 났다.

처음엔 화폐마다 다른 도안을 사용하는 안도 검토했었지만, 금화와 은화는 색도 다르고 1냥과 1돈의 크기도 무척이나 달랐기에 모든 주화에는 흰머리수리의 얼굴이 새겨지게 되었다.

다만 뒷면은 아라비아 숫자로 1과 10을 표기하도록 했고.

금화에는 단지 아라비아 숫자만 표기된 것과는 달리 은화에는 원이라는 단위도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

또한, 위조 방지를 위해 최대한 정밀한 도안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 * *

정성국이 화폐의 도안을 생각하면서 문득 떠올렸던 것이 바로 아직 북미왕국의 국기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곧바로 청장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국기 말입니까?”

“그렇지. 국기. 북미왕국을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할 수 있지.”

“으음...그렇게 말씀하셔도...”

청장들은 갑작스러운 정성국의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원주민들은 국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조선인들도 조선에서 사용하는 깃발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들이 떠올린 깃발들은 대부분 한자로 신분을 나타내는 깃발이 대부분이었기에 정성국이 이야기하는 국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정성국은 현재 다른 국가가 사용하고 있는 국기를 쓱쓱 그려나갔다.

“이건 참고만 하도록 하게. 이건 에스파냐의 국기라네.”

“호오.”

흔히 부르고뉴의 십자기로 불리는 흰색 바탕에 x자 모양의 붉은 톱날 모양의 선이 인상적인 에스파냐의 국기를 그리자 청장들은 신기하다는 듯 서로 이야기하며 바라보았다.

에스파냐 하면 떠오르는 국기가 바로 이 부르고뉴의 십자가로 보통 에스파냐의 함선의 돛에는 이 부르고뉴의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실제로는 정식 국기가 아니라 해군기였을 텐데...’

이 당시 에스파냐의 공식 국기가 없었고 에스파냐의 모든 선박에는 이 해군기인 부르고뉴의 십자가가 달려있었기에 어영부영 에스파냐의 국기가 되어버렸다.

이를 설명하면서 다시 정성국은 다른 국기를 그렸다.

“이건 잉글랜드의 국기라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그려져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를 그리자 청장들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스파냐의 국기와 색도 모양도 비슷하군요?”

“서양의 국기는 다 이런 식입니까?”

아무래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스파냐의 국기와 잉글랜드의 국기는 꽤 유사했기에 청장들은 의문을 표했다.

이러한 의문에 정성국은 하얀 바탕에 노란색 백합 문양이 무수히 박힌 프랑스의 국기를 그리며 말했다.

“그렇진 않네. 이것처럼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을 사용하는 국기도 존재하지.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국기일세.”

“호오...”

청장들은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국기와는 전혀 다른 프랑스의 국기를 보고 신기해했고 정성국은 덧붙였다.

“이 나라들이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의 국기일세. 자네들도 기억해두는 것도 나쁠 것은 없을 거야.”

정성국의 말에 다시 한번 정성국이 그린 국기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청장들이었다.

헌데 연구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 헌데 전에 설명하기로는 네덜란드라는 나라도 있지 않습니까?”

“아...”

정성국이 기억하는 역사대로라면 약 2년 전에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뉴 네덜란드는 이미 잉글랜드에서 보낸 군함에 의해 항복하고 이미 뉴 요크, 즉 뉴욕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네덜란드를 배제했었지만 이를 상세히 언급하기는 뭐해서 그냥 네덜란드의 국기도 그렸다.

어차피 네덜란드의 국기는 단순했으니까.

“이게 네달란드의 국기일세.”

위로부터 빨강, 흰색, 파랑의 삼색기인 네덜란드의 국기는 훗날 프랑스의 국기를 옆으로 돌린 것과도 같았다.

“단순하지만...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드는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렇게 내가 직접 그려줬으니 슬슬 우리가 사용할 국기를 좀 떠올려보라고.”

이에 청장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정성국은 그런 청장들을 바라보았고.

어차피 국기야 정성국이 그냥 정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인 만큼 구성원인 청장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싶었다.

‘어차피 왕실기를 따로 만들어야 하니 그걸 내 마음대로 정하면 그만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구청장이 입을 열었다.

“태극 어떻습니까? 흰 바탕에 태극 문양을 사용하는 것은?”

연구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안색을 굳히며 제재하려는 순간 조용한 곰이 호기심을 표했다.

“태극? 그게 무엇입니까?”

이에 연구청장은 열심히 태극의 의미를 조용한 곰에게 설명했고 이를 다 듣고 난 조용한 곰은 감탄했다.

“오오...하늘과 땅이라...단순한 문양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그거 괜찮군요.”

어차피 조선인들이야 익숙한 태극 모양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원주민인 조용한 곰 역시 그 의미를 듣고 만족해하는 눈치였기에 정성국은 얼떨떨했다.

‘어라?’

정성국 역시 처음 국기로 태극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태극 하면 서양에선 동양을 떠올릴뿐더러 원주민과는 크게 의미가 없는 문양이라 일부러 배제하고 차라리 왕실기의 문양으로 사용할까 했었다.

헌데 연구청장의 설명이 그럴듯했는지 오히려 조용한 곰도 태극 문양을 만족해했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원주민들을 위해 의견을 제시했다.

“태극도 좋지만, 삼태극이 더욱 북미왕국에 부합할 것 같네.”

그러면서 삼태극을 그리며 조용한 곰에게 천지인의 개념을 설명하자 조용한 곰은 삼태극 문양의 의미도 좋다면서 만족해했다.

“그리고 삼태극을 구성하는 색은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동물인 흰머리수리에서 가져오도록 하지.”

이에 조선인들은 어차피 문양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삼태극으로 정해졌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말에 흥분해서 입을 열었다.

“오오! 그럼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삼태극이 되겠군요!”

“그렇지.”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정성국을 바라보던 조용한 곰이 무척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렇게 저희를 배려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정말 감사합니다. 전하.”

그런 조용한 곰을 보고 미소지은 정성국이 관리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국기가 정해졌으니 빨리 생산에 들어가도록 하세. 그리고 다음 달 에스파냐로 출정할 때 정식으로 국기를 백성들에게 선보이도록 하지.”

정성국의 명령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정성국은 회의실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왕실기의 문양으로 사용할 태극이 국기가 되어버렸으니...국기 후보였던 흰머리수리의 문양을 왕실기로 사용해야 하나? 뭐 나쁠 것은 없는데 이러다가 후세에 내가 흰머리수리의 덕후로 알려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오늘따라 후대의 평가를 걱정하는 정성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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